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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르칸트 관광 1일차 : 티무르 동상, 구르아미르 영묘, 레기스탄 광장 >>
- 키르기즈스탄에서 지난 11일동안의 여행이, 천산산맥과 그 지맥 자락에 위치한 멋진 자연으로의 트레킹이
주요 일정이었다면, 앞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여정은, 옛 실크로드 중심도시들의 고대 유적지를 관광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 아침 7시에 호텔을 나서, 택시로 15분 정도 걸려 타쉬켄트 기차역에 도착했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부터 우리 일행을 인솔해준 케이씨대장님과 작별하고, 8:45분발 고속열차를 타고
사마르칸트로 향한다.
한 시간 단위로 굴리스톤역과 지자하역에서 잠시 정차한 후에, 3시간 15분이 지난 12시에 사마르칸트역에 도착했다.
(타쉬켄트역)
(케이씨대장님과 작별 전에 타쉬켄트역에서 단체사진 촬영)
(고속열차 안에서)
(지자하역에 정차)
(사마르칸트역에 도착)
- 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호텔 앞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에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오후 4시에 숙소를 나서, 천천히 걸어서 유적지 관광을 시작해 오후 7시까지 3시간 동안, 티무르 동상과 구르아미르 영묘,
레기스탄 광장을 둘러본다.
레기스탄 광장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구르아미르 영묘의 야간 풍경을
구경한다.
(*) 사마르칸트 : '금을 캔다'라는 뜻의 사마르카나바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로 꼽히는 사마르칸트는, BC 5세기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BC 329년에 알렉산더대왕이 이 지역을 장악했을 때에도, 이미 사마르칸트는 소그드제국의 수도이자
국제도시로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사마르칸트는 중국과 인도, 페르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거점에 위치한 실크로드의 핵심지역이었으나,
1220년에 칭기즈칸이 멸망시켰다.
그러나 1370년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은 후에 다시 중앙아시아의 중심지로 번성하다가,
16세기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해 18세기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 되었다.
이후 19세기 후반에 카스피 횡단철도가 러시아와 사마르칸트를 연결한 후에 다시 회복세를 띠게 된다.
(*) 티무르 (1336~1405) : 사마르칸트 부근의 케시(지금의 샤흐리 삽즈)에서 출생하였으며, 칭기즈칸 (1155 ? ~1227)을
이상형으로 삼아 유라시아에 걸쳐 티무르 제국(1369~1507년)을 건설하였다.
1370년 중앙아시아를 점령하여 사마르칸트에 도읍하고 세계 통일의 대업을 계획하여,
1405년에 당시 중국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 시기)를 정벌하려는 길에 올랐으나 도중에
오트라르에서 병사하였으며, 사마르칸트의 구르아미르 영묘에 매장되었다.
티무르는 군사적인 정복 뿐만 아니라 문화 창달에도 기여하였으며, 푸른색을 좋아하여
사마르칸트를 푸른 색의 도시로 건설하였다.
(티무르 동상 - 카자흐스탄에서는 '골든 맨' 조각상을, 키르기즈스탄에서는 '마나스' 동상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티무르' 동상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각지에서 '이순신'장군 동상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된다)
(구르아미르 영묘로 가는 길에)
(구르아미르 영묘 입구에서)
(*) 구르아미르 영묘 : 구르아미르는 타지크어로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티무르와 그의 두 아들, 두 손자 (울루그베크 포함),
스승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 건물은 1404년에 티무르가, 자신이 아끼던 손자 무함마드 술탄이 이란에서 전사한 것을 추도하기 위해
지었으며, 티무르 자신도 1405년에 이곳에 묻히게 된다.
다른 이슬람식 묘지와 마찬가지로 석조 구조물은 명판일 뿐이며, 지하 무덤은 아래의 묘실에 자리해 있다.
한가운데 놓인 초록빛 옥은 '티무르의 돌'인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740년 나디르 샤 장군이 이 돌을 페르시아로 운반하다 깨뜨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장군의 아들이 병에 걸리는 등 불운이 따랐다고 한다.
나디르 샤장군은 결국 종교 사제들의 조언에 따라 그 돌을 사마르칸트로 다시 가져다 놓았고,
이후 그의 아들은 병이 회복되고 불운이 끝났다고 한다.
소련의 인류학자가 1941년 처음으로 이 지하무덤을 열 때 무덤 위에는, '이를 여는 자는 나보다 더 무서운
적에게 패할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하며, 무덤을 연 다음날인 6월22일 소련은 히틀러의 침공을
받았다고 한다.
(여러 무덤 가운데 정 중앙에 자리 잡은 흑녹색 연옥이 아미르 티무르의 관이다)
(아미르 티무르의 초상화 - 그의 초상화 아래로 그가 정복했던 지역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 레기스탄 : '모래 땅(광장)'이란 뜻으로, 중세 사마르칸트의 상업 중심지였으며 오랫동안 바자르가 열렸던 공간이기도 하다.
장엄한 마드라사들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사마르칸트의 핵심 명소이다.
3채의 웅장한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마드라사들이며, 더 오래된 것들은 칭기즈칸이 모두 파괴해버렸다.
