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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찬란한 오월! 새 날이 밝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또 허락하시고 지난밤 단잠을 주셨습니다. 저는 4시경에 기상해서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말씀을 묵상하며 온 세상에 복음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무덤에 있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의 삶이 없어서 삶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숨이 붙어 있고 생명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죽음이 오는 순간까지 살아 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삶이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순차적으로 시간을 따라서 우리에게 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먼저 대부분의 예수님을 믿는 이는 안식하며 교회로 갈 것입니다. 천주교 말로 냉담을 하는 이는 그냥 오늘도 집에 있거나 다른 활동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약 1000만에 달하는 개신교의 성도와 500만에 달하는 천주교 성도는 대부분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그리고 즐겁게 여기고 교회나 성당으로 가서 하나님을 뵈옵고 예배를 드리고 아는 교우를 만나서 즐겁게 교제하고 점심도 나눌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의 교인들이 십계명의 안식일을 기억해서 거룩하게 지켜라는 사계명을 잘 지킵니다. 오늘 하루는 율법대로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교회에서 보내며 안식합니다.
목사와 신부 그리고 교회에서 일을 하는 대부분의 분들은 먼저 토요일부터 잘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다양하게 봉사를 하시는 분들도 주일날 일생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성전에서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봉하삽니다. 일생의 섬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귀한 물질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립니다. 십일조, 감사, 건축, 구제, 선교 등의 헌금을 잘 바칩니다. 오늘은 믿는 이는 이렇게 모두가 다 하나님을 잘 경배합니다. 믿지 않는 이도 쉬는 날이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되기에 오월의 정취를 야외에서 해외에서 마음껏 즐기면서 놀고 쉴 것입니다. 온 세상이 이렇게 양력에 따라서 대부분 토요일과 일요일에 쉽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신 것을 기념해서 이렇게 온 지구가 이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 생활을 날 때부터 하신 분들은 수십 년을 이렇게 빠짐없이 잘 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잘 지키고 성령께서도 틀림없이 주일은 이렇게 보내는 것을 기뻐하시니 성령의 인도도 잘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 기도로 수요 예배로 금요 철야로 그리고 각종 사경회와 부흥회로 쉬지 않고 교회에 참석하고 그리고 경조부나 봉사 부서에 있으면 교인의 경조사나 여러 가지 일에 또 쉬지 않고 참여하다 보면 어떻게 보면 그냥 교회에 사는 것과 같이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도 많을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교사로 또 봉사하면 주일에 학생을 가르치고 방학도 없이 휴가도 학생들의 수련회로 바꾸어가니 모든 정성을 다 교회에 쏟고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치면서 사니 일생을 말씀과 함께 교회와 함께 그리고 봉사로 보내는 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평일에 무언가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신분이나 직장에 따라서 삽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법니다. 학생은 대학원까지 공부를 최우선으로 열심히 합니다. 주부는 집에서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합니다. 노인은 또 소일거리를 찾아서 다양하게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활동이 불편하신 분은 그분대로 또 주어진 시간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삶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주일의 삶과 수요 예배, 금요 철야, 그리고 새벽 기도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교회에서 보내는 생활보다 더 많은 시간과 때론 정력을 기울이면서 살지도 모르는 삶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혹자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혹자는 믿음을 따라서 사라고 할 것입니다. 역시 맞습니다. 혹자는 사랑을 하면 된다고 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맞습니다. 그리고 혹자는 잘 믿는 이들을 따라서 본을 받고 사라고 할 것입니다. 역시 맞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생명을 가지고 사는 일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쳐 주면 그 말씀이 너무나 우리에게 반가운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당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갖고 살아가라 하는 가르침이 성경에 있으면 우리의 문제는 바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하루하루 살아가라는 성경 말씀을 신 구약 어디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있습니다. 모두가 아는 로마서에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다 라고 개신교 성도는 기억하고 천주교 성도는 믿음+행위를 설명한다고 한 바로 그 구절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복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밝혀졌습니다, 하나의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기록된 바와 똑같이: " 의인은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교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제가 보여준 것은 본문의 의미를 바로 알고자 함입니다. 영어를 넣은 것은 역시 의미를 잘 알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영어를 [ ] 표로 마지막에 한글로 설명을 한 것도 역시 이 구절을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어떻습니다. 4가지의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옵니까? 막연한 내용이 실상은 오늘 우리가 사는 것에 대한 답을 하는 내용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분명하게 오직 믿음이다가 아니고 오직 믿음+ 행위도 아닌 의롭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이 있다면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냥 믿음을 마음에 갖고 그다음에 어떻게 하라는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명이 유지되는 순간까지 잘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주일에는 수요일에는 금요철야에는 새벽 기도에는 주님과 함께 교회에서 성도와 같이 보내지만 다른 시간에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의롭게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라는 전제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16장으로 이루어진 로마서가 로마서의 1장 17절에서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살아가라는 내용을 어떻게 다루며 설명하는지 차근차근 보면 바로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길로 가고 쉽게 이해를 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잘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로마서는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한 글이지 오직 믿음이 옳으냐? 아니다 믿음+ 행위가 옳다고 서로 교리로 다투는 글이 아닙니다. 우리는 속히 믿음의 삶에 대한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 바로 우리의 삶에 적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이렇게 믿음의 삶에 대한 글인 것은 이 말씀의 저자가 바울 사도인데 바울 사도가 그냥 책상에 앉아서 성령께서 적어라 하고 명하는 데로 적은 내용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즉 기원후 57년 경에 이미 믿음으로 삶을 적어도 20년 이상은 산 다음에 그 경험을 기록한 것이기에 믿음의 삶에 대한 글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로마서는 믿음의 삶에 대한 글이다 믿음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온 세상의 로마서하면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이제까지 로마서 하면 오직 믿음이라 이해를 했는데 무슨 소리야 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 나온 본문을 다시 부각해서 확인을 하겠습니다. 오직 믿음인지 믿음의 삶인지 모두가 알게 보여줍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입니다. 오직 믿음인지 믿음을 갖고 삶을 사는 것인지 바로 분별이 가능합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의인은 /// 살 것이다 /// 믿음을 갖고,"
