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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 평범한 직장인
22년 합천군 글쓰기 교실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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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권광웅
나는 작가다. 글을 쓰는 문학 작가다. 무아몽에 빠져들고 인고의 시간을 지나서 원고를 마치니 눈앞에 도원경이 펼쳐진다. 가당치도 않은 작가의 꿈에 취해서 잠시나마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어 본다. 먼 훗날의 내 모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속에서 미소 띤 상상력을 펼치며 야릇한 전율과 함께 2022년 7월 합천군 글쓰기 교실에 들어선다.
수필 글쓰기 교실에 입문한 지 한 달 후, 4번째 습작으로 발표한 「나는 작가다」의 첫 단락입니다. 노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퇴직 후의 시간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삶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필이라는 장르도 자세히 몰랐고, 그냥 글쓰기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이런 내가 겁도 없이 의욕만 앞서 작가가 되겠다는 도전장을 발표한 것입니다. 연간 10편 습작 발표를 하면서 실력을 키워 5년 후 작가가 되리라는 꿈을 목표로 세우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상치도 않게 기회가 빨리 왔습니다. 에세이스트 7월 호에 신인상 응모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수필이 에세이스트 신인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직은 얼떨떨하지만 기쁨과 감격을 이 자리를 빌려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되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수필이라는 장르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저 자신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곤 합니다. 제 수필을 통해 독자분들도 그러한 경험을 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인정받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이번 수상을 통해 가장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저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언제나 글쓰기를 응원해 주었고,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사실 그녀의 지지와 사랑 없이는 제가 이 상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제 글을 읽는 그녀의 끊임없는 격려와 따뜻한 평가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영광을 바치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수필을 통해서 행복을 가르쳐 준 백남오 지도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수님의 저서인‘백남오의 수필 쓰기와 비평’이라는 문학평론 집이 있습니다. 이의 전신이자 기초가 되는 백남오의‘수필 문학’ 교재로 저는 수필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그곳에 선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수필을 이해하고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응원과 조언이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의 영광을 교수님에게 돌리고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이 상을 받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환경과 지지를 아낌없이 제공해 주신 합천군 관계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주신 합천수필문학회 문우님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에세이스트 편집부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의 글을 읽고 신인상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든든한 디딤돌이 놓아졌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글쓰기에 매진하겠습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 속에서 발견한 소소한 기쁨과 깨달음을 글로 나누고 싶습니다. 이제 문학 가치가 높은 수준의 수필 쓰기를 향해 도약만이 남았다고 봅니다. 더 많은 분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저에게 큰 힘이 되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로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선작> 간직하지 못한 유품
권광웅
대학에 입학하니 어머니는 세상을 얻은 것처럼 좋아하셨다. 장롱 깊은 곳을 뒤지더니 여러 개의 보따리 중 하나를 끄집어내셨다. 몇 겹으로 싸인 보자기를 풀어 헤치니 시계와 카메라가 보였다.
당시에는 국내 최초, 최대 시계업체인 오리엔트가 시계 대명사로 통했다. 졸업, 입학 선물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카메라를 보유한 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다수는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관의 사진사를 통해야만 했다.
시계와 카메라를 입학 선물이라며 주셨다. 기억조차 없는 빛바랜 물건이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하셨다. 자세히 보니 롤렉스 시계와 망원렌즈가 있는 캐논 카메라였다. 흔히 말하는 명품이었다. 지금처럼 명품에 목매는 시기가 아니었지만, 고가라 구하기도 힘들고 소유만으로도 존재감을 나타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해 가을. 회사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이 건하게 술 한 잔 산다며 대학 다니는 친구 3명을 소집하였다. 서면시장 한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자리를 파할 때쯤 그들은 그럴싸하게 취해 있었다. 술을 사기로 한 친구는 고주망태가 되어 인사불성이었다. 한 친구가 그의 호주머니를 뒤졌다. 술값 계산할 돈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용돈 받아 쓰는 학생이라 그만한 돈이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 왔다. 주인아저씨의 힘이 들어간 눈은 내 손목을 향하고 있었다. 시계를 맡기라고 하였다. 나는 소주 딱 한 잔만 마시고 안주를 저녁거리로 먹었을 뿐이었다. 그들과 떠들며 학창 시절의 회상만 했을 뿐이었다. 친구들은 똑같이 나누어 줄 테니 그러자고 하였다. 그들의 눈에는 유품이 아닌 지불 수단으로만 보였기에 사수할 명분이 없었다. 술도 못 먹는 내가 ‘이 자리에 괜히 왔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친구들을 믿기로 하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일주일 후에 찾아가기로 하고 맡겼다.