본 마드라사인 울루그베크 마드라사가 광장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1420년 울루그베크 통치기에 완공되었으며,
울루그베크가 이곳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신학과 천문학, 철학 등의 교육 공간으로도 이용되었다.
다른 건축물들은 샤이반 왕조의 에미르 얄랑투시가 모방해 지은 것들이다.
울루그베크 마드라사 맞은편에 1636년에 완공된 쉐르 도르(사자) 마드라사가 자리해 있는데, 입구의 울부짖는
사자 장식이 살아있는 동물 묘사를 금하는 이슬람교의 율법을 벗어나고 있다.
이 두 건축물 사이로 1660년에 완공된 틸라카리(황금) 마드라사가 있는데, 화려한 황금 장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레기스탄 광장 - 이른 아침에 보는 게 아름답다고 하여, 다음날 아침에 다시 들러서 찍었다.
사진 왼쪽이 울루그베크 마드라사이고, 오른쪽이 쉐르 도르 마드라사, 정면이 틸라카리 마드라사이다)
(본 마드라사인 울르그베크 마드라사)
('사자'라는 뜻의 쉐르 도르 마드라사 - 첨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입장료가 5만숨이라는 안내문이 있는데 올라가지 않았다)
('황금'이라는 뜻의 틸라카리 마드라사)
(*) 울루그베크 (1394~1449) : 티무르의 손자로 15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티무르제국을 통치한 군주이자 유명한 천문학자이다.
그는 시와 역사, 신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사마르칸트에 저명한 천문학자들을 모아 천문대를
세우고 천측표를 개발하였다.
울루그베크의 제위 기간 동안 티무르제국에 십진법, 기하학, 삼각법이 도입되는 등 과학 발달로,
사마르칸트는 고도의 학문과 문화가 발전하였다.
그러나 과학 발전에 반발하여 종교를 우선시하는 이슬람 승려의 사주로, 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피살되었다.
(울르그베크 마드라사 안에 있는, 울르그베크 초상화 - 천문학에 관한 여러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쉐르 도르 마드라사 내부에서 - 보수 공사 중이다)
(틸라카리 마드라사 내부 - 황금이라는 뜻에 걸맞게 황금 장식이 화려하다)
(천장의 문양)
(구르아미르 영묘는 밤에 보는 게 아름답다고 한다)
<< 사마르칸트 관광 2일차 : 비비하눔 영묘, 비비하눔 모스크, 샤히진다 묘지, 바자르 >>
- 아침 8시에 일찍 호텔을 출발해 어제와 마찬가지로 걸어서 관광에 나선다.
어제 둘러보았던 티무르 동상과 구르아미르 영묘, 레기스탄 광장을 지나, 비비하눔 영묘와 그 맞은 편에 위치한
비비하눔 모스크를 구경한다.
(*) 비비하눔 : 티무르의 9명의 왕비 중 한 명이나, 가공의 인물이라는 의견이 많다.
실제 아래 전설의 주인공은, 티무르의 왕비인 몽골계 귀족의 딸이었던 '사라이 물크 하님'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티무르의 중국인 부인이었던 비비하눔은, 아미르 티무르가 가장 사랑하던 왕비였다.
티무르가 없는 동안 그를 위한 깜짝 선물로, 비비하눔 모스크를 건축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비하눔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페르시아 출신의 젊은 건축가는, 비비하눔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키스를 해주지 않으면, 공사를 끝내지 않겠다고 비비하눔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비비하눔은 건축가에게, 푸른색이 나는 물이 담긴 잔과 맹물이 담긴 잔을 보여주며 마시게 했다.
'외모는 달라도 여자는 모두 다 같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였다.
이에 건축가는 맑은 물 두잔을 비비하눔에게 보여주며 마시게 했다.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는 두 물잔 모두 맑은 물이지만, 하나는 설탕물이고 하나는 맹물입니다.
외형이 같다고 모두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비비하눔은 젊은 건축가의 사랑을 받아들여, 볼에 키스를 하도록 허락했다.
이 운명의 키스는 흔적을 남겼고, 아미르 티무르가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났다.
키스의 흔적을 본 티무르는 건축가를 사형시켰고, 모든 여성들로 하여금 남성을 유혹하지 못하도록 베일을 착용하게 했다.
그리고 비비하눔은 높이 솟은 미나렛에서 떨어져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 출처 : '문명의 실크로드를 걷다', 장준희 지음)
(비비하눔 영묘 - 소박한 소규모 영묘로, 비비하눔 모스크 맞은편에 있다)
(*) 비비하눔 모스크 : 레기스탄 북동쪽에 자리한 모스크로,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곳이다.
티무르가 세상을 떠난 직후 완공되었고, 한때 이슬람 종교 건축물 중 최대 규모를 자랑했으며,
당시의 건축 기술이 총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 모스크의 돔은 41m, 피슈타크는 38m높이)
(비비하눔 모스크)
(모스크 안뜰에서 - 나무 사이의 거대한 대리석은 코란 받침대이다)
- 비비하눔 모스크를 나서서 샤히진다 묘지를 찾아가다가 묘지의 후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후문 입구 길 옆에서
꽃을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고 추모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매우 붐빈다.