제가 교리와 다르게 우리의 실제의 상황을 설명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직 숨이 붙어있습니다. 즉 생명이 있어서 죽는 순간까지 살아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하루하루 살아가라는 성경 말씀이 어디엔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위의 구절이 우리가 오직 믿음이다라고만 아는 구절이 바로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교리의 덤불은 이렇게 성도의 마음에 굳게 두텁게 덮여있는 것입니다. 그 덤불을 제가 제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라는 말씀을 보면서 아! 이제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을 갖고 사는 것인가? 하고 로마서를 차근차근 살피면 바로바로 답이 나오는 것이고 이렇게 풀면 로마서가 저절로 쉽게 온 세상의 사람에게 쉽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다 하고 교리로 이해하고 다음 있는 내용도 또 그냥 성경의 내용이 무엇이지 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보고자 하면 우리의 삶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기록한 로마서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몇 분이라도 이렇게 우리의 삶에 대해서 직접 설명한 로마서로 이해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리의 틀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강하게 두텁게 덮여 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질식하고 결실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의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즉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이는 예수님을 먼저 믿어야 하고 그리고 생명이 여전히 있다면 그 생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이 세상에서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할 것 없이 천지를 만드신 우리의 생과 사와 화와 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이는 먼저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간에 지은 죄를 용서를 먼저 받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율법을 지닌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는 유대인이나 혹은 스스로 의롭다 하는 인간이나 모든 다른 종교인들이 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에 먼저 이 죄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인데 이 죄는 피를 흘려야 되고 죽어야만 그 죗값이 청산이 되는데 우리는 아담의 죄로 그리고 스스로 살면서 지은 죄로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실상은 죽은 상태이니 이제 이런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니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즉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절차에 따라서 교회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고 성령까지 선물로 주시니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성령까지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을 천주교는 관계를 올바르게 한다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고자 하는 이는 먼저 위와 같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보낼 때 성도는 모든 성도는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서에 성령을 받은 우리라는 구절이 이를 잘 설명합니다.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죄를 용서를 받으면 반드시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선물로 모든 성도가 사모해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신다는 선물을 놓칠 수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선물 중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필요한 선물입니다. 반드시 절차대로 하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제 이 믿음을 갖고 장롱에 두고 다른 일을 하지 말고 믿음을 갖고 믿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붙어있는 순간까지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간 이렇게 크게 설명을 하면 막연합니다. 믿음을 갖고 어떻게 살지 할 수가 있으니 그 다음에 로마서에서 차근차근 어떻게 사는지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설명이 4장 전체에 있으니 아브라함과 같이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4장을 보면 1-16절은 아브라함의 부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75세 때 부르시니 순종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고 하늘의 별과 같이 강의 모래와 같이 후손이 생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의롭다 인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때에 맞추어서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니 내가 의롭다 하는 것도 아니요 우리 목사가 당신은 믿으니 의롭소 하는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미친다고 하셨는데 모든 믿는 이가 의롭게 되는 것은 틀림없이 맞으나 우리가 아브라함을 보면 그 의롭다 인정을 하나님께서 때에 맞춰서 하시는 것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은 각자에 따라 다릅니다. 오늘 믿기 시작한 사람도 있고 믿다가 타락한 사람도 있고 믿다가 배신한 사람도 있는데 모두가 예수를 믿었다고 의롭다 하는 것이 이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배신한 유다를 의롭다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를 믿고 자신의 재산의 절반은 숨기고 절반은 사도의 발아래 가져갔다가 죽은 초대교회 부부를 의롭다 할 수가 있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거짓과 불의를 행하는 데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실 수가 있다고 믿습니까? 저는 절대로 아닙니다 입니다.성경에도 분명하게 그런 사람은 악인으로 죽는다고 기록을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문제는 교리로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겔 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저나 여러분이나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인정을 받아서 의인이 되었다 해도 이렇게 다시 짓는 죄로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회개의 기회가 있으니 회개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또 믿음 생활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도 너무나 반복이 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믿음을 갖고 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막 살면 틀림없이 죄를 짓게 되고 죄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가 없으면 그 죄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데 그 죄는 어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로 설명을 하나 성경은 분명하게 과거의 죄로 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어떤 작은 죄라도 하나님과 단절을 가져오고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정말로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해결이 되는 무서운 것입니다. 절대로 죄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죄에서 멀어지고 죄를 이기고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고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개신교 개역개정)
