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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명산(鳳鳴山 408m)~이명산(理明山 570m)
1.소 재 지: 경남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북천면 직전리, 사천시 곤양면 용산리
2.개 요
높이 570m이다. 이맹산(理盲山)·전야산(轉也山)·해양전산(海陽轉山)·화전산(花田山)·윤산(輪山)·봉명산이라고도 한다.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지리산의 한줄기로 북천면과 양보면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산기슭의 다솔사 입구 입석에는 '봉명산'이라 적혀 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남서부 지역 요충지로서 북쪽 산정 부근에 사찰을 세우고 석굴과 마애불상 등을 만들어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옛 이름 이맹산에 얽힌 전설이 '동경지(東京誌)'에 전한다. 옛날 산 정상에 용지(龍池)가 있었는데 이 용지 때문에 동경(지금의 경주)에서 맹인이 많이 태어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동경 사람들이 불에 달군 쇠와 모래와 돌을 용지에 집어 넣자 이를 견디지 못한 용이 진교(辰橋) 아래 깊은 호수로 도망갔고 이후 동경에서 맹인이 사라졌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당시에 이무기가 살았던 지금 20m 정도의 못이 있던 자리가 있으며, 마을 주민들이 이무기를 쫓기 위하여 돌을 불에 구워 던졌다는 돌무더기도 볼 수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에는 이맹점(理盲店)이 봉명산 위쪽에 표기되었다. '하동지'에 의하면, "지리산 한 맥으로 시루봉(甑峰), 닭구봉(鷄峰), 차일봉, 깃대봉(旗峰)과 병립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맹점에는 이맹굴(理盲窟)이 있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하동)에는 기록하였으며, '여지도서(보유)'(하동)에 "지금은 없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18세기 중엽 이전에 없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용지는 이명산의 서편에 위치한 달구봉에 있는데, 화철석을 달구어 넣은 곳이라 하여 달군봉이라고 하였던 것은 닭구봉으로 부르고 한자로는 계봉(鷄峯)이라 하였다.
봉명산(鳳鳴山 408m)
1983년 11월 14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방장산 또는 주산이라고도 하고, 풍수지리학상으로 봉(鳳이 우는 형국이라 하여 봉명산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정상에 이르면 남쪽으로 금오산(金熬山:849m)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서쪽으로 백운산(白雲山 1,279m), 북서쪽으로 지리산(智異山 1,915m)과 웅석봉(熊石峰 1,099m)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시야가 넓다.
산 아랫부분에는 시루떡을 닮은 3개의 바위가 서 있는데, 제일 위쪽 바위에는 통일신라 때 새겨진 이명산 마애석조여래좌상(경남유형문화재 136)이 있다. 그 밖에 511년(신라 지증왕 12)에 창건된 다솔사(多率寺)와 다솔사 보안암석굴(경남유형문화재 39), 사천 용산리사지(경남기념물 178), 이맹굴(理盲窟)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숲이 울창하고 자연 경관이 뛰어나 삼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봉명산 자락에 숨어 있는 다솔사는 다섯개의 멋진 밭을 갖고 있다. 솔밭, 차밭, 대밭, 그리고 항상 일렁이는 바람밭, 마지막으로 다솔사를 찾은 그대 가슴에 안겨주는 생애 대한 그리움의 밭이다.
☞다솔사
신라 지증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천 오백년의 고찰로 도선국사가 중창한 유서 깊은 절이다. 1748년(영조2년)에 세운 대양루는 맞배지붕 중층 누각으로 대단한 규모이며 한때 쓰러질 듯 기운 것을 근래에 바로 세워 놓았다. 응진전, 극락전과 함께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솔사에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29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조불상을 비롯하여 극락전(경상남도문화재자료 148), 응진전(경상남도문화재자료 149), 대양루(경상남도유형문화재 83), 보안암석굴(경상남도유형문화재 39) 등의 문화재가 있다
다솔사는 독립운동가이며 녹차를 대중에게 전개시킨 효당 최범술 스님이 거처했던 곳이다.
