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빼재(신풍령)~삼봉산(인증)~소사고개~초점산(인증)~대덕산~덕산재~부항령(인증) (20.9km/9시간)
* 출발지점 : 빼재
* 차량 대기장소 : 부항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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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및 재 설명
[빼재] 920m
빼재(수령 또는 신풍령)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안내비> 적힌 빼재의 유래.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험준한 산길을 넘나들던 시절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아 죽은 사람의 뼈가 산을 이루어 뼈재요, 이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 사냥꾼 혹은 산적들이 동물 및 가축들을 잡거나 약탈하곤 하면서 뼈를 버려 둔 곳이라 하여 뼈재
'빼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나, 일제강점기에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수령(秀嶺)」즉 빼어난 고개라는 뜻의 표지석이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옛 이름인 '빼재'로 불려지기를 원하고 있고 앞으로 이곳을 관통하여 뚫리는 터널 이름 또한 '빼재터널'로 불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한다.
[수정봉] 1030m
아무런 표식이 없어 구분이 잘 안되고 편안한 등로를 이어가다 우측으로 휘돌아 나가게 되어 있다. 정상엔 잡목들로 전망이 가려져 있다.
[된새미기재]
호절골재에서 30분 남짓한 거리에 봉산리에서 올라오는 소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고개이기는 하지만 허리목은 아니다. 북쪽의 전북 무주는 지대가 높고 남쪽의 경남 거창은 지대가 훨씬 낮은 것이 확연하게 관찰된다. '큰(된) 새목 고개'이다. '된새목이재>된새모기재>된새미기재'로 변화했다.
[호절골재]
삼봉산과 1090봉 사이의 움푹 들어간 허리목이다. 삼거리에서 금봉암으로 넘어가는 소로가 교차한다. 남동쪽으로 45°에 가까운 경사면이고, 북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계곡인데,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여러 개의 지류가 모여 삼거리 독가촌 마을 앞을 지난다. 고개에는 공터가 조성되어 있다. '막힌(絶) 계곡(谷)의 안쪽이 매우 넓다(浩)'는 뜻인데, 오늘날 모두 채소밭으로 개간되어 있으니 기막힌 예언이 아닐 수 없다.
[덕유 삼봉산] 1254m
삼봉산은 거창의 진산이다. 거창 고읍지 및 조선환여승람 거창군 산천조에도 '삼봉산은 거창 북쪽 오십리에 있으며 무주로부터 대덕산 서쪽 가지라 적혀 있다. 해발 1,254m의 거봉으로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三峰)이란 이름을 얻었다. 향적봉에서 바라 봤을 때 이 봉우리가 뚜렷한 '山'자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 가운데 어느 한 봉우리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산세를 지니고 있어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하는 삼봉산은, 정상의 주봉을 중심으로 투구봉 노적봉 칠성봉 신선봉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 등으로 이름 붙은 자연산경과 금봉암(金鳳庵)이 어우러져, 소금강의 신비경을 연상케 한다. 거창과 무주를 경계 짓는 삼봉산은 이 같은 덕유연봉(德裕連峰)이 시작되는 첫 머리봉.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삼봉산을 '덕유원봉'이라 부르며 자긍심을 내보이기도 한다.
금봉암의 바위 샘물과 관련하여 천지인(天地人)을 우러른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인연이 깊다.
-> 문헌과 지도에는 1264m로 되어 있다
[금봉암]
금봉암은 고제면 봉산리 삼봉산(1,254m) 기슭에 있다. 금강은 본디 봉황새만이 깃드는 곳을 일컫는데 절이 황금빛 봉황의 이름을 갖고 자리 한다. 금봉암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절 터에 1905년 주상면 거기리에 살던 불심 깊은 청송 심씨가 세운 절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청송 심씨가 풍수가 잡아준 지금의 절 자리에서 원을 세우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가마솥 뚜껑 덮인 장수 샘물을 마셔가며 백일동안 단식기도를 드렸다 한다. 기도가 끝나던 날 이상하게도 어느 곳에서 날아 왔는지 알 수 없는 황금빛 새가 날아와 기도처를 세 번이나 돌고 난 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그 뒤 절을 짖고 금봉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는 이름난 세 개의 바위, 세 개의 용머리, 세 개의 바위샘이 있다. 요사체 뒤에 용바위, 용굴에서 내려와 얼굴을 쑥 내민 세 개의 용머리가 있는데 맨 윗쪽 용머리가 옛날 거창 부사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금봉암을 나한도량으로 영험스런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세 개의 샘이 자랑거리로 이름나 있다. 석불바위 뒤에 숨어 있는 샘을 피부병에 좋다 하며, 칼바위 위 바위굴 샘은 기도샘이고, 용바위 용굴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소사고개] 680m
소사라는 마을 이름은 집집마다 마루바닥에 가는 모래가 깔리는데, 일년 내내 미풍이 불어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소사현(笑沙峴)으로 불려졌다 한다.
