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 주의 주도인 파안은 인구 5만의 작은 도시다. 카인족은 카렌족이라고도 하는데( 영어 표기의 영향) 카렌족 하면 먼저 생각나는 그 목이 긴 여자들은 카렌족(카인족)의 수많은 분파 중 하나인 빠다웅족이라고 한다. 카렌족은 오랫동안 버마 군부와 내전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난민이 발생하야 세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지금은 휴전 중인지 해결이 된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국경지대에 평화가 유지되어 미야와디(미얀마)-매솟(태국) 국경을 우리도 넘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태국 쪽에 미얀마 난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묵은 유나이티드 호텔은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지만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건물이고 제법 호텔 티가 날 정도로 깔끔했다. 웰컴드링크가 맛있어서 첫인상이 좋았는데 여자 매니저(혹은 여주인?)와 내일 투어를 의논하면서부터 대화가 겉돌기 시작했다. 내일 동굴 투어를 하고 싶은데요. 여기서 주선하나요? 우리는 투어 프로그램이 없고 소브라더스나 갤럭시에서 하는 걸 연결해 줄 수 있어요. 인당 5달러짜리 그룹투어가 있다던데 알아봐 주세요. 네. 근데 알아 보는 기색이 없다. 알아 봐 달라고요. 네, 그런데 몇 시에 출발할 거에요? 몇 시라니, 그룹투어 시간이 있겠지요. 여기로 픽업하러 올텐데? 예, 알았어요. 시종 웃으며 친절한 말투로 응대를 하기는 하는데 행동이 없으니 정말 답답하다. 호텔을 운영한 경험이 없어서 그러나? 어쨌건 연결이 되겠지 하면서 방으로 올라가 짐을 풀고 내려와 저녁을 먹었다. 식당은 음식도 시설도 괜찮다. 돈 대신에 계산서에 싸인을 할 때는 제법 고급 호텔에 들어온기분이 들기도 했다. 밥을 먹고서 프런트로 가서 투어 예약이 되었냐고 물어보니 안 했단다. 왜? 전화 걸어서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렇죠. 근데 왜 전화 안 해요? 안 했어요. 내가 직접 해요? 네. 그러고보니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영어가 잘 안 통하는 상황이다. 직원이 여러 명 보이지만 자신있게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다. 미얀마 말을 섞어 다그쳐서 겨우 전화를 걸게 했더니 소브라더스에는 내일 투어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전화를 해 보면 될 것을, 여태 뭘 한 거야? 그런데 또 내일 아침 몇 시에 출발할 거냐고 묻는다. 그래서 택시를 불러 주겠다는 거냐, 오토바이를 불러주겠다는 거냐 물었더니 웃으면서 예스다. 에구 답답해라. 뭐든 불러 주겠지, 방으로 올라오며 생각해 보니 페이스북 메신저에 갤럭시 연락처가 남아 있다. 거기 방 없대서 지금 유나이티드 호텔에 와 있어요. 네. 내일 그룹투어 있어요? 네, 얼마에요? 일인당 5천짯이에요, 9시까지 갤럭시로 오세요. 여기로 픽업을 올 수 없어요? 예, 그럼 거기서 기다리세요. 이렇게 간단한 걸.
이튿날 아침, 12월 31일이다.
약속 시간에 맞춰 뚝뚝이 픽업을 왔다. 우리와 같이 투어를 돌 일행은 3명, 쉰 살은 넘어 보이는 일본 여자와 마흔이 넘지 않아 보이는 미얀마 남자 그리고 서너 살 짜리 여자 아이, 묘한 조합이다. 옆지기는 혼자 여행을 하는 일본 여자가 가이드를 고용했는데 가이드가 딸을 데리고 온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았는데, 다니면서 보니 부부와 딸이 맞다. 갤럭시 그룹투어는 미니버스에 영어 할 줄 아는 가이드가 붙는다고 들었는데, 인원이 적어서 이렇게 된 것일까? 가이드 없이 뚝뚝 기사 혼자 딸딸거리며 하루 종일 데리고 다녔다. 뚝뚝 기사가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일본 여자가 가이드 내지 통역 역할을 자청한 덕분에 소통에 별 문제는 없었다.
