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꼭 드는 선물
오늘 가장 귀한 선물을 받았다. 선물하면 1906년 발표된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먼저 떠오른다.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고받은 가난한 부부의 애틋한 이야기가 시대의 변화에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선물은 받는 사람만큼 주는 사람도 행복하다. 상대가 받고 기뻐할 선물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고 이것저것
을 고르는 동안 가슴이 환히 열린다.
아무리 비싸고 귀한 선물도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아니면 좋은 선물이 못 된다. 기쁜 마음으로 받고
오래도록 간직하거나 생활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선물이 좋은 선물이다.
소년원에 같이 봉사를 하시는 회장님께서 일 년 동안 애썼다며 “ 별거 아니니까 집에 가서 풀어봐” 하시며
가방에 슬쩍 넣어주신 선물. 가볍고 매끄러운 느낌. 종일 행복했다.
바스락거리는 포장을 풀자 가지런하게 묶여 있는 종량제 쓰레기봉투. 순간 빵 터졌다. 참 멋지지 않은가?
어느 집이나 꼭 필요한 종량제 봉투. 비싸지 않으니 부담 없고, 일주일에 한두 장씩 쓴다면 넉넉하게 서너
달 쓸 수 있는 양이다. 겨울이라 급한 것도 아니니 시장 갈 때 사야지 하며 미루던 참인데 마음이 통했나 보
다. 쓰레기봉투를 꺼낼 때마다 웃음이 피어나겠지.
나는 생일 선물을 자청해서 받는다. 방앗간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명절마다 읍내 떡방앗간을 찾는 주민의 편의를 위해 떡 하는 시설을 만들어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명절 밑, 내 생일날은 가장 바쁜 섣달 스무이레다. 생일마다 깜깜한 새벽에 미역국을 끓이고 김을 굽고, 고등
어 자반까지 차려 주지만 점심은 먹은 기억이 없다. 워낙 바쁘니 이집 저집 주는 떡을 얻어먹으며 끼니를 때
울 수밖에 없었다.
시집와서 첫 생일이고 음력이라고는 하지만 명절 밑이라 기억하기 좋은데 설마 잊기야 하겠는가 하며 기대
를 했다. 별로 말이 없기에 내 색 않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종일 목이 빠지게 남편을 기다렸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니 술집으로 샌 거다.
약이 올라 남편이 싫어하는 검은 콩을 잔뜩 넣고 밥을 했다. 자정이 다 돼서 들어온 남편은 밥상 앞에 오만상
을 찌푸리고 앉아서, 콩을 밥에 넣지 말고 삶아서 한쪽에 놓으면 약처럼 꿀떡 삼키고 말겠다며 짜증을 냈다
. 두 다리 뻗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정신이 들었는지 미안하단 말을 거듭하며 내일 선물을 사주기로 하고
생일은 막을 내렸다.
다음 해부터는 달력을 받자마자 내 생일에 동그라미를 크게 쳐 놓고 받고 싶은 선물을 사달라고 한다. 나는
갖고 싶은 것을 받아 요긴하게 쓰고 남편은 선물 고르는 수고를 더니 누이 좋고 매부 좋지 않은가!
애들이 일가를 이룬 후부터는 남편 생일은 아들이 부담하고, 내 생일은 딸이 부담하며 이어가고 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부담 없어야 한다. 문우와 만남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긴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통한다. 등단한 기념으로 슬리퍼를 사주고, 수필집 발간을 기념해서 팬티와 양말을 받아도 우리 사이는 흡족하다.
퇴원 후 입맛이 없을 때 무심결에 떡집에서 파는 떡은 달아서 싫고 팥을 보송보송하게 묻힌 인절미가 먹고
싶다 하였다. 그 말을 가슴에 닮아 두었다가 어느 날 육림고개를 지나는데 할머니가 파는 떡이 시골에서 만
든 인절미 같아서 샀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들고 왔다. 평상시에는 별로 떡을 좋아하지 않는데 예전에 먹던
담백한 맛에 구미가 당겼고 실컷 먹고 났더니 입맛이 돌아왔다.
사회에서 동호인으로, 봉사단체로, 친목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체면치레가 아닌 정성이 담긴 선물, 부담 없이 요긴하게 쓰면 좋은 선물 아닌가?
쓰레기봉투를 묶어 놓으며 ‘관심이 사랑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사에 재치가 있으신 회장님, 받기만 했
는데 내년에는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재미있게 엮어낸 선물 이야기.
크고 비싼 것만이 선물은 아닐 테지요.
작은 것으로도 상대의 성의에 고마워
할 줄 아는 그 순수함이 인간 본연이라면
본질이 점점 변해가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섣달그믐을 이틀 앞둔 신생아는 손해를 보았다고
늘 투정하며 살았는데 비슷한 동지를 만나니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저는 도송리로 이사화서 동네분에게 고맙다고 추석선물로 받은 계란 한판(30알)이 제일 기억에 남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