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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찬 시인
1963년 광주 광산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시금치 학교』가 있다. 현재 인천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운행하는 버스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등단한 서수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가 시인동네 시인선 168로 출간되었다. 인천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근무하며 시를 쓰는 서수찬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노동과 관련한 시인의 비판적 세계인식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의외로 비판적 시선이 형성하는 비장함이나 적의(敵意)보다는 연민과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서정적 감응의 세계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유의 중심에는 일상 속 타자나 가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부정을 넘어선 긍정의 사유와 더불어 새로운 차원의 시세계를 펼치고 있다.
작가의 말
짠하고 안쓰러웠다.
오랫동안 혼자 버텨 온
『시금치 학교』에게 짝을 드디어 안겨줘서
훨훨 날아갈 것 같다.
세상의 부모 마음이 다 같으리라.
부디 앞가림들 잘하고 잘 살아가길
바란다.
2022년 2월
서수찬
목차
제1부
엉덩이로 책 읽는 우리 가족ㆍ13/갈비뼈의 무덤ㆍ14/거위와 눈을 마주치다ㆍ15/국경을 지키는 일ㆍ16/풍경 소리ㆍ18/한 번도 못 들어본 말ㆍ19/헛것ㆍ20/골목ㆍ22/유령의 발자국ㆍ23/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ㆍ24/고등어 신호ㆍ26/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ㆍ27/만두가게ㆍ28/라일락 필 때ㆍ30/멸치 떼ㆍ31/우럭ㆍ32
제2부
사람의 열매ㆍ35/교보문고ㆍ36/살구처럼ㆍ38/갈매기 떼ㆍ39/서열ㆍ40/복수초ㆍ42/사골국ㆍ43/빗소리라는 철학서ㆍ44/사양산업ㆍ46/다시ㆍ47/귀가 슬픈 사람ㆍ48/샌드위치 맨ㆍ50/꿈ㆍ52/사과껍질ㆍ53/나물 옆에 따닥따닥 붙어서ㆍ54/모과ㆍ56
제3부
얼굴ㆍ59/블로그 시집ㆍ60/도시락 뚜껑에 쓴 시ㆍ62/만재도 할머니 이야기ㆍ63/도토리 시인ㆍ64/떠다니는 집ㆍ66/배려ㆍ67/빨래 저항ㆍ68/운주사 석불ㆍ70/비둘기호 열차ㆍ71/절벽 계단ㆍ72/석이버섯ㆍ74/조기가 사는 법ㆍ75/졸업 사진 한 장ㆍ76/맨드라미ㆍ78/철공소의 감나무ㆍ79/토란잎ㆍ80
제4부
바오바브나무ㆍ83/숨은그림찾기ㆍ84/봉숭아ㆍ85/곰보 여자ㆍ86/오동잎ㆍ88/오토바이 비석ㆍ89/운주사 일주문ㆍ90/구룡포에서ㆍ91/큰 놈ㆍ92/단풍ㆍ94/운주사ㆍ95/줄기를 노래함ㆍ96/책 읽어주는 에어컨ㆍ97/풀잎 창작과ㆍ98/손바닥 이불ㆍ99/헝가리 연인ㆍ100
해설 신상조(문학평론가) ㆍ 101
■ 해설 엿보기
버스 기사는 육체노동자인가, 아니면 서비스 노동자인가? 버스 기사가 승객들에게 서비스할 일이 뭐가 있나 싶다가도, 이왕이면 친절한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싶은 걸 보면 서비스 노동자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서수찬 시인은 버스 기사고, 시인이 버스 기사라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다. 여기에는 ‘노동’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견고한 벽처럼 놓여 있다. 노동에 위계가 있다는 게 우리의 첫 번째 편견이라면, 노동이 없는 삶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두 번째 편견이다.