처음에 간 곳은 코카타웅 동굴이다. 커다란 동굴 안에 벽에 천장에 불상이 참 많기도 하다. 동굴마다 산꼭대기마다 특이한 곳만 있으면 부처님을 모시고 불탑을 세우는 이 나라 사람들, 정성이 대단하고 해야 하나. 먼 곳까지 찾아와서 예불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동굴 옆에는 탁발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고 (진짜 탁발은 봤지만 이렇게 조각으로 만든 탁발 행렬은 처음 보았다.) 그쪽으로 가면 작은 동굴과 작은 폭포가 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사단 동굴. 가이드의 말을 일본 여자가 전해 주는데 동굴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 놓지 말고 들고 가라고 했단다. 중간에 다시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식 입장료는 없지만 동굴 안에 전기를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도네이션을 그것도 콕 찝어 인당 1000짯을 요구하는 스님이 너무 당당하여 2인분을 내고 들어가 보니 코카타웅보다 훨씬 큰 동굴이다. 불탑과 불상들을 모신 큰 홀을 구경하는데 바닥이 지저분하다. 모래도 있고 물기도 있어서 맨발로 다니기가 껄끄럽다. 그때 마침 한 스님이 신발을 신고 지나간다. 에라, 우리도 신자. 캡라이트를 켜고 어둑어둑한 동굴을 구경하며 조심조심 나아가다 보니 하늘이 뻥 뚫린 곳이 나온다. 조금 더 가니 저 앞에도 뚫린 입구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는 연못이 있다. 물 위에는 관광객을 실은 쪽배가 떠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저쪽 바위 밑으로 동굴이 보이고 그 밑으로 배가 지나간다. 땀꼭이나 콩로와 같은 지형이다. 우리도 저거 타 볼까? 물가로 가니 먼저 와 있던 일본 여자가 다가와 배를 쉐어하자고 한다. 알아서 하라고 협상을 맡겼는데 인당 천짯에 해보겠다더니 잘 안 되었나 보다. 내릴 때 2천짯을 건네주니 꼭 3천짯을 받아야 한다고 버틴다. 큰 돈은 아니지만 외국인에게는 더 받는 분위기다. 끝나고 생각해 보니 이 동굴을 관람하는 일반적인 코스가 산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서 반대편으로 나와 배를 탄 다음 산 뒤편으로 돌아서 오는 (반은 배를 타고, 반은 걸어서.) 것인데, 우리만 몰랐던 것 같다. 신발을 들고 가라고 한 것도 배에서 내린 다음을 염두에 둔 게 아니었을까.








오는 길에 보았던 1,000 불상 평원에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짜욱칼랍으로 갔다. 파안 쪽은 여행 준비가 미흡했었기에 짜욱칼랍도 이름만 적어놓았을 뿐 사진도 찾아보지 않았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아주 특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혹시 몰랐었기에 더 멋있게 보였던 것일까? 호수 가운데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위에 불탑을 세웠는데 (호수라고 했지만 어쩌면 인공 연못일지도) 그런 지형을 만든 자연도 신비하고 거기에 숨결을 불어 넣은 인간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공식 입장료를 받고 있는 코군 동굴, 핫팬츠를 입고 잘도 돌아다녔던 옆지기님은 여기서 복장 검사에 걸려 론지를 빌려 입고 (기특하게도 무료로 빌려준다.) 들어가야 했다. 동굴 안에 그리고 동굴 벽에 부처님이 엄청나게 많기는 한데, 왜 여기만 입장료를 받는지는 모르겠다. 예술적인 이유일지 역사적인 이유일지. 동굴 불상 보는 것도 지쳐간다.




다음은 야타이피안 동굴





마지막으로 간 곳은 박쥐 동굴. 박쥐 떼가 동굴에서 나오는 모습은 2년 전 태국 카오야이에서도 보았지만 그때는 멀리서만 보았고 이번에는 가까이에서 박쥐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박쥐들의 움직임이 잘 보여서 좋기는 한데 역한 냄새가 부작용으로 따라왔다. 사실은 박쥐보다도 근처의 경치가 너무 좋아서 보너스를 얻은 기분이었다. 박쥐 동굴 옆으로 난 계단과 쇠사다리를 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니 정상에 (당연히^^) 불탑이 있는데 그 앞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끝내주었던 것이다.







