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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4-33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 / 한서노회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해마다 추석이 돌아오면 많은 분들이 고향으로 부모 형제를 찾아 나섭니다. 이번에도 3000만명의 대이동이 있다고 합니다.
올해는 최악의 경기 침체로 인해서 예년과는 다르게 좀 쓸쓸한 추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그러나 추석은 우리에게 즐거운 명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 형제들을 한자리에서 다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즐거운 명절이면서도 마음에 늘 고민이 되고 근심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사 문제입니다. 이 제사 문제의 걸림돌만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명절이 될 수 있겠건만 그러나 이 제사 문제 때문에 즐거워야할 자리가 항상 꺼림찍하고 근심이 되고 서로 마찰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온 가족이 다 예수를 믿는 분들이야 전혀 이 문제로 고민할 것도 없겠지만 그러나 아직 부모나 형제가 예수를 믿지 않고 계신 대다수의 가정들은 이 제사가 가장 걱정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안 믿는 부모님들은 반드시 추석날에 돌아가신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요, 후손들도 이 제사에 참여하라고 강권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신 경우는 형제들 중에서 안 믿는 형제들과 이 제사 문제로 인해서 피치 못할 대립과 반목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좋은 전통들은 계속 전수를 하고 이어가야 하지만 그러나 나쁜 관습과 전통들은 과감히 벗어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때에도 전통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그들의 전통을 어긴다고 해서 그렇게 반대하고 십자가에까지 못박지 않았습니까?
그 유대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될 때에 이처럼 전통주의자들의 엄청난 반대를 받은 것처럼 이 나라에도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어있음을 우리는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세대의 관습과 정치 풍토를 쇄신해야 한다고 하며 우리는 늘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나쁜 것은 버리고 고칠 줄 알아야 합니다.
전통을 고수한다고 하더라도 특히 그 중에서도 나쁜 전통을 우리 스스로 지금 시대에 고집스럽게 이어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지금도 사모 관대를 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상투를 틀고다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불편하고 나쁘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서 개선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나쁜 전통은 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멸망했을 때입니다. 앗수르는 수도 사마리아 성읍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많이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대신 다른 이방 민족의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사마리아 성읍에 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늘 사마리아 지역은 이방과 같이 취급이 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따돌림받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 다른 민족들이 사마리아 성읍에 들어와서 정착했는데 처음에 이주해 와서 거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 민족임으로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단 가나안 땅에 들어왔으면 그들의 옛 전통을 버리고 새롭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 하셔서 그들 중 몇사람이 이일로 죽게되었습니다. 그러자 앗수르왕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자들에게 유대 제사장 한사람을 보내어서 그 땅의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면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 제사장은 사마리아 땅으로 다시 가서 여호와의 법대로 그 거민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얼마나 잘 지키겠습니까?
제사장이 가르쳐 준대로 여호와도 섬기면서 동시에 각기 자기 민족의 전통 풍속대로 그들의 옛신들도 계속 섬겼습니다. 가나안 땅에 일단 왔으므로 하나님을 섬기기는 하되 그네들의 풍속도 같이 섬긴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민족들을 봐주십니까? 아닙니다.
열왕기하 17장 34절 "저희가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는도다"
기독교가 우리의 고유 풍속까지도 말살하려고 한다면서 전통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은 여간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비난합니다. 어느 민족이나 고유 풍속이 있는데 기독교가 너무 배타적으로 각 민족의 고유 풍속까지도 못하게 한다고 비난합니다. 고유의 풍속은 괜찮지 않느냐고 항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일단 가나안 땅에 들어왔으면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새롭게 변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풍속 중에서도 미풍 양속은 아주 좋습니다. 계속 발전시키고 고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하는 이런 전통 풍속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성경 스가랴 1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기독교에서도 성묘는 허락합니다.
죽으신 분에게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분의 살아생전의 하시던 일들을 추모하며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그리고 그분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분의 못다이루신 뜻을 우리 후손들이 마져 이루기를 소원하는 추모는 성경에서 허용하고 있습니다.
야곱도 자기 유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야곱은 죽은지 오래되었으나 후손들이 400년후에 출애굽할 때에 야곱을 추모하며 야곱의 뜻을 기리며 그의 400년된 유골을 가나안으로 이장시킵니다.
