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3 병인일
이웃의 민원으로 쫓겨난 닭이 피난살이 온 새 둥지에서 첫 알을 낳았다.
누가 먹었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청계, 백봉, 오골계 이 아이들은 고고한 자태로 횟대에 정좌하셨다가
새벽 1시, 3시, 4시에 우렁차게 울어대며 잠귀 밝은 인간의 선잠을 깨운다.
그 성량이 하도 기세 등등하여 이웃의 원성이 쏟아지는게 당연하다는 결론.
주변 민원에 시달리다못한 주인이 모가지를 세번이나 비틀고
톱까지 갖다대며 우지마라 겁박을 했다는데
그래선지 닭울음에서 성대결절로 인한 허스키 보이스가 난다는 전언도 있다.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했지만
모가지가 비틀려 사경까지 갔던 닭도 제 기갈을 되찾는 곳이 입천정인가보다.
역시 임신한채로 파양당해 피난온 검둥개 검순이는
평소엔 굼뜨다가도 눈도 못뜬 제 새끼 슬쩍 만져보려하면 번개처럼 달려들어
사람 아닌 자기 새끼를 덥썩 물고 개집 안 깊숙이 옮겨버린다.
그리고 그 자식의 엉덩이를 햝고 빨며 사람을 차단하고 새끼를 보호한다.
평소엔 세상 애처로운 표정과 이 집 저 집 더부살이로 떠돌며 남은
눈치 100단의 눈빛으로 존재감을 지우며 죽은듯 지내더니
새끼를 지키려는 엄마 마음은 개나 소나 인간이나 다르지 않나보다.
모성애는 종족 보존의 생리적 현상이지만
엄마를 가졌고 엄마가 되어본 사람에겐 더 확연히 다가오는 가슴 뜨거움이 있을 것이다.
짬밥, 눈칫밥 먹고산 검순이는 입천정에서 몸을 풀면서 해산 미역국을 시작으로
선생님의 비상식량 냉장고를 공유하게 됐다.
우유와 분유를 먹는 호사를 누리더니 오늘은 마당에 솥을 걸고 고은 닭백숙을 드신다.
어느날 난데없이 객 식구가 늘면서 갑자기 집돌이 집순이가 되버린 알아, 몰라, 라떼.
출산한 검순이 덕분에 닭을 포식했지만 새 식구 주변을 맴돌며 견제의 눈길을 풀지않는다.
선생님은 이 아이들이 주인집 자식의 텃세를 부려
새끼 강생이들을 해꼬지할까 벌써 걱정이 구만리다.
닭 기르며 닭 고아서 개를 자알 먹이고 입천정 사람들은 야외에 모여 갈치 파티를 열었다.
가스그릴에 불을 당겨 굵은 소금 뿌린 갈치를 굽고, 후라이팬에도 기름 둘러 엄마표 갈치도 구웠다.
거기에 굵직한 무, 호박 깔고 묵직한 갈치를 올려 조림도 바글바글 끓였다.
같은 갈치지만 세가지 방식으로 조리하면서 맛과 질감, 감동의 깊이가 제각각 달랐다.
'맛있다'는 얕은 표현이 늘 아쉬운 순간.
갈치가 찬이 아니라 메인 요리로서 손색없음을 만끽했다.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아는 맛이다.
'심야식당'이나 '음식남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등 음식 영화들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섹슈얼리티, 정서를 음식이란 친근한 소재에 실어
오감을 자극하는 가장 감각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선생님에게 배 이름을 받은 선주가 감사의 뜻으로 보낸 갈치.
제주 바다에서 건져져 초여름 밤, 입천정 식구들의 든든한 끼니가 되고
추억이 되고 벌써 그리움이 되었다.
또 먹고싶으다.
첫댓글 멀리서도 입천정의 하루를 함께 한듯한 이 느낌은 뭐죠? ㅋ
기억 하나!
갈래머리 아이적, 엄마가 밥상머리에서 세 자식들을 앉혀놓고 각자의 숟가락에 소복히 얹어주던 갈칫 살. 제비 새끼마냥 입 벌리고 있다가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밥 위에 놓이는 갈칫 살을 낼름낼름 받아먹던 그 때.
그 꼬숩한 것이 살이 박해서 늘 아쉬웠지요. 엄마는 살점 붙은 갈치 대신 꾸덕하게 말려 종이짝같은 갈치로 바짝 조림을 해드셨지요. 가시 밖에 없는 그 쬐그만 갈치조림이 더 맛있다하시니 그땐 정말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오십 넘어 처음으로 입안 가득 갈칫살을 먹는 호강을 누려보니 그 맛이 그리 애틋합니다.
부럽군요~~그 맛을 보는 그 자리 그 사람들이~~
어쩌겠어요?
부러워만 할뿐....제 몫이 아닌걸~~ ㅠㅠ
분위기에 밥 말아 먹는 걸 아는 이 나이에 심술을 부릴수도 없고 멀리서 배만 아파 할께요~~ ㅋㅋ
글이 참 맛좋게 귀에좋게 착착 감깁니다.
눈으로만 읽어도 살이 뽀득뽀득 찌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