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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
하나님의 안식 속에서 살도록 온전한 성도로 바로 서라 엡4:11-12
주신 말씀 엡4:11-12 을중심으로 [온전한 성도로 바로 선자가 받는 복]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성도로 바로 선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의 안식속에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그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명을 인류에게 주셨다.
다시 말해서 무형의 하나님께서 유형의 인간을 대리자로 내세워 세상을 통치하려 하신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만물은 인간의 통치를 받고 다스림에 순응하도록 창조설계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교만 때문에 정죄되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그 권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의 권위로 자연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죄인이 되어 하나님의 대리자로써 인간의 권위 아래 있던 자연이 오히려 인간을 대적하는 등 인간 자신은 물론 만물 또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고통으로 신음하게 된 것은 모두 죄로 인해 시작된 것입니다.
이번 동일본 지역의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핵발전소의 파괴로 인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서울의 2/3에 해당하는 20평방km에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이 생육하지 못합니다.
벼농사, 채소할 것 없이 농사하지 못합니다. 언제 회복될지 지금으로썬 예측도 불가합니다.
이뿐 아니라 지구촌 이 곳 저 곳에서 각종 질병이며, 홍수, 지진, 해일 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과 짐승 그리고 각종 초목까지도 고통을 당하는 것은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 품을 떠나게된 때문입니다.
초일류강국인 미국에서 토네이도로 수 백명의 사람이 죽어가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운동으로 각 국에서 수백-수천명의 희생을 치르고 나서 장기집권 독재자들이 물러납니다.
카다피처럼 인면수심의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합니다. 점점 심성이 악해져 갑니다.
우리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피조물이고 그 운명을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가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입을 크게 벌려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귀한 것을 적당한 양으로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악한 것을 알고 계시기에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직접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롬8:22 말씀처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사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인류가 잃어버린 권세를 회복시켜주기 위해서 직접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잃어버린 권세를 회복하시고 축복의 통로를 활짝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회수하신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고 정복할 권세를 모두 예수님에게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왕중의 왕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그 왕권을 자신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셨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만물로 하여금 에덴동산에서처럼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원래대로 회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딤전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이라고 말하며,
사52:7-9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표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였음이라.” 증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여러 직분 자들을 교회에 파송하셨습니다.
성도를 바로 세워 하나님의 안식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완전한 안식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임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신 말씀 엡4:11-12에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한 것처럼 교회내 직분을 세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원하셨으며 이를 통해 교회 천국을 이루어 땅에서 복락원을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안식 여부는 전적으로 축복의 통로 자들로 세움 받은 성도에게 달려있습니다.
축복의 통로 자가 위임받은 권세를 하나님의 뜻을 좆아 행사하면 하나님께서 그 통로를 통해 교회에 복을 내려 교회가 안식을 누려 교회 천국이 될 것이요, 가장이 위임받은 가정 제사장으로서 임무를 온전히 감당할 때 가정 천국이 이룰 것이요, 성도 개개인이 만민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을 뵙기에 부족함이나 흠이 없기를 주님을 닮아갈때 심령천국이 임할 줄 믿습니다.
살전2: 5-8 에서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 하시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목사는 성도를 젓먹이는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듯 사랑해야 합니다.
장로는 성도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심정으로 섬기며 봉사해야 합니다.
성도는 성도의 허물을 덮고 서로 배려하며 용서해야 합니다.
성도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 항상 예수님이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 지혜란 다름 아닌 자신은 연약하고 무능하니 백성들을 잘 돌볼 수 있게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온전한 마음을 보시고 지혜도 주시고 부와 수도 주셨다.
그리고 백성들은 진정한 축복의 통로자 솔로몬으로 인하여 복을 누리며 살아갔습니다.
개인적인 축복이 아니라 통치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왕상 4:25“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한 말씀이 이를 증거합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수년 후 받은 은혜를 잊고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방의 왕비들로 인해 우상숭배에 빠졌을 뿐 아니라 백성을 향한 첫 마음을 잃어버리는 등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한결같이 칭송합니다.
그런 지혜는 신만이 행할 수 있는 지혜라고 다른 나라 왕들에게 아첨하던 말로 솔로몬에게도 아첨을 합니다. 그는 점점 그런가 하여 뿌듯하고 뻐기고 하다가 마침내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생애 중반기에는 성도들의 축복의 통로자로 살지 못하고 개인적인 안락을 추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가 축복의 통로이며 자기를 작은 자라고 낮추고 겸손한 자가 온전한 자로 바로 세워지는 것인데 솔로몬은 스스로 높은자가 되고 신적존재로 군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신하인 여로보암이 반역을 일으켰고 아들 르호보암왕 때에는 국가가 남과 북으로 나뉘었습니다.
백성들 역시 축복의 통로자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함으로써 도탄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깨닫고 나면 자기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서 주님 주신 은혜에 감격해하고 감동하고 내 생명과 지혜와 재물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다시 옛 사람의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으로 자라지 못하고 십자가 신앙에서 머물러 있으면 감격과 감동도 한 두 번이지 매일같이 그 일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순간적인 감동이나 감격으로 은혜받고 뜨거워진 심령은 얼마가지 못해서 식어지고 식어진 자기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기를 비하하며 원망과 불평을 뿜어댑니다.
