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역시 집이 좋습니다. 집에 돌아온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이용규선교사님이 한번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어디가 내 집인가?” 하는 질문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한국, 미국, 몽골, 인도네시아, 여러 나라를 옮겨다니며 사셨기에 순간 혼란스러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있는 곳이 내 집이다’ 하는 생각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용규선교사님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있고 가족이 있는 곳이 집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번 여행 중에 늘 집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내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결혼하여 산 지 33년이 됩니다. 그 기간이 늘 편안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너무나 행복하였다”고 고백되는 것은 함께 사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딸을 낳고 기르는 과정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두 딸이 없는 제 삶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두 딸들과 함께 사는 기쁨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을 마치고 새삼 느껴지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쁨입니다.
집에 돌아와 하루 밤을 지나고 깨달아지는 것은 제가 미국에 있을 때나 한국에 돌아와서나 변한 것이 없는 것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집에 돌아온 것 보다 더 기쁩니다.
이번 미국 여행 중 마지막 일정은 로키산맥에 있는 산장에 가서 이틀 정도 쉬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3 주간 너무나 강행군을 했기에 이틀 정도는 편안히 쉴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행하셨던 목사님 한 분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함께 병원 응급센터에 갔다가 밤이 늦어 병원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자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미국 여행 중에 가장 힘든 일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마음이 불편하기 보다는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응급상황이었던 목사님이 회복되신 것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다급하였던 그날 밤을 함께 보내면서, 모두가 얼마나 깊은 교제를 경험하였는지 모릅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늘 주님을 바라보며 산다고 해서 언제나 편안하고 모든 일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오히려 힘들고 고생스런 일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를 받았지만 40년 광야 생할이 편안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신 33:29) 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은 주님과 동행하는 여행이었지만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려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는 것이 너무나 놀랍기 때문에 어려움이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뿐입니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매운데, 맛있다!” 하듯이,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힘든데, 기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어머니들은 아기를 해산하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또 아이를 갖는 것일까요? 새 생명의 잉태, 꿈틀거림, 아기와의 만남의 기쁨 등이 진통과 출산의 아픔, 육아의 피곤함을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세상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기쁨,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