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
이맘때 경남 사천은 이 단어가 유난히 생각나는 여행지다. 올해도 좋은 예감을 갖고 찾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파릇파릇한 봄기운을 몸 안에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보약이 따로 없다.
사천은 부산에서 멀지 않다. 자동차로 두 시간이면 후딱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천을 잘 안다고 주장하는 부산 사람이 많다. 사천을 포함해 서부 경남지역 출신 사람들이 유독 부산에 더 많이 살아 "사천에 가면 이곳저곳을 꼭 둘러봐야 한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그래, 사천에 가면 다솔사와 실안, 항공우주박물관을 꼭 둘러보라.
다맥어촌 입구 장식 '가리비 껍질 담'
굴 종패 투척 5~6월 전에 가야 감상
저수지에 조성된 '서택사랑테마공원'
멋진 산책로 일품 호수공원 같아
한·중 인연 이어주는 숨은 사적지
선진리왜성·조명군총 새롭게 주목하지만 사천이 고향이라도 잘 모르는, 아니 좀처럼 기억하지 못하는 풍경이 있다. 왜? 딱 요즘 계절이라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 이런 풍경이 있었나?"라고 되묻지 말자. 촌스럽게, 아니 도시스럽게.
■사천에 가면 '이런 풍경' 있다이맘때 사천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 중 첫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이 가리비 껍질 담이다. 새하얀 가리비 껍질 수천 개, 아니 수만 개로 거대한 담을 쌓아 놓았다. 사천 서포면 다평리 다맥어촌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담은 다맥어촌
체험마을 입구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높이가 어른 키에 가깝다. 담 한쪽에 서면 반대편의 바다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길이도 30∼40m는 족히 되고 폭도 1m를 헤아린다. 이 때문에 바닷바람을 막는 방법 치고는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갖는 여행자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이는 담 용도로 만든 것이 아니다. 굴 종패가 잘 붙어 자랄 수 있게 한 것으로, 양식업자들은 이를 '패각'이라고 부른다. 패각은 굴이나 가리비 껍질을 사용하는데, 껍질에 구멍을 내 목걸이처럼 줄에 꿰어 바다에 던져 놓으면 굴 포자가 떠돌다 달라붙는다. 이런 광경은 사천만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유독 이곳에서는 종패를 바다에 투척하는 5∼6월까지 마을 선착장에 담처럼 쌓아 놓아 이색 볼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니 요맘때가 아니면 고향 사람이라도 구경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맥어촌에는 이 밖에도 볼거리가 많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나타나고, 물이 들면 에메랄드 빛의 바다가 펼쳐진다. 숙박시설 겸 마을체험 종합안내소 왼쪽으로 돌아가면 해변을 따라 나무덱(deck)을 걸을 수 있고, 도중에 전국에서도 드문, 바다 위의
원두막(혹은 정자)에 오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서포면에서 다맥어촌으로 들어가는 오르막 도로 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마늘밭도 봄에는 좋은 구경거리다. 겨우내 언 땅에 숨어 있다가 봄볕에 톡톡 솟아오른 마늘잎이 초록 빛깔로 시선을 끈다. 마늘은 다른 식물보다 일찍 싹을 틔운다. 통상 2월 말부터 3월 초에 싹이 올라오는데, 이 무렵의 잎 색깔이 가장 푸르고 선명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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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맥어촌으로 가는 도로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마늘밭의 마늘잎이 파릇파릇하다. |
■사천에 가면 '사랑공원' 있다
이름이 예뻤다. 사랑공원이라. 정확히 쓰면 '서택사랑테마공원'이다. 개장한 지 1년 5개월밖에 되지 않아 사천 사람들도 그 이름을 아직 잘 모른다. 다만, "서택저수지 말이가?"라고 되묻는다. 맞다. 부산 사람들에게도 서택지는 잘 알려졌다. 특히 낚시인이라면 으레 "월척 붕어 잘 잡히는 데 아이가?"라고 물을 것이다.
