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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죽령에서 곶이령(고치령)까지의 2월 16일의 무박산행이다. 2020년 2월 15일 전국적으로 저녁에 비소식이 있다. 기온은 영상 2도이며 새벽까지는 비소식, 바람은 없다. 그리고 오후부터 영하로 추워지고 바람이 동반된다고 한다. 소백산 능선의 대간코스이니 당연히 비소식은 눈소식으로 들린다. 비록 영주지역과 단양지역에서 아침까지 바람이 없다는 기상보도이지만 소백산 비로봉이니 어느 정도의 바람은 예상하고, 아침9시 이전에 비로봉을 벗어나면 칼바람의 위력을 피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이날 산행은 눈이 아닌 겨울의 우천야간산행이 되어버렸다. 기대했던 눈은 안오고 비가 계속 내리면서 바람에 옷이 젖어버리고, 오랜만에 맞은 소백산 비로봉의 칼바람으로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비로봉에서 중도하산하고 말았다. 방수 안되는 카메라로 비, 운무, 그리고 바람으로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한 산행이다. 대간 코스기록을 남기면서 어쩔 수 없이 2015년 5월경 산행사진으로 부족한 풍경을 대체하면서 글을 올린다. 《 소백산 죽령휴계소(해발 686m) 》 새벽 2시반경쯤 죽령휴계소에 도착한다. 600m가 넘는 고도인데 많지는 않지만 비가 오고 있다. 아스팔트는 비로 인해 깨끗해져 있고, 예상했던 눈은 내리지도 않고 땅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고, 기온은 영하권이 아닌 듯하다. 제2연화봉까지 약 5㎞정도의 포장도로를 완만한 경사도로 올라가게 된다. < 아래 사진은 죽령휴계소 : 아스팔트가 비에 젖어 있다.> < 아래 사진은 등산로 들입구. 이때만 해도 약간의 비외에 날씨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 < 등산로 들입구 이정표 > 소백산맥(小白山脈) : 태백산맥의 태백산에서 갈라져 북쪽으로부터 소백산(1,440m), 연화봉(1,394m), 두솔봉(1,314m), 속리산(1,058m), 황학산(1,111m), 민주지산(1,242m) 등의 산지를 이루면서 남서로 뻗다가 지리산을 거쳐 여수반도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금강 남한강 수계와 낙동강 수계를 나누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충청도문화권과 경상도의 영남문화권을 나누는 장벽 역할을 하였다. 충청도와 영남지방은 죽령(689m), 이화령(548m), 추풍령(200m) 등의 고개를 통해 이어진다. 원래 소백산맥은 한반도의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일부로 이해되었으나 독립된 산줄기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초이다. 특히 일본인지질학자인 고토분지로(小藤門次郞)의 연구논문이 큰 영향을 미쳤다. 고토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맥은 생성연대 기준으로 제1·2·3기 산맥으로 분류되는데 소백산맥은 제2기산맥에 해당한다. 이후 여러 차례 내용상 수정이 있은 뒤‘소백산맥’지명은 지금의 지리적 범위에 해당하는 산지를 지칭하는 지명이 되었다. 최근에는 백두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백두대간’지명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소백산맥이라는 산줄기 이름의 타당성에 대해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출처 : 국토지리정보원/국토정보플랫폼(map.ngii.go.kr)/지명유래집] ‘소백’지명은『삼국사기』에“개성 기미년(신라 신무왕 원년, 839) 윤 정월에 대장군이 되어 (중략) 다시 벼슬하지 않고 소백산 중으로 들어가 갈의 소식으로 중들과 함께 놀다가”라는 기록에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순흥順興)에는“진산은 소백산이다. 부 북쪽에 있다.”라고 하여 순흥(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의 진산임을 기록하고 있다. 일설에 산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듯 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큰 산을 의미하는 백산(白山) 계열의 한 종류로 해석하기도 한다. 대체로 1,000~1,500m 급의 높은 산지들로 연속되어 있는데, 태백산 부근에서 속리산에 이르기까지는 1,000m 이상의 고봉이, 속리산에서 추풍령까지는 1,000m 이하의 낮은 산지가, 그 이남에서는 다시 높고 웅장한 산지가 나타난다. 