사실 우리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목록에는 노동이 없다. 휴식을 위해 떠나려 짐을 꾸리는 사람이 만약 자신의 일상을 연장하는 형태의 일거리를 챙긴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을 일중독자라고 부른다. 휴식과 일을 분리하지 않는 그를 비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심리에는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빌딩 하나쯤 소유한 임대업자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욕망은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염원에 다름 아니다. 하다못해 며칠만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마음껏 뒹굴며 게으름을 부려보고 싶은 소망 역시 노동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노동이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생각과 노동이 고통스럽다는 생각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켜 왔고, 노동이 없는 삶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삶과 통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헤겔은 ‘노동을 사적 소유권의 근거를 넘어 주체와 객체가 통일되는 과정이며, 인간이 자기의식과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계기’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노동관을 수용하면서도 노동 자체가 한계를 지닌다는 그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인간은 노동을 통해 외부 대상인 자연을 가공하여 인간의 욕구와 자기실현에 알맞은 인간화된 자연으로 만든다’고 보았다. 다만 그는 노동을 통한 주객 통일의 한계가 사회적 구조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하며,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아실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를 변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노동과 관련한 동안의 한국 현대시는 마르크스가 언급한 저 ‘사회 구조의 변혁’에 상당 부분 경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그리 길지 않은 한국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이 가지는 의의가 투쟁에의 의지를 바탕으로 사회 구조 개혁을 지향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수찬 시의 ‘노동’을 버스 기사이자 시인이 쓴 순전한 자기고백으로 읽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 무릇 시인이란 자신의 삶이라는 형식에서 의미를 도출함으로써 특정한 의미를 생산하는 자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시인은 자신의 텍스트인 생활 현장이나 가정사를 그대로 베끼는 자가 아니라 공명(共鳴)의 언어로 번역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버스를 몬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도
나는 버스를 몬다
내가 맡은 건 죽으나 사나 버스 한 대다
내가 맡은 국경은
오로지 버스 한 대다
세계가 이미 다 뚫렸는데도
나에겐 버스 한 대가 나의 세계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보루가
내 버스 한 대라 생각하고
나는 오늘도 버스를 몬다
내가 맡은 건 커다란 것도 아닌
눈에 표 나는 것도 아닌
그저 마스크를 안 쓰면 안 태워주는 일
평상시에 욕하는 입을 틀어막는 일
대놓고 무시하던 입들에 꼭
마스크를 씌우는 일
고성방가를 즐기던 입에
방음벽을 설치하는 일
그게 신이 나서
나는 버스 한 대를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 「국경을 지키는 일」 전문
시인의 페르소나인 ‘S시인’에게 노동의 대상이자 생활현장은 ‘버스’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연과 무관한 그의 노동 현실은 대중교통을 대표하는, 승객들을 태운 채 정해진 코스를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네 개의 바퀴 달린 자동차인 것이다. 이 시에서 주목할 것은 “세계가 이미 다 뚫렸”다는 시인의 부정적 인식이다. ‘뚫린 세계’는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74년 만인 1991년 무너지며 동유럽의 국가들 역시 공산주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만 역사를 환기할 수도, 더 직접적으로는 물질이 정신을 점령하고만 자본주의적 현실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정체가 무엇이든 세계가 적에게 점령당한 상태에서 “유일하게 남은 보루가/내 버스 한 대”인 시인에게 버스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튼튼한 구축물이거나 몸 바쳐 지켜야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 S시인에게 버스는 비현실적인 현실이고, 실제적으로는 현실에 있으면서 현실의 주민들에게 훼손당하거나 거꾸로 현실 너머의 이상에 매우 가까운 세계다.
욕하는 입, 대놓고 무시하는 입, 고성방가를 즐기는 입들에게 날마다 훼손당하는 세계의 끝 마지막 보루에서 시인은 그 입들을 틀어막고, 마스크를 씌우고, 방음벽을 설치하는 작전을 철두철미하게 펼친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남은 전사를 자처하는 그가 관계하는 세계는 이처럼 비루하다. 하지만 비루하다고 노동의 대상을 내려놓는다면 그건 대상에 진다는 뜻이다. 비루하므로 마지막 남은 보루인 버스를 버린다면 밥벌이를 포기함은 물론이려니와 시인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상실되고, 이 비루한 현실은 그 비루함으로 말미암아 시인의 자아와 도무지 ‘관계’할 수가 없게 된다. 이때 S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다른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음의 시는 그런 사정을 적절히 설명한다.
- 신상조(문학평론가)
■ 시인의 산문
버스라는 게 그렇다. 노선이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시내 한복판이나 복잡한 거리를 다니더라도 길을 잃어버릴 일이 없다. 노선을 이탈하면 친절하게도 단말기에서 바로 알려준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운행은 딱히 정해진 길이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버스 운행보다 사람 사이의 운행이 훨씬 어렵고 힘들다. 인간관계라는 지도엔 버스처럼 기점이나 종점이 없다. 다만 온기가 있을 뿐이다. 그 온기를 따라가다 보면 즐겁고 때로는 슬픈 이야기들과 만나게 된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모아 작고 아름다운 지도를 만든다. 내 시의 운행일지는 그 지도를 기반으로 한다. 지도의 끝은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임을 나는 안다.