사천 용현면의 서택저수지는 그렇게 새 이름을 얻었다. 사랑스러운 새 이름을. 서택사랑테마공원은 농림부가 50억 원을
투자해
친환경 다기능 친수공원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저수지라고 했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호수공원 같다. 그만큼 넓다. 저수지 주변으로 산책로가 길게 조성됐고, 곳곳에 쉼터와 보행 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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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한 지 1년 반가량 된 서택사랑테마공원. 저수지를 가로지른 긴 다리가 눈길을 끈다. |
특히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상당히 길고 낮아 주변 풍경을 '수평적으로' 감상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눈썰미 있는
사진작가들이
촬영 명소로 꼽고 있다.
카페나 갤러리가 더러 설치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혹은 설치 예술품을 한둘 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아마 곧 그렇게 되리라.
■조명군총과 선진리왜성도 함께뜻밖의 봄 풍경에 기분이 좋아졌다면 귀갓길에는 사천의 숨은 사적지도 둘러보자. 선진리왜성과 조명군총이 최근 새롭게 주목 받는 여행지다. 한류를 타고 중국 관광객들이 부산을 즐겨 찾으면서 자신의 선조와 관련된 이곳도 방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인연을 이어줄 사적지로 이만한 데가 없다.
'조명군총(朝明軍塚)'은
한자어 그대로 '조선과 명나라 군사의
무덤'을 뜻한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선조 31년), 조·명 연합군은 남해안에 주둔하던 왜군을 토벌하기 위해 선진리왜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화약고 폭발 사고로 7천∼8천 명의 아군이 되레 전사했다. 왜군은 이들 숨진 군사의 코와 귀를 베어 본국에 보냈고 머리를 잘라낸 몸통은 성 밖에 묻었다. 이후 전쟁이 끝난 뒤 악취가 너무 심해 견딜 수 없게 되자 지역민들은 이들 시체를 파내어 조명군총에 이장했다.
조명군총은 36㎡의 직사각형
분묘다. 워낙 급하게 조성한 것이라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무덤 형태다. '목이 없는 시체' 때문에 이 무덤은 오랫동안 '뎅강무데기'로도 불렸다. 사천시는 1983년 봉분 앞에 위령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10월 1일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조명군총 인근의 선진리왜성은 9만㎡로 꽤 넓다. 지금은 성 안쪽에 야외무대를 설치해 시민을 위한 음악회도 가끔 연다. 덕분에 왜성보다 선진리성공원으로 오히려 더 유명해졌다. 400년 전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며, 성터 앞으로 펼쳐진 사천 앞바다도 굽어볼 일이다. 그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퇴했다.
글·
사진=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TIP
■교통편
경남 사천 다맥마을은 남해고속도로 사상나들목에서 자동차로 1시간 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 '다맥마을'을 치면 된다. 남해고속도로 곤양나들목∼서포로∼서포면∼다맥마을 순.
귀갓길에는 사천대교를 건너 사천시청 쪽으로 와서 서택사랑테마공원과 조명군총, 선진리왜성을 둘러보는게 좋겠다. 여유가 있다면 삼천포대교 주변의 실안과 남일대 코끼리바위를 함께 구경하자. 어린이를 동반하면 사천 시내의 항공우주박물관이 추천된다. 곤양나들목 근처의 다솔사도 인기 있는 여행지다.
■놀거리
다맥어촌체험마을(055-853-8555)은 바지락 줍기 체험을 내달부터 재개한다. 종전에는 3월부터 했으나 날씨가 좀 더 풀려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다맥어촌체험마을은 지난 2007년 3월 개장했다.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주차장, 야영장을 갖추고 있다.
■음식사천 서포면사무소 근처에 사천할매콩나물국밥집(055-852-0522)이 있다. 개점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으면 처음 왔느냐고 물은 뒤 으레 콩나물국밥(4천 원)을 드시라고 권한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작은 그릇에 반숙 계란과 국밥 국물 7숟가락을 넣어 섞은 뒤 김 가루를 살짝씩 풀어 수프처럼 떠먹는 맛이 일품이다. 오징어 몸통을 아주 작게 잘라 넣은 콩나물국밥도 씹는 맛이 독특하다. 곁들이로는 계란말이(5천 원)가 추천된다. 백현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