예로부터 영남과 중부·호남 간의 교통의 장애가 되기도 하였는데, 영주~단양간 죽령(竹嶺), 문경~충주간 조령(鳥嶺), 괴산~문경간 이화령(梨花嶺), 김천~영동간 추풍령(秋風嶺), 함양~남원간 팔량치(八良峙), 거창~진안간 육십령(六十嶺) 등의 크고 작은 고개들이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국토정보플랫폼(map.ngii.go.kr)/지명유래집] < 아래 사진은 빗속의 산행 사진. > 주위가 보이지 않는 야간산행으로 제2연화봉까지의 5㎞되는 길에 특별하게 지정할 지점이 많지는 않다. 약 30~40분쯤 걸어가면 우측에 공터가 있으며 정자(亭子) 보인다. 죽령에서 약 2㎞정도 되는 지점이고 해발 936m 정도로 파악하면 된다. < 아래 사진은 정자있는지점의 이정표 사진. > 여기서 약 1.2㎞ 걸어가면 우측뒷면으로 간이화장실이 있다. 높이는 1.144m 정도의 고도이다. 여기서 제2연화봉까지는 약 1.5㎞ 남았다. 《 제2연화봉(해발 1,357m) 소백산 천문대/연화봉(1,383m) 》 제2연화봉에 도착하여 이정표를 찍는다. 그리고 좌측방향으로 직진해야 하는데, 이정표를 찍고도 그만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주위 시야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무조건 오르막으로 올라가다보니 연화봉 대피소, 군부대 시설있는 곳까지 올라가게 되고 알바했음을 알게 된다. 꿈속의산님 도움으로 겨우 알바한 곳을 탈출하게 된다. 덕분에 소백산 강우레이더 표지석도 찍게 된다. ㅋ < 아래 사진 : 제2연화봉 이정표, 여기서 평지 및 내려가는 길인데, 오르막길로 올라가는 실수를 했다. > < 아래 사진 : 운무에 가려서 올라갔다 내려갔다의 알바 > < 아래 사진 : 소백산강우레이다 관측소 표지석 > < 아래 사진 : 2015년 5월경 제2연화봉 인증사진 > 제2연화봉(第2蓮花峰, 1,357m) : 영주시의 풍기읍 수철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 순흥읍지』에서 희방용추를 설명하는 내용에 연화봉(蓮花峰)이 나온다. 또 『조선지형도』에는 현재의 제1연화봉에 해당하는 곳에만 연화봉이 적혀 있고, 일본어로 한글발음이 병기되어 있다. 이런 식의 이름은 전국의 곳곳에 산재한다. 이들 지명은 거의 모두가 연꽃처럼 생긴 산의 생김새에서 유래하고 있다. 제2연화봉에서 비로봉에 이르는 일대는 아고산(亞高山)지대로서 키 작은 나무와 초지로 이루어져있으며 또한 흙산이기 때문에 산세가 완만하고 산의 모양은 둥그스름하다. 그 모습은 못위에 솟아있는 연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의 모습과 흡사하다. 지명은 풍수지리의 형국론이나 불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국토정보플랫폼(map.ngii.go.kr)/지명유래집] 제2연화봉에서 소백산 천문대까지는 약 2㎞의 거리이다. 제2연화봉에서 평탄한 내리막길이다. 비는 내리지만 바닥은 얼음판이다. 아이젠을 하고 진행한다. 방수안되는 등산바지라 이미 팬티까지 약간 젖어있음을 느낀다. 바람도 불지만, 기온은 아주 낮지는 않아 완주하기 보다는 도중 포기할 생각으로 그냥 진행하기로 판단하였다. 단양의 천동리마을 방향이나 부석사 방향길은 과거에 지나가 보았기에 탈출로로 삼으면 될 것이다. 우측의 소백산 천문대 표지석을 지나 약 300m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비로봉 방향은 좌측이지만 연화봉 정상석이 있는 방향은 직진을 해야 한다. 연화봉 정상석에서 이정표까지 다시 되돌아 나올 필요는 없고 연화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에서 바로 합류하는 길이 있다. < 아래 사진은 소백산 천문대 표지석 : 2015년 5월 위치 및 인증사진 > < 아래 사진은 연화봉 정상근처 갈림길, 2015년도 사진 > 이정표는 좌측으로 진행해야 비로봉이 나온다고 표시되어 있지만 직진하여야 연화봉 정상석을 볼 수 있다. < 아래 사진 :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연화봉을 교내산(橋內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 < 아래 사진 : 연화봉 정상부,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연화봉 정상석이 있다. 2015년 사진 > < 아래 사진 : 연화봉 정상석 (출처 : 2020년2월 낙동산악회 꿈속의 산님 사진) > 《 제1연화봉(해발 1,394m) 》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까지는 약 1.8㎞의 거리이다. 평탄한 길이지만, 이날의 산행은 기대했던 눈은 안오고 바람과 비로 추위를 느끼게 만든다. 바닥의 산행로는 눈길이었으면 걷기가 편할 텐데, 얼지 않은 진흙길과 일부 얼어있는 얼음길로 되어 있다. 장갑도 젖어서 손도 시렵다. 