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이백(李白)
봄날 밤 도리원에서의 주연 서문
여천 정철중
독고시사망(讀古詩詞網) 참조
■ 원문(原文)
夫天地者,萬物之逆旅也;光陰者,百代之過客也。而浮生若夢,爲歡幾何?古人秉燭夜遊,良有以也。況陽春召我以煙景,大塊假我以文章。會桃花之芳園,序天倫之樂事。羣季俊秀,皆爲惠連;吾人詠歌,獨慚康樂。幽賞未已, 高談轉清。開瓊筵以坐花,飛羽觴而醉月。不有佳詠,何伸雅懷?如詩不成,罰依金谷酒數
■ 역문(譯文)
천지라는 것은 만물을 맞는 객사다. 세월이라는 것은 백대에 걸쳐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뜬 인생은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옛사람들이 촛불을 잡고 밤에 놀았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따뜻한 봄날은 안개 낀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지는 나에게 아름다운 광채를 빌려주었다.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정원에서 만나, 형제들은 즐거운 연회를 펼치네! 여러 아우들은 재주가 빼어나 모두 사혜련(謝惠連)이 되었지만, 내가 읊는 시 만이 홀로 사강악(謝靈運)에게 부끄럽구나! 그윽한 풍경을 감상하고 청아한 담론이 아직 끝나지 않으니, 고상한 말은 갈수록 맑아진다. 꽃밭에 앉아 아름다운 술자리를 벌려 새 모양의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 아래에서 취하여 간다. 아름다운 시를 짓지 않는다면 어찌 고아한 회포를 펼치겠는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은 금곡원(金谷園)의 벌주 수에 따르리라.
■ 주석(註釋)
도리원(桃李園) : 이 시는 당 개원 21년(733년) 전후에 안육(安陸)에서 지었다. 도화원은 안육 조산의 도화암으로 추정하고 있
다. 此序約於開元二十一年前後作於安陸。桃花園,疑在安陸兆山桃花巖.
종(從): 집안친척 당방친속(堂房親屬)
종제(從弟):당제(堂弟), 친척의 아우。
역려(逆旅) : 객사(客舍). 역(逆) → 영접(迎接), 려(旅) → 객(客)
과객(過客) : 지나가는 나그네(過往的客人). 이백(李白)의 《의고십이수(擬古十二首)》 기구(其九)에 "생자위과객(生者爲過客)"이
란 구절이 있다.
부생약몽(浮生若夢) : 죽고 사는 것은 차이가 있듯이 좋은 꿈과 꿈을 깨었을 때는 같지 않다. 死生之差異,就好像夢與醒之不
同,紛壇變化,
불가구힐(不可究詰) : 내용(內容)이 복잡(複雜)하여 진상(眞相)을 밝힐 수가 없음
병집야유(秉燭夜遊) : “밤에 촛불을 켜고 놀다”라는 것은 행락할 때 자주 언급하는 구절이다.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 십오(十
五)에, "주단고야장(晝短苦夜長),하부병촉유(何不秉燭遊) : 낮은 짧고 밤은 길어 괴로우니, 촛불을 잡지 않고 어찌
즐길 수 있겠는가!“ 하였고, 조비(曹丕)는 《여오질서(與吳質書)》에서, 젊은이는 마땅히 노력해야 하거늘 세월을 그
냥 보내버리면 어찌 높은 곳에 오르겠는가! 옛사람이 촛불을 잡고 논다는 말은 다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少壯真當
努力,年一過往,何可攀援!古人思秉燭夜遊,良有以也) 하였다.
유이(有以) : 이유가 있다(有原因)
연경(煙景) : 봄 날씨는 따뜻하고 습윤해서 경치는 마치 안개와 연무에 싸여있는 것 같다(春天氣候溫潤,景色似含煙霧)
대괴(大塊) : 대지(大地)
가(假) : 빌리다(借), 제공하다, 나에게 내리다(賜予的意思)
문장(文章) : 아름답고 고운 문장·무늬(這裏指絢麗的文采). 옛적에 푸른색과 붉은색이 잘 배합된 것을 문(文)이라 하고 붉은색과
백색이 잘 배합된 것을 장(章)이라 했다.(古代以青與赤相配合爲文,赤與白相配合爲章)
서(序) : "서(敘)", 서설(敘說)
천륜(天倫) : 부자(父子)나 형제 등 친속관계(親屬關係). 여기서는 형제(兄弟)를 말한다.
