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1-121 영사詠史 12 사호옹四皓翁 네 늙은이
유옹유옹사호옹有翁有翁四皓翁 늙은이가 있었다네, 네 백발 늙은이가
수미호백요룡종須眉皓白腰龍鍾 수염과 눈썹 하얗고 허리는 구부정하였네.
의관기위신색농衣冠奇偉神色醲 의관衣冠은 기이하고 정신은 왕성한데
석년상령피조룡昔年商嶺避祖龍 왕년에 상산商山으로 조룡祖龍 피해 갔다네.
채지고은심산봉採芝高隱深山峯 지초를 캐며 깊은 산봉우리에 높이 숨어 있었는데
한가정업두수옹漢家定業頭雖顒 한나라가 왕업 얻자 머리는 비록 온공하였으나
경사선매난상용輕士善罵難相容 선비를 박대하고 욕 잘하여 용납되기 어려웠네.
한욕구공공장종漢欲求公公藏踪 한나라가 찾았지만 자취를 감추었더니
하자분연래유종何自賁然來遊從 어찌하여 스스로 분연히 나와 놀며 상종하였는가 하면
조호태자인효공調護太子仁孝恭 태자의 인·효·공仁孝恭을 보호하려 함일세.
졸정한적배한종卒定漢嫡培漢宗 종내는 한나라의 적자를 정하여 한 종실을 보호했네.
고조이여조왕류정종高祖已與趙王留情鍾 한고조漢高祖이미 조왕趙王에게 마음 두었으니
비가구설도상흉非可口舌徒相訩 입과 혀로만 한갓 떠들어서 될 일 아닐세.
화계출자류후흉畫計出自留侯胸 그 계획은 유후留侯의 가슴에서 나왔으니
불이효혜하유봉不爾孝惠何由逢 그렇지 않다면 효혜제孝惠帝가 어떻게 만났으리.
유옹유옹사호옹有翁有翁四皓翁 늙은이가 있었다네, 네 백발 늙은이가
하시중와상산송何時重臥商山松 어느 때나 다시 상산商山 솔 아래에 누워서
불부만가가소용不復謾歌歌踈慵 부질없는 노래 부르지 않고 게으름을 노래할 것인가?
상산원학응지이제환래공商山猿鶴應遲爾儕還來跫
상산의 잔나비와 학이 그대들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응당 기다릴 것일세.
►조룡祖龍 진시황秦始皇
►정한定漢 한나라의 적자를 정함.
한漢 고조高祖는 長子인 영盈이 나약하다 하여
어린 아들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태자로 삼으려 했는데 영盈의 어머니 여후呂后가
장량張良의 권고로 사호四皓를 청해 왔으므로 고조高祖가
“저런 늙은이들이 영盈을 따른다면 영은 장한 사람이다.”고 하여
그대로 두고 영을 태자로 정하였다.
►유후留侯 장양張良의 봉작封爵이다.
►효혜제孝惠帝 유영劉盈이 후일에 임금이 되어 효혜제라 하였다.
●상산사호商山四晧
<史記 留侯世家>에 나오는 진秦나라 말기 4명의 신망 받은 연로한 博士들,
동원공東園公·기리계綺里季·하황공夏黃公·녹리선생甪里先生을 가리킨다.
이들은 진한秦漢 교체기에 섬서성陝西省 商山에 은거하였는데
네 사람 모두 수염과 눈썹이 하얘 상산사호라고 불리었다.
진나라의 학정虐政을 피해 은둔하고 있던 그들은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불러도 오지 않았다.
한편 한고조는 여후呂后의 아들인 유영劉盈이 유약하여 태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아
후궁 척부인戚夫人의 아들 여의如意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다.
한고조의 뜻에 여후 뿐만 아니라 모든 대신들이 반대하였고
개국공신이자 한고조의 든든한 책사였던 장량張良은 상산의 은사를 초빙하여
태자를 돕게 함으로써 유영이 태자에서 폐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상산사호는 그렇게 잠시 한나라를 돕고 다시 산으로 돌아갔고
유영은 한고조 사후 혜제惠帝로 등극하였다.
여기서 전하여 상산사호는 진나라 말기 상산에 은거한 네 명의 연로한 현자들을 가리키며
비유하여 덕망 있는 은사를 뜻한다.