롬 3: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천주교 공동 번역)
21.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26.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영어의 NIV)
제가 이렇게 영어로 약 7년 동안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서 온 세상에 전하는데 120개국 50만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유튜브로 직접 영어로 전하면 수억 명이 보고 믿게 되리라 믿고 향후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로마서를 이렇게 이해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렇데 되면 수십억 수백억 명이 올바르게 로마서를 이해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믿듯이 저도 그렇게 믿음은 제가 전하는 진리가 정확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불을 받은 김 정관 목사입니다.
위의 구절은 처음부터 해석을 온 성도에게 부탁을 드린 구절입니다. 보시다시피 공동 번역으로 보아도 어렵습니다. 본문이 한글로 어려우니 영어로 또 봅니다. 헬라어로 보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도 어느 정도 정확합니다. 공동 번역도 정확합니다. 개역개정도 정확합니다. 그래서 셋을 참고하면 대부분 문제가 다 해결이 됩니다. 어설픈 검증도 없는 히브리어 헬라어를 한다는 사람의 말을 믿는 것보다 이렇게 검증이 된 성경으로 우리가 살피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22.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옵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24.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습니다.
25.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사람에게 속죄 제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피를 믿으면 속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 주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26.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지금 이때에 자기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표준 새 번역)
여러 가지 번역으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모두가 조금 이해가 쉽게 여러 번역을 다음과 같이 종합했습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 주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26.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지금 이때에 자기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제가 모두가 이해가 쉽게 풀어서 설명을 드립니다.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면 의는 올바른 것이며, 죄에 대한 합당한 벌이며, 그리고 공평함을 일반적으로 나타냅니다. 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의가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는 성경에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로부터 증거가 된 의입니다. 즉 율법서와 예언서에 이미 기록이 된 의라는 것입니다. 율법서의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에 따른 의와 선지서인 하박국서에 나타난 믿음에 따른 의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의인에 모든 믿는 사람에게 차별이 없이 적용이 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그 결과로 에덴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고통 없이 살 수가 있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게 만드시기 위해서 놀라운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을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자신의 의로우심을 드러나게 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바로 벌하지 않으시고 이미 간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렇게 하심은 현재로서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기 위함인데 그분의 의로우심과 함께 예수를 믿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은 성경 연구가의 공부가 아니라 그냥 그분들께서 연구한 성과를 다양한 번역 버전으로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으로 모든 성도가 가능한 성경 이해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설명하시고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확실하게 증거가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죄인을 위해서 내어 주는 사랑보도 큰 사랑은 우주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 율법과 다른 의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의로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의 아브라함과 하박국의 믿음으로 오는 의와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는 데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가 먼저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간과입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바로 처벌을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악을 보시고 참는 것이 하나님께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의를 바로 악에게 행하지 않으시고 길이 참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간과와 용서는 다릅니다.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가 있습니다. 그냥 죄를 짓는 것을 보고서 바로 벌하시려고 하나 참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죄인은 기회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벌을 받아서 처벌이 끝난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피 흘리심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죄에 대한 벌을 이미 받은 사람은 용서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용서의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죄로 벌을 받아 사형에 처해진 사람에게 무슨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이런 죄에 대해서 간과하십니다. 이미 죄에 대해서 간과하십니다. 바로 벌을 주지 않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죄인인 이렇게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을 때까지 기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죄를 완전히 이제는 용서하시고 더 나아가서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행위는 한 편으로는 우리에 대한 사랑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가 있고 그 다음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입니다. 