특히 효당과 원화 보살의 운명적 만남은 당시 굉장한 화제를 낳았다. 효당에게 다도와 녹차 만드는 법을 전수받아 원화 보살이 만든 반야차는 맛과 향, 질에서 뛰어나 현재도 다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솔사에는 오래된 다구가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또한 다솔사 샘물은 맛이 좋아 진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 길러 온다. 다솔사에서 보면 봉명산은 경주의 왕릉이나 다소곳한 뒷동산 아니면 여인의 유방마냥 봉곳이 솟아 정감이 든다.
☞이명산 설화
이맹산(理盲山)이 이명산(理明山)으로
영산(靈山)인 이맹산은 북천면과 진교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을 옛날에는 전야산, 해양전산, 화전산, 륜산, 동경산 등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불렀으나 이맹산이라는 이름에는 그럴사한 내력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맹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이산의 최상봉인 월계봉의 정상에 깊은 못이 있는데 이 못에는 승천(昇天)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인 이무기가 득쳔(得天) 하지 못한 분풀이로 심술이 나면 물위로 목을 길게 내밀어 방향을 잡아 독기를 내뿜었다. 그러면 그 방향의 사람이 갑자기 맹인이 되곤 하여서 그때부터 이맹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 공포에 떨면서 속수무책으로 한 해 한 해 무사하기만 기원하며 살았다. 제단을 만들어 이무기에게 제물도 바치고 때로는 처녀도 바쳤지만 그 횡포는 변함이 없었다. 근심과 불안에 떨면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어느 날 도승 한 분이 이맹산 주변의 한 마을에 탁발을 와서 보니 마을사람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기에 이상히 여겨 시주 나온 어느 부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수심이 가득하니 필유곡적(必有曲折) 할 터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아오이까?"
스님의 물음에 그 부인은 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예, 스님 다름이 아니오라 저 이맹산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이 못에 이무기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무기가 심술이 나서 고개를 쳐들어 독을 뿜어내면 그 방향의 마을에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장님이 되고 하니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스님은 마음속으로 '고얀 미물이로다. 한갓 미물이 어찌 불심 깊은 사람들을 이다지도 괴롭힌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며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스님은 이무기를 물리칠 방법을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마을회의를 열어 몇 명 안되는 주민들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일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무기는 고개를 동경 쪽으로 쳐들어 강한 독기를 내뿜었다. 공교롭게도 공주(경주에 있었던 신라왕의 공주)의 눈이 멀게 되었다. 임금님(신라왕)은 당황하여 전의를 불러 치료를 시켰으나 조금도 치유될 기미가 안보여 전국에 방을 붙여 공주의 눈을 뜨게 한 사람에게는 상을 후하게 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한 도사가 아뢰기를 동경의 곤방(서남쪽)에 이맹산이란 산에 살고 있는 이무기의 소행 같다고 아뢰었따. 임금님은 즉시 신하들을 곤방으로 보내 이맹산을 찾아 산정의 깊은 못에 이무기를 발견하고 이를 잡기위한 방법을 모색하다 먼저 번 도사가 가르쳐준 사실과 인근 주민들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신하들은 도승이 가르쳐 준대로 돌을 불에 달구어 못에 집어넣을 것을 결정하고 인근주민을 총동원하여 수 십대의 불무를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을 달구어 계속 물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이레(7일)만에 물이 뜨거워져 끓자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굉음과 함께 용지(龍池)의 물결이 요동쳤다. 청천 하늘에 풍운과 폭우를 끌어와 용은 승천을 시도하려고 물 위로 솟구쳤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이무기는 득천을 못하고 남쪽의 깊은 못을 찾아 잠적하였는데 그곳이 진제하심연(辰梯下深淵: 하늘로 놓는 다리)에 있는 깊은 못이었다. 거기서 이 이무기는 남해의 해룡이 되어 왜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용이 되었다고 하며, 이 이무기가 이맹산에서 옮겨간 후에는 맹인이 생기지 않았고 공주도 눈을 떠서 광명을 찾았다 하여 이맹산을 왕명으로 이명산으로 개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명산 정상에는 그때 불에 달구려고 모아온 많은 돌을 볼 수 있으니 이명산의 설화는 실화로 고증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맹산의 용이 득천하기 위해 하늘로 사다리를 놓았던 곳이라 하여 민다리(용다리)라 하였고 민다리를 한자로 의역하면 진교(辰橋)라는 글이 된다.