프랑스 파리의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의 상산사호도
수염과 눈썹이 모두 상산사호도商山四皓圖는 허난성 등현鄧縣 화전묘畫塼墓의
육조시대 묘벽에 이 그림이 있고 ‘南(商) 山四商’의 명銘이 있다.
장량청사호도張良請四皓圖
장량張良이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초청招請한 그림
이교로안식영웅圯橋老眼識英雄 흙다리에서 노인老人의 눈이 英雄을 알아보았네.
유악당시제일공帷幄當時第一功 장막帳幕 안에서 그때 功을 으뜸으로 세웠지.
하사항전영궐후何事項顚嬴蹶後 무슨 일로 項羽와 秦始皇이 죽은 뒤에
안류경뢰자지옹安劉竟賴紫芝翁 상산사호에 힘입어 유방劉邦을 便安하게 해 주었던가.
한고조 유방은 황제가 된 2년 후에 여후가 낳은 아들 유영劉盈을 태자로 책립했다.
그러나 나중에 척부인戚夫人을 사랑하게 되자
그녀가 낳은 아들 유여의劉如意를 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유방은 자신을 닮지 않고 유약한 유영을 싫어했다.
그러나 황태자의 폐위는 국본을 흔드는 대사이므로 쉽지 않았다.
여후도 방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뚜렷한 대책이 없었다.
여후는 장량張良을 찾아갔다.
장량은 이미 적송자赤松子를 따라서 신선이 되겠다고 선언한 후
정치적 분규에서 떠나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여후의 사자가 그를 협박했다.
“황제께서 태자를 바꾸려는데 어찌 베개를 높이하고 편안히 누워있을 수 있습니까?”
장량은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골육지간의 문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사양했다.
그렇다고 물러날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국 장량이 대책을 제시했다.
“주상께서 불러도 오지 않는 4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나이가 들어 세상을 등지고 삽니다.
이들은 한의 신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주상도 이들을 아주 높이 평가하십니다.
태자께서 친히 예를 다하면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적당한 때에 주상과 대면하게 하십시오.”
유영의 어머니 여태후呂太后는 상산사호를 초빙하였다.
어느 날 高祖와 군신들이 모두 모이는 연회가 열려 태자가 그 연회장에 들어갈 때
이들 네 현인이 모두 태자를 모셔 연회장에 따라 들어섰다.
그들이 바로 상산사호임을 알게 된 고조는 크게 놀랐다.
자신이 천하를 평정한 뒤 여러 차례 초빙하였으나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인물들이었다.
네 사람은 고조 앞에 나와 사죄하면서
“태자 영은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지극하며
예와 어짊으로 선비들을 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태자의 빈객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고조는 모두가 태자를 동정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조왕 여의를 태자로 하겠다는 생각을 거두었다.
유영은 후에 제위를 계승하니
이가 바로 한나라의 2대 황제 혜제惠帝(BC194-BC188)다.
또 다른 버전이 있다.
BC196년 회남왕 영포英布가 반란을 일으키자
병에 걸린 유방은 유영에게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다.
상산사호는 여후에게 유방을 찾아가 울면서 간청해
유방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가서 반란을 평정하도록 했다.
유방이 출정할 때 장량은 병을 무릅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방을 찾아가
태자를 장군으로 삼아 관중의 군사를 감독하도록 하라고 요청했다.
장량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던 유방은 장량에게 태자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장량은 병에 걸린 유방에게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태자가 재빨리 병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포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온 유방의 병이 더욱 깊어지자 태자 교체를 서둘렀다.
장량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통하지 않자 숙손통이 목숨을 걸고 항거했다.
이때 상산사호가 나타났다.
깜짝 놀란 유방은 아무리 불러도 피하더니 어떻게 스스로 찾아왔는지 물었다.
그들은 태자를 위해 찾아왔다고 대답했다.
유방은 인심이 태자에게 기울었다고 생각해 마음을 바꾸고 척부인을 위로했다.
척부인도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유방은
‘홍곡鴻鵠이 높이 나니 한 번에 천리를 가는구나!
날개를 이미 달았으니 사해를 누비겠지?
사해를 누비니 또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