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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사랑 프라이드를 읽고
우연히 이글을 읽게 되었어
그차는 내가 너 다음으로 제일 많이 탄사람이었는데
니가 페차 시켰다고 했을때 맘이 좀 쓰렸지만
별로 표현을 안하는 나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네마음이 그렇게 아프고 눈물까지 흘렸다니 내가 정말 미안하다.
일산으로 어디로 너와 내가 타면 안가는데가 없었는데
너한테 그렇게 정이 듬뿍 든 차가 페차되었을때의 너의 아픈 마음을
위로도 못해주고 이언니는 내가 생각해도 바보가 틀림없다.
너희둘은 싹싹 하고 정이 많은데
같은 형제라도 나는 마음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표현할줄 모르고
뭔가 부족한 사람이라는걸 내자신 인정한다.
언젠가는 옛말하면서 좋은 차 살날 있겠지.
너의 글을 요기 다시 옮겨 본다.
<안녕! 내사랑 프라이드!>
[Jim Reeves]Nita Juanita
Nita Juanita(석별의 정)
나의 일부처럼 오랫동안 나의 발이 되어줬던 자동차가 서버렸습니다..
진작 자동차 좀 바꾸라고 아이들이 성화를 댔지만 조금도 불편하지 않고 잘 다닐 수 있는데 뭘 바꾸냐고
듣지 않았더니 드디어 더 이상 탈 수 없을 정도로 고장이 나 사망신고까지 했습니다.
정다운 내 자동차에게 이별을 고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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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프라이드!
오늘 너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돌아와서 지금..착잡하고 울적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웬 눈물은..”
한심해 하는 남편을 쳐다보며 나도 나 자신이 너무 오바다 싶어 울면서 웃었다.
“나한텐 생명이 있는 애마보다 더 정이 들었어.”
변명하면서 내가 한 말을 나 자신이 듣고 “아! 정말이야! 정말 너무 정이 들었나봐!” 했다.
내가 너를 만난 건 97년 가을..남편이 고향 통영으로
홀로계신 어머님이 서울에 오시기를 꺼려하시니 자기가 모시겠다고 내려가면서
함께 타던 콩코드를 몰고 가버렸기 때문에 당장 차가 없어서..
그 당시에 나는 한창 과외교사로 맹활약할 때였거든.
하루에도 여러 집을 이집 저집 뛰어 다녀야하는 과외선생이야말로 자동차는 필수다.
처음엔 새 차를 사려고 안내책자도 보고 설명도 듣고 했지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길을 달리는 건 큰 차나 작은 차나 똑 같은데
나 혼자 타고 다닐 차에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것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더라.
아이들은 “엄마! 제자들 보는데 체면이 있지..” 하면서 큰 차 사기를 종용했지만
그래서 마음이 약간 흔들리기도 했지만 다시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생활비며 벌써 막내까지 대학생이 되어 교육비도 적지 않게 나가고 또 적금 부을 돈하며..
집을 사면서 융자 낸 은행이자하며..벌기도 수월찮이 벌고 있었지만
매달 써야하는 돈과 수지를 맞춰보니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상당한 인기^^* 선생으로 일하고 있을 때라 억지로 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위세 허세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나의 못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길 다니는 건 똑 같은데..
그 돈이면 아이들 등록금의 몇배야..하는 생각만 자꾸 들고 도저히 용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나 자신에게 쓰는 돈은 언제나 이렇게 아깝다.
그러던 중 삼성동쪽 주택에 사는 학생이 있어 일하고 나와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중고자동차 매매쎈타가 눈에 띄었어.
평소에도 지나다니면서 수도 없이 주차되어있는 차들을 보면서도 관심이 없었는데
그날은 ‘중고를 사도 될 텐데..’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지 않겠니?
그래서 사무실을 물어 찾아들어가게 된 거야.
대충 값을 알아보고 생각해 보겠다고 나오는데 길옆에
주차되어있는 자그마한 회색의 네가 내 눈에 띄는 거야..
“저것도 팔 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함께 따라 나오던 판매원이
“저거 살려면 사세요. 근데 스틱이에요. 백만원만 내시면 드릴게요..”
나는 눈이 번쩍 띄었다.
“백만원이요?”
“92년형인데..그리 많이 달리진 않았어요. 근데 스틱 몰 줄 알아요?”
“물론이죠. 난 스틱을 더 좋아한답니다..”
