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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좋지 않아 한동안 산행에 나서지를 못했다.
해서, 거의 2달 여만에 하는 산행이 되겠다.
이번에는 전북 진안에 위치한 마이산으로 간다.
제법 많은 산을 다녔지만 이상하게도 마이산은 기회가 닿지 않아 이번이 첫산행이 되는 셈이다.
합미산성 입구에서 시작하여 암마이봉을 오르고 탑사와 탑영제를 거쳐 남부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우측 합미산성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부터 가파른 등로가 이어지고,
등로 옆으로는 돌배나무와 조팝나무가 신선한 향을 내뿜고...
합미산성 터.
진달래는 끝물이지만 아직 영롱한 모습이 지나가는 산객의 마음까지 맑게 돋우는 듯 하다.
암릉구간을 지나간다. 곳곳에 이런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 바위들은 대부분 자갈이 바위에 박혀있는 듯한 역암의 모습이라 발 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영 좋은 느낌이 아니다.
암릉이 계속 이어지고,
조망이 열리는 바위 위에 올라서니 가운데 덕태산과 우측의 내동산, 그리고 좌측의 성수산이 눈에 들어온다.
제법 화사한 진달래 꽃길도 지나고,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진달래를 머리에 이고 암릉을 오르는 내 마음도 활짝 펴지는 듯 발길이 가볍다.
제법 가파른 암릉을 으르면,
광대봉 정상이다.
광대봉에 오르니 시원하게 시야가 터지는데 마이산이 멋진 모습으로 눈 앞에 우뚝 서 있고,
시야를 돌리면 저 멀리 남덕유 방향인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광대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제법 가파른 암릉이 꽤 길게 이어진다.
밑에 내려서서 올라다보니 역시나 꽤 가파르고 조금 위험하기도 하다.
보흥사 갈림길의 조망처에서 자라고 있는 멋진 소나무.
위 조망처에서 뒤돌아본 광대봉.
가파른 암릉을 내려서는 산객들의 모습이 마치 뱀처럼 줄지어 있다.
진행방향으로 다시 마이산 방면을 바라본다.
마이산 좌측 작은 봉우리 끝이 삿갓봉이다.
끝물인 줄 알았는데 아직 화사한 진달래가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듯 하다.
좌측이 지나온 광대봉이다.
다시 조망처에서 잠시 갈 길을 가늠하고,
이어지는 급경사를 내려간다.
매화말발도리.
갈림길에서 우측 고금당으로 향한다.
고금당 지붕을 황금빛으로 장식해 놓았다.
남부주차장에서 탑사를 거쳐 바로 올라오는 산객들로 고금당은 북적북적.
고금당에서 바라본 마이산 모습. 좌측은 가야 할 비룡대이다.
고금당 내부.
나중에 알고보니 고금당 아래 나옹암이라는 자연굴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고금당의 나옹암은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암굴로 '나옹암'이라 하며 원래 금당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라 일명 고금당이라고도 한다.
나옹(1320~1376)은 법호로 법명은 혜근이며 속성은 이씨다. 20세에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에서 득도하였고, 그뒤 중국으로 건너가 인도승 지공화상으로부터 법을 받아 1358년 귀국하여 고려불교 중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1371년에는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고, 보우, 무학등 높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토굴가' 등 많은 시와 가사를 남기고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현호색.
흰털제비꽃.
건너 편 인공으로 조성된 진안읍의 꽃잔디 동산을 살짝 당겨보았다.
주차장 방면을 바라보니 관광버스 수십대가 늘어서 있다.
봄맞이 관광객이 제법 많은 가 보다.
오르내림을 수시로 반복하고,
비룡대(나봉암) 아래 편편한 조망처에서 식사를 하며 쉬어간다.
쉬면서 바라본 비룡대.
나봉암이라고도 한다.
비룡대 위에서 바라본 마이산. 숫마이봉이 좌측에 보인다. 우측이 암마이봉.
진안 마령면 덕천리 방면.
부귀산 좌측 뒤로 멀리 운장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급하게 내려서고...
두꺼비처럼 생긴 바위를 지난다.
다시 오르막.
탑영제를 당겨보니 활짝 핀 벚꽃이 무척 화사하다.
내려가고,
내려가면서 숲 사이로 비치는 암마이봉 모습.
마이산 타포니지형.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게되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여기저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엇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여 있는 크고 작은 많은 굴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한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마이산 타포니 지형은 이와 달리 바위 내부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또 올라가면,
또다시 하염없이 떨어진다.
다시 올라가면,
암마이봉 아래 초소에 도착하여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여기서 본격적인 암마이봉 오름이 시작된다.
암릉과 수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서 바라본 숫마이봉.
마이산 정상.
암마이봉 만 오를 수 있고 숫마이봉은 등로가 없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봄에는 안개 속을 뚫고 나온 두 봉이 쌍돛대 같다고 해서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 같다고 해서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면 말의 귀 같다고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아 먹물에 찍은 붓끝 같다하여 문필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봉우리 2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湧出峰)이라 하여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렸으나, 조선시대 태종이 남행하면서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마치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마이산은 정면보다 측면에서보면 정말로 말이 귀를 쫑긋 세운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속칭으로 동쪽을 숫마이봉, 서쪽을 암마이봉이라고 부른다.
