1. 도돌이표 상상
어제쯤에도 분명 낚시터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착하고 집요한 그 친구는
틈만 나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호기심과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생각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는다
그곳에 적당한 먹이를 끼운 낙시바늘을 달고
이두박근 삼두박근 승모근과
허벅지 근육과 하단부 허리의 근육
손목 인대에 걸려있는 잔 근육까지 모두 동원해서
아직 깊은 어둠이 넘실거리는 수면 저 멀리에
호기심 엉겨붙은 욕망과 때 묻은 감정의 찌꺼기까지
잔뜩 매달아 던졌을 것이다
등줄기에 땀방울 스민 긴장이 지나간다
발끝에 슬그머니 힘이 들어가고
사탕발림보다 더 보드랍게 드리운 함정에
박제된 눈을 얹어 두었을 것이다
느즈막 아침에 먹었을지도 모를
마뜩잖은 반찬의 흔적이 떠다닐 것같은 새벽은 더디고
밤은 열린 귀를 넘나들 것이다
뇌 속 다른 방에서는 수십 년 다니던 물터의 고기들과
낚아 올린 자랑스러움이 찰랑거리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애욕이 들러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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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르침과 깨우침
자연이
나무를 통해 꽃을 통해
보내온 가르침은
기다리는 것과 인내하는 것이다
한 계절을 위해
더러는 계절 속 단 며칠을 위해
한 해를 너끈히 견뎌내게 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 바람 흙으로 견디는 마음도
별과 어둠과 해로 상처와 치유까지
끊임없이 전해 주었다
인간이 자연의 존재임을
스스로 알아가게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가혹하게도 일평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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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장 힘든 일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성공을 위해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힘든 일이다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흔들리는 한 가닥 마음마저
아무렇지 않게 갈무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
꼭 하나 더 있다
타인의 시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열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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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해
평탄한 길은
지루하고 매력이 없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내일은
가슴을 울리는 희망이 없다
아무런 생각 없는 오늘은
죽어보는 것만 못할 것 같다
무덤덤한 현실이 결국
시간의 무덤을 만든다
진정 도전해야 하는 것은
비껴갈 수 없는 난관
피할 수 없는 어려움
절망처럼 보이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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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품의 진실
꼬부랑 길
험난한 산길
낭떠러지
진창
예측할 수 없는 늪
사람들마다
자신이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극한의 길
시간을 훌쩍 넘어 돌아보며
그런 일도 있었지... 한다
굴곡진 생각 따위 버릴 용기가
콩알만큼 자라나 있다
숨고르고
한 발짝 물러서서
허리를 펴고 간다
다시 오지 못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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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건망증
옳지 않아
옳지 않아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가벼운 웃음을 주던
지인의 우스갯 소리가
며칠 째 머릿속에 맴도는데
정작 그 친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옳지 않아
옳지 않아
입버릇 같은 싱거운 농담에
피식 웃곤 했는데
베일속에서 나타나질 않는다
이건 정말
옳지 않아
옳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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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래도 가야 한다면
어느 날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더랬지
이렇게 사는 것도 인생인가
어느 날은 그런 생각도 들었어
그래도 살아야지
패션이 해마다 다르게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듯
비슷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구나
그게 삶이었구나
계절이 각기 분명한 성격과 다른 색깔로
자기 일과 직분에 충실하듯
그리 사는 것이로구나
내일이 오면 피곤이 채 풀리지 않은
무겁고 지친 몸을 일으켜 문밖을 나서겠지
내게 주어진 삶의 하루 부분 형태겠지
그래도 가야 한다면
살아가는 최소한의 의미라도 존재 안에 끼워 넣어 주자
그래도 가야 한다면
후회는 남지 않도록 해야지
미련도 슬픔도 그리움도 사랑도 남김없이 두고 가자
가고 픈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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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단 한 번으로
단 한 번으로
출발선에서부터
도달하는 곳의
격이 달라진다
단 한 번으로
내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맺히는
크기가 달라진다
단 한 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단 한 번이
나라는 존재의
가치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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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말 아끼기
가끔은
말 대신 눈빛으로
대답할 수 있다면
작은 속내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
표현이 애매한 마음
표정을 담은 시선이
더 어울리는 마음
입 밖에서 독이 되는 말과
갈무리도 힘든 마음
마구 토해놓은 불필요한 말
구태여 필요치 않은 말
꺼내기도 불편한 말
겨우내 공간에 얼어 붙어서
새 봄에 녹아내리며
돌아오는 계절이 시끄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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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때늦은 용기
움직이는 동선이
답답할 때가 있다
아무리 크게 숨쉬어도
개운치 않을 때가 있다
눅눅한 삶속에서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것이 마음에서 비롯된
불편임을 알고도
단순하고 간단한 일인데도
적절한 치유를 끌어내지 못한다
실마리를 찾아
엉킨 타래를 풀고나면
머리가 허옇게 세어 있기 일쑤다
첫댓글 류심선생님의 자유시를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