이장이라던가 성묘가서 산소를 잘 정돈하고 하는 것은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므로 무방합니다만 그 앞에다가 절을 하고 또 숭배를 하는 등 제사행동으로 바뀌면 이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고인을 추모하며 경의를 표하는 것과 그리고 고인에게 제사드리는 것은 전혀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도행전 14장을 참고해 보십시다. 8절에 이하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 지역에 가서 전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를 고치는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서 아덴 사람들이 소와 화관을 가지고 와서 바나바는 쓰스,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은 말하는 자, 헤르메스, 허메라고 하면서 살아 있는 바울과 바나바 앞에 절하며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경배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깜짝 놀라 옷을 찢으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바나바와 바울은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은혜를 베풀었으니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을 법도 하지 않습니까? 인사를 하고 감사를 표한다면 바울은 물론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사를 벗어나서 제사를 하려는 것이기에 바울은 극구 말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경의를 표하는 것과 그리고 제사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산 사람에게도 이렇게 제사 드리는 것을 극구 중지시키며 이 헛된 일을 버리라고 하는데, 하물며 죽은 사람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냥 뇌두시겠냐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귀신이라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이 떠돌아다니면서 신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은 성경이 ?히 말하는데 하나님을 배반하여 떠난 악한 영들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그분의 혼이 중천을 헤매며 그분의 혼이 귀신이 되어 떠도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성경이 이것을 거부합니다.
악령들이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어려움과 두려움을 주는 것이지, 돌아다니신 분의 신이 떠돌아 다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무엘상 28장을 우리가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절입니다.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애곡하며 그의 본성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 내었었더라"
사무엘은 하나님의 유명한 제사장, 이스라엘의 건국 공로자요, 훌륭한 신앙인이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무엘이 늙어 죽었습니다. 그러자 평상시에 사무엘을 늘 아버지처럼 생각하던 사울왕은 평상시에 고인이 제일 싫어하며 늘 하고자 했던 그 땅의 신접한 자와 박수들을 다 쫓아내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터졌습니다. 여러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진노하시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사울이 다른 옷으로 변장을 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신접한 여인 한 사람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신접한 여인에게 죽은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아마 주문을 외웠는가 봅니다. 그러자 이상한 노인 한 사람이 올라오는데 보니까 죽은 사무엘입니다.
13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라 네가 부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무엘은 능력의 선지자입니다.
그가 이 땅에서 우상 숭배하는 자와 신접한 자들을 몰아내는 일을 했는데 그 영이 땅에 들어갔을리도 만무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곧바로 하늘 나라로 갑니다. 땅에서 올라올 리가 없습니다.
또 신접한 여인이 부른다고 해서 죽은 사무엘의 영혼이 올라오겠습니까? 주석책을 다 찾아 보아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진노하셔서 사울왕이 죽을 것을 확실히 말하며 사울왕의 신앙이 떨어지자 신접한 여인에게까지 찾아가는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주석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진짜 죽은 사무엘이 아닙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 이런 모습이 없습니다.
또 15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껏 불려 올리자 자기를 도와줄 것으로 알았는데 오히려 사울을 책망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을 보내셨다 하더라도 불려 올려져서 이렇게 사울왕에게 도움은 주지 않고 오히려 책망하며 "너는 죽으리라"라고 선언하고 사울이 그만 기절을 하고 맙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죽으면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떠다니면서 누가 부른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 하나님이 택한 자들의 영혼은 바로 하늘나라에 올라가 그곳에서 쉽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버리시고 진노하신 자들은 옥에 들어갑니다.
베드로전서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서 무덤에 계실 때 그때 예수님께서는 저 옥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그 옥에는 노아의 시대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자들의 죽은 영혼이 갇혀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이 세상 공중에서 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영은 일단 한 곳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아직도 떠돌아 다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악한 천사들이 귀신으로 가장해서 여러 가지로 자기들이 경배를 받으려고 죽은 사람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7절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도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귀신은 죽은 자의 혼이 아니라 악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레위기 17장 7절 "그들은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렇게 살아있는 염소에게 제사를 합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소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1잗 16절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식물이 풍성케 됨이니이다"
그물을 던지니까 고기가 많이 잡힙니다. 그러니까 그물을 걸어놓고 그 앞에다가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복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제사는 효도하는 것이므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생전에 효도 못하면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해도 괜찮다.'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와 기회의 진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천하 범사에 모든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못하면 영영 못하는 것입니다. 봄철에 곡식 심을 때 못 심으면 영영 못 심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그때까지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 재림 한 후에도 예수 믿을 수 있다고 했습니까?
