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공업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창원에 있는 중소기업으로 취업 실습을 가게 되었다.
시골 벽촌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도시 생활이라고
해봐야 고등학교 3년이 전부인데 혼자서 경상도 창원까지의 초행길은 몹시 두렵고 떨리기만 했다. 학교에서 알려준 것은 대전에서 마산까지 열차편을 이용하고, 마산에서 창원까지는 버스를 타라는 내용뿐이었다.
대전역에서 방황하던 중 마음씨 고와 보이는 아주머니 곁으로 가서 창원에 가는데, 표를 어떻게 사고, 어떻게 가는지 잘 모른다고 했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도 창원에 가는 길이라며 같이 가자고 하였다. 마산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내 사정을 들려 드렸다.
전북 고창 시골에서 자라 군산 외가댁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창원의 회사로 실습을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아주머니는 집은 대전에 있지만 남편이 창원에서 일을 하고 있어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창원에 왔다 갔다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창원에 도착하면 저녁인데, 잘 곳이 있는지 내게물었다. 먼저 실습할 회사에 갔다가 기숙사로 들어가야 하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하자 아주머니는 그럼 남편 숙소에서 같이 자고, 내일 아침 회사로 가면 되겠다고 했다.
해가 저문 저녁시간, 공사 현장의 가건물인 듯한 숙소에 도착했다.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는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기왕에 우리 집에 왔으니, 편하게 있다 가라"고
격려해주었다. 단칸방에 부부만 살고 있는 집에 생면 부지인 사람을 기꺼이 맞아들여 편하게 잠잘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아침에는 맛있는 식사까지 챙겨주고, 어디에서 버스를 타면 되는지 친절하게 길 안내도 해 주시더니 회사 가서 성실하게 일하고, 성공하라고 격려의 말도 잊지않았다.
서툴고 고생스러운 여정이 될수도 있었는데, 맘씨 좋은 분들을 만나서 따뜻한 배려와 정을 듬뿍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서 처음으로 받아본 그 사랑이 참으로 크게 가슴에 남아 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너무나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몰라 그저 감사 인사만 했을 뿐, 나중에
다시 찾아뵙지도 소식을 전하지도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안타깝다. 그 좋은 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계신지 보고 싶고 그립다.
나도 인생을 살면서 그분들처럼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도움을 주고 사람의 정을 나누며 살았는지 되돌아본다.
김영준 (2023.2 월간독자 Reader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