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고장나고 노트북 고장난 지난 밤에.
지난 달 가스비가 너무 많이 나와 놀랐다. 낮에 보일러를 꺼두었는데, 해지고 보일러를 켜니 작동하지 않는다. 놀라 a/s를 접수시켰다. 그러는 사이 노트북을 켜니 그것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에고 글도 쓸 수 없고 뭐 할게 없어 핸드폰 뒤적이다가 요즘은 통 들어가지 않았던 미니홈피에 들어갔다. 10년 전의 모습들이 이렇게 낯설수가...글쓰기 카톡방에 올려 화제거리를 삼았다. 너도 나도 옛날 사진들을 올렸다. 보디빌더 합성사진도 올라오고, 빛바랜 흑백의 엄마 아빠 결혼사진도 올라오고...자기를 신혼때 사진도 올라오고...
우리 가족들 사진도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눈물 나려했다. 그때도 아둥바둥 힘들었고, 맨날 어렵다고 울고불고 했는데...사진을 보니 행복한 순간이 많았구나 싶었다. 힘들고 울때야 사진을 찍었겠는가? 그래도 기쁘고 즐겁고, 좀 젊고, 이쁠때만 찍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순간이 많았다. 감사가 샘물처럼 고였다. 하나님이 은혜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하셨구나...
예전에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 아이들 친구 엄마, 서로 자기 자식이 좀 더 낫기를 바라고, 성적이 조금이라도 높기를 바라며 신경전할 때였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 가족 외국 가 있는 동안 수시로 불러다 밥도 먹이고, 졸업식때 우리 딸을 자신 딸처럼 축하하며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니 옛 이웃에 대한 고마움을 오래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그 분 카톡방에도 올려주며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할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항암치료중이라 외출도 어렵고, 머리도 다 밀어서 항상 모자를 쓰고 지내는 그 분이 사진 속 환히 웃는 미시 아줌마로 다시 회복되길 바라며...
시할머니 우리 집 오셨을때 찍은 사진도 있었다. 곧 돌아가신다고 치매증상이 심한 할머니를 돌아가시기 전에 하늘백성 되게 하려고 우리집에 모셔온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우리 가족들과 얼마나 이쁘게 잘 지내셨는지, 아파트 마당에 빨간 고추가 널려있던 그날 할머니랑 모시고 마당에 나가 가을볕아래 찍은 사진이었다. 쭈굴쭈굴한 당신 얼굴 찍어 뭐애하냐고 손사래 치시면서도 카메라 보고 부드럽게 미소짓던 할머니. 그 사진을 시댁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서방님께 아버님 어머님께 보여드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 보시며 아버님은 얼마나 반가우셨을까...
그외 친구들 옛날 사진도 하나 하나 그들에게 보내주었다. 분명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사진이겠지만, 까막득히 잊고 살고 있을 친구들에게...놀라고 반가와하고 고마와했다. 보일러 고장나고 노트북 고장난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가슴 촉촉한 일이다.
보일러는 어제 밤 11시에 기사님이 와서 고쳐주셨다. 남편도 없는 집에 밤 11시에 와서 고쳐준다는데 놀라서 자던 아들깨우고, 여러 사람에게 좀 있다가 전화걸러달라고 부탁해놓았는데 기사님 완전 친절하시고 기술 좋은신 분이었다. ㅎㅎ 그리고 오늘 아침 혹시...하며 노트북을 켰는데, 아! 화면이 뜬다.~ 보일러 되고 노트북 되니 나갔던 전기가 다시 들어온 듯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누가 밤새 이 집안을 잠깐 정지시켜 놓은듯.
첫댓글 따뜻함이 고장난 보일러 대신 전해져옵니다.
누가 밤새 집안을 정지해 놓으신듯요^^
느끼신 그대로였어요. 어느 밤보다 따뜻했어요. 아~ 아침에 노트북을 켤때 이미 그런 기대가 있었죠. 정지해놓고 원하시던 일을 다 미차셨으니 이제 노트북도 원래 상태로 돌려놓지 않으셨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전원스위치를 눌렀는데... 아 ... 그 감격. 간 밤의 일이 정말 그분이 하셨다는 확신과 감동이 거센 파도처럼 덮쳐왔지요. 그거 있잖아요 폴과 니나 나오는 만화..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있는 마왕의 소굴로....ㅋ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기뻐요~
가슴 촉촉한 일 ^^ 부럽네요
그리고 누님의 글은 점점 따스해지네요
선~그래... 나이들수록 따스해져야지... 여전히 내 안에서 오그라지고 굳어지는 마음들 매순간 말씀으로 기도로 녹여보려고 몸부림치는 중
추억사진이 막 올랐왔던 사건의 발단은 고장난 보일러 였군요. 덕분에 추억을 공유하며 여러사람 재밌는 시간 보낸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