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처럼 비가 내리면
최용수
당신은 비가 되어 나를 적신다
밤마다 살며시 문고리 당기는
빗소리 손길
그 둥근 방울을 가슴에 머금으면
주르륵 쏟아지는 기억의 조각들
당신은 나를 걸어두는 하늘 대들보
배고플 때 허한 살강 긁어모아
이팝나무 꽃 같은 밥상 차리고
발을 절면 잔가시까지 뽑아주었지
오늘도, 당신은 비가 되어 내린다
목 타는 콩나물시루에 흥건히 내려
흠집투성이 나를 하얗게 빨아 널고
꿈에서 전하고 가는 말 한 마디
“내가 올 테니 너는 오지 말아라"
△최용수 시인: 울산광역시 출생, 2020년 《문학예술》 시 시인상 등단 시집 『참깨 밭에서』『바람에 기대어』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인협회 회원 국가보훈처 대구지방보훈청장 역임.
서금자 시인
비가 내리는 날은 예사롭던 일상이 또 다른 모습으로 생각을 더듬게 한다. 비는 하늘이 보내는 또 다른 언어다.
최 시인은 '그때처럼 비가 내리는 날' 지난날을 추억하며 기억을 더듬고 있다.
당신은 비가 되어 나를 적신다/밤마다 살며시 문고리 당기는 빗소리 손길/로 쓰고 있다.
이렇게 시인은 빗소리에 마음을 적시며 문고리 당기는 손길을 느끼고 있다.
이 시구에서 시인의 일상이 그리움으로 향하고 있음을 읽게 한다.
그리고는 허한 살강 긁어모아/ 이팝나무 꽃 같은 밥상 차리고/ 발을 절면 잔가시까지 뽑아줬던 기억의 조각들을 되짚어 보고 함께했던 사람을 고맙게 떠 올리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독자들 가슴을 애잔하게 끌어가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흠집투성이 나를 하얗게 빨아 널고 꿈에서 전하고 가는 말 한마디, 마지막 행 “내가 올 테니 너는 오지 말아라" 이 시구는 소리 없는 절규다, 한숨 숨긴 눈물이다. 너를 아끼는 어머니의 자비다. 아무렇게 뱉을 수 없는 가슴 아린 말씀이다. 이 짧은 시구에서 생을 살아낸 진정한 사랑을 읽게 한다.
최 시인은 아마 처음에는 “제가 올 테니 당신을 오지 마세요"로 썼다가 여러 번 퇴고를 그쳐 끝내는 이렇게 일인칭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글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 편하게 쓸 수 있는데 사별의 글은 자칫 청승맞다로 보일까 글 쓰기가 조심스럽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하여 아내로도 어머니로도 독자들의 입장에서 읽히도록 사유의 범위를 넓혔을 것이라고 시인의 마음을 유추해 본다.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는 조문의 위로 말이 진정한 약발을 받기까지는 십년의 세월, 한 강산이 흘러야 비로소 약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최 시인은 이렇게 시를 쓰고 있으니 그 강산을 조금은 쉬이 넘기리라 기대하며 그리움을 시로 승화하기를 기원해 본다.
함께 한 사람을 보냈다는 건 죄의식 같은 미안함이 깔려 있어서 오롯이 혼자 앓는 속앓이다. 혼자 치유하고 다스려야 할 혼자만의 과제인 것을. 서금자 시인
출처 : 울산신문(https://www.ulsanpres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