장갑을 벗고 사진을 찍고 다시 장갑을 끼면 그 손 시린 정도를 과거에 경험한 적이 있기에 장갑을 벗고 사진 찍는 것도 포기한다. 사실 장갑을 끼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도구까지 준비를 했지만, 카메라 사용에 시간이 걸리기에 사진찍는 것을 과감히 포기했다. 공터를 지나 제1연화봉 정상전에 나무계단이 있다. 긴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제1연화봉이다. 지난 2015년 5월에는 아침노을의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바람과 비, 운무, 추위, 어둠 등으로 제2연화봉, 연화봉 정상 사진 다 포기한다. 제1연화봉은 작은 언덕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 이정표사진은 만들고 간다. < 아래 사진 : 제2연화봉 나무계단 전 공터 , 2015년도 > < 아래 사진 : 2015년 5월 제1연화봉 올라가면서 본 아침 노을 > < 아래 사진 : 지나온 길, 2015년5월 새벽 촬영 > < 아래 사진 : 남쪽 비로사 방향 > < 아래 사진 : 2015년 5월 아침 노을 > < 아래 사진 : 2015년 해돋이 > < 아래 사진 : 제1연화봉 위치 및 이정표 > < 아래 사진 : 제1연화봉을 지나면서, 2015년 5월 사진 > 《 비로봉(해발 1,440m) 》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3개의 봉우리를 지난다, 약 600m 진행하면 1,382봉, 또 900m 진행하면 1,395봉, 300m 더 진행하면 1,420봉, 그리고 200m 진행하여 총 2㎞ 지점에서 단양 천동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천동리삼거리가 나타난다.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가는 길에 몇 분의 동료들은 이미 산행포기를 했다. 연화봉에서 천동삼거리까지 가는 동안 남아있는 회원들을 모아 의견수렴한 결과 비로봉에서 중도탈출하기로 한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 진행하면 개인적으로 탈출고려하고 있었는데, 감사할 따름이다. < 아래 사진 : 단양 천동리로 가는 삼거리 이정표, 비로봉까지는 600m이다. 2015년5월사진. > 천동삼거리에서 비로봉까지 600m정도의 거리이다. 2월의 겨울이라 아직 해는 뜨지 않아 주위는 캄캄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랜턴의 불빛만 의지하고 진행한다. 삼거리를 지나 드디어 소백산 칼바람을 느껴지기 시작한다. 땅은 얼지 않고 젖어서 진흙길이다. 팬티는 얼지는 않았지만 약간 젖어 있다. 걷고 있으니 다행히 다리에는 한기를 느끼지는 않는다. 바람막이 2벌, 비옷으로 차단했어도 상체에서 약간의 바람이 느껴진다. 땅과 달리 바람부는 상체부위는 영하의 온도라서 가방, 벨트, 장갑 모두 얼어있다. 특히 장갑은 젖은 상태에서 손가락 끝 부위가 얼어서 나무처럼 딱딱하다. 차갑기는 하지만 장갑이 얼어서 오히려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손가락만 안 움직이면 덜 시리다. 머리쪽으로 부는 바람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과거의 칼바람은 차가운 냉공기가 얼굴을 스칠 때 면도날로 베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칼바람은 과거처럼 차갑지도 않지만, 비과 섞여서 일부는 비가 얼어서 잔얼음이 되어 얼굴을 때린다. 세찬 바람으로 KTX에서 밖을 바라볼 때의 빗물처럼 얼음과 섞인 비는 옆으로 날린다. 찬 모래로 얼굴을 세차게 맞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람이 정면으로 오지 않고 왼쪽에서 옆으로 때리기에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산행할 수 있다 얼어있는 비와 강풍으로 캄캄한 비로봉 정상에 인증샷은 커녕 비로봉 정상석 사진조차 정방향이든 역방향이든 촬영 모두 포기하고 비로사 삼가주차장방향으로 내려간다. 산행은 하되 지난 산행 사진자료로 지금의 산행기를 기록하는 것이 묘하기만 하다. < 아래 사진 : 산행한 당일 오후의 소백산 사진, 출처 : 타산악회 2020년2월 16일 > ------- 소백산(小白山) : 소백산은 동경 128°21′∼128°43′, 북위 36°50′∼37°04′에 걸쳐 위치해 있는 소백산의 면적은 약 323㎢이며, 주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1,439.7m이다. 원래 소백산맥 중에는 ‘희다’·‘높다’·‘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밝(ㅏ : 아래아)‘’에서 유래된 백산(白山)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소백산이다. 