내가 처음 몇 년 몰던 프레스토 아메리카라는 이국적인 이름의 차도 스틱이었기 때문에
난 오히려 콩코드의 자동변속이 답답했던 참이었다.
키를 받아서 그 아저씨를 태우고 삼성동 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운전 잘 하시네요..차가 임자 만났네..”
사람들이 보통 자동만 좋아하는데 손으로 기아변속을 해야 하는 차를 내가 능숙하게 모는 것을 보고
아저씨가 감탄하며 하는 말이었다.
너도 자동변속이 아니라서 인기 없이 가엾게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중이었다.
난 네가 담박에 마음에 들었다. 우선 좀 싸냐..거리를 달릴 수 있는 차가 백만원이라니..
난 그 자리에서 돈을 지불하고 너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오면서 기분 좋은 건 잠시..
좀 가다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그렇게 싼 건 무슨 결정적인 흠이 있어서가 아닐까..
내가 넘 성급하지 않았나..잘도 달리고 있는 차를 난 공연한 노파심으로 계속 걱정하고 있다가
내가 자주 가는 카쎈타에 먼저 들리기로 했다.
“이건 웬 차에요?”
한 쪽 다리에 장애가 있지만 늘 성실하게 우리 차를 돌봐주는 착한 아저씨가 나와서 보구 묻는다.
“헌 거 하나 샀어요.”
“콩코드는 어쩌구요” 급전직하로 형편이 안 좋아졌나 싶은지 미안해하며 묻는다.
“남편이 시골에 가져갔어요. 당장 불편해서..”
과연 내가 잘 한 짓인지 자신이 없어 우물거린다.
“좀 봐주세요. 잘못된 곳은 없는지..”
“사기 전에 보셨어야지..”
“그리게요..” 난 빙신같이 맞장구 쳤다.
“두고 가세요. 점검해 드릴께요.”
“자세히 좀 봐주세요..” 부탁하고 나오는데 아저씨가 또 묻는다.
“얼마 좃어요?”
난 차마 백만원에 샀다는 말을 못했다. 네가 너무 싸구려같이 보일까봐..
“그냥..싸게 샀어요..” 얼버무리고 나왔다.
밤에 자면서 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고쳐야 할 비용이 많이 들면 싼 것도 아니구나..싶기도 하고..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 널 만나러 갔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착한 아저씨가 말끔히 널 씻고 안팎으로 청소해 놓아서 전혀 다른 차 같았어.
“이게요, 프라이드 종류 중에는 제일 엔진이 좋은 차종이라서 아직 좋은데요..
한 오년은 까딱없이 타실 수 있겠어요..앞에 타던 분이 굉장히 차간수를 잘 했네요..”
물도 넣고 유리창 닦아줄 비누도 새로 넣었다고 했다.
그리고 뭔지 지금 생각나진 않지만 무슨 나사가 잘 조이지 않아서 새것으로 갈았다고
엔진오일과 세차 값까지 다 합해서 오만원만 내라고 했다. 그것이 너와의 인연의 처음이었다.
그리고 올해로 7년째..참으로 오랫동안 너는 나의 발이 되어주었고
나의 안식처가 되어주었고 음악 감상실이 되어주었고
짬짬이 중간에 시간이 비면 잠깐씩 눈을 붙이고 잘 수도 있는 잠자리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잘못한 일은 너무나 많다. 게으른 것을 바쁘다고 핑계대고 잘 닦아주지도 않았고,
사서 얼마 안 돼 터프한 남편이 어느 집 벽에 주차하며 긁힌 자국을
너랑 이별하는 지금까지 고쳐주지 않고 그냥 다녔다.
작년부터 에어콘이 고장 났는데도 가스충전으론 해결이 안 되고
온통 다 갈아야 한다며 50만원이나 든다는 말 듣고,
“차라리 한 대 사겠네!” 요런 소리하며 한 여름만 참으면 되는데..하며
고물차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기가 아까워 그냥 자연바람이 좋다며 우기고
창문 열고 다닌 지 이태나 되었다.
넌 나에게 충실한 종이었는데 내가 너에게 해 준 일은 아무것도 없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은 보통 두 시간씩이다.
가르치는 작업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늘 즐겁고 아이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보면 보람도 있지만
때론 힘들기도 하고 속상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넌 날 포근히 안아주었다.
