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한 것만도 이번이 두 번째였다. 우방국 원수를 위해 교통을 차단하는 바람에 무려 세 시간 이상을 인파에 밀려 시달리다 에라 모르겠다 약속을 둘이나 깨고, 물먹은 솜이 되어 돌아와 보니 이런 반갑잖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틈 없는 흉일이었다.
“뭐가 없어졌어요? 좀 들어가서 기다리겠다고 하길래 아는 분이어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러라고 했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자기의 허물인 것처럼 미안해 하고 있었다.
“없어지긴…… 뭐가 있어야지요. 아무튼 저 없을 땐 누구든지 방엔 들여보내지 마세요.”
나는 방문을 닫아버렸다.
망할 자식. 첫 번째는 잠을 재워줬더니 새벽같이 달아나면서 손목시계를 집어가 버렸었다. 말을 할까 말까 했으나, 그것이 놈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고 제 편에서 먼저 이야기가 있기만을 기다리던 참이었는데, 오늘은 또 내 유일한 재산 목록으로 되어 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구하기만 힘들었지 고서점으로 가봐야 몇 푼 받아내지도 못할 책을 몇 권 집어가 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 도대체 나는 녀석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집어간다는 것은 분명 절도에 속하겠으나, 피해자가 범행 전말을 뻔히 알도록 한다는 점에서, 더욱이 그가 가까운 지면일 경우에는 간단히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다. 어떻게 보면 그는 마땅히 가져가야 할 것을 가져가는 사람처럼, 그런 짓을 저지른 뒤에도 사과 비슷한 말 한마디 없이 천연스런 얼굴이었다. 놈의 주변에서는 누구나 한두 번씩 당해 본 일이었다. 말하자면 낯간지럽게 구걸질을 하느니보다 웬만큼 양해가 될 처지면 보지 않은 데서 그냥 가져가는 것이 한결 수월한 수속이 아니겠느냐는 식이었다. 거인다운 대범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긴, 김포에 내리던 날 그의 첫인상은 기이하게도 그런 거인 같은 데가 엿보였던 게 사실이었다.
영국에서 천체 물리학을 공부한다던 그가 갑자기 귀국한다는 편지를 받고 김포 공항으로 나간 것은 작년 가을, 그러니까 오늘로 꼭 일주일이 모자란 1년 전 일이었다. 따가운 가을볕을 이마에 받으며 눈이 부신 듯 머리를 흔들며 허청허청 공항을 걸어 나오던 그의 얼굴에는 3년 만에 고국 땅을 다시 밟는 감격이나 흥분의 빛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나와 영접 나온 몇 친구조차 얼른 알아보지를 못했다. 벌써부터 빛이 바래가는 동복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넥타이도 매지 않은 그는, 나와 손을 잡고 흔드는 동안도 계속 눈길을 어깨 너머로 다른 무엇을 찾고 있는 식이었다. 그래 나는 그가 아직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라고 착각을 했을 정도였다. 몇 사람 다른 친구들과 악수를 하면서도 그는 계속 그런 눈이었다. 그러다 그는 휘 공항을 한번 둘러보고는 혼자서 성큼성큼 대합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히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 같은 그의 눈은 그가 마지막으로 공항을 휘 둘러보고 나서 대합실로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깊이 닫혀지고 있는 것 같았었다. 그 때 그의 뒷모습이 그것을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낭패를 짊어진 것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자기 영혼의 문을 완강히 닫아버린 데 대해선 우리(나와 몇 친구)에게도 책임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민영-.
그가 공항에서 끝내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섣부른 확신은 피해야 했지만, 이나마 민영이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한데 그건 우리의 추단이 사실이었건 어쨌건 그녀는 이미 그를 출영 나올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이 이미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5년 전 그가 S대학 천문 기상학과를 졸업하던 때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졸업식을 두 번 다 참가하지 않은 편이 좋았을 만큼 답답한 자신의 처지를 가끔 한탄하면서도, 오히려 그러한 혹독한 사정이 자기를 대학까지 졸업하게 한 강인한 성격의 연원이었던 것처럼 은근한 자부를 갖고 있던 그가 이번에는 별나게 졸업식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대학만은 남들처럼 ‘정식으로’ 끝내고 싶으니 ‘아무쪼록’ 많이 와서 ‘축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들은 충분히 변명거리들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공교롭게도 한 사람도 그의 졸업식에 축하를 하러 가지 못한 결과가 되어 있었다. 여럿 중에 누군가 가봐 줄 사람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우리는 제각기 자기 나름의 딱한 사정들만 내세우고 만 것이었다. 저녁에 내가 그의 굴 속 같은 셋방을 찾아갔을 때 그는 혼자 네 홉짜리 소주병을 둘이나 비우고 나서 뻗어 있었다. 사정인즉 시골집에서 그의 졸업을 위해 일부러 와줄 사람이 없는 그는, 제일착으로 학사 가운을 반납하고 도망치듯 식장을 빠져나와 버린 것이었다. 그 후 그는 그 졸업식에 관해서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도 그 씁쓸한 기억을 오래 지니려고 하질 않았다. 졸업을 하고 나서 그는 한 1년 남짓 전공과는 달리 어떤 얼치기 토건 회사를 나다녔다. 하면서도 그사이 그는 안팎으로 자신의 힘에 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몇 푼 안 되는 월급을 거의 털어넣다시피 하면서 독방 하숙을 했고,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는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으리라며 아예 여자 같은 건 제 편에서 먼저 도망을 치곤 하던 그가 점잖은 연애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인가는 학교 연구실로 나를 찾아와 비실비실 웃어대며 기다리던 일이 겨우 이루어졌다고 했다. 시골에 계신 늙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주위가 아주 홀가분하게 되었다며, 집엘 좀 다녀와야겠노라 차비를 꿔달랬다. 마침 주머니가 비어 있으니 며칠 뒤에 한번 더 들러보면 어떻겠느냐 하여 돌려보냈더니, 그는 다시 나타나질 않았다.