산 행 일 시
다솔사~봉명산 ~보안암~봉암산 갈림길~깨사리고개~이명산~마애불~부일수련원~이병주문학관
1.산 행 일 시: 2015년 9월17일 (목) 맑음
2.산 행 대 원: 무심님, 선바위 산악회
3.산 행 일 지
10:05~10:10 다솔사 주차장
10:11~21 다솔사 관람 후 출발(적멸보궁 사리탑이 있음)
10:23 봉명산군립공원 등산로 시설물
10:30 좌측 임도에 차단기가 있는 갈림길(→정상 이정표가 있음)
10:35 물고뱅이마을 둘레길 5,2km 이정표 갈림길
10:36~38 쉼터(↑정상 0.4km, 물고뱅이마을 둘레길 5.15km, ←약수터 1.00km, 서봉암 2.00km, 보안암 1.5km, 물고뱅이마을 둘레길 5.15km)
10:49~52 된비알을 오르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10:57~11:06 봉명산 정상 망루에 올라 조망을 즐기고, 정상석에 인증샷을 하고
11:16 헬기장
11:18~22 안부 사거리 체육시설(→약수터 0.2km, ↑보안암 0.6km, 서봉암 2.0km, 물고뱅이마을 둘레길 4.3km, ↓다솔사 1.3km, 정상 0.5km)
11:25 보안암 갈림길(←보안암 0.5km, ↑서봉암 1.8km, 물고뱅이마을둘레길 4.1km, ↓정상 0.5km, 다솔사 1.4km)
11:29~38 보안암(↑만점 0.5km, ←만점 0.6km, ↓다솔사 2.1km) 보안암에서 돌아 나와서 감거리서 좌측 너른 길로
11:39 본 등로 만남(←물고뱅이마을둘레길 3.9km)
11:41 샘터
11:42 돌탑이 있는 곳
11:49 안부 사거리(↑신촌, ↓다솔사, ←이명산, 하동북천, ←서봉암 1.00km) 하동북천방향으로
11:56 1005번 지방도로 가는 임도레
12:05 깨사리고개(1005번 지방도)
12:08~12 포장임도가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물고뱅이마을둘레길2.1km 이정표) 있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산길이 있으나 된비알이라 임도를 따르기로
12:19 임도를 따르다 철탑 위에서 임도가 좌측으로 꺾이는 지점에서 혼자서 우측 소로로
12:22 장딴지가 뻐근할 정도의 된비알을 올라서 로프가 매여 있는 지역을
12:28 묵묘를
12:34 된비알을 올라서 돌무더기가 있는 지점에서 숲너머로 사천쪽을 조망하고
12:35~13:34 이명산(570m) 커다란 정상석과 경남정보고OB 산악회에서 세운 理明山 想思峯 오석 정상석 두 개가 있음(임도를 따라서 오는 팀을 기다려서 정상에서 오찬을 하고) →황토재 6.0km, 시루봉 1.9km, ←무고재 1.6km 이정표
13:43 계명산 방향으로 가다 황토재 갈림길(↑마애불 0.1km, ←황토재 5.5km, ↓이명산 0.5km) 에서 마애불 쪽으로
13:50~53 마애불(↓이명산 0.6km, ←수련원 0.7km, →쉼터 0.7km)
13:54 첫 번째 시루떡바위
13:57~14:02 두 번째 시루떡바위, 바위 아래 조그만 돌 위에서 바로 앞의 계명산과, 좌측 시루봉을 조망하고, 발아래 부일수련원과 이병주문학관 마을을 발아래로~~`
14:03 안부 삼거리서 우측으로
14:15 부일수련원
14:16 부일수련원 입구 지방도
14:27 이병주 문학관 입구
14:35 이병주문학관 주차장
(총산행시간: 4시간35분, 휴식: 49분, 오찬: 59분, 순보행시간: 2시간50분)
울산에는 하루종일 비가 왔다고 하나, 하동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
북천 직전리 코스모스 메밀 축제장 구경하고, 사천휴게소에서 하산주하고 울산으로.