한 달이 되어도 그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시계가 안 보이니 어머니는 물으셨다. 불편한 마음으로 이실직고하였다. 아버지 유품이니 꼭 찾아오라고 하시며 돈을 주셨다. 찾으러 갔지만, 주인아저씨는 약속한 기일에 오지도 않고, 안 올 것 같아 팔아버렸단다. 눈시울이 화끈거렸다. 사회의 냉정함과 무너지는 심정이 가슴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았다. 나의 실수는 약속한 기일에 찾아가 한 번 더 사정하고 기일을 연장했어야 했다. 어쩌면 명품이라서 아예 줄 생각이 없었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 친구들과의 인연도 끝내버렸다.
그날 이후. 어느 누가 한턱낸다고 하거나, 지급 주최가 불분명한 모임에는 내가 그 자리를 책임지지 못할 것 같으면 참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살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좌석에 참석하다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왜 그리 자주 일어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술 못 먹고 정신 말짱한 내가 해결사 노릇을 하곤 하였다.
대학 봉사활동으로 성당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다. 대학생으로 구성된 주일 교사들은 지리산 3박 4일간의 등산을 계기로 자주 어울렸다. 커플도 탄생하였다. 우리의 야외 활동에는 언제나 캐논 카메라가 있었다. 모일 때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한 친구가 내 카메라를 항상 지니고 다녔다.
대학 2학년 여름. 발에 치일 정도로 인파가 넘치는 부산 송도해수욕장을 찾았다. 일행은 서서쏴 자세로 장총을 쏘아, 넘어뜨린 인형을 가져가는 놀이에 빠졌다. 연인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남자의 자존심까지 합세했다. 카메라를 지녔던 친구는 총기가 놓여있던 자리에 카메라를 놓아두고 총을 쐈다. 인형은 우리 일행에게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 순간, 카메라를 지녔던 친구가 비명에 가까운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어! 카메라 어디 갔지?” 발도 없는 카메라가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설마가 현실이 되어 정말로 사라졌다. 나의 뇌리는 심하게 요동치며 혼돈으로 여러 가지 생각에 접어들었다. 뇌리를 거치지 않은 깊은 내면의 신음이 소리 없이 온몸을 강타했다. ‘아! 아버지 유품인데.’ 시계에 이은 또 한 번의 시련을 맞았다. 어머니에게 또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또 다른 변명거리를 찾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류드라마를 시청한 미국인은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 못 한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카페에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그대로 있다. 실제로 한국을 여행할 때도 그런 현상을 목격한다고 하면서 엄지척을 내보인다. 미국은 화장실 갔다 오면 노트북이 사라지고 없단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생활 수준도 높고 주변의 CCTV나 치안이 세계 수준이다.
지금이었다면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거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로 아직 소유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시절은 소매치기나 절도가 성행하였다. 고가품인 그것들은 생활비에 보태는 먹잇감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잃어버린 유품은 소중함을 모르고 지키려는 나의 의지가 부족했던 탓일까. 지금의 나로서도 쉽게 마련하지 못하는 고가의 물품들이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아버지의 찬란하고 위대한 유품이었음은 틀림없다. 간직하지 못한 유품은 봉인하지 못한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심사평>
권광웅의 「간직하지 못한 유품」
이번 호에 권광웅이 신인상 응모작으로 출품한 「간직하지 못한 유품」은 수필로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필이 문학작품으로서 구비해야 할 구성요소들(이를테면 소재, 주제, 형상화, 구조, 문장력 등)을 고르게 갖춘 글이라 할만하다. 세 편의 응모작 중 이 글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다득점을 받은 이유라 하겠다.