나중에 집으로 찾아가 봤더니, 그는 주인집 가정부 아주머니에게서 곗돈 얼마를 얻어가지고 그 길로 시골로 내려가고 없었다.
나는 그의 여자(그 여자가 민영이었다)와 몇몇 친구에게 연락을 해놓고 그의 상경을 기다렸다. 실은 민영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그에게서 모두 같은 주문들을 받고 있어서 사정을 이미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스럽게도 그의 주문에 응한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녀석의 얼굴이 하도 천연스러웠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그가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웃으며 나타나 주겠지, 맘 편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한 달이 되어도 그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어찌 된 일인가 싶어 편지를 띄워보았지만 그에게선 역시 종무소식이었다. 그가 나가던 토건 회사라는 곳에도 연락이 통 없다는 것이었다. 두 달이 가까워올 무렵 혹시나 하고 그의 하숙집엘 들러봤더니 이번에는 뜻밖에도 그가 몸이 버쩍 말라서 올라와 있었다. 그러자 나는 그에게 무언가 말하기 힘든 짐 같은 것을 짊어지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을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나를 조금도 접근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말하기 힘든 것은 나의 속에서 점점 무게를 더해 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듯싶은 서글픈 심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불쑥 학교로 나타나서 이틀 뒤에 영국으로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정말로 영국으로 떠나가 버렸다.
“너희들은 언제나, 나라는 놈은 불운과 싸우면서만 살아가야 하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무슨 일을 당해도 그것을 내가 혼자서 잘 이겨 나가리라고 생각하지.”
환송회라고 몇 친구가 마련한 술자리에서 그는 거푸 잔을 비워내면서 눌렀던 감정을 차분차분 쏟아냈다.
“어머니의 죽음까지도 나는 정말로 속시원하게 여긴 거라고 믿고 있어, 너희들은-, 그렇지는 않다고 말들 하고 싶겠지. 하지만 너희들은 언젠가 내가 더 큰 불행과 맞붙어 싸우기를 기다려왔던 거야. 마치 내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많은 불운이 예비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눈들이지. 그리고 결국 나는 그것과 싸워 다시 남아날 것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나, 나를…….”
“바라건대 너희들에게 불행이 있기를 빌겠다. 너희들에게도 사람이 그리워질 때가 있었으면 하기 때문에…….”
그는 우리들을 저주하고 있었다.
그런 저주를 씹으면서 그는 우리들에게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영국의 어떤 대학 교수로 있는 그의 외숙부 한 분이 벌써부터 장학금을 얻어놓고 출국을 재촉하였으나, 늙은 어머니 때문에 여태 망설이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여의고 나자 그는 곧 출국 수속을 서둘었던 거라고 조금은 의기양양해져서 우리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유학을 축하해 줄 만한 심경이 아니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우리는 한결같이 그의 출국이 퍽 안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분명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웬만히 능력만 있으면 한국이란 썩 살 만한 땅이라고 욕설처럼 늘 지껄이던 그였다.
그러나 그런 막연한 느낌보다 그는 우리가 그의 심중에서 예상할 수 있었던 가장 황량스런 말을 민영에게 남기고 떠나간 것이었다.
쫓겨가노라―.
그리고 민영에게, 자기를 좋아하는 것은 결국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며, 왜 자기는 불행해져야 하는지 무척도 이유를 알고 싶지만, 그러나 결국 자신은 그렇게밖에 될 수가 없노라고, 가장 즐겁고 기쁜 대화만을 나누고 싶었던 민영에게, 그렇게 슬픈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는 자기를 떠나 잊으라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당부더라 하였다.
그가 떠나버린 후 무척도 울어만 쌓던 민영은― 모든 것을 세상 살아가는 경험으로 여기라고 위로말을 하니까,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 무엇을 위한 경험으로 삼느냐며, 이제는 절대로 그가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겠노라던 민영은, 그러나 결국 멀리 있는 남자를 생각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평범하고 당연한 여자였다. ‘민영 씨’라고 하는 나에게 옛날 그는 자기를 ‘영이’라 불렀다며 나더러도 그렇게 부르라고 했을 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진이로부터 방금 배반감만을 맛보고 있었던 나는, 그가 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그것이 그리 쑥스럽게 생각되지가 않았었다.
그가 영국의 어떤 지방 대학에서 다시 천문학 공부를 시작했노라는 몇 장의 엽서에 이어, 새삼 영이의 안부를 묻고 영이와 관련해서 사랑의 논리 같은 것을 펴왔을 때에도 나는 아직 그가 다시 돌아올 사람으로 생각하질 않았다. 거북스럽게 여겨지기에는 그는 너무 멀리 있었고, 나와 영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만약 그가 다시 영이 앞에 나타난다면? 애원해 온다면?”
하고 물으면 그녀는,
“할 수 없죠, 잊고 있노라고 해줄 수밖에요.”
조금도 꺼림칙해 하는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영이만이 자기에겐 유일하다고 했더군.”
“그건 지나치게 영리한 자기 위주의 위장 논리예요. 그분은 결별에 있어서 당하는 고통보다 결별을 결정하고 그것을 선언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선언하는 쪽은 당하는 쪽을 증오할 수조차 없으며, 당하는 쪽의 고통까지도 얼마쯤 나누어 짊어져야 한다는 것까지두요. 그래서 그분은 어떻게든지 제가 당하는 쪽이라고 생각되지 않도록, 제가 배신하는 쪽이 되도록 만들려고 애를 썼던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불운을 사실보다 훨씬 과장해 받아들였고, 그러한 자기를 제가 배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리 일을 일방적으로 결정지어 버린 것이죠. 가증스런 그분은 그런 선언을 해버린 거예요.”