즉 큰 산을 의미하는 백산(白山) 계열에 속하는 산으로 동북쪽에 자리한 태백산보다는 작다는 의미에서 소백산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는 산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소백산국립공원은 한반도의 등뼈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의 줄기가 태백산 근처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부에서 영주 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가장 고도가 높은 비로봉(1,439.7m)을 비롯하여 국망봉(1,421m), 제1연화봉(1,394m), 제2연화봉(1,357m), 도솔봉(1,314m), 신선봉(1,389m), 형제봉(1,177m), 묘적봉(1,148m) 등의 많은 봉우리가 소백산맥의 줄기를 이루면서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로 수려한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 아래 사진 : 비로봉 정상부위. 2015년5월사진, 왠만하면 정상사진찍는데 이날은 도저히 촬영못했다.> 소백산 비로봉(毘盧峰, 1,440m)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풍기읍 삼가리,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소백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비로(毘盧)는 비로자나(毘盧遮那)의 준말이다. 몸의 빛·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다. 산봉우리를 영험하게 여겨 불계에서 명명한 지명으로 추측된다. 금강산의 최고봉, 오대산의 최고봉, 치악산의 최고봉도 비로봉이다. 같은 맥락의 지명으로 여겨진다. 『여지도』(풍기)와『영남지도』(풍기)에는 비로봉(毗盧峯), 『광여도』(풍기)에는 비로봉( 비로봉 남동사면의 비로폭포(毘盧瀑布) 와 달밭골의 비로사(毘盧寺)는 관련명칭이다.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국토정보플랫폼(map.ngii.go.kr)/지리지 및 지명유래집에 에 근거하였다(2020년 2월)] < 아래 사진 : 비로봉에서 국망봉 방향 2015년5월 > 비로봉(毘盧峰)이란 이름은 최고봉을 뜻하는 것인가? : 국내 비로봉의 이름이 있는 대표적인 곳 5개를 선정해보면 ① 속리산 비로봉, ② 소백산 비로봉, ③ 오대산 비로봉, ④ 광교산 비로봉, ⑤ 치악산 비로봉이 있다. ① 속리산의 경우 최고봉은 속리산줄기의 남쪽에 천왕봉(天王峰)이며 해발 1,058,4m이고 비로봉은 해발 1031.8m로 천왕봉보다 낮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도 속리산(俗離山)과 천왕봉(天王峯) 文壮坮(문장대,文藏臺) 언급은 있어도 ‘비로봉’ 단어는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비로봉은 최고봉으로 아니었다는 뜻이다. ② 소백산의 경우 비로봉 1,440m, 국망봉은 1,421m로 비로봉이 보다 높다. 하지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는 소백산의 위치를 국망봉으로 하고 있다. 아마 당시에는 국망봉이 비로봉보다 높은 봉우리로 판단한 듯 싶다. (아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참조. 국망봉에 흰 동그라미 표식이 있다.) ③ 경기도 수원의 광교산은 최고봉은 582m이며, 광교산에서 남쪽방향 토끼재 넘어 1㎞ 떨어져 있는 광교산 비로봉은 488m의 높이이다. 최고봉이 아니다. 대동여지도에서는 光敎山(광교산)의 용어가 광교산 정상부에 적혀있다. ④ 오대산 비로봉의 경우 비로봉은 1,563.3m, 상왕봉(象王峰)은 1493m으로, 최고봉은 비로봉이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서쪽이 장령(長嶺), 북쪽이 상왕(象王), 남쪽이 기린, 동쪽이 만월, 복판이 지로·풍노인데, 다섯 봉우리가 고리처럼 벌려 섰고, 크기와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현재 상왕봉이 속한 오대산에 대한 기록으로, 당시까지는 상왕봉이 상왕산이 불렸으나 언제 상왕봉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전해지는 바가 없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과거에는 오대산의 최고봉은 상왕봉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 보인다. ⑤ 원주의 치악산(雉岳山)은 최고봉이 비로봉이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는 치악산(雉岳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즉 비로(毘盧)라는 뜻이 몸의 빛·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처럼, 비로봉(毘盧峰)은 최고봉을 뜻한다기 보다는 아주 높으면서도 멀리 세상법계를 비출 수 있는 봉우리이기에 붙인 듯하다. 