투어를 마치고 시내로 돌아온 뚝뚝이는 갤럭시 모텔 앞에 멈췄다. 일본 여자 일행은 숙소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뚝뚝에서 내려 투어비를 주고 있는데 숙소에서 나온 여자(이 때는 젊은 여직원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40대 여주인이다.)가 유나이트 호텔에서 왔느냐고 알은척을 하더니 다음 일정을 묻는다. 저녁을 먹을 건가요, 호텔로 돌아갈 건가요? 호텔로 돌아간다면 데려다 주겠다는 얘기 같다. 내가 호텔에 가기 전에 3 가지 할 일이 있다며 번호를 붙여 가며 1. ATM에서 돈을 찾은 다음 2. 내일 양곤 가는 버스표를 예약하고 3. 그 다음에 저녁을 먹을 거라고 얘기하니까, 1. ATM은 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다. 저 쪽으로 가서 두 번째 길에서 좌회전해라. 2. 버스표는 나한테 와서 끊어라. 3. 맛있는 식당을 소개해 주겠다. 또박또박 대답해 준다.
돈을 찾아 와서 버스표를 예약한 다음에 산마두 식당의 위치를 물어 보니 여주인이 마침 산마두 식당 관련된 사람이 안에 있다며 불러준다. 남자 하나가 나와서 우리더러 뚝뚝에 타라고 하더니 시동을 거는데, 어라?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한참을 뚝뚝과 씨름하는 남자를 놔두고 우리는 그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물론 지도를 참고하며) 걷기 시작했다. 가깝지는 않지만 걸어갈 만한 거리라는데 걷다보니 꽤 멀다. 반쯤은 왔으려나 생각할 즈음에 길 저쪽에서 뚝뚝이가 우리를 부른다. 아예 시동이 안 거릴 것 같더니 용케도시동을 걸고 따라왔나 보다. 뚝뚝을 타고 식당까지 가 보니 생각보다 더 멀다. 태워 줘서 고마워.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홀이 크고 식탁과 의자가 제법 고급스러워 보인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투어를 같이했던 가족이 밥을 먹고 나간다. 여자가 알은체를 한다. 여기 유명한 식당이에요. 그런 거 같아요. 여러 사람이 추천하더니 역시 음식이 맛있다. 게다가 양도 많다. 둘이 배불리 먹었으니 1만짯은 나오겠군, 했는데 의외로 가격이 착하다. 가격표가 없는 메뉴판을 보고 바가지를 쓸 각오를 하고 주문을 했는데 5,400짯밖에 안 나왔다. 강추.
그런데 밥을 먹으면서 옆지기님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 내일 귀국하지 말고 태국으로 넘어가자는 것이다. 만약에 귀국을 연기하게 되면 육로로 태국으로 넘어가서 북쪽 지역을 구경하자고 의논을 하기는 했었지만, 내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기 위해서 양곤 가는 버스를 예약할 때까지도 가만 있더니 이제 와서 연기하자고? 아까 갤럭시에서 내가 양곤행 버스표를 예약하고 있을 때 한국에 있는 동생과 통화를 하면서 더 놀다 가도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는 것이다. 그럽시다, 까짓거.
밥을 먹고 나와서 택시나 뚝뚝 따위를 찾아 봤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길을 건너서 갤럭시 쪽으로 걸어가는데 다 가도록 접근하는 사람이 없다. 이 동네는 이렇군! 갤럭시에 도착해서 계획이 바뀌었다고 하니 바로 돈을 내준다. 미야와디는 노선 버스가 없다며 택시 쉐어를 거론한다. 버스가 없는 건 아닐텐데, 하면서도 친절하고 싹싹한 갤럭시 여주인을 믿고 오케이했다. 2인분 2만짯. 괜찮은 가격이다.
한류 스타 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가 호텔로 가겠다고 하니 자기 남편이 자가용으로 태워다 줄 거라고 한다. 여태까지 안 보이던서 늙수구레한 아저씨가 안쪽에서 나와서 숙소 앞에 세워 놓은 자동차로 간다. 따라 나가면서 안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차에 탔는데, 사장님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잠시 후에 여주인이 커피를 손에 들고 나와서 조수석에 앉는다. 같이 가는 거에요? 네, 드라이브도 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