-언제나 너희들은 나를 버려두고 나서 변명거리를 훌륭하게 만들어놓고 있었지. 나는 사실을 외면하고도 언제나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의 요술을 미워했어. 논리에 근거한 어떤 가치가 영원할 수 있을까. 거기 반대하는 대답을 하는 나는 얼마든지 보아왔던 거야. 논리 자체가 완전할 수 없었던 때문이겠지. 어떤 훌륭한 논리도 나는 그것을 완전히 신용한 적은 없어. 그렇다면 논리에 앞서서 우리의 감정으로, 몸으로 인정해 버리는 것, 그것이 좀더 훌륭한 가치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가장 비논리적인 것, 전연 그것을 무시하고 그 이전에 벌써 나를 감격시켜 버리는 것…… 여자, 아니 민영이 외에 나는 아직 그것을 몰라-.
“그는 사랑에 논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위장은 누구나 스스로 알아차리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저는 그쪽을 좋아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러나 갑자기 그의 귀국 연락이 오고 그가 김포에 내리게 되었을 때는 내게서도 이미 그 민영이 떠나버린 뒤였다. 그 역시 사랑에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던 민영은 떠나가는 데에도 이유를 남기지 않았다. 녀석이 김포에서 아무리 눈을 휘 둘러대도 그녀는 이미 우리들 곁에서 발견될 수가 없는 여자였다. 아니 녀석의 눈이 그때 꼭 민영을 찾고 있었다고만은 할 수가 없으리라. 무엇인가 그는 다른 것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민영을 포함해서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은 거기 없었고, 그때부터 바로 녀석의 눈이 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는 그의 하숙을 찾아갈 작정으로 집을 나섰다. 트랜지스터는 내가 무료해 있을 때 늘 나의 곁에서 노래와 익살로 친구 노릇을 대신해 주던 것이었지만, 그보다도 없어진 사전들은 트랜지스터보다 더 자주 나의 손이 가는 것이었으며, 쉽사리 구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곳곳에 걸린 대소형 초상화가 거리를 압도한 가운데 시내는 우방국 원수를 환영하는 휘황한 네온들이 눈을 어질어질하게 했다. 어두워지는데도 아직 발길을 돌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축제의 기미마저 감돌고 있었다.
남산 밑 싸구려 하숙에는 녀석이 없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주인 없는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썰렁한 그의 방에는 다리가 길죽한 망원경만이, 뒤창문으로 해서 밤하늘의 한 지점을 비스듬이 조준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별을 보여드립니다. 5원-.
등불을 밝히자 망원경 동체에 붙은 표딱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이라면 나는 그 5원을 내지 않고도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광고말은 망원경의 옛날 주인이 붙여놓은 것을 그가 아직 떼어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아직 이 표때기를 떼어내 버리지 않고 있는 심중을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다. 이 망원경은 그에 관해서 꽤나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것이었다.
굳게 닫혔던 그의 영혼의 문이 서서히 다시 열리기 시작한 것은 엉뚱하게도 옛날 나의 진이를 향해서였다. 나는 당황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진이는 개울을 흐르는 한 방울의 거품과 같은 사랑을 지닌 여자였다. 앞서도 잠깐 말했지만, 그녀는 내가 깊이 좋아해 본 일도 없이 배반만을 맛보게 되고 만 여자였다. 내가 아직 그녀를 여자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 동안 그녀는 실컷 나를 좋아해 버린 모양이었다. 어느 날 다방에서 우리는 천연스런 목소리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사랑을 받는다는 걸 너무 겁내지 마세요. 그게 꼭 자기를 아끼는 방법은 아닐 거예요.”
나는 어둠이 배면을 이루고 있는 유리창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주는 데 너무 겁을 내지 말라고 하고 싶군요.”
나는 별반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녀에게 거꾸로 역습해 갔다.
“그렇게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은 거기에게서 처음이에요.”
“벌써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하신 게지요.”
“아마 다른 쪽으로 열려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나는 문득 얼굴을 돌렸다. 유리창에서는 알아볼 수 없었는데 꼿꼿이 자세를 세우고 있는 그녀의 눈에는 뜻밖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내가 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한 것은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진이는 이상하게도 내가 그녀를 마음속에 지니게 된 바로 그 순간에 나를 떠나가 버렸다.
진이는 개울을 흐르는 거품과 같은 사랑을 지닌 여자였다. 하나의 거품은 다른 하나의 거품과는 개울을 붙어 흐를 수 있어도, 흐르지 않는 부표가 있는 곳에서는 주변을 두어 바퀴 맴돌다가 다시 혼자 개울을 흘러 내려가 버린다. 붙어 흐르던 거품이 부표에 머물러 버릴 때도 진이는 혼자 계속해서 개울을 흘러 내려가는 거품이었다. 진이는 그렇게 흐르다가 또 하나의 거품을 만난 것이었다. 그것이 녀석이었다. 그는 진이에게 또 하나의 거품이었다. 그는 아직 진이를 의식하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혹은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녀석은 진이가 그의 의식을 보지 못한 동안 같이 흐를 수 있는 거품이었고, 그의 생활이 진이에게 그 이상으로 보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학위를 가져오지 못한 한국적인 약점을 보충해 줄 지면(知面)도 없었고, 지면을 만들 만한 주변머리도 없었다. 유학 지망생 몇 명을 모아다가 회화를 가르치는 것으로 하숙비를 충당해 갔다. 그가 밤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것도 우리는 훨씬 뒤에야 알아낸 일이었다. 시골에는 처음부터 내려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외롭다’는 말의 치사한 뉘앙스를 잊어버린 듯 주머니에 손을 구겨넣고, 걸핏하면 외로운데 외로운데 하는 소리를 함부로 내뱉으며, 거리를 지쳐 쏘다니고 있었다. 한데 그런 생활이 반년쯤 지나고 나자 그에게는 두 가지 망측한 습벽이 붙고 있었다. 그 한 가지가 앞서 말한 도벽이었다. 그의 주위에서 그의 도벽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맞대놓고 말할 처지는 못 되었다. 그에게 도벽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나서기란 그를 위해서보다 자신이 두려워지는 일이었다.
