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여행의 마지막 나날들을 장식하기 위해 우포늪으로 향했다. 우포늪은 명실상부 창녕을 대표하는 여행지이다. 여러 동식물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연은 그야말로 태초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보고이며, 우포늪과 창녕군이 각각 람사르 습지와 람사르 습지 도시로 등록되었을 만큼 가치가 높다. 늪의 규모도 2.505제곱 킬로미터로, 총 4개 면 지역(유어, 이방, 대합, 대지면)에 걸칠 정도로 광활하다. 늪의 주변으로 난 탐방길을 따라 도보로 여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총 4코스 중에 가장 핵심인 코스는 ‘우포늪 생명길’로, 우포늪 생태관에서 시작해 반시계방향으로 대대제방, 주매제방, 목포제방 등을 거쳐 8.4km를 돌아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우포생태촌 유스호스텔
코스에는 주요 지점마다 번호가 있는데, 1-1지점인 우포늪 생태관에서 그 번호대로 걸으며 탐방하는 게 정석이지만 나는 방향을 조금 달리 했다. 우포늪에 이틀을 머물며 걸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탐방로와 가장 가까우며 대중교통 이용에도 불편함이 없는 우포생태촌 유스호스텔에서 머무르며 출발지도 그곳으로 정했다.
우포생태촌 유스호스텔은 우포늪 생명길의 시작점과 정 반대인 주매리에 있다. 창녕읍에서 이방면 방향 농어촌버스를 타면 유스호스텔 바로 앞 교차로에 내릴 수 있다. 이곳은 창녕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숙박비가 저렴하고, 관리 상태가 좋다. 객실은 초가집과 너와집 형태로 주변의 한적한 자연과 잘 어우러지며, 수용 인원은 3인부터 19인까지 다양해 혼자 여행자부터 단체 여행자까지 모두 숙박하기에 적합하다.
내가 이용한 객실은 생태촌에 진입하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자리잡은 우포 곤충촌의 3호 객실인 물방개였다. 객실은 작은 원룸 크기지만, 냉장고와 인덕션, 전자레인지와 전기밥솥 등 주방가전제품은 물론 식기와 냄비, 후라이팬 등 조리도구들도 갖춰져 있었다. 야외에는 객실마다 딸린 테이블도 있어 고기 파티도 즐길 수 있다. 생태촌 내에 작은 매점이 있지만, 스낵과 음료 등 간단한 제품만 있어서 창녕읍 또는 이방면에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낫다.
주매제방에서 산밖벌까지
첫날은 숙소에서 가벼운 휴식을 취하고, 이튿날부터 늪 탐방에 나섰다. 구름이 적당히 드리운 걷기 좋은 날씨였다. 우포생태촌에서 탐방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닿게 되는 지점은 주매제방이다. 호젓한 협로를 따라 600m를 걸어가면 제방이 나오고, 그 뒤로 드넓은 늪이 펼쳐져 있다.(1-10 지점) 이날은 우포늪 생명길 출발점에서 서쪽으로 2km 떨어진 우포 출렁다리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생태촌에서 이동을 한다면 주매제방에서 이동 방향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주매제방
푸른 나무가 울창하게 모여 자연 터널을 만드는 숲길을 등지고 반대편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을 지나니 작은 소목마을이 나왔다. 마을로 나가기 직전에 작은 소목 나루터가 있는데, 우포늪을 대표하는 늪배가 반겨주었다. 늪배는 우포늪을 터전으로 활동하는 뱃사공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동 수단이다. 이른 아침 해 뜰 무렵에 밀짚모자를 쓰고 거대한 장대를 저어가며 늪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우포늪을 대표하는 모습이자 많은 사진작가들이 담고 싶어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비록 늪배만 떠 있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모습도 늪의 고요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소목마을을 지나면 1.2km정도 되는 숲탐방로 3길이 이어진다. 1길, 2길과 함께 늪은 볼 수 없지만, 산에 온 듯 나무가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 평평해 걷기 좋은 탐방로 구간 중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구간이기 때문에 조금은 힘이 들고 등산을 하는 기분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다. 힘을 내어 올라가면 우포늪이 발 아래에 펼쳐지는 제2 전망대에 닿게 된다.(1-14 지점)
우포늪 곳곳에는 늪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많다.
숲길을 지나면 나오는 목포 제방은 양쪽으로 펼쳐진 두 늪, 목포와 우포늪을 바라볼 수 있다. 늪 가까이에서 걸으며 원시적인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목포제방
우포늪
목포늪
목포제방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한쪽은 물 위에 징검다리가 놓여 있고, 한쪽은 평지가 그대로 이어진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길이 우포늪 생명길이며 이는 우포늪 생태관으로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직진해서 가는 길은 출렁다리를 거쳐 생태관으로 이어지는 늪의 또 다른 탐방로이다.(1-16 지점)
징검다리는 평상시에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수면 위에 떠 있기 때문에, 비가 내려 수위가 높아지면 들어가지 못한다. 날씨가 좋을 때 징검다리를 건너 반대편을 잠깐 둘러보고 길을 가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자 거대한 왕버들나무가 시야를 압도했다. 나무가 땅과 혼연일체처럼 하나가 되어 여러 갈래로 뻗어 늪을 드리운 모습은 웅장하고 기품이 느껴졌다. 얼마간 더 걸어가자 보랏빛 꽃과 그 주변을 맴도는 곤충에 빠져 한참 사진을 찍었다. 우포늪에서는 다양한 동식물을 만날 수 있는데, 특히 따오기와 왜가리 같은 조류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져온 카메라로 담기엔 무리라 접사로 담을 수 있는 곤충을 찍다 보니 그 작은 세상에 한동안 빠졌다. 나름대로 치열하고 바삐 살아가는 곤충의 세상은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때묻지 않은 우포늪의 살아 있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왕실잠자리
다시 방향을 틀어 출렁다리로 향했다. 탁 트인 쪽지벌 탐방로를 지나자 아래로 곡선으로 휘어진 출렁다리가 나왔다. 우포 출렁다리는 토평천과 산밖벌을 연결하는 다리로, 지어진 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신상 다리이다. 길이는 98.8m로 그리 긴 편은 아니다. 걸을 때 다리가 아래위로 흔들리긴 하지만, 겉보기에도 무서운 다른 지역에 있는 높고 긴 출렁다리와는 달리 아주 편안했다.
우포 출렁다리
출렁다리를 지나면 나오는 산밖벌은 꽤 흥미롭다. 면적이 192,250제곱미터이며 습지를 두르는 탐방로는 2.8km로 제법 넓다. 숙소에서 걸어왔던 길과는 다르게 길이 잘 다듬어져 있고 중간중간 작은 오두막 쉼터가 많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잘 살린 광활한 공원 같은 느낌이다.
산밖벌은 태초에 지금과 같은 습지였지만, 비가 올 때 토평천의 물이 자주 범람하자 주민들은 이곳을 개간해 농경지로 사용했다. 그러다 군에서 습지 보존의 중요성과 이곳을 개간할 필요성을 느끼고 주민과의 협의 끝에 지난 2017년에 다시 늪으로 복원했다. 갓 태어난 곳이기에 쉼터와 화장실 등 편의 시설도 괜찮다. 오두막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자연과 함께 휴식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산밖벌은 아주 매력적인 장소이다.
산밖벌 탐방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