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김부장 8억불 어때”…김종필-오히라 메모 비화 (27)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관심
박정희-이케다 정상회의(1961년 11월 12일)로 한·일 회담이 힘을 받긴 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실제적인 문제에서 진척이 없었다. 회담 의제는 ‘한·일 기본관계’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대일 재산청구권’ ‘어업 및 선박 문제’ ‘문화재 반환’ 등이었다. 이 중에서 제일 난항이었던 게 청구권 자금이었다.
1962년 10월 나는 미국 방문길에 일본을 들르기로 했다. 그 전에 박 의장과 나는 최고회의 의장실로 민주당 시절 5차 한·일 회담 수석대표로 활동했던 유진오 박사를 초빙했다.
“일본이 우리한테 정말 얼마나 줄 수 있다고 보시는가”라는 박 의장의 질문에 유 박사는 “일본 사람들한테 들었지만 3000만 달러 이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유 박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액수는 우리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 박사가 돌아간 뒤 박 의장은 “어떤 사람은 일본이 우리를 36년간 지배했으니 1년에 1억씩 36억 달러를 내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최소 10억 달러는 받아내야 한다고 한다. 으음~ 8억… 8억. 김 부장, 8억 달러 어때. 국민들은 불만이겠지만 그걸로 종합제철소도 짓고 종합기계공장도 만들고 해보자고”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내놓은 8억 달러는 박 의장이 내게 준 인디케이션(지침)이었다.
“독도 폭파하면 했지 못 준다” JP가 밝힌 ‘독도 폭파설’ 실체 (28)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관심
‘김종필-오히라 회담’은 대일청구권(對日請求權) 자금의 규모와 조건을 정하기 위한 만남이었다. 우리 둘은 양국 정상에 틀림없이 보고하기 위해 합의안을 종이에 썼다.
나중에 언론은 이것을 ‘김종필-오히라 메모’라고 불렀다. 메모는 오히라 외상의 집무실에 있는 손바닥만 한 크기(A4 용지를 두 번 접은 64절지 정도)의 메모 용지 한 장에 자금의 규모만 간결하게 적은 것이다. 나는 그 조그마한 종이에 ‘無償 3억弗, 有償(대외협력기금에서) 2억弗, 수출입은행에서 1억弗+α’라는 내용을 손수 썼다.
오히라 외상도 똑같은 메모지에 동일한 내용을 일본말로 적었다. 우리는 서로 각자가 쓴 메모 내용을 비교, 확인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11월 13일 귀국해 바로 박정희 의장에게 메모지를 보며 회담 결과를 보고했더니 박 의장은 “잘했어. 수고했어”라며 만족해 했다.
최근 살펴보니 엉뚱한 기록물(사진 참조)이 내가 쓴 메모인 것처럼 둔갑해 세상에 알려졌다. 2005년 정부가 공개한 ‘김-오히라 메모’는 두 장짜리에 한글 없이 영문과 일본어로 된 문서인데, 그건 내가 작성했던 메모가 아니다.
어떤 연유로 이 기록물이 ‘김-오히라 메모’로 공개됐는지 나는 의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