-스스로 말해 올 때가 있겠지.
그러나 그의 태도는 나 몰라라였다. 한번도 자기 행위에 대해 변명 같은 것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의 또 한 가지 나쁜 버릇은 다름 아닌 거짓말이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했다. 언젠가는 친구 한 사람이 교통 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해 있다고 급한 전화를 두루 걸어준 일이 있었다. 우리는 병원으로 몰려갔으나 그것은 그의 거짓말이었다. 그는 물론 근방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까지도 전혀 미안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여러 번 있었다. 무슨 목적 같은 것을 가지고 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는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했다. 문제는 그가 그렇게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짓이 스스로 거짓임을 망각해 버릴 때, 그것은 이미 그 내부 질서뿐 아니라 외부에 대해서도 무서운 파괴력을 지니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가 문득 거인처럼 커다랗게 우리에게로 다가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거짓말’이라는 어휘도, 그 어의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거품이 개울을 흘러내리듯 아무렇게나 생활을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녀석이 언제부턴가는 다시 진이를 향해 서서히 눈을 열기 시작함으로써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런 진이와의 일을 모른 체해 두기로 마음을 고쳐 먹고 말았다. 진이가 나타난 후로 우리는 막연하나마 녀석에게 한 가닥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에서나마 녀석의 생활에 어떤 변혁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언젠가는 그가 진을 사랑한다고 말하게 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진이가 또 그로부터 떠나가고 말 것이지만, 그가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그의 의식은 흐름을 정지할 것이고, 그러면 그는 ‘거짓말’이라는 어휘를 기억해 낼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녀석과 진이의 일을 모른 체 곁에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대와는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흐르는 거품일 뿐이었다. 하여 우리는 그럴 리가 없으리라는 애초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그를 도대체 어떻게 여겨야 할지 모르고 있던 참이었다(그것을 일부러 확신이라고 말한 것은, 만약 그것이 없었더라면 그쯤 된 녀석을 우리는 벌써 정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노라는 잔인스런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녀석에게는 우리의 희망이나 추측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또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진이로서는 그것 역시 녀석이 아직 흐르는 거품이라는 훌륭한 증거로 이해되었겠지만, 나로서는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오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 망원경 사건이었다.
어느 날 밤, 술이 절반쯤 취해 종로를 뚫고 지나가던 그와 나는 어떤 흔치 않은 구경거리 앞에서 발을 멈추고 있었다. 앞서가던 녀석이 후딱 긴장한 표정으로 발을 멈춰 서는 바람에 나까지도 함께 그리 된 참이었다. 어두컴컴한 보도 구석에서 한 스무 살쯤 나 보이는 청년이 기다란 망원경을 하늘로 향해 걸어놓고, 사람들에게 별을 구경시키고 있었다.
별을 보여드립니다. 5원-.
망원경 동체에 붙은 표딱지의 글자가 조그만 꼬마 전구의 불빛 속에서 자지러지게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백화점 포장지로 싼 꾸러미를 든 사내가 술 냄새를 뿜어내며 대안렌즈에 눈을 고정시키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녀석은 꼼짝도 않고 서서 망원경보다는 차라리 손님을 돌보고 있는 그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때서야 그가 영국에서 항성 천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겨우 생각해 냈다.
“형은-.”
그가 비로소 청년에게로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5원으로 별을 보게 해주다니.”
망원경 주인은 영문을 몰라 경계하는 눈으로 망원경과 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백 원쯤 받으시오, 백 원쯤 낼 수 있는 사람만 별을 보게 하란 말이오.”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웃음이 솟아오르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대안렌즈에 눈을 고정시키려고 애쓰고 있던 사내가 흘끗 녀석을 한번 돌아보았다. 망원경의 청년은 이제 알조라는 듯 그에게서 얼굴을 돌려버리고 있었다.
녀석은 낭패한 표정이었으나 그래도 계속 망원경과 청년을 쳐다보고 서 있는 품이 좀처럼 그것을 떠날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핼 하고 있었군. 별을 볼 줄 모르는 놈들에게 함부로 별을 보이다니……. 우선 망원경의 주인 녀석부터 안 되겠어.”
망원경 앞에서 애를 먹던 손님이 한번 녀석을 스쳐보고는 비틀비틀 골목길로 걸어가 버렸다. 그러자 녀석이 다시 망원경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망원경을 한번 샅샅이 조사해 보고 난 다음, 나의 주머니까지 톨톨 털어가며 부득부득 청년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갖고 말았다.
그날 밤, 그는 그것을 옆구리에 끼고 걸으면서 모처럼 감개가 무량한 듯 꽤 많은 말을 지껄였다.
“《의사 기온》이라는 카로사의 소설에 그런 게 나오지. 밤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는 소년의 이야기가 말야. 참 그 소년은…… 목성을 퍽 사랑했던 것 같아. 특히 목성의 두 개의 위성을 말이지. 목성의 열두 위성 가운데 두 개는 금방 볼 수가 있지. 한데 그 녀석은 언제나 날씨 걱정을 했거든-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지 못하게 될까 봐서 말야.”
