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의 피가 흐르는 이땅의 젊은이들은 모두 창칼을 들고 일어나야 될것이요.
서산대사가 팔도 승병들에게 띄운 격문이다.
아, 하늘의 길이 막히도다. 조국의 운명이 위태롭도다.
극악무도한 도적의 무리가 하늘의 이치를 거슬러 함선 수천 척으로 바다를 건너오니 그 독기가 조선 천지에 가득한지라. 삼경(三京)이 함락되고 우리 선조들이 누천년 이룬 바가 산산이 무너지도다.
저 바다의 악귀들이 우리 조국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는 광란을 벌이나니 이 어찌 사람의 할 짓이랴? 살기가 서린 저 악귀들은 독사 금수와 다를 바 없도다.
조선의 승병들이여!
깃발을 치켜들고 일어서시오! 그대들 어느 누가 이 땅에서 삶을 이어받지 아니 하였소? 그대들 어느 누가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지 아니하였소?
의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바, 또 무릇 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바가 곧 보살이 할 바요 나아갈 길이라. 일찍이 원광법사께서 임전무퇴라 이르시니, 무릇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구함은 불법을 따른 우리 조상들이 대대손손 받들어 온 전통이오.
조선의 승병들이여!
우리 백성이 살아남을지 아니할지, 우리 조국이 남아있을지 아니할지, 그 모두가 이 싸움에 달려 있소. 목숨을 걸고 우리 조국과 백성을 지키는 일은 단군의 피가 핏줄에 흐르는 한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할 바라.
이 땅의 나무와 풀마저 일어나 싸워야 할 터, 하물며 붉은 피를 지닌 이 땅의 백성이야 새삼 무슨 말을 하리오? 또한 세상을 구하는 것이 바로 불법이 아니리까?
백성들이 도적 무리의 창칼에 죽임을 당하고 그 피가 붉게 조국을 적시오. 조국이 사라지고 백성이 괴로워할진대, 그대들이 살아남은 바가 곧 조국과 백성에 대한 배신이 아니리까?
조선팔도의 승병들이여!
나이가 들고 쇠약한 승려는 사찰을 지키며 구국제민을 기원하게 하시오! 몸이 성한 그대들은 무기를 들어 도적의 무리를 물리치고 조국을 구하시오.
모든 보살의 가피력으로 무장하시오! 도적의 무리를 쓰러뜨릴 보검을 손아귀에 움켜쥐시오! 팔부신장(八部神將)의 번뜩이는 천둥번개를 후려치며 나아가시오!
참변에 울부짖는 백성들이 분하고 원통하오. 촌각도 머뭇거릴 수 없소. 지체 없이 일어나 불구대천의 원수를 토벌 격멸하시오!
조선의 승병들이여!
조정 대신들은 당쟁 속에 헤매고 군 지휘관들은 전선에서 도주하니 이 아니 슬프오?
또한 다른 나라 세력을 불러들여 살아날 길을 꾀한다 하니, 우리 민족의 치욕이 아니리까?
이제 우리 승병만이 조국을 구하고 백성을 살릴 수 있소. 그대들이 밤낮없이 수행 정진하는 바가 생사를 초월하자 함이오. 또한 그대들에겐 거둬야 할 식솔이 없으니 돌아볼 바 무엇이오?
모든 불보살이 그대들의 나아갈 길을 보살피고 거들지니, 분연히 일어서시오!
용맹의연하게 전장으로 나아가 도적의 무리를 궤멸하시오! 도적 무리의 창검포화가 두려울 바 무엇이오?
전투가 없이는 승리도 없소.
죽음이 없이는 삶도 없소.
조선팔도의 승병들이여!
일어서시오! 순안의 법흥사로 집결하시오! 나 휴정은 거기서 그대들을 기다릴 터이오. 우리 일치단결하여 결전의 싸움터로 용약 진군합시다!
이 격문을 읽고 들으며 비분강개의 통곡을 하지 않은 승병이 없었다 한다.
미합중국군의 <군법사 승가>는 이 격문의 작성 일자를 1592년 6월 15일로 환산하여 게재했다.
서산대사로 불린 휴정스님은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묘향산에서 학 한마리가 집안으로 날아와 품에 안겻다.어머니의 태몽이었다.
20세 되던 해에 지리산의 부용영관 스님을 찾아 출가하였다.그때의 심경을 읊은 시가 전한다.
꽃 피어야할 화개동에
오히려 꽃은 지고
푸른 학이 머물 둥우리에
학은 돌아오지 않네
홍류교아래 흐르는 물줄기야
너는 바다로 가느냐
나는 산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