온전한 성도란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심 때[ 제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하는 만큼 재림신앙으로 자라란 성도를 말 합니다.
성도는 신앙의 성장단계를 차근 차근 밟아가며 차원을 높여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부르심에 감동해 세례를 받고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고백신앙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세상유혹과 죄와 싸워 이겨냅니다. 믿음의 삶입니다. 삶의 신앙입니다.
이제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십자가 앞에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게됩니다. 십자가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향해 달려가는 부활의 소망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재림하신 왕중의 왕 예수와 함께 세상을 다스립니다. 재림신앙입니다.
하등종교에서 구하는 것처럼 세상적인 복만을 위해 조건적으로 믿음 생활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왕중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는 00 교회 권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나의 궁핍을 면하게 하시고 풍요하게 하시면 십일조를 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병을 치료해 주시면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을 높여 주시면 가난한 자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사업을 성공시켜 주시면 교회에서 전도왕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암으로 고생하던 병을 깨끗이 고쳐 주셨고 , 자녀들을 교사와 행정고시에 합격시켜 주시고, 사업에 성공시켜 주셔서 서원기도한 것이 생각나서 주신 물질을 통해 권사취임후 해마다 67가정,78가정,110가정을 전도했고 금년 1/4분기에 33가정을 전도했는데 금년 목표는 150가정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로 풍요를 누리고 살고 있으니 자비로 전도지를 만들고 밥을 사주고 선물을 하고 찾아가 함께 차를 마시며 함께 문제를 나누고 함께 울며 열심히 전도한다고 상당히 은혜 되는 간증을 합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 열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넘치는 축복을 받고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전도하겠지' 하며 자기는 전도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하면 복 받을 만한 귀한 성도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사와 충성이 결여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세상적인 물질이나 직분이나 달란트를 주지 않았다 하드레도 택하여 불러주시고 사명을 주심에 감격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불러주시고 택하여 구원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우리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주님께 드리며 순종하며 감사 하는 고백과 찬양이 넘쳐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보다 직분을 더 앞세우면 안 됩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직분을 받습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각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사도란 말은 [사명을 주어 자신의 대리자로 파견하다]는 뜻을 가진 아포스텔로(α΄πόϭτολος)에서 유래된 말로 사자란 문자적 의미를 가진 말로써, 예수께서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로 부르셨으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심으로 유래한 말입니다.
예수의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마10:5 "예수께서 열둘을 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행1:21 "이러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때에 "라 말한 것처럼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이를 증거할 사명을 맡은 자들이어야 합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한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은 자이어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자들은 12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고 목메어 죽자 제비뽑아 맛디아를 뽑았으며, 바울과 바나나가 사도의 반열로 인정받고, 그 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사도의 자격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사도가 될 수 없나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받을 때 우리도 신실한 주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게 되는 놀라운 복중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를 온전케하는 목적이 곧 봉사의 일을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직분자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사역을 부여 받았으며, 그 사역의 결과로 온전케 된 성도들은 봉사의 일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불란서에서 강탈해간 외규장각 책들을 임대하는 형식으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과 건물은 초토화시켜 버리고 외규장각에 보관한 책을 약탈해 갔다는 것입니다. 왜 책을 가져갔을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귀하고 값나가는 것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실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무차별적으로 공급한 것은 그들의 문화가 중국을 지배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편을 통해 청을 멸절하려 했던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에서 조선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공창이란 퇴폐풍조를 조장하고[ 이풍진 세상을 ...][ 노세 노세 젊어서노세...] 하며 일하지 않고 몸과 육신이 망가지도록 한 것입니다.
이들 일제의 악한 궤계를 간파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무실역행 즉 원망하지 말고 부지런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라, 부지런히 예배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애국이다]고 강조하여 꺼져가는 민족정신을 기독교문화로 다시 회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조용기 장로는 가나안 농군학교에 들어가는 진입로 양쪽에 팔뚝만한 돌들을 쭉 세워 놓고 그 위에 돌을 하나씩 얹어놓았다 합니다.
돌이라 할지라도 누워서 빈둥빈둥 대면 안된다 하시면서 일어나서 돌을 짊어지고 일하라고 그렇게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일본 불란서 영국 미국등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다시 찾아오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를 가르치는 목적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이란 말은 ‘카타르티몬스(καταρτισμόν)는 ’‘다른 힘과 조화를 이루어 발전하게 하다’‘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리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말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은 사람이 피조물로서 또는 성도로써 제 위치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을 잘 섬기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경우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섬기는 일을 기본적인 의무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를 이루는 각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성전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하지 않으면 각 사람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교회가 온전히 세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온전한 성도로 바로 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안식 속에서 살도록 온전한 성도로 바로 서기 위해서,
성도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 항상 예수님이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성도는 신앙의 성장단계를 차근 차근 밟아가며 차원을 높여가야 합니다.
성도를 온전케하는 목적이 곧 봉사의 일을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항상 최우선으로 하고 신앙성장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며 성숙한 성도가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가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온전한 성도로 바로 세워진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품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안식은 죽어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복락원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될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