그러면서 그는 자기도 날씨가 걱정이 된다는 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안심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까 그 녀석은 순 엉터리야. 우선 녀석은 그 소년보다 터무니없이 나이를 처먹고 있어. 이런 건 그런 녀석이 가질 물건이 못 되지.”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로부터 녀석은 그 망원경을 자기 하숙방 창문에다 내걸어놓고 밤만 되면 그걸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가 한때 천문학도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상기시켜 준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절대로 우리에겐 자기의 망원경을 들여다보게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부득부득 그 망원경 구멍을 한번만 들여다보자는 우리들의 장난기 어린 성화에 때려 부숴버릴 듯 화를 버럭 낸 일까지 있었다.
“사람을 사랑해 본 일이 없는 녀석들이 어떻게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느냐 말야.”
그리곤 다시 목소리를 축여 사뭇 애원을 해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제발 별만이라도…… 별만이라도 그냥 내 것으로 놔둬 줘…….”
그는 진이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진이를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또 우리에게도 어느 땐가는 그가 진이를 확실히 의식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남겨두고 있었다.
10시가 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망원경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지기도 했으나, 놈이 없는 것이 개운찮아 나는 충동을 눌러버린곤 했다. 트랜지스터와 책에 대해서는 벌써 단념을 하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몇 권의 먼지 앉은 책과 잡지, 그리고 예의 망원경과 요때기 한 장이 전부여서 그것을 확인하기는 쉬운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녀석의 방을 나와 내가 다시 하숙으로 돌아온 것은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집엘 돌아와 보니 녀석이 뜻밖에도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불도 켜지 않은 나의 방문 앞 마루에서 검은 그림자가 불쑥 일어서는 것을 살펴보니 녀석이었다.
“왜 들어가지 않고?”
나는 얼핏 지금까지 내가 그의 방에 들어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며, 그가 으레 그렇게 내게로 와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주머니가 들여보내 주지 않더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구름이 조금씩 끼어드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는 무슨 말이고 대꾸를 해야 할 것 같았으나,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 불부터 켰다. 저고리를 벗어 벽에 걸고 녀석을 들어오라 하려고 돌아섰더니, 그는 벌써 나를 따라 들어와 등 뒤에 서 있었다.
“앉아.”
나는 탁자로 걸터앉으며 담배를 꺼냈다.
“나, 모레 다시 영국으로 간다.”
그는 앉을 생각도 않고 주머니에 손을 구겨넣은 채 덤덤히 말했다.
“뭐?”
“영국으로 다시 간다고 했어, 모레.”
담배에다 불을 붙이고 나서야 그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로 오니까 더 외로워지더군. 그렇지. 하긴 거기도 사람은 많았지. 하지만 난 거기선 언제나 혼자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도 엄청나게 더 외로워지기만 하거든. 뭔가 배반이라도 당한 것처럼……. 배반을 당하면 나도 배반을 하고 싶어지거든. 그것뿐이야.”
그러고 그는 밤이 늦었다면서 다시 훌쩍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전번에도 그는 모든 일을 다 꾸며놓고 나서야 말을 꺼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잘 믿질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 떠나고 말았었다. 너무도 태연스런 그의 태도에서 다시 그 전번 일이 떠오르자 나는 그를 돌려보내면서도 더 이상 묻지를 못했다.
결국 다시 그렇게 될 일이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김포 공항을 들어오던 날, 그가 무엇인가를 찾으려다 끝내 그것을 찾지 못하고 말았을 때, 그의 재출국은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예지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가 재출국을 결정한 데 대해 나는 새삼 많은 일이 생각혔다. 영국에서의 그의 생활은 이미 속계산이 다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무슨 일에 부딪히면 그것을 다 치르고 나서야 저주든 사랑이든 속을 드러내는 성미였다. 이번에도 그는 모든 것을 벌써 끝내놓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재출국 결정에 가슴을 눌러오는 다른 무엇을 느꼈다. 나의 주위에서도 바다를 건너간 친구는 여럿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은 친구도 있었고, 더러는 초행부터 지레 귀국을 단념하고 나가는 축들도 있었다. 한데, 능력만 있으면 대한민국이란 그래도 제법 살아볼 만한 땅이라던 그가 그렇게 갑자기 출국을 했었고, 그는 또 무엇이 그리웠던지 학교도 다 마치지 않은 채 불쑥 다시 돌아와 버린 처지였다. 그리고 외로운데, 외로운데 하면서도 그 나름대로는 또 살아가노라고 하던 그였다.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또 떠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놈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앞섰다. 그리고 녀석의 그런 결정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나는 시간 출강을 하는 H대학을 다녀오는 길에 녀석의 기억에 있을 만한 몇 친구에게 들러 그의 재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기억에 있을 만한 친구란 구분이 명확했다. 녀석으로부터 앞서 말한 도벽의 피해를 입은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는 이미 그로부터 소식을 받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새삼 얼떨떨해지는 기분이었으나, 하여튼 그 밤으로 그의 재출국 환송회 비슷한 모임을 갖기로 했다. 집으로 오다가 다시 민영과 진이를 찾았다. 거리는 아직도 우방국 원수의 환영 무드로 술렁거렸다. 곳곳에 환영 아치가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재출국 결정을 미리 알고 진이는 멍해져 있었고, 물론 모임에도 나오겠다고 했지만, 민영은 자기가 참석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방법대로 그가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과, 어떻든 우리는 그의 기억에서 지워질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냐는 감상적인 설득으로 그녀의 참석을 권유했지만, 결국엔 약속을 얻어내지 못한 채 장소와 시간만을 일러주고 그녀와 헤어져 나오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녀석의 하숙을 찾았다. 원래는 나의 하숙으로 먼저 가서 가방을 두고 녀석에게로 해서 바로 모임으로 가려고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져 먼저 녀석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 듯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집에 있지 않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젯밤 그가 나의 방 앞 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던 생각이 잠시 떠올랐으나, 나는 일단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별을 보여드립니다. 5원-.