이 글은 두 개의 화소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친구들과 다 함께 어울려 먹은 술값 대신 롤렉스 시계를 잡혔다가 끝내 되찾아 오지 못한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성당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활동을 하다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분실한 캐논 카메라 이야기다. 이 물품들은 둘 다 고급 명품인 데다 대학 입학 선물로 어머니께서 주신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아버지는 화자가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먼저 롤렉스 시계 이야기부터 하면, 그해 가을 회사에 다니던 고교 동창이 건하게 술 한 잔 산다며 대학에 다니는 친구 3명을 소집했다. 장소는 부산 서면시장의 한 음식점이었고 자리를 파할 때쯤 그럴싸하게 취해 있었다. 그런데 술을 사기로 한 그 친구는 인사불성일 정도로 취해 있었고 누군가가 그의 호주머니를 뒤졌으나 무일푼이었다. 결국은 화자의 롤렉스 시계를 맡겼는데, 이후 다른 친구들은 모두가 무관심했고, 뒤늦게 시계를 찾으러 갔을 땐 “약속한 기일에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올 것 같아 팔아버렸다”는 말을 식당 주인으로부터 듣게 된다. 화자는 눈시울이 화끈거렸다. 그것은 사회의 냉정함, 친구들의 야속함, 어머니에 대한 면목 없음과 같은 감정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캐논 카메라 이야기다. 성당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활동을 할 때 화자의 캐논 카메라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 대학 2학년 여름, 봉사단 일행은 부산 송도해수욕장을 찾았다. 일행은 서서쏴 자세로 장총을 쏘아 인형이 넘어지면 그걸 가지는 놀이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 순간, 카메라를 지녔던 친구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카메라는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 뒤였다. 아, 아버지의 유품인데. 또 한 번 어머니께 무슨 변명을 한단 말인가! 화자에게는 이런 상실의 상처들이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아있다. 그것은 봉인되지 못한 쓸쓸한 기억이기도 하다.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 순간, 카메라를 지녔던 친구가 비명에 가까운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어! 카메라 어디 갔지?” 발도 없는 카메라가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설마가 현실이 되어 정말로 사라졌다. 나의 뇌리는 심하게 요동치며 혼돈으로 여러 가지 생각에 접어들었다. 뇌리를 거치지 않은 깊은 내면의 신음이 소리 없이 온몸을 강타했다. ‘아! 아버지 유품인데.’ 시계에 이은 또 한 번의 시련을 맞았다. 어머니에게 또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또 다른 변명거리를 찾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글은 화소의 배치가 견고하고 유기적인 점이 특징이다. 군더더기가 없어 깔끔하고 감정의 절제도 좋다. 우리 사회는 시대적으로 정확히 선을 그을 순 없지만, 강도나 소매치기, 농작물 서리, 남의 물건 슬쩍 챙겨가기 같은 위법하고 비신사적인 일이 횡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카페 등에서 노트북이나 휴대폰, 지갑 같은 걸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손대는 일이 거의 없다. 시민의식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화자는 이런 점도 과거와 현재의 대칭적인 구조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이 글의 두 번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건, 형상적 표현이 적절하게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수필을 포함하여 문학에서 형상적 사유와 묘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형상적 표현의 승패에 따라 문학성이 결정되기도 한다. 당연히 수필도 문학이고 문학은 예술의 한 영역인지라 형상성은 포기할 수 없는 요소다. 말하자면 수필은 허구 없이 경험이란 단기필마로 형상화와 주제에 승부를 걸기에 적절한 장르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이건 수필만이 가진 독보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형상적 문장들을 뽑아 본다.
① 술을 사기로 한 친구는 고주망태가 되어 인사불성이었다. 한 친구가 그의 호주머니를 뒤졌다. 술값 계산할 돈은 나오지 않았다.
② 주인아저씨의 힘이 들어간 눈은 내 손목을 향하고 있었다.
③ 사회의 냉정함과 무너지는 심정이 가슴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았다.
④ 고가품인 그것들은 생활비에 보태는 먹잇감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⑤ 간직하지 못한 유품은 봉인하지 못한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수필은 주제의 문학이다. 사실 문학이나 비문학을 막론하고 주제는 글의 생명이다. 수필은 더욱 그런 장르에 속하는 글이다. 이 글의 주제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귀중한 유산을 화자의 부주의로 제대로 지키지 못해 어머니께 면목이 없다는 것이고, 한편으론 사회의 냉정함과 야속함을 귀중품의 분실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나 실수 없이 반듯하게 서기란 어렵다. 그렇게 해서 자아가 주체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를 통해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점, 그리고 씁쓸한 기억을 새기고 산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감 가는 메시지이다.
다만 아버지의 언급 유무를 놓고 검토해 보기로 한다. 지금 아버지 이야기는 빠져 있는 상태다. 아버지의 삶, 그 기억이나 관점이 들어가면, 더 좋을 것이다. 견고성, 균형성, 임펙트가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계와 카메라는 고가품이어서 귀중하기도 하나 아버지의 유품이어서 더 귀중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아버지 이야기가 빠지게 되면 핵심을 빠트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아버지 이야기는 해도 되고 아니해도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화자의 생각은 어떤가?
작가가 응모한 나머지 수필 「불꽃 같은 희망」과 「죽음의 문턱까지」도 구성요소가 탄탄하고 고른 수준이다. 많은 습작 경험과 글쓰기 수련이 뒷받침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등단을 축하드린다. 그리고 『에세이스트』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하며, 계속해서 좋은 작품들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심사평 : 백남경(nkback62@naver. com)
첫댓글 권광웅 선생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지면으로나마 자주 선생님을 글을 만나보길 기대합니다. 건필하십시요.
권광웅 입니다 ㅎㅎ
축하드립니다
@산나그네 에구~^
정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권광웅 선생님,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