서로 등지고 있는 기이한 모습의 이 두 봉우리는 노령산맥의 줄기인 진안고원과 소백산맥의 경계에 자리하여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흙이 전혀 없이 퇴적암(역암)으로만 된 두 봉우리가 흡사 말의 귀와 같은 모습이어서 마이산이라고 부른다. 동쪽 숫마이봉은 해발 681.1m이고, 서쪽 암마이봉은 687.4m이다. 숫마이봉 중턱에 화엄굴이라는 갈라진 틈이 있는데, 그 안에서 샘물이 솟아오른다. 바위산이지만 중사철 등 희귀관목이 군데군데 자라며, 산 주변에는 은수사, 금당사, 탑사 등 유서 깊은 절들이 있다.
산 남쪽 계곡에는 개울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가에 벚꽃나무가 줄지어 있어 봄이면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암마이봉에서 바라본 덕태산과 진안군 백운면 일대.
암마이봉을 내려서면서 바라본 숫마이봉.
중간에 석간수가 흐르는 자연동굴인 화엄굴이 자리잡고 있다.
당겨본 화엄굴.
아주 먼 옛날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 꿈속에 남성을 상징하는 모습의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그 중간쯤에서 줄기차게 솟는 물길이 보였다. 부부는 꿈속의 그곳을 찾아 기도를 드리기 위해 전국을 헤멘 끝에 찾아낸 곳이 바로 마이산 화엄굴이다.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 뒤 돌아가 득남을 한 효험의 부부소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득남 뿐 아니라 숫마이봉에서 뿜어진다고 믿는 강한 기와 그 속에서 솟는 석간수를 마시면 입시와 승진의 기회는 물론 사업의 번창까지 가져온다는 믿음과 바람 때문일 것이란다.
이제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천왕문에 도착한다.
천왕문 분수령이야기.
이곳은 백두대간 전북 장수군의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호남금남정맥이 갈라져 이곳에 이르러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금강과 섬진강을 나누는 분수령을 만들었다. 북쪽으로 금강이 시작되어 전북, 충남 도민의 생명수를 제공하며 401km를 달려 전북 군산 앞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시작되어 전북, 전남, 경남 도민의 생명수를 제공하며 225km를 달려 전남 광양 앞바다에 이른다.
진안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성계가 고려말 남원에서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귀경하는 길에 신비스런 마이산에 들러 왕조창업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하여 돌탑을 쌓아 비보(悲報)를 만들고, 꿈속에서 하늘로부터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받았다는 금척을 받은 후 이곳에 올라 왕이 하늘로 오른다는 의미로 '천왕문'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잘 정비된 계단을 내려서면 은수사를 지나게 된다.
은수사.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
청실배나무는 장밋과 산돌배나무의 변종이다. 산돌배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잎은 타원형으로 그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거칠다. 은수사 청실배나무는 수령 65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5m, 가슴높이의 둘레는 2.5m이다. 나무의 모습은 커다란 줄기 하나가 위에서 네 줄기로 갈라져 윗부분을 떠받치는 듯하다가, 다시 두 줄기가 서로 붙은 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을 찾아 기도하면서 그 증표로서 씨앗을 묻은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청실배나무는 한국 재래종으로 매우 희소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 및 종(種) 보존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숫마이봉을 등에 지고 청실 배나무를 안고 있는 멋진 은수사 전경.
마이산 타포니지형.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게되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여기저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엇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여 있는 크고 작은 많은 굴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한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마이산 타포니 지형은 이와 달리 바위 내부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탑사.
마이산 석탑.
마이산 석탑은 1885년에 입산하여 솔잎 등으로 생식하며 수도한 이갑룡(1860~1957)처사가 30여 년 동안 쌓아 올린 것이다. 이곳 탑사에는 당시에 120기의 탑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는 80기만 남아있다. 대부분은 주변의 천연석으로 쌓아졌지만 천지탑 등의 주요 탑들은 전국 팔도의 명산에서 가져온 돌들이 한 두 개씩 들어가 심묘한 정기를 담고 있다. 마이산 석탑은 섬세하게 가공된 돌들로 쌓아진 신라 왕조의 탑들과는 달리, 가공되지 않은 천연석을 그대로 이용했다. '막돌허튼식'이라는 조형 양식으로 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이 적용된 이 탑들은 정성과 탁월한 솜씨로 쌓아졌다. 탑사 내의 탑군을 이루는 탑들은 천지탑, 오방탑, 약사탑, 월광탑, 일광탑, 중앙탑(흔들탑)과 이 탑들을 보호하는 주변의 신장탑들처럼 제각기 이름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한 바람에도 약간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는 탑에서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고 특히 겨울철에도 탑단에 물 한 사발을 올려놓고 성심으로 기도하면 역고드름이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신묘한 현상을 관찰할 수도 있다. 또 탑사 내에 두 권의 서책이 전해 내려오는데 당시에는 이갑용 처사가 산신들의 계시를 받아 적은 서른 권 분량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마이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이곳 탑사는 여러 유적들, 특히 대웅전, 산신각, 미륵불, 영신각, 종각, 요사채 등이 복원되면서 명실상부한 전통 사찰로 자리잡았고 훌륭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탑영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벚꽃.
아직 만개한 것은 아니지만 제법 활짝 피어 주위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금당사.
일주문을 나서면서 산행을 끝낸다.
도상거리 13.2km, 6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오름길엔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별 탈 없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시간이 없어 하산주를 하지 못한 게 아쉽지는 하지만 그래도 맑은 하늘아래 곳곳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야생화들과 더불어 따사로운 봄날 하루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니 제법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