싸늘한 방에는 아직도 그 광고 표때기를 떼지 않은 망원경이 혼자 뎅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밤 7시 B홀 2층에서 기다리겠다. 다른 친구도 몇 같이. 사정이 있으면 6시까지 나에게 사전 연락 바란다.
쪽지를 적어 망원경의 대안렌즈 쪽에다 걸어두고 방을 나왔다.
혹시나 했으나 그는 집에도 들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가방에서 시간표를 꺼내 내일의 출강 시간을 조사했다. M대학의 시간이 오전에 두 시간, 오후 4시에는 S대에 한 시간이 있었다. M대는 그럭저럭 빼도 될 양이지만, 사립인 S대는 총장의 강의 관리가 까다로워 구멍을 내기 힘든 곳이었다. 우선 오전은 빼고 그와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비행기 출발이 정확히 몇 시인지는 모르지만, 가능하면 S대만은 김포에서 차를 잡아 타더라도 빼지 않는 쪽으로 서둘러 보리라 마음먹었다. 수지 채산은 맞지 않는 일이지만, 길게 보면 그게 뒤가 안심되는 일이었다. 문제가 되는 비행기 시간은 저녁에 모임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나는 대강 S대 쪽의 강의 자료를 정리하여 가방에 구겨넣었다.
그러고 나니 벌써 날이 어두워오기 시작했다. 6시가 조금 남아 있었으나 나는 옷을 걸치고 방을 나섰다. 아주머니가 저녁상을 들고 오다가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왜 애초 상을 보도록 내버려뒀느냐는 것이리라.
“오늘 밖에서 먹겠어요.”
아주머니는 상을 든 채 내가 대문을 나올 때까지 그냥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거리에는 우방국 원수의 전광 환영판들이 환성을 지르듯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환각이 거인처럼 크게 때로는 왜소하게 나의 망막 위로 부침해 왔다.
B홀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6시 반이었다. 시간이 너무 이른 듯했으나, 나는 먼저 들어가 기다리면서 만약의 경우 녀석의 소재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담장을 타고 걷고 있을 때 그 담장 어둠 속에 옹크리고 섰던 그림자 하나가 불쑥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반시간이나 빠르군.”
다짜고짜 나의 팔을 끼고 길을 돌려세우는 것은 짐작대로 바로 녀석이었다. 그는 보자기에 기다란 것을 싸서 겨드랑 밑에 끼고 있었다.
“시간이 아직 남았으니 나하고 어디 좀 가가.”
큰길로 나서자 그는 별안간 택시를 붙잡았다.
“타!”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엉금엉금 차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장례식을 치르러 가는 거야.”
녀석은 그 보자기에 싼 길쭉한 것으로 옆구리를 툭 건드리며 나를 한번 흘끗 곁눈질해 보았다.
“뭐 , 어딜 가?”
“아니, 왜 눈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하나?”
오히려 제 편에서 나를 고집스럽게 쳐다보더니,
"참 신촌으로 가요."
뒤늦게 운전사에게 일렀다.
"신촌은 왜?"
내가 묻는 말에는,
"넌 따라오기만 하면 돼."
간단히 나의 궁금증을 뭉개버렸다. 장례식과 신촌과 보자기에 싼 길쭉한 물건이 나의 머리를 지나갔으나,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환송 모임인가? 모일 친구는 누구냐?"
그가 물으면서 차창을 내다보았다.
"네가 짐작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을 테지."
그러나 그는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있었다.
"저 귀한 분들은 이제 좀 내려드리지. 피곤할 텐데."
길가의 가로등주(街路燈柱)들에는 빠짐없이, 등을 맞댄 두 귀하신 분이 잔치가 끝나가는 거리를 피곤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촌 고갯길에는 환영 아치가 커다랗게 가랑이를 벌리고 서서 허전한 듯 김포 쪽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세워드릴까요?"
운전사가 이화대학 앞 네거리를 지나면서 물었다.
"오, 제2한강교로 갑시다."
그는 계속 차창을 내다보면서 대답했다. 그가 그런 자세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 귀찮은 것을 묻지 말라는 것 같았다. 혹은 마지막 밤의 거리를 될수록 눈길 속에 많이 담아가지고 가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에겐 언제나 자신감이 없었던 거리, 먼지만 삼키며 걸었을 거리, 뭐라고 해도 그가 지금 거기서 다시 쫓겨나려 하고 있는 거리, 그렇게 때문에 더욱 그것을 보아두고 싶었을지 모르는 거리에는 지금 투명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합정동에 이르러 운전사가 다시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처 다리를 건너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다리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녀석은 그 길쭉한 보퉁이를 끼고 성큼성큼 혼자 차에서 떠나갔다. 나는 운전사에게 차삯을 치러주고 녀석의 뒤를 따랐다. 그곳에는 다리를 둘로 가르고 있는 조그마한 놀이터가 있었다. 그는 내가 따라오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 등을 흔들며 내처 강가로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시계가 정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강물은 어둠 속에 커다란 거울처럼 번쩍이며 길게 누워 있었다. 거기에 크고 작은 불빛들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두컴컴한 강변은 공원길 같았다. 사람의 모습들이 군데군데 짝을 지어 모여 앉아 있었으나, 강의 침묵에 압도당한 듯 한결같이 모두 말들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어둠 속에서 까닭 없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그만 속삭임이나 움직임조차 없었다. 이들이 정말로 말을 잃어버린 벙어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살금살금 걸었다. 그리고 까닭 없이 혼자 몸을 오싹거리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앞서가던 녀석이 경쾌한 휘파람을 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면서도 그를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빨리해 갈 수가 없었다. 녀석은 그렇게 휘파람을 불고 가다 사람의 바위가 끝난 공지의 한가운데쯤 이르러 비로소 발길을 멈춰 섰다. 그리고는 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기를 기다려 천천히 보자기를 풀었다. 짐작한 대로 그것은 망원경이었다.