그러면 지옥에 간 후에라도 그 때에 거기서 회개를 하고 천국에 올라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천국에 못들어간 사람들이 왜 이를 갈며 슬퍼한다고 했습니까?
세상에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넘어가면 못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때가 지나가기 전에 일하고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하라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 제도, 유교 사상, 불교 사상에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 못했으면 죽은 다음에 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것은 때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로 배치되는 거짓입니다. 사단의 거짓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처럼 거짓해서 돌아가신 다음에도 효도하면 그 효도를 부모님이 받으실 줄 알고 사단의 거짓말에 인간이 속아넘어간 것입니다.
본문 열왕기하 5장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허용하시는가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모습을 한 번 보십시다. 문둥병이 걸린 아람의 군대 장관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의 엘리사에게 찾아와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결심합니다.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아만이 엘리사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 회개입니다. 어쩔 수 없는 형편 속에서 자기 합리화를 시킨 것이 아니라 너그럽게 용서하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아만은 경호 실장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왕의 옆에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자입니다. 그런데 왕이 몸이 불편해서 림몬의 당에서 정기적으로 우상에게 절하는데 나아만이 왕의 몸을 붙잡아 줘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절할 때 자기 몸이 어쩔 수 없이 굽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니까 나아만 본인이 림몬의 당에 숭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왕을 모시고 부축해서 절할 때 할 수 없이 굽혀지는 것을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뭐라고 합니까? "너는 평안히 가라."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교회의 가르침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사를 드리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이 예수 믿지 않고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자식으로서 할 수 없이 거부하지 못하고 제사의 자리에 동참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제사 자리에 동참하게 될 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마음에 고통을 가지고 마음에 찔림을 가지며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은 어디까지 성경이 허용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부모님께서 제사를 지내시는데 도무지 연로하셔서 절을 하기가 어려워서 좀 부축해달라고 하시면 부축까지는 성경이 간신히 허락하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살아계신 부모님이니까 순종해야지요! 아람왕은 나아만의 주인이니까 받들어야지요!
그러나 나더러 그 앞에 자진해서 제사드리고 절을 드리라고 한다면 이제 거기서부터는 거절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십시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므로 하나님께 좋으신 선조를 보내주신 것에 대해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나의 집안의 경우가 이렇게 제사 드려야 할 어쩔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기에 양심의 가책을 모면하기 위해서 이것은 효도이므로 그냥 절해도 된다고 우리 마음에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해 버리고 자진해서 절을 하면 안됩니다.
예를 들면 '조상 제사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 고유의 풍속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절하는 것이 뭐 그리 나쁜가?' 또 '집안의 화목을 위해서는 차라리 제사 드리는 편이 더 좋다'고 합리화합니다. '조상 제사는 효도하는 것이요 기독교에서도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생각으로 자기 나름대로 판단을 하고는 편한 마음을 가져 버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속에서 늘 죄스러워 하고 회개하고 통회하고 앞으로는 부모님을 전도해서 제사를 없애고 추도 예배로 바꾸려고 시도 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는 괜찮다 하면서 스스로 합리화 해 버리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아직도 우리 가정에서 제사를 드리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있습니다. 걱정이 되고 마음에 근심도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십시오. 회개 기도하시고 아직도 우리 부모님 예수 믿게 하지 못한 우리들의 죄를 고백하시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내년부터는 하나님만 섬길 수 있게 해 달라고 나아만처럼 통곡하며 가슴앓이를 하면서 기도하십시오.
또 예수 믿어서 제사 안 지내는 부모님들 두고 계신 자녀분들 있으시지요? 그런 분들은 감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나라가 조상 대대로 가져왔던 고통, 우상 숭배하는 것, 제사하는 것, 귀신 섬기는 것을 보면서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나아만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형제들이 먼저 주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은 참으로 소망스러운 일이요 아름다운 것입니다. 한 피를 나눈 혈육이 또한 영적으로도 한 하나님을 섬기고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은 더할 나위없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도 이러한 간절한 예수님의 소원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1-22)
육적으로는 한 피를 나눈 혈육으로 하나가 되어 있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되어 있지 못함을 애타하면서 이러한 "주안에서 하나되게 하소서!" 라는 간절한 기도가 추석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있으시기를 바라며 이러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셔서 앞으로 우리 모든 가정들이 영적으로 주안에서 하나되는 은혜가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