1005~10 다솔사 주차장에서 다솔사 쪽을
1006 주차장의 음수대
1011 다솔사로 가는 계단을
1011 계단을 오르면 대양루
1012 중건비
1012 대양루 설명
1013 다솔사 적멸보궁
1014 적멸보궁 내부
1014 내부의 탱화
1015 응진전
1015 응진전 설명
1015 응진전 내부 불상
1016 극락전
1016 극락전 설명
1016 극락전 내부 불상을
1016 극락전 내부 좌측
1016 극락전 내부 우측을
1017 대양루 뒤 사리탑
1019 대양루 옆 비석
1021 다솔사를 나서면 산불초소
1023 산행로 초입의 시설물
1023 등로 초입의 안내도
1024 인증샷을 하고
1024 대장과 종우도 인증샷
1025 선바위 회원님
1030 갈림길
1035 물고뱅이마을 갈림길
1035 갈림길의 이정표
1036~38 쉼터 삼거리
1036 쉼터의 이정표
1037 쉼터의 안내도
1038 잠시 발품을 쉬고
1038 잠시 망중한
1047 봉명산을 오르다 남해쪽을
1049~52 된비알을 오르다 잠시 숨을 고르고
1057~1106 정상의 전망데크
1057 전망데크 옆의 소나무
1058 정상석을
1059 전망데크에서 대장를
1100 전망데크에서 단체로
1100 무심님
1101 역광으로
1103 정상방향으로
1104 대장님과 회줜
1105 팔당도 인증샷
1107 정상에서 내려서자 마자 돌아본 모습
1116 헬기장을 지나고
1118~22 체육시설이 있는 안부 쉼터
1118 안부 쉼터의 이정표
1119 안부 쉼터의 안내도
1121 시간을 챙기시는 대장
1125 약수터와 보안암 갈림길
1125 갈림길의 이정표
1129~38 보안암 아래 이정표
1131 보안암 석굴 안내도
1132 보안암 석축을
1132 보안암 석굴 입구
1133 보안암 지장전 내부 불상
1133 석굴 내부 불상을
1135 석굴을 내려서며
1139 본 등로에 합류
1140 본 등로 합류 지점의 이정표
1141 등로에 옹달샘이
1142 돌탑 지역을
1149 안부 사거리
1150 안부사거리의 이정표
1150 다른 이정표
1152 일렬로 서서
1156 1005 지방도로 가는 임도에
1201 임도를 가다 이명산을
1204
1205 깨사리고개에
1205 깨사리고개로 내려서는 일행을
1206 깨사리고개의 이정표
1208~12 물고뱅이마을 둘레길 갈림길
1222 밈도를 따르다 철탑이 있는 곳에서 오솔길로 오르면
1234 정상전 돌무더기에서 사천방향을
1235~1334 이명산 정상에
1235 정상에서 사천만을
1238 인증샷을
1238 하동 금오산을
1240 정상의 이정표
1241 이명산 정상의 삼각점
1242 사천 와룡산을
1243 진주쪽을
1244 개구리를 만나고
1245 정상에서 북쪽 방면을
1259 정상에서 오찬을
1332 오찬후 백조님들만
1336 정상에서 내려서면 돌무더기
1343 황토재 갈림길
1343 갈림길의 이정표
1350 마애불이 있는 바위
1351 마애불
1351 마애석조여래좌상 설명판
1351 석불아래 이정표
1352 석불 뒤쪽의 이정표
1354 석불을 지나면 시루바위
1355 시루바위에서
1356 시루바위 모습을
1357~1402 두 번째 시루바위를
1358 두 번째 시루바위서 대장님
1358 두 번째 시루떡 바위에서 게명산을
1400 좌측 시루봉을
1403 안부에서 우측 수련원으로
1409
1415 수련원 위쪽 가옥
1416 수련원 입구 1005 지방도
1427 이병주 문학관 입구
1431 문학관으로 가는 논두렁에 꽃무릇
1433 코스모스
1437 이병주문학관
1441 이병주문학관 조형물에서
1515 북천 코스모스 축제장 철길에
1516 메밀꽃
1519 직전3 건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