그러하기에 비로봉은 최고봉이 아니더라도, 최고봉이 근처에 있더라도, 비로봉 봉우리에서는 널리 마을이 있는 땅을 볼 수 있는 경치좋은 봉우리라고 해서 명명한 특징이 있는 듯 하다. 그냥 개인 생각일 뿐이다. << 달밭골, 비로사, 삼가주차장 >> 소백산 비로봉에서 삼가주차장까지는 약 5.5㎞의 긴 하산길이다. 하산길은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좋다. 약 2㎞정도 하산하면 해발 1,000m 쉼터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약 1.2㎞ 더 진행하면 달밭골이 나온다. 다 내려온 줄로 착각하기 쉽다. 달밭골에서 500m 더 내려가면 비로사(毘盧寺)가 있다. 비로사에서 하산지점 근처인 삼가야영장까지는 1.6㎞ 거리, 삼가야영장에서 삼가주차장까지는 약 400m의 거리가 아직 남아 있다. < 아래 사진 : 해발 1,000m의 쉼터 이정표 > < 아래 사진 : 하산길 끝날 무렵쯤 > 달밭골(월전곡月田谷) :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 있는 골짜기이다. 한자로 표기해서 월전곡(月田谷)이라고도 한다. 달밭이 있는 골짜기 마을을 말한다. 소백산비로봉에서 원적봉으로 이어지는 남동방향의 능선이 있는데, 그 중간쯤의 달밭재 동쪽의 완사면에 위치해있다. 이 달밭골은 산중에 밭을 일구어 사는 마을인데, 완만한 경사지에 달뙈기만한 밭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지명은 이 밭의 모습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달밭’이라는‘다락밭’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뒤에 와전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관련 지명으로 달밭재, 달밭고개 등이 있다.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국토정보플랫폼(map.ngii.go.kr)/지명유래집] < 아래 사진 : 달밭골 > < 아래 사진 : 비로사 입구 이정표 미치 비로사 정문 > 비로사(毘盧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 진정(眞定)이 창건한 화엄종(華嚴宗) 절로서 신라 말에는 소백산사(小白山寺)라고도 불리었다. 가난으로 인하여 장가도 들지 못한 채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진정은 의상(義湘)이 태백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소문을 듣고 출가하여 의상의 문하에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3년 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7일 동안 선정(禪定)에 들었다가 그 소식을 의상에게 전하였다. 진정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의상은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문도를 거느리고 소백산 추동(錐洞)으로 가서 초가를 짓고 제자 3,000명을 모아 90일 동안 『화엄경』을 강의하였다. 강의가 끝나자 그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는 벌써 하늘에 환생(還生)했다.”고 하였다 한다. 학계에서는 이때의 소백산 추동(錐洞)이 비로사(毘盧寺)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로사사적기」에는 의상이 683년(신문왕 3)에 이 절을 개창하고 비로사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인 진공대사보법탑비(眞空大師普法塔碑)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인 영주삼가동석조당간지주, 그리고 보물 제996호인 영주비로사석아미타불 및 석비로자나불좌상 등 신라 말 고려 초의 중요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고 한자가 다르게 적혀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연화봉 사진은 꿈속의 산님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
그날의 순간들을 꼼꼼하게 정리해주셨네요.수고하셨습니다^^
태백산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