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황실,망국의한!잊혀진 대한제국'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나 이혼.
딸의 자살 등 비극을 겪었으며 1989년 세상을
떠났다.

덕혜옹주(오른쪽)가 다른 학생들보다 높은 좌석에
앉아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나 이혼,
딸의 자살 등 비극을 겪었으며 1989년 세상을
떠났다.

고종 황제가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함녕전을 내려
오고 있다.

고종황제가 영친왕 귀국 소식을 듣고 외출을 나서고
있다.

1912년 2월 9일 고종황제가 승하한 거처인 창덕궁
함녕전에서 일본 왕가 장례식인 보고제 (장례를
하늘에 알리는 의식)가 열렸다.
사진은 함녕전에서 차려진 일본 신사풍의 제단앞
에서 황실유족과 일본제관,총독부 관계자들이
의식을 치루는 장면이다.
정면 깊숙이 황제의 거처쪽에 일본식 계단을 중심
으로 일본 전통 복식을 입은 제관이 가장 앞자리에,
조선의 전통 굴건 제복을 차려입은 유족이 그 뒤에
어색하게 선 모습은 쇠락한 황실의 처지가 도드라
진다.
왼쪽 문 바로 옆에서 힐끗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당시 총독 하세가와다.
그옆에 화려한 견장의 제복을 입은 정무총감
아마가타의 모습이 보인다.
고유의 왕실의례조차 일본식을 강요당했던 황실의
실상을 단적으로 증언하는 소중한 사진이다.

영친왕이 조선 방문를 마차고 당시 남대문역
(현서울)에서 도쿄행 열차를 타기 직전의 모습이다.
연미복 연미복입은 수행원들과 함께 거수경례를
함며 풀렛폼 걷고있다.(1918년1월26일 촬영)

군복차림의 영친왕이 1918년 1월 25일 경성
유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사진첩 기록을 보면 그는 원아들의 재롱섞인
유희를 감상했다고 한다.
원아 가운데 그의 형제 의친왕의 아들인 이우가
포험되어 있었다.

고종의 막내딸로 비운의 일생을 살았던 덕혜옹주가
경성일출 심상소학교에서 일본 급우들과 함께
일본어 수업을 받는 모습이다.
뒤쪽에 학교 교사들과 수행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업광경을 연출한 것으로 보이는데,강제 유학을
떠나기 직전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정중앙에 있는 횐 얼굴의 옛된 소녀가 덕혜옹주
이다. 얼굴에 애잔한 기색이 감돈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교과서에 쓰여진'국어'란
명칭은 일본어를 뜻한다.
1925년3월께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떠나기 직전
찍은 사진으로 보고있다.
일출 심상소학교는 서울 충무로 현 극동빌딩 자리에
있었던 일본인 전용 학교였다(1925년)

수업을 마친 덕혜옹주가 교문을 나와 마차에 오르려
하는 모습을 찍었다.
일본풍의 교복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양식 모자를
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뒤에는 한복을 입은 시종이 겉옷을 들고 따르고
있다.(1925년 촬영)

요즘 사진기로 창경원 하마를 촬영하는 영친왕

도자기에 휘호하는 영친왕

황실가족과 총독부 관료들
1981년 영친왕의 조선 방문 당시 황실 가족과
총독부 관료들이 연회뒤 덕수궁 석조전에서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매일신문)에도 실렸던 사진으로 가운데
앉은 양복 코트차림의 노인이 고종이며 그의
왼쪽이 영친왕,오른쪽이 순종이다.
영친왕 왼쪽에 있는 이가 당시 조선총독
하세가와다.순종 오른쪽 첫번째 인물은 동생인
의친왕이며 두번째 인물은 총독부 실세였던
야마가타 정무총감이다.

삼전에 참배하기 위해 영친왕과 함냥전을 나서는
고종의 모습(1918년1월15일 촬영)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이토 히루쿠니 공작과
조윤동 남작(1919년2월9일 촬영)

1925년3월 일본 유학을 떠나기 위해 열차에 오른
덕혜옹주.열차 뒤쪽 베란다에서 기노모를 입은 채
수행원과 함께찍은 모습이다.
표정이 썩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1918년 귀국한 영친왕이 선대 제왕의 어진을
봉안한 선원전의 원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최초의 사진이란 점에서 가치기 크다.
앞으로 복원에 매우 요긴한 자료가 될것으로
보인다.
~ 카톡글 퍼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