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이 노래비만 떨렁
남았네!
불타버린 화개장터,
옛 모습 그대로
복원토록 해야...
구례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화개장터로
향했다.
오랜만에 왔으니
화개장터에 가서 재첩 국이나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섬진강을 따라
19번 도로를 달려가니 "당신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란 이정표가 나오고,
내비게이션 아가씨가
"경상남도에 진입했습니다"라는 멘트를 한다.
화개장터에 거의
다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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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와 경상도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남도대교를 오가다 보면
다리 한 가운데서 "경상남도에 진입했습니다",
"전라남도에
진입했습니다"란 멘트가 앵무새처럼
반복된다.
어쨌든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곳 화개장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화개장터에 도착하니 그 예스런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불에 탄 썰렁한 풍경만 다가온다.
장터 한 가운데 조영남이 노래만 떨렁
남아있다.
지난해
11월 27일 원인 모를 화재로 노래비 앞에 있는
초가지붕 점포가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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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불타버린
화개장터 한 가운데 가수 조영남의 노래비만 떨렁 남아있다.
불타버린 점포들은 모두 초가지붕에 목재를
사용하여 지었지만 조영남의 노래비는 튼튼한 대리석에 새겨 넣은 데다 묘하게도 화마가 노래비가 있는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얼마 전 화개파출소장 조영남이 가수
조영남에게 CCTV
한 대를 설치해 줄
것을 부탁하자 가수 조영남이 선 듯 응해 주었다고 한다.
파출소장 조영남은
가수 조영남이 기증한 CCTV를 그의 노래비 앞에 설치를 했다고
한다.
그
CCTV가 노래비를 굳건히 지켜 준
것일까?
▲지난해
11월 27일 화재로 한 줌의 재로 변한 화개장터의 참혹한 모습
가수 조영남은 화개장터 덕을 톡톡히 보기도
하고 또 억세게 운도 좋은 사람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화개장터를 당시 소설가였던 김한길(현 국회의원)이 써준 가사를 노래로 만들어 크게 히트하여
일약 스타가 되기도 하고,
화재로 그 많은
점포들은 불에 타 없어 졌으나 그의 노래비는 화마를 피해 멀쩡하게 서 있으니 말이다.
화개장터 80개의 점포 중에 41개의 점포가 화마로 사라져 갔는데도 정작 조
씨의 노래비는 한 줄 그을림도 없이 성성하게 장터 중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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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화재로 점포 41개을 불태워 썰렁해진 화개장터
가수 조영남은 말한다.
"화개장터는 내게
정말 특별한 곳인데 큰 사고를 당해 안타깝다.
하루빨리 원상복구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걸 다 하겠다.
조영남 하면
화개장터잖아요.
제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항상 그곳에 마음의
빚 같은 게 있는데 어서 갚아야죠."(출처:조선닷컴 2014.12.2.자)
그리고 그는 그의 말처럼 화개장터 피해상인
돕기 자선콘서트를 지난 1월 10일 서울 강남 KT&G
상상아트 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를 하여 그 수익금을 화개장터 복원성금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화개장터에
우뚝 서 있는 그의 빛나는 노래비를 보면 단 한 번의 콘서트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영남의 유일한 히트곡인
'화개장터'는 1987년 배우 윤여정과 이혼하고 서울 옥수동
10평짜리 사글셋방에서 별 볼일 없이 시간
죽이며 살던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노래가 아닌가?
그는 1988년에 '한강'이란 음반을 발표하면서
'화개장터'란 가사가 하도 유치해서 뺄까말까 망설이다가
곡이 조금 모자란다고 해서 넣었는데,
그가 기대를 했던
다른 노래는 큰 반응이 없고 '화개장터'만 대박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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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기 전
화개장터 모습
그 후 조영남은 이 화개장터 하나로 일약
세계적인 무대에 서게 된다.
1991년에는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LA폭동 후 인종 갈등을 달래는 노래로 관중들의
공감을 얻었고,
2004년에는 민족간
분쟁이 잦은 러시아 크렘린 궁에서 '화개 바자르'란 제목으로 러시아어로 이 노래를 불러 큰
반응을 얻었다.
1996년엔 고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국민회의총재)과 함께 화개장터 무대에 서서 손뼉을 치며
함께 노래를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쨌든 화개장터는 가수 조영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장소가 되었다.
심지어 하동군에서는
파출소장까지 조영남이란 이름을 가진 경찰을 배치할 정도가 되었다.
경남 남해 출신인
조영남이란 경찰은 그 이름 때문에 무려 세 번이나 화개파출소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가수 조영남이
'화개장터'란 노래를 부른 후 지금까지 화개장터에 세
번을 간 횟수와 우연히 일치한다.
가수 조영남은 1988년 노래를 발표한 후 1년쯤 지나 한 방송국과 처음으로 화개장터를
가 보았는데 그 당시에는 천막 몇 개가 고작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공연을
했고,
세 번째는
2000년 화개청년회가 그의 기념비적인 노래비인
'화개장터 노래비'를 세울 때라고 한다.
그동안 화개장터는
완전히 관광지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노래 하나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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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 주차장에
마련된 임시 화개장터
가수 조영남은 그의 노래
'화개장터'에서 그의 마지막 날을 종종 연상한다고
한다.
그는
MBC
TV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하여 자신의
묘비(노래비란 말을 실수해서 한
말이겠지만)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화개장터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는 그 노래가 인기를 얻은 다음에서야 그 곳에 직접 가봤습니다.
갔더니 이미
화개장터는 없어져버렸더라.
그런데 현재
화개장터는 관광지가 됐고 그곳에 내 묘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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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화개장터 한
가운데 묘비처럼 우뚝 서 있는 조영남 노래비
그의 우스갯말로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지만 농담이 진담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니 불에 타버린
화개장터 복원을 위하여 가장 앞장서야 할 사람은 바로 가수 조영남이다.
그러므로 조영남은
화개장터가 복원 될 때까지 몇 번의 콘서트를 더 열어도 부족함이 없다.
화개장터는 도시민들에게는 고향의
향수를,
시골사람들에게는
옛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다시 찾는 곳이다.
또한 조영남의 노래
하나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 동서 화합을 이루자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어 버린 곳이다.
어떻게든 화개장터는 다시 복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라진
화개장터의 옛 모습을 다시 살리기란 어렵다.
하동군과 주민들은
너무 서두르지 말고 화개장터를 최대한 옛 모습 그대로 되 살려 진정한 동서화합의 상징적인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