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즐거운 나의집』을 읽고 나서
1. 작가에 대해서
작가 공지영은 1990년대 두각을 나타낸 여성 작가로서 1980년대 젊은이들의 문제의식과 가부장제의 잔제를 털어버리지 못한 우리사회 여성현실을 끌어안고 특유의 진지함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한글을 깨우친 후 처음 읽는 건 화장실 벽에 써 있던 소월 시였으며, 어릴때의 꿈은 고아원 원장이었다. 시와 소설을 혼자 써서 문집을 만들며 사춘기를 보냈을 만큼 문학적으로 조숙했다.
대학시설에는 학생운동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정적이던『동정파』였고, 졸업 후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일했다.
1987년 11월 구로공단 인근의 전자부품제조회사에 취업했으나, 1일2교대의 고된 생활끝에 한 달 만에 프락치에게 걸려 강제 퇴사됐으며, 12월 대통령 선거때는 구로을구 개표소의 부정개표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구류 1주일을 살았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중편『동 트는 새벽』이『창작과 비평』1988년 가을호에 실리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80년대에 대한 태도는 세월이 흐르면서 일정한 변화를 겪었다. 초기 작품에서는 당시의『혁명적 열정』을 그대로 받아 안고서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태도였다면, 그후로는 차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는 여전히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애정이라든지, 중산층의 허위의식에 대한 폭로라든지,『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면에 대해서 끝없이 발전되고 있다.
2.『즐거운 나의집』에 대해서
2.1. 집필 동기
작가는『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생각하게 된 동기는 실은 우연히 찾아왔다. 누군가 내게 새로운 의미의 가족에 대해 나와 내 아이들의 이야기를 수필로 써달라고 요청하신 것이 시작이었다. 싱글맘(single mom)으로 성(姓)씨가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에 대한 주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내게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왜요?“라고 물으니 그분은 대답하였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가족의 의미도 필요한 것이니까요.“』
『나와 내 아이들 이야기를 실제 그대로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언제가는 이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좀 더 자유로운 형태로 써보고 싶었다. 주인공을 열아홉 살 된 딸아이의 시점으로 하고자 물었을 때 딸아이 역시 큰 격려로 나를 북돋워주었다.』
2.2. 작품에 대하여(줄거리)
이 작품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 아들, 그리고 아빠가 만나고 헤어지기도 하며 모든 가족이 겪는 행복과 불행, 웃음과 눈물, 생과 사가 담겨 있다. 읽는 내내 “우리 집도 이런데 하는…” 하고 중얼거리며 미소 짓게 한다. 불완전해 보이는 가족 때문에 마음의 지독한 몸살을 앓으며 사춘기를 넘어야 했던 위녕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열여덟 살 주인공 위녕이 고3이 되기 전 십대의 마지막을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함께 보내겠다며 여름방학을 이용해 아버지와 새엄마의 집을 떠나 B시로 거처를 옮기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새로 자리 잡은 엄마의 집에서 여섯 번의 계절이 변하는 동안 위녕은 외가식구들과 형제들이 함께 사는 새로운 가족을 발견하기도 하고, 고양이 코코와 동생 둥빈의 아빠 죽음을 맞기도 한다. 또한 엄마의 새 남자친구를 만나고 또래 친구인 쪼유를 통해 평범한 가족에 대한 환상을 깨기도 한다. 무엇보다 위녕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며 엄마의 부재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정체성과 함께 가족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2.3. 작품에 대하여(본문을 중심으로)
다음은 작품의 단락을 살펴보면서 작가가 의도하려고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일까하는 의문점 등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① 고난이 올 때 정말 필요한 것은 용기이기도 하고 인내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가장 중요한 건 유머
② “너한테 아직 말하지 못한 게 있어, 미안해, 엄마… 이혼했어.” 담담한 말투였는데 엄마는 말끝에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가슴에 꼭 안았다. “…근데 왜 나한테 미안해?” 엄마는 눈물을 흘릴 때면 늘 그렇듯이 휴지를 찾아서 코를 풍풍 풀다 말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③ “아니 왜 남의 먹을 걸 가지고 지네들이 시비야 시비긴…. 누가 지네들 주기나 한대?” 하면서 투덜댔던 것이다. 사박오일의 짧은 일정으로 온 사람치고 엄마의 가방은 엄청나게 컸다. 뚱뚱한 가방을 택시에 싣느라고 땀이 뻘뻘 나서 엄마와 나는 어색할 겨를도 없었다. “너 만나면 눈물이 나와서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통관 직원들하고 실랑이 하다가 눈물도 쏙 들어가 버렸어.” 엄마는 투덜거렸다. 그날 밤, 아빠가 특별히 허락해주어서 엄마와 함께 묵게 된 모텔에서 엄마의 이민 가방은 열렸다. 그 안에는 쥐포와 말린 문어, 오징어와 김, 그리고 한과와 라면들이 쏟아져 나왔다. 통관 직원들이 보따리장수로 오해할 만했다. 엄마가 갈아입은 잠옷에서는 쥐포의 고릿한 냄새가 났다.