“미안해, 사람이 없는 곳에서 별을 보려고……”
나는 그의 말에 조금 과장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넘었는데…… 기다리겠어, 그치들.”
초조해진 나의 말은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그는 주섬주섬 망원경을 걸어 세우고 나서 대안렌즈로 눈을 가져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망원경을 조작하면서 별을 찾기 시작했다. 보트가 몇 척 자르륵자르륵 물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고요가 흘러넘치는 소리 같았다 건너편 쪽 등불 몇 개가 강물에다 길게 불기둥을 그리고 있었다. 거뭇거뭇한 보트들이 이따금 그 불기둥을 꺾었다.
“자 봐두렴, 미친놈들이나 좋아하는 별을. 하지만 이것은 내 위대한 우정의 표시란 걸 알아둬. 마지막으로 네게 저 하늘의 별을 한번 보여주고 싶거든.”
이윽고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그가 나의 팔을 붙잡아다 망원경 앞으로 세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는 그때 마지막이라는 그의 말을 오해하고 있었다.
“얼마를 내야 하나?”
나는 농담조로 지껄이면서도 호기심에 이끌려 망원경의 렌즈 앞에 허리를 굽혔다.
“들으면서 봐라. 지금 보이는 것이 토성이라는 별이다. 태양계 중의 한 별이지. 배율이 별로 좋지 않은 돌팔이 망원경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별의 신비를 제일 쉽게 말해 주는 별이지. 자세히 보면 별의 주위에 고운 테 같은 것이 있어.”
그는 금세 또 나를 떼밀어버리고는 다시 그것을 확인하려는 듯 자신이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자기 앞으로 잡아당겼다.
“이런 망원경은 겨우 태양계의 별이나 좀 볼 수 있는데, 지금은 그것도 토성뿐이야.”
나는 다시 렌즈에 눈을 대었다.
“렌즈에 한참 눈이 익숙해져야 해. 배율이 좋은 것으로 보면 테두리가 세 겹으로 된 것까지 보이는데. 철도 좋질 않아. 카로사 목성은 요즘 새벽에만 뜬단 말야. 그놈이면 이 정도로 위성까지 볼 수 있는데. 열두 개의 위성 가운데 둘은 유난히 커서 금방 알아볼 수 있거든. 실상은 토성에도 유성은 열 개나 있지만 이것으로는 안 보여. 금성도 요즘은 새벽 샛별이지. 밝기는 그놈이 제일인데."
그는 말을 끊고 나서 나를 한동안 지켜보고 있는 기미였다. 그러다가는 다시 망원경 곁으로 와서 나와 얼굴을 나란히 했다.
"보이나? 하지만 재미있는 건 역시 저놈보다 목성이지. 빛깔이 칠면조처럼 변한다니까……."
이윽고 그가 다시 나를 밀쳐냈다.
"욕심을 내선 안 돼. 이제부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별을 찾아야겠다."
그는 망원경을 다른 방향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가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첨벙하는 물소리가 강안의 고요를 깼다. 방향을 쉬 알 수 없었지만, 그로 하여 강물에 가라앉았던 별들이 일시에 오소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여자의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강의 정적을 헤쳐 나왔다. 바위처럼 우뚝우뚝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이제까지 그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수런수런 물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나기 속에서처럼 이따금 먼 외침 소리가 들리곤 하더니 이내 몇 척의 보트가 새로 강변을 떠나가고 있었다. 물소리가 사방에서 고요를 어지럽혔다. 계속해서 망원경만 들여다보고 있던 녀석이 잠에서 깨어난 듯 구부렸던 허리를 폈다.
"누가 보트에서 물로 뛰어든 모양이군."
그도 소리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7시에서 20분을 넘고 있었다. 몇 척의 보트가 강심에서 물소리를 튀기며 다시 바깥으로 저어 나왔다. 어느 것인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중 한 척이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싣고 있었다.
“가보자.”
그는 망원경을 정성스럽게 다시 보자기에 싼 다음 보트가 닿고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을 너무 기다리게 해서는 안 돼.”
나는 다시 녀석의 주의를 일깨웠으나, 그는 뭔가 궁금하고 초조한 듯 대답도 않고 걷기만 했다. 두 척의 보트가 한 척의 보트를 가운데다 끼고 강을 나왔다. 가운데의 한 척엔 여자가 타고 있었다. 강심에서는 아직도 보트들이 물소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교량 파출소 순경이 전짓불을 비추며 황급히 달려왔다.
여자는 아직도 정신이 나지 않은 듯 물가로 나오자 아내 다시 강으로 덤벼들려 하였다. 사람들이 그녀를 미친 사람 대하듯 함부로 다루었다. 그래도 그녀는 우는 소리를 하다가는 갑자기 그치고 그러다가는 또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몇 번이고 다시 강물 쪽을 향해 발버둥을 쳐댔다. 한동안을 그러다 여자는 겨우 직성이 풀린 듯 마침내 파출소 순경의 물음에 띄엄띄엄 대답해 오기 시작했다.
둘이 탄 보트가 강심 부근에 이르자 남자가 문득 여자에게 둘이서 함께 강물로 뛰어들자더라는 것이었다.
“우린 좀 그럴 일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엔 설마 장난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중엔 그이가 정말로 엉금엉금 달려들어 저를 붙들고 배를 뒤집자고 하는 거예요. 저는 반항했지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한참 그러다 그이가 문득 정색을 하고 저를 노려보더니 결국은 혼자서만 훌쩍 물로 뛰어들어 버리는 거예요.”