누군가에게 들으니, 오늘이 마침 성묘를 하는 무슨 기념일이라고 한다.
(샤히진다 묘지로 가는 중에 바라본, 비비하눔 모스크와 비비하눔 영묘 방면)
(샤히진다 묘지 후문 맞은편에 위치한 건물 - 길 옆에는 꽃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으며, 추모객들이 매우 붐볐다)
(*)샤히진다 : '살아 있는 왕의 무덤'이란 뜻으로, 쿠삼 이븐압바스 (7세기에 이 지역으로 이슬람교를 전파시킨 마호메트의
사촌으로 알려져 있음)의 무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영묘 단지이며, 샤히진다는 단지의 안쪽에 자리한 신성한
본 사원을 일컫는 말이다.
티무르와 울루그베크가 가족과 지인의 묘를 왕이 기거하는 궁전 부지 근처로 이장하면서, 14세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샤히진다가 완성되었다.
샤히진다는 신성한 순례지이기 때문에, 방문할 때는 옷차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샤히진다 묘지 후문으로 들어간다)
(묘지 내부에서)
(이 묘역은 서민용 묘지들인 것 같다)
(샤히진다 묘지 정문)
- 샤히진다 부근에 있다는 바자르를 현지인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갔더니, 우리가 예상했던 바자르가 아니고 파장 분위기의
야채 도매시장이 나온다.
시장을 구경한 후,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11시가 되었다.
(바자르를 찾아가는 길에 - 사진을 찍으려하자 가던 나귀를 멈추어준다)
(야채 도매시장에서)
- 숙소 맞은편 식당에서 점심식사 후에 일부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몇 사람은 택시를 타고 샤히진다 묘지 부근에 위치한
바자르를 다녀왔다.
(샤히진다 묘지 부근에 위치한 바자르)
-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밸리 댄스 공연을 한다는 고급 식당인 '카림벡'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 밤엔 밸리 댄스 공연이 없었고 무슨 대규모 가족 모임이 있는지, 많은 사람이 식당 홀에 나와 라이브 음악에 맞추어
춤 파티가 벌어지고, 우리 일행 중 몇 분은 현지인들과 어울려 같이 술도 마시고 춤도 추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저녁식사를 한 '카림벡'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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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이 급해서 폰으로 보니 집중이 안되네요. 돔 천정이 압권입니다 실제는 더 좋았을테지요.
공부를 해가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며칠 동안 보아도 좋을 유적들 같네요.
중앙아시아 여행중 돈을 4번이나 바꿔 사용해야했다.
중국 위안화
카자흐스탄. 텽게
키르키스탄. 솜
우즈베키스탄. 숨.
돈을 겨우 익혀서 알만할때면 다른 나라로 이동해 햇갈린다.
사실 돈 사용은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은 어디서나 구입해야한다.
전날 아침 키르키스탄 출발하여 하루종일 택시를 타고 육로국경을 넘어서 밤에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에 도착하여 저녁먹으러가다 넘어져 바지도구멍나고 무릎도 까지고.
담날 7시에 호텔을 나서 사마르카트로 가는데
돈을 익힐틈도 없이 타시켄트역에서 수퍼에 물을 사러갔다.
같이간 산소님은 물을사서 먼저 계산하고 나도 계산했다.
타시켄트역 수퍼에서 물과 빵을 아침간단하게 먹을려고 샀다.
총각 점원이 전자 계산기에 3.000숨을 찍어 주었는데 어리버리한 나는 30.000숨을 주고 나왔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구운빵 한개 1.000숨을 주고 사면서 깨달았다.
수퍼에서 물값 계산 더주고 왔다는것을....
러시아 말 할줄도 모르면서 아까 계산 잘못했다. 3천숨인데 3만숨냈으니 2만5천숨 돌려달라
손짓과 한국말로 하였다.
다행히 든든하게 피선생님도 아직 수퍼에 계셨다.
다행히 한참 실갱이 하다 2만5천숨 받았다.
약수터님 안녕하세요. 수 많은 사진, 끝 없이 이어진 글, 많은 사전 연구와 노력으로 이루어낸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거기가서 돈을 쓸 때는 "솜" 방망이로 맞은 것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고 "텽가텽가" 하면서
써야겠네요. 멋진 글 잘 봤습니다. 그나저나 9월에 누가 탄탄탄 가면 따라가려고 눈팅을 해보고 있습니다만
아직 아무도 소식이 없네요.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9월에 중앙아시아를 가시면 좋은 계절일 것 같습니다.
내내 강건하시고 멋진 여행 자주 하시길 바라며, 사모님에게 안부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행기를 몽골에서 러시아에서도 탐독하다 이제 한국에서도 다시 정주행중입니다.
여행사진, 여행기를 정리하시느라 고생하셨을텐데 죄송하지만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중앙아시아 관련 책 10권을 마스터하셨으니, 이제 러시아어 공부만 마치시면
중앙아시아에 대해 최고 전문가가 되실 듯 하네요.^^
사마르칸트
이름도 멋지고 실크로드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