너에게 지친 몸을 싣고 시동을 걺과 동시에 들려오는 음악은 언제나 날 모든 시름에서 벗어나게 해 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어느 봄날에 엄마 모시고 서울대공원에도 갔었다.
큰언니랑 조카랑 또 조카의 아이들 남매와 만땅으로 타고
트렁크가 작아 들어가지도 않는 엄마의 휠체어를 쑤셔 넣고 끈으로 묶고 달려갔었다.
그날 많이 무거웠지? 그래도 넌 불평 없이 잘도 달리더라.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일산에 언니를 태우고 달릴 때
새 노래 배웠다고 서로 가르쳐 주며 신나게 노래했었고..
어느 날은 일산으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피를 토하며 혼절하셨다는 전화 받고
금방 돌아가실 것 같아 언니랑 합창으로 엉엉 울며 달려갈 때
눈물 때문에 앞이 안 보여 위험할 때에도 넌 하두 다녀 네가 길을 스스로 잘 안다는 듯이 안전하게
잘도 달리며 날 지켜주었다.
너는 운행 중에 갑자기 서버려서 나를 당황하게 한 적도 없고 큰 사고를 내서 날 힘들게 한 적도 없다.
어떤 제자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선생님, 프라이드는 너무 안 어울려요..”
난 웃으며 물었다. “그럼 어떤 차가 어울리는데?”
“선생님이라면 에쿠우스정도는 돼야..선생님 돈도 잘 벌잖아요..”
“예이녀석아! 그런 편견을 버려! 우리나라처럼 좁은 나라에 큰 차는 허영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론 좀 쪽팔리기도 했었다..솔직히..
잠시라도 너를 부끄럽게 생각한 것..정말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었어.
지난 토요일..아기를 좀 봐달라는 딸아이의전화를 받고..딸집에 가서 손녀를 태우고 집에 왔다.
오랜만에 종일 아기랑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밤에 서초동에 있는 딸집에 도루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었다.
시간은 밤 한 시가 넘어있었다.
분당 내곡간 도로를 다 지나서 용인 쪽으로 우회전하기 직전에 갑자기 시동이 꺼졌다.
너는 정말 너무나 착했다. 손녀를 태우고 있는 동안에 그랬으면 내가 얼마나 당황했겠니?
아기를 태우고 갈 때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잘도 달리더니 결국 오는 도중에 일을 낸 것이다.
많이도 참았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니?
그래도 브레이크 고장도 아니고 갑자기 서버리는 것도 아니고
시동이 꺼짐으로서 속력이 서서히 늦춰져 무사히 길가에 세울 수 있었다.
이 밤중에 여기서 날 새길 기다려야하나..막막하고 외로운 순간에 보험회사 에니콜이 생각났고
연락한지 10분 만에 달려와 주었다.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는 동안 한 30분이 소요 되었어. 넌 그동안 한 숨 쉬며 스스로 진정하고 있었나봐.
그렇게 안 걸리던 시동이 그 사람이 키를 돌리니 갑자기 걸리는 거야! 이게 웬 일!
“어떻게 하시겠어요? 끌고 갈까요? 아니면 조심해서 함 가보실레요?”
아이구! 시동이 걸렸으면 내가 몰고 가봐야지! 가다가 다시 꺼지면 또 연락하라면서 함 가보라고 했다.
그 사람은 내가 저만치 가는 것 지켜보고 있었다.
이 밤중에 참 친절하기도 하다..회사에 전화하고 칭찬해 조야지..
혼자 생각하며 또 시동이 꺼질 가봐 조심조심 몰았지만 넌 정말 잘 참아주었다.
집에까지 왔으니..주차장에서 널 세우려고 비스듬히 폼 잡는데 그제서야 덜커덕! 다시 시동이 꺼졌다!
간신히 엉거추춤 밀어서 주차했다.
너는 마지막 순간 까지도 이 변변찮은 주인을 위해서 너의 할 일을 다 했다.
오늘 너를 만들었다는 기아자동차 용인 출장소에서 너가 더 이상 일 할 수 없음을 통고했고
폐차 처분하라는 말을 듣고 네 안에 있는 모든 나의 물건들..카세트, CD, 우산, 지도..
그 작은 차에 무슨 물건들이 그리도 잡다하게 많은지 커다란 봉투 속에 다 집어넣고
아들의 차에 몸을 싣고 돌아오며 계속 난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멀어지는 네 작은 몸을..