작품 전편에서 만나게 되는 이러한 웃음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삶이 준 온갖 상처를 이겨낸 자에게 허락되는 건강한 낙관주의이다. 이러한 낙관주의는 웃음에 머물지 않는다. 짐짓 알려지기를 꺼릴 만한 자신의 가족사를 전면에 드러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러하다. 작가는 일견 푼수 같아 보이나 충분히 성숙해 삶의 지혜를 얻은 엄마를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진보적 모습과 엄마로서의 속물적 모습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모습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④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영영 행복은 없어
⑤ 마귀의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만 있고 하느님의 달력에는 오늘만 있다.
⑥ 쉽게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건 미움보다 더 나빠, 진실이 스스로를 드러낼 시간을 자꾸만 뒤로 미루어서 우리에게 진정한 용서를 빼앗아갈 수 있으니까
⑦ 행복이란 건 말이다. 누가 물어서 네, 아니오 로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다. 그건 죽을 때만이 진정으로 대답할 수 있는 거야. 살아온 모든 나날을 한 손에 쥐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이러한 잠언들은 어두운 막장에서 금강석을 캐는 것처럼 우리의 어두운 현실의 삶에서 빛을 발견하게 하며, 독자들에게도 그 건강한 낙관주의를 빠르게 전염시키기에 충분하다.
⑧ “내 배 아파 낳았는데, 열 달 동안 맥주 한 잔 못 먹고 담배 피우고 싶은 거 꾹 참고 낳았는데, 게다가 너희 낳고 나서 이십 킬로도 넘게 불은 살덩이를 빼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성도 엄마 게 아니고 얼굴도 엄마 게 없으니….” 엄마는 우리 셋을 않혀 놓고 그렇게 말하며 하하하 웃곤 했었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얼른 이런 말들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너희를 다시 얻기 위해서라면 다시 그 시절로도 돌아갈 수 있어. 솔직히 누가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정말 돌아가기 싫지만 그래도 갈 거야,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 한 건 너희를 낳은 거니까.”
⑨ “모르겠어. 빚을 내서라도 그게 너를 위한 거라면…. 엄마 무서웠어. 내가 나 옳은 거만 생각하고, 사회정의가 어쩌구, 지식인이 어쩌구, 나만 고지식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가 우리 애들만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너무 무능하고 나쁜 엄만가 싶어서.”
⑩ 엄마는 가끔 미국 뉴욕에서 일어났던 9․11 테러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납치당한 비행기 안에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사람들이 전화를 걸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모두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고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리고 죽었다. 죽음 앞에서, 좀 더 열심히 일해서 승진을 할 걸, 이라거나 재테크를 좀 더 잘해서 재산을 더 불려둘걸, 이라거나 아니면 공부를 더 잘해서 재산을 불려둘걸, 이라거나 아니면 공부를 더 잘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갈 걸, 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⑪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절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⑫ “위녕, 잠이 오지 않는구나. 네가 스물이라는 생각, 네가 집을 떠나겠다는 말들이 뒤얽혀 엄마의 머릿속으로 많은 시간들이 윙윙거렸다. 스물…. 참 좋은 숫자야. 기온으로 봐도 최적의 온도이고 사람의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푸르른 숫자…. 이 밤 엄마는 엄마의 스물을 네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⑬ “사랑하는 딸, 너희 길을 가거라, 엄마는 여기 남아 있을게. 너의 스물은 엄마의 스물과 다르고 달라야 하겠지. 엄마의 기도를 믿고 앞으로 가거라. 고통이 너의 스승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앞에 있는 많은 시간의 결들을 촘촘히 살아내라. 그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너에게 금빛 열쇠를 줄게. 그것으로 세상을 열어라. 오직 너만의 세상을.”
가족을 중요시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단락들은 작품 전체에 배어있다. 작가가 의도하려 했던 것은 현대사회에서 존재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가정들의 애환과 이를 극복하려하고 있는 가족구성원들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상처와 싸우기도 벅찬 이혼 가정의 가족들이 사회적 편견과의 힘든 싸움을 동시에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 치열한 싸움을 외면하지 않고 대면하지만, 오래 상처 받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해법인‘이해’와 ‘사랑’으로 작품속 인물들이 치유 받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3. 읽고 나서
얼마 전이었다 교통방송에서 공지영 작가의 전화 인터뷰를 들은 적이 기억나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 간략하게 묻고 답한 내용은 이랬다.
사회 : 이 작품을 쓰면서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길려고 했는가?
작가 : 쓸 때는 어떤 주제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많은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독후를 듣고 나서는 작가인 나도 잘 모르게 되었다.
사회 : 가족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무엇이라 하겠는가?
작가 : 가족구성원간의 연결되어 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작가도 이 작품 전체에 사랑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현대가족 구성원들의 애환과 사랑을 표현했다. 작가는 세 번의 이혼으로, 성(姓)이 다른 세 아이의 엄마로 세간에는 꽤 알려졌었고, 많은 비난을 받았을 걸로도, 많은 안티팬들로 부터의 무차별적인 공격도 받았으나 우뚝서는 당찬 모습이 아름답다.
끝으로 작가는 이 작품을 발표하게 되면서 세간의 어떤 비난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자기를 이해해달라고 눈물 어린 눈으로 호소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다. 작가에게는 아직도 보호하고 양육해야 할 세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갈 길이 아직 멀기에 용기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이 작품이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