책 속으로
별명이 이동화장실인 마눌님이
뒤가 너무 급해서
주위에 있는 남산 중앙도서관으로 들어간다
덩달아 딸도
엉덩이를 붙잡고
따라 들어간다
아들 녀석도 꼭 누가 핏줄이 아니랄까봐
불고기버거에 감자튀김 콜라
3종 세트로 따라 들어간다
이윽고 줄줄이 엄마를
따라서 나오는데
남산 중앙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다 읽고 나오는 표정들이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맞는가 보다
장하다,
엉덩이로 책 읽는 우리 가족
- 「엉덩이로 책 읽는 우리 가족」 전문
소래를 지나가는 버스는
아직도 불심검문을 한다
무슨 사상을 숨기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죄다 검은 비닐봉지에다
꽃게나 새우를 숨기고 탄다
문제는 꽃게나 새우가
집게다리나 수염을 이용해서 슬그머니
승객들에게 냄새 테러를 가한다는 데 있다
지독하다
그러니까 검은 비닐봉지는
사상을 가린다
소래 어물전 상인들도
무슨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데
하루 종일 일한 작업복과
작업복을 따라온 비린내를
검은 비닐봉지에다 숨기고 타는지
검문하면 화부터 낸다
소래 사람도 못 믿냐고
그래 검은 비닐봉지가 당신들을
못 믿게 만든다고
시인들도 못 믿냐고
그래 당신들이 쓴 시가
검은 비닐봉지처럼 모두다 가려서
그런다고
-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전문
세상 모든 나무들은
열매를 네모나 세모처럼 각이 지게 내지 않는다는 것을
내 머리에 떨어져
저만치 굴러가는 은행 알을 보고 새삼 깨닫는다
열매가 무기가 되지 않게
동그랗게 궁굴릴 줄 아는 마음이
사뭇 고맙다
사람의 열매인 자식도
동그랗게 말아서 세상에 내보내야 하지 않겠나
누구에게 떨어져도
무기가 되지 않게
- 「사람의 열매」 전문
빗소리만큼 두꺼운 책도 없다
책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예 빗소리를 펼쳐보지도 않을 것이다
라면이나 끓여서
그 위에 올려놓을 것이 분명하다
파리나 잡는 데나 간혹 사용할 것이다
빗소리 첫 장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책 첫 장을 열 힘도 없는 자는
먹지도 말라
그런데 책 첫 장을 열 힘은
평생에 한번 찾아올 것이다
역도 선수도 들지 못한
빗소리의 첫 장은
자동적으로 내려오는
내 눈꺼풀과 너무도 닮아 있다
어떤 때는 빗소리를 들고 서 있으면
경로석에서조차
자리를 양보할 때도 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빗소리라는 철학서
- 「빗소리라는 철학서」 전문
나는 아래층 치킨 집 매상을
계단을 밟고 안 내려가 봐도 다 안다
영업이 끝나고
셔터 내리는 소리에
그날 매상의 이력이 다 적혀 있다
나는 장부를 들여다보듯 읽는다
매상의 오른 날의 셔터 소리는 거침이 없이 부드럽게
촤르르 촤르르 내려간다
셔터를 내리는 손길이 부르는 노래가
내 달팽이관에 즐겁게 모인다
매상이 저조한 날에는
셔터가 마지못해 내려오느라
끼걱 끼걱 찌그러진 소리를 낸다
내 귀는 얼른 가서
안 내려오려는 셔터를
억지로라도 도와서 내려주고 온다
어쩌자고 치킨 집 주인은
내 귀에다
가게의 비밀을
속속들이 다 적는 걸까
- 「귀가 슬픈 사람」 전문
짠 음식을 먹을 때
누구나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헝가리에서는
여자가 사랑에 빠졌을 때
요리를 하면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한다
연인만 생각하다가
소금이란 생각을 잊는다고 한다
음식이 너무 심심하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미워져서
과하게 짠 음식을 내오더라도
미간을 찌푸리기보다는
이제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구나 하고
헝가리 연인이 되기로 했다
- 「헝가리 연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