안녕! 내사랑 프라이드!
첫댓글 에코! 깜짝이야! 언니! 이걸 어디가서 읽었어요?
구인회에 내가 올렸던가? 생각이 안 나요...
이 옛날 글도 뒤져서 읽다니...ㅋㅋ..
언니! 맞어요...그 프라이드는 나 외에 제일 많이 탄 사람 바로 언니 맞어요.
언니가 현대아파트에 살때부터 일산 갈 때마다 우리의 안락한 공간이었지요..
엄마가 목동에 사실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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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원에 지영이 아이들 지석이 혜진이 데리고 엄마랑 휠체어 뒤에 싣고...
트렁트가 안 잠겨 열린채고 끈으로 묶어서...ㅋㅋ..
엄마가 돌아가실 때 일산에서 언니집으로 모시고 온 차도 바로 그 프라이드였잖아
지난 일은 다 아름다워...언니! 내가 잊고 있었던 글까지 뒤져서 읽어 줘서 고맙습니다!^^
니가 그말하니 잊었던 그때일이 생각나네 우린 엄마하고 놀러 다닌일이 정말 없었는데 그때 엄마 뫼시고 대공원 갔던일 엄마하고
같이 롤러코스터 타고 공중을 달렸던 일 높은데 타고 달려도 겁도 안내시고 좋아하시던일 여러가지가 주마등 처럼 기억이 새롭다.
언니야! 롤러 코스터가 아니고 리프트...ㅋㅋ..누가 보고 웃을까봐..
노인네를 롤러 코스터를 태웠다면...놀랄노자지...ㅎㅎㅎ..
정말 그 리프트까지 올리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그거 타는 곳까지 계단을 업고..ㅎㅎ..
씩씩한 장정들이 몰려와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힘들었을거야!
리프트 타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해! 발 아래 그 아름답던 꽃들과 호수와...그게 참 길었어! 그치?
지석이가 돌도 지나기 전이였어!
그때의 사진을 한 장 책에 올리려고 찾다가 못찾았어. 지영이도 없다 그러고...ㅎㅎ..
우리의 기억속에 밖에 기록이 없네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언니와 혜자 두 사람,
두 사람만의 오고 가는 다정한 대화에 빠질 수없는 한 사람이 여기 또 있습니다.
둘이 함께 있음이 늘 위안이면서도
나도 공유하지못함이 아쉬움이고 부러움이기도 했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엄마 돌아가신 날 아침,
싸늘해지신 엄마의 몸을 두 사람이 통곡하며, 주물르며, 펴드릴때..
보는듯 상상만으로도 통곡이 터질려고합니다.
이 순간 우리들의 마음 소통시켜주는
이공간이 말할 수없이 고맙습니다.
작은 언니! 언니가 그 자리에 있은 거나 마찬가지에요!
언니가 써 보낸 그 분홍색 천위의 기도문...글 읽기를 제일 좋아하시던 울엄마가 마지막에는 눈이 어두워
아무것도 읽지 못하셨는데 그 아름다운 천 위에 커다랗게 써져있는 글씨는 보이셨어! 아마 수 십번 읽으셨을...
그 아름다운 천을 엄마의 관 속에 이불처럼 길게 엄마위에 덮였을 때
엄마가 더 아름답게 보이고...따뜻해 보였어!
언니가 미쳐 도착하지 않아 입관식때 그 자리에 없어 못 본 것이 제일 안타까웠지요...
그건 기도문이었어.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사도신경...
효손녀 수경의 간절한 정성으로 돌아가시기 몇개월전에 기적적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마리아님이 되신 어머니께
멀리서 기쁜 마음을 표현할 수있는 길은 그일밖에 없었어.
마땅한 천을 고르느라고 fabric store부터
바느질, 리본가게들을 찾아 다니며 바쁘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기도했던
그때 생각이 간절히 되살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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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어머니의 귀하신 몸을 그 기도문으로 장식해드릴 수있었던 것
말로 다 할 수없을만큼 기쁘고 영광스럽다.
나도 공감이다.그때 그 분홍색 천을 덮어 드릴때 얼마나 좋게 보였는지 우리는 그런거 준비할 생각도
못했는데 그먼데서 어떻게 미리 알고 했는지 너의 선견지명을 부러워 한다.바느질 리본가게를 뒤지며
애를쓴 보람이지머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