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자의 ‘귀로’
가을이 깊어지면 나뭇잎과 풀들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두른다. 대궁이 붉은 기생여뀌도 조용히 땅으로 몸을 눕히었다. 그 옆에서 풍채가 당당하던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지를 모조리 비웠다. 밖으로 드러나 닳고 닳은 뿌리 언저리로 잎과 열매가 떨어져 쌓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을 따라 흙의 소립자로 돌아갈 것이다. 피고 지고 열매 맺어 다시 대지에 내려놓는 식물들의 궁극의 차원이 지성스럽다.
가끔 땅거미가 내리는 들녘으로 산책을 나간다. 그럴 양이면 신발치에서 헐렁한 옷가지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등산모를 삐뚜름히 쓰고 서 있는 허수아비를 만나게 된다. 수수와 조를 심었던 밭 주인이 임무 수행을 마친 허수아비를 그냥 내쳐둘 모양이다. 허수아비와 어둑한 산 그림자와 빈 들켴, 어슴프래 좁혀오는 땅거미가 빚어내는 거칠고, 성글고 허허로운 풍경이 쓸쓸한 감성으로 이입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감상일 뿐이다. 허수아비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면 허수아비 옷자락이 접힌 곳마다 무당벌레가 추위를 피해 고물고물 깃들여 있다. 낡은 허수아비 옷자락에 무슨 온기가 있을까만 그래도 된서리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신처로 삼고 모여들었을 터이다. 살려고 하는 생명의 본능이 안쓰러워 방금 쓸쓸한 감성을 일으키던 나의 여린 감상이 고물거리는 생명 앞에성 무색해지고 만다.
생존을 위한 애착처럼 절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무당벌레가 허수아비 옷자락을 은신처로 삼았듯이 북녘에서 날아온 청둥오리들은 호수 곁 갈대숲에다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고 수시로 물속을 드나든다. 겨울 한 철을 보내기 위해 찾아왔으나 머지 않아 수면이 얼어붙으면 새들은 또 어딘가로 떠나야 할 것이다.
나의 기억 저편에 숨어 있는 아이는 제 둥지에 대한 애착이 집요했다. 6. 25 전란이 일어난 다음 해 가을이었다. 고모께서 시누이 혼사를 친정에 알렸다. 엄마는 여덟 살 먹은 딸을 큰아들 자전거에 태우고 신작로를 따라 큰집에 갔다. 큰 댁 새언니에게 딸을 맡기고 큰엄마와 고모네 혼인잔치에 가기로 미리 약속해 두었던 것이다. 엄마는 큰오빠를 앞세우고 기차역으로 떠나기 전에 딸에게 울지 말고 새언니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조곤조곤 타일렀다. 아이는 신통하게도 낯가림을 하지 않고 새언니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며 말참견이 잦았다. 새댁도 그러는 사촌 시누이가 귀여웠던지 하나로 묶은 머리를 풀어 갈래버리로 따주고, 간식도 챙겨 주었따. 그럼에도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아이는 갑자기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고 울음이 터지려고 했다. 가만히 대문을 열고 큰집에서 뺘져나와 신작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미루나무가 줄 지어 선 신작로는 자갈이 많았다. 작은 돌부리도 박혀 있었고, 움푹 파인 곳도 있었다. 더러 터럭이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지나갈 때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작로 가에로 피랬다. 발가락이 아파왔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려면 발이 아파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늦가을 짧은 해가 서쪽 능선으로 넘어가자 노을이 ㅅㄴ작로르 환하게 비추었다. 아이는 더 빨리 걸었다. 심장박동도 따라서 빨라졌다. 어디선가 무서운 짐승이 앞을 가로막을 것도 같았고, 낯 모를 사람이 번쩍 안고 가선 서커스 단에 팔아버리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달걀 귀신, 뿔 달린 도깨비와 몽달귀신도 머릿속으로 들어와 복작거렸다.
몸집이 유난히 작은 계집아이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시오리 길은 태어나 처음으로 저 혼자서 넘어야 하는 큰 산이었다. 눈물을 흘려서 안 되었다. 사방으로부터 어둠살이 좁혀들자 아이는 길바닥에서돌 두 개를 주워 손아귀에 꼭 쥐었다. 그들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방어 할 때 쓸 절대의 무기였다.
아이는 발바닥에 물집이 박혀 터지는 줄도 몰랐다.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찌 된 일로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응당 있어야 할 오빠는 부재중이었다. 성냥을 찾아 남포 심지에 불을 붙이자 벽에 걸어놓은 가족사진과 오빠들의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로소 아이는 안도의 날숨을 크게 내쉬고 곧바로 반닫이에 올려 놓은 이불을 내렸따. 춥고 배가 고팠지만 전신으로 밀어닥치는 피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가 베고 자던 베개를 끌어안고 혼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여러 날을 된통 앓았다. 큰댁에서 사촌 오라버니가 허둥거리며 다녀갔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늦게 집으로 돌아온 작은 오빠는 잠든 동생의 발을 보고 눈물을 삼켰다.
그 후에 나는 살아오면ㄴ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칠 적이면 신작로를 걸어가던 그 아이를 생각했다. 오로지 새 둥지로 돌아가려는 본능에 메달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져 피와 엉겨붙은 줄도 모르고 겁에 질려 걸어가던 아이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하면 계획했던 일이 난마처럼 얽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삶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에도 게으르을 부리지 않았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운용의 묘로 삼기도 했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결이 차다. 허수아비 옷자락에 밤을 견딜 작은 벌레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앞으로 날씨가 추워지면 필경 가사상태로 겨울을 넘길 것이다. 이래서 겨울나기에 들어간 작은 생명들은 하나같이 귀엽다.
(2017)
첫댓글 두 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허수아비의 옷자락에 숨어서 겨울을 보내려는 벌레와, 나의 이야기 ----- 이 두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아였을 까요. 다음에 수필이론을 공부하면서 따져 보겠습니다. 지금은 그냥 촣은 수필이라서 소개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의 짧은 생각에 아이와 무당 벌레는 절박함이 연결점 같습니다
무당 벌레는 한겨울을 버텨야 한다는것과 아이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것에 대한
절박함이 아닐까 저는 생각 해봅니다. 오답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