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1차 강원도 원주 치악산 비로봉(2024. 5. 30)
오늘은 치악산 비로봉을 다녀왔습니다.
A조는 비로봉을 넘는 코스인데 5시간이나 걸린다고 하니 여자 대원들은 한 명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차는 A조를 입석대 조금 못 가는 지점에 내려주고 B조는 다시 차로 이동하여 관음사와 곧은재를 거치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치악산에 왔었다고 하지만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비로봉을 꼭 올라보고 싶어서 A팀에 붙었습니다. 황골탐방로 입구를 지나서 조금 가니 입석사가 나왔습니다. 입석사까지는 넓은 차도이고, 입석사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데, 역시 높은 산이라 가파르고 힘든 코스였습니다. 하지만 등산로가 잘 되어 있어서 천천히 가면 힘들지만 갈 수 있는 코스였습니다. 노창우 부회장님이 나를 걱정해서 빨리 가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신경이 쓰여 내 나름 열심히 걸었습니다.
깊은 골짜기라 녹음이 짙은데 물소리까지, 혼자 가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더군요. 지난 산행처럼 여자 대원들 뒤를 따라가는 묘미는 없었지만, 자연과 벗하며 간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니 입석대는 보지도 못하고 그냥 올라가 버렸습니다. 입석사에서 조금만 가면 되었다는데 좀 아쉬웠습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시야도 따라서 넓어집니다. 공부를 하거나 무슨 사업을 하거나 다 힘들지만 그런 역경을 이기고 올라가면 우리 산행처럼 시야가 넓어지고, 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도 보이게 되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정상에 올라보면 사방이 확 터인 시야가 펼쳐지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헉헉거리며 정상에 올라오니 먼저 온 대원들이 점심을 먹으면서 누군가, “정상에 올라와서 10분만 지나면 올라올 때 힘들었던 것은 다 잊어버린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옳은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힘들여 올라왔지만 정상에서 확 트인 장관을 보면 그동안의 고통이 일시에 사라지게 됩니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던가요? 요즘 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치매이지만 만약 망각이 없다면 어떨까요? 살아가면서 겪은 그 많은 고통을 다 기억한다면 행복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적당한 망각은 오히려 축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 키우면서 부모가 겪은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그 고통을 기억하는 부모는 별로 없습니다. 키우는 고통보다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요? 산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를 때의 고통을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은 정상을 올랐을 때 만끽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치악산 비로봉은 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아주 멋진 정상이었습니니다. 정상에 쌓아 놓은 두 개의 큰 돌탑은 마치 코뿔소의 코처럼 강하고 멋진 장관을 연출해 주었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잘 보이는 이 두 돌탑은 마치 마이산의 암수 두 봉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오늘 A조에 붙은 것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할 때, 정상을 밟지 않으면 뒤보고 닦지 않은 것처럼 개운치가 않은데 오늘처럼 정상을 밟고 나면 뭔가 이루었다는 뿌듯한 성취감이 생깁니다. 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때 지르는 탄성을 “유레카”라고 하는데, 정상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이 바로 이 유레카가 아닐까요?
내려오는 길은 4.6km나 되는 긴 길이지만, 완만하고 육산이라 힘들지 않았습니다. 내려와서 맛있는 족발에 막걸리를 마시고 오는 길에 안흥에 들려 안흥찐빵을 샀습니다. 거의 모든 대원이 다 산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차 안에서 아이스크림까지, 오늘 하루도 정말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오늘은 다행히 안흥찐빵으로 아내에게 점수 좀 땄스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회장님의 짧은 인사 말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회장님이 요즈음 시를 좋아하시는지, 시인이 되시려고 하는지, 인사 말씀에 자주 시를 끌어 오시더군요. 오늘도 시를 한 수 읊겠다고 해서 누구의 유명한 시를 읊으시려나 했더니 이런 시를 읊으시더군요.
“꽃밭에서
꽃을 보네.”
모두 웃었습니다. 회장님에게는 차 안에 앉아 있는 대원들이 모두 꽃으로 보이나 봅니다. 짧지만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멋진 “시”였습니다. 고은 시인의 짧은 시,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에 비견할 만한 시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멋진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주는 공휴일이라 다른 일이 많겠지만, 봉화의 청량산을 갑니다. 퇴계 선생의 얼이 스며있는 산이자 멋진 출렁다리가 있는 청량산 장인봉에서 모두 뵙기를 갈망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모든회원님들 자신의 체력에 맞게 코스를 선택 하시는것이 참 지혜인것 같습니다. 오늘도 웃음만 가득한 행복한 날 이었습니다.
물 흐르듯 어제의 산행을 편안햬게 써주셨네요.
때론 망서리던 도전에 오히여 대단한 희열을 느끼게 되어 참 보람 있을때가 있지요.
치를 떤다는 치악산..허지만
초록빛 속에서 흠뻑 빠져 행복했던 5열의 마지막 산행으로 비로봉 돌탑은 못 만났지만 B팀 역시 오늘처럼만...
만족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린 행복한 사람들이지요.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