하나님의 간과가 없다면 즉 우리의 죄에 대한 처벌이 먼저 이면 예수님께서 오셔도 우리는 아무런 혜택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서 3장 21-26절로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며 스스로도 정의이시고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정의롭게 만드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 인간의 구원과 동시에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실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놀라운 계획과 사람들을 정의롭게 하시고자 하는 열망을 동시에 봅니다 그리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간에게 사랑과 정의를 나타내셨으니 이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는 모든 인간은 조금도 자비가 없이 심판으로 정의롭게 그 죄가 여전히 간과 함으로 처벌은 되지 않고 있으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므로 해결이 되지 않았기에 처벌하시겠다는 선포도 동시에 우리는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 간과된 죄에 대한 용서가 위의 말씀입니다. 죄에 대해서 절대로 함부로 용서를 받았다 무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용서는 인간의 선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재량입니다. 우리가 살인을 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용서를 다시 구합니까? 살인을 당한 가족이 국가의 벌에 의해서 사형을 요구합니다. 검사도 그렇게 요구합니다. 이에 대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회개했다고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했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세상의 법에 의해서 사형에 처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회개는 이런 큰 죄에 대해서 스스로 죽을 죄를 진 것을 인정하고 국가의 법에 의해서 사형에 당하더라도 이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유족과 하나님께 죄에 대해서 용서를 비는 것이 회개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이런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 진실로 회개하면 이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분이 금당 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을 당한 박철웅입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옥에서 예수님을 믿고 수백 명에게 전도하고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 사형을 당하면서 천국에 감을 믿고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동생 박천웅에게 당부의 편지를 남겼으니 그 편지를 보면 우리는 그분의 회개와 그분의 편지가 성령의 감동임을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그분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은 죄가 그분보다 더 큰 죄가 있어서 국가에 발각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법으로 처벌이 되지 않는 죄도 있는데 낙태의 죄는 이런 박철웅의 죄보다 훨씬 더 악한 죄에 해당합니다. 자신의 자식을 잔인하게 살해하라고 낙태를 행하는 사람은 명령을 하고 의사가 이 명령에 따라서 여자의 뱃속에 있는 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생명을 죽이는 살인을 행하는 것입니다. 남이 아닌 자신의 자녀를 살해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이 이 사람을 벌하지 않으나 이 사람의 죄는 나타난 박철웅의 죄를 훨씬 더 능가하는 악한 죄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알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림과 죽음에는 나의 이런 악하고 반드시 피를 흘리고 내가 죽어야 하는 죄에 대한 용서를 하시려는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사랑과 우리 주 예수님의 또한 인간이 상상할 수가 없는 고난과 희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의롭게 되려는 모든 사람은 이런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을 따라서 이 땅에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고 예수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작 70년을 살면서 집과 차와 월급에 빠져서 가난한 믿음의 형제를 외면하고 모두 위에 군림하는 자가 어찌 천국을 소망할 수가 있습니까? 절대로 그들의 마음에 천국이 없고 오직 세상만 가득한 것입니다. 1000개의 대형교회 목사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난하게 살지 않는 자는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목사에 대해서만 한정하고자 하나 대부분의 부자는 다 사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면 주변에 어렵게 사는데 그냥 절대로 볼 수가 죽어도 없습니다. 왜 내게 생명을 주지 않는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법을 따라서 삽니까?
오늘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이에 대한 설명을 아브라함과 하박국을 통해서 설명을 드리면서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를 통시에 이해합니다. 이를 쉽게 도표로 보이면 아래와 같습니다.
저도 스스로 악인 중의 악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박철웅 보다 더 악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더 악한 죄인이 저라는 것을 아십니다. 어찌합니까? 회개밖에 답이 없습니다. 저를 벌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살려 주신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며 생명을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늘 생각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회개하고 오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외에 다른 길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바울 사도는 외칩니다. 답이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 정확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 답이 바로 로마서 7장 6절에 있습니다. 그 답대로 사는 것이 믿음으로 하루하루 사는 삶입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순서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루하루 사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데 그 믿음의 삶의 모습이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는 궁극적으로 율법을 완성하게 하고 율법을 굳게 세우는 쪽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길이 성도가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요, 복음을 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로 가면 됩니다. 그렇자면 반드시 모세 오경의 내용을 바울 사도와 같이 잘 배우고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성도에 대한 간절하신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 / 믿음은 곳 율법의 굳게 세움이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31. Do we, then, nullify the law by this faith? Not at all! Rather, we uphold the law.
복되고 건강한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갖고 주님을 따를 수가 있게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강한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의 경험과 지식과 육신의 정욕을 이기고 성령을 따라서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