사내는 나중 자기를 살려두려고 했던 것이라 했다. 그는 보트를 뒤집지도 않았고, 더욱이 뛰어내릴 때는 배에 진동을 주지 않도록 살풋 몸을 날려 갔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바보 같음은 사람, 바보 같은 사람 하고 정확히 두 번을 되풀이한 다음 악몽에서 깨어난 듯 부르르 떨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아까 이곳으로 걸어올 때처럼 묘하게 궁금하고 초조한 얼굴을 하고 나서더니,
“유서 같은 건 없었겠군요?”
다짐이라도 주듯이 불쑥 여자에게 물었다.
“그런 건 없었지요, 물론.”
여자는 이제 자기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은 자기를 위로하고 싶어하는 거라고 믿었던지, 그래서 그 사람들의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해야 할 자신의 의무를 알고 있다는 듯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리곤 또 조금 있다가 여자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참, 아까 이런 걸 줬어요.”
하면서 둘레둘레 자신의 손가방을 찾았다. 사내 하나가 아까 여자가 타고 나온 보트에서 그녀의 손가방을 찾아다 주었다.
“아까 배를 타면서 오늘 혹시 무슨 일이 이상하게 되면 집에 가서 펴보라며 비밀 선물처럼 웃고 건네주기에 전 영문도 모르고 집어넣어 둔 것이에요.”
여자는 손가방에서 쪽지를 하나 꺼내서 터무니없이 녀석 앞에 그것을 내밀었다. 녀석은 여자로부터 그 쪽지를 받아 들고도 거기엔 별 관심이 없는 듯, 오히려 뭔가 맥이 풀린 듯 머뭇머뭇하고 있더니 결국은 그것을 곁에 선 순경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리고는 이내 불이 켜진 보트장 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자식, 유서를 쓰다니!”
녀석은 걸으면서 느닷없이 사자를 저주하고 있었다.
“죽으려고 하는 사람의 말을 살고 싶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가 있는 줄 알았다니.”
그는 지금 자기의 말을 엿들었거든 얼른 그렇다고 동의를 하라는 듯 나를 이윽히 돌아다보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그러나 그는 이내 안타까워진 듯 다시 혼잣말을 내뱉어버리고는 얼굴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배를 사서 이제 우리의 장례식을 지내자.”
두 사람이 보트장까지 이르자, 그는 남아 있는 한 척의 보트를 사자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어이가 없었다. 녀석이 도대체 이런 식이라면 진이는 녀석이 떠나가는 순간까지도 그가 같이 흐르고 있는 거품이라는 자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거짓말이 이제는 거짓이 아닌 진짜 행동으로 뒷받침되어 무서운 파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녀석은 이날 밤 어김없이 거짓말 같은 짓들만 천연스레 감행해 가고 있는 셈이었다. 더욱이 장례식이란 또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린가.
“도대체 무얼 할 참이야.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
그는 망원경을 쳐들어 보였다. 나는 또 한번 가슴이 서늘해 왔다.
“너는 언제나 내 훌륭한 구경꾼이었지. 오늘도 구경꾼 노릇만 하면 돼.”
하고 나서 그는 다시 어조를 고쳐 말했다.
“잠깐이지만 그젯밤 나는 이놈을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어. 정말 잠깐이었지-.”
그는 변명하듯 허둥지둥 잠깐이란 말을 되풀이했다. 말소리가 문득 끝을 흐리고 있었다. 우리는 보트를 탔다. 나는 아직도 확실히 영문을 모른 채 노를 저어 나가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별을 보여드립니다. 5원-’의 표때기를 뜯어서는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여기다 5원 대신 백 원이라고 써 붙여서 팔까 했지. 하지만 역시 나는 오늘 밤 이렇게 하기로 정했어.”
하고 나서 녀석은 그것을 강물에다 띄워버렸다.
“시간이 너무 늦어지겠어. 오늘 밤엔 진이도 와 있을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재촉했다. 그는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별들이 노에 채여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고 있었다.
“영국 간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는 계속 물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문득 팔에서 힘을 뽑고 노를 멈추어버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녀석의 영국행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녀석의 입에서 거짓말이라는 어휘가 소리로 되어 나오는 것을 처음으로 똑똑히 들은 것이었다. 더욱이 녀석의 목소리는 그 말에 대해 무척이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듯 낮고 조심스러웠다.
그렇다면 그의 내부에선 아직도 거짓말이라는 그 말의 어의가 그대로 파괴되지 않고 있었더란 말인가. 그는 그런 나의 생각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생각을 해본 일은 있지만…… 두 번씩이나 쫓겨가기는 싫었어. 거짓말을 한 것은 그런 식으로 내 자신의 배반을 맛보지 않고는 견뎌 배길 수가 없었던 때문이었지.”
그리고는 이제 물결이 가라앉은 강을 더욱 깊이 내려다보았다. 내가 다시 노를 움직이자 그는 팔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가만있어. 여기가 좋겠어.”
그는 어둠 속에서 나를 한번 건너다보고는, 그 눈길을 하늘로 큰 호를 그린 다음 다시 강물로 내려뜨렸다.
"이런 물건을 그 녀석들에게 다시 팔 수는 없었지. 어젯밤 무척 많이 생각했어. 하지만 오래 가지고 있으면 난 어느 때고 이놈을 팔게 되고 말 것 같았어. 멋있는 장례식을 생각했지. 아까 오후에 여기가 생각났어. 이렇게 잔잔히 별 그림자가 무늬진 강을 덮고 잠이 들면 이놈은 별의 꿈을 꾸겠지."
그는 기다란 것을 마치 어린애를 안듯 깊이 가슴에 품었다가는 몸을 구부려 가만히 강물 아래로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그 물 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배가 꽤 아래로 흘러 내려와 있었다. 보트장의 불빛이 훨씬 상류 쪽에 있었고, 강심의 보트들이 휘적이는 물소리가 아직도 멀리서 계속되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머리를 들면서 말했다.
“이제 그만 저어 나가지.”(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