이 지역 일대는 정확한 대간 길의 독도가 까다로운데 그 이유는, 백두대간 대부분의 고개가 도(道)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소사고개(680m)는 경상남도 거창 땅이며 고갯마루에서 전라북도 무풍 방향으로 10여분 걸어내려간 '도계'(道界) 마을이 경계지점이다. 따라서 고개 이름을 전라도 쪽에서는 '도마치'라고도 부른다. 도계에서 '항상 농사가 잘 된다'는 무풍(茂豊)까지는 약 9km.
무풍면과 고제면의 경계지역이지만 고갯마루에 형성된 마을은 고제면 소사동이다. 무주구천동에서 거창으로 연결되는 1089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며, 매점 겸 식당이 한 군데 있다. 현재는 마을 이름을 따서 소사고개로 부르지만 원래의 이름은 경계선이라는 의미 의 '지경령'이다.
[초점산(삼도봉)] 1248m
전북과 경북, 경남의 도계를 이룬다. 군으로는 무주와 김천, 거창이다. 민주지산이 있는 삼도봉에서는 매년 3개 도 합동으로 화합행사가 열리지만 이곳에는 그런 행사가 없다. 서쪽으로 덕유산의 군봉들이 가까운 거리로 다가서 있다.
[대덕산] 1290m
대덕산은 이곳으로 살러 오는 사람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 덕택을 입었다 하여 대덕산으로 불렸다 한다. 대덕산은 가야산을 향해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갈라놓은 삼도 분기점, 즉 해발1,250m의 초첨산을 옆에 둔 명산으로,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렸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는 명산이다.
[덕산재] 644m
삼도봉과 대덕산 사이의 고개로 예전부터 전북과 경북의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다. 지금은 무주에서 성주를 잇는 30번 국도가 지나간다. 고갯마루에는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다(2013년 현재는 폐점 상태임). 대덕면 덕산마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덕산재라고 한다. 일제 때 발행된 고지도에는 '주치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폐광터]
물한리의 황점, 핏들, 가래점 등 세 마을은 2백여년 전 제철소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 산위에 철마암(鐵馬岩)은 당시 일꾼들이 정초가 되면 산 위에다 철마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부근 계곡 일대에는 지금도 철광석이 더러 눈에 띄며, 폐광터도 보인다.
[선황당재]
약간 평평한 안부로 별다른 표식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부항령] 690m
무주 무풍 금평리 숙뱅이-김천 부항 어전리 가목을 넘나드는 재. 백두대간의 오래된 고갯마루인 이곳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부항현'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개의 구실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래로 삼도봉 터널이 뚫렸기 때문이다. 고갯마루 일대에는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개 이름의 유래는 부항면 어전리에서 찾을 수 있다.
-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지명 유래
1. 어전(漁田)·어전리·어전골
임진왜란 때 허인이라는 선비가 이곳에 피난 와서 보니 들판의 형상이 마치 물고기처럼 생겼다 하여 어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이 마을 이름이 없을 때 어떤 도인이 이 마을에 와서 보니 동네 서쪽의 작은 폭포수 아래에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어 어전이란 마을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다. 어전재·어전령은 어전리 서쪽에 있는 고개로 경상북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삼국시대에 신라군과 백제군이 싸웠던 재라 한다.
2. 가목·가매실·부항(釜項)
마을이 위치한 곳의 형상이 가마솥과 같이 생겼다 하여 가매실이라 하다가 지금은 한자로 부항이라 한다. 우리말로는 가목이라 하는데, 이는 가매목에서 중간의 매자를 버리고 가목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가목재에서 감내의 큰 줄기샘이 발원한다. 마을이름의 기원으로는 가마-가미-거무(거미)-거북의 의미 상통함으로써 농경사회에서의 숭배대상인 거북 신앙 곧 물신앙을 드러내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