군계(羣季) : 여러 아우(諸弟). 형제간 장유유서의 순서(兄弟長幼之序)는 백중숙계(伯仲叔季)이다. 그래서 계는 여러 아우를 지
칭한다.
계(季) 나이가 어린 아우.
혜련(惠連) : 사혜련(謝惠連), 남조시인(南朝詩人)인데 어려서부터 슬기로웠다.
조혜(早慧) : 이 말은 사혜련이 와서 모든 동생들이 문재가 뛰어나다고 칭찬한 것을 말한다(這裏以惠連來稱讚諸弟的文才)
영가(詠歌) : 시를 읊다(吟詩)
강락(康樂) : 남조 류송(劉宋) 때의 산수시인인 사영운을 말한다. 세습되어 강랑공으로 봉해졌다. 세칭 사강락이라고 부른다(南
朝劉宋時山水詩人謝靈運,襲封康樂公,世稱謝康樂)
유상이구(幽賞二句):한편으로 그윽하고 조용히 아름다운 풍경을 즐거워하고, 한편으로는 청아한 화제를 담론하는 것을 말한
다(謂一邊欣賞着幽靜的美景,一邊談論着清雅的話題)
경연(瓊筵) : 화려하고 아름다운 잔치(華美的宴席)
좌화(坐花) : 꽃떨기 있는 곳에 앉다(坐在花叢中)
우상(羽觴):고대 일종의 술그릇, 새의 부리모양으로 만들어, 머리, 꼬리, 날개깃이 있다.(作鳥雀狀,有頭尾羽翼)
취월(醉月) : 달을 취하게 하다
금곡주수(金谷酒數) : 금곡은 정원의 이름이다. 진(晉)나라 석숭(石崇)이 금곡간(金谷澗, 현재의 하남성 낙양(洛陽) 서북쪽에 정
원을 짓고 빈객(賓客)을 초청해 연회를 열었는데, 그 「금곡시서(金谷詩序)」에 각각 부와 시를 짓고 회포를 펴되, 혹
여 그렇지 못한 사람은 벌주 석 잔을 마셨다. 후세에 연회의 벌주는 석 잔이 상례화 되었다.
■ 이백(李白) : 701 ~ 762, 당(唐)나라 시선(詩仙)
자(字)는 태백(太白), 호(號)는 청련(靑蓮), 취선옹(醉仙翁). 두보(杜甫)와 더불어 시의 양대 산맥(山脈)을 이룬다. 그의 시는 서정성(抒情性)이 뛰어나 논리성(論理性), 체계성(體系性)보다는 감각(感覺), 직관(直觀)에서 독보적(獨步的)이다. 시선(詩仙)이라 불리며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출생지는 사천성(四川省) 장명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장강을 따라 강남, 산동, 산서 등을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맹호연(孟浩然), 원단구(元丹邱), 두보(杜甫)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백은 부패한 정치에 불만이 많았고 정치적 재능으로 발휘할 기회를 바랐다. 그가 43세 되던 해인 742년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장안(長安)에 들어가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관직을 하사 받았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그의 정치적 야망과 성격은 맞지 않았고,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궁정에서 쫓겨났다.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는 황자 영왕(永王) 인(璘)이 거병하자 막료로 발탁되었으나 황자 숙종과의 대립에서 패하였으므로 유배되었으나 59세에 곽자의(郭子義)에 의하여 구명, 사면되었다. 그 후 방랑 끝에 안휘성 당도(當塗)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그의 시문집은 송대(宋代)에 편집된 것이며, 주석으로는 원대(元代) 소사빈의 《분류보주 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대(淸代)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 등이 있다. (네이버 두산백과 등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