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기 남장로회선교로 전북지역에 세워진 교회들 2부 (1912년 ~ 1923년)
1. 전라노회 시대 (1912~1917년 9월)
1892년 11월에 미국 남장로회 전도국에서 파송한 선교사 최의덕(Lewis Boyd Tate)과 그의 여동생 최매리(Mattie S. Tate)와 이눌서 (William David Reynolds) 부부와 전위렴( William M. Junkin)부부와 데비느(Linnie Davies) 등이 도래하여 장로회공의회의 결의로 전라도에서 선교하게 되매 그 다음 해부터 선교를 시작하여 전주와 군산을 전도 중심지로 정하고 노력한 결과 1909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독립노회가 조직되고, 불과 5년 후 1912년에는 총회를 조직하게 됨에 따라 전선장로회(全鮮長老會)를 나누어 경기, 충청, 경상, 전라, 황해, 평남, 평북, 함경 등 8노회를 설립하게 됨으로 1911년 10월 11일에 전라노회가 설립되었다. (1)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 293쪽)
전라노회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 지역의 복음 전파와 선교를 책임졌다. 행정구역으로 전라감영 산하의 있던 지역을 전라노회로 묶어서 교회를 조직하고 설립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충청도에 속한 금산, 서천까지도 관리하였다.
2. 전라노회시대에 전북지역에 조직된 교회들과 개척된 교회들 (1912년 10월 10일 ~ 1917년)
1912년
*전주군 서문외교회에서 목사 김병례를 청빙하여 시무하게 하고 그 후, 김인전, 선교사 최의덕, 여전도사 배은희가 이어서 섬겼고 조사는 최상섭, 이수현 등이 시무하였다.
*김제군 두정리교회에서 최대진을 목사로 청빙하여 선교사 최의덕과 동사 시무하게 하고 그 후에는 이자익이 계속 시무하였다.
1913년
*김제군 송지동교회에서 최치국, 엄명진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금산군 역평리 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본지인 이덕봉이 가장 먼저 믿고 선교사 마로덕(Luther O. McCutchen)과 협력 전도하여 신자를 얻어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14년
*서천군 종초동교회에서 유성렬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김제군 구봉리교회에서 최대진 목사를 청빙하여 시무하게 하고 강평국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고 그 후 목사는 이자익, 장로는 조공진, 김준기 등이 계속 시무하였다.
*김제군 만경군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先時)에 본지인 정엄규, 곽영욱이 믿고 읍내에 전도하여 다수한 신자를 얻어 교회를 설립하였다.
*김제군 선인동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본 마을 사람 안백선이 믿고 열심 전도한 결과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고 교회를 인도하였다.
1915년
*익산군 선리교회에서 최재순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전주군 삼례교회에서 김창국을 청빙하여 목사로 시무하게 하고 그 후에는 목사 김인전, 이창규와 장로 정근, 정영선 등이 이어서 시무하였다.
*익산군 두화교회에서 서명오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전주군 고산교회에서 정찬도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1916년
*전주군 유상리교회에서 이일문을 장롤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고 후에는 이일문이 목사로 시무하였다.
*김제군 대동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본지인 중 몇 명이 예수를 믿고 송지동교회에 내왕하여 예배를 드리다가 신자가 증가하여 기도회 처소를 설립하였다가 엄명진이 열심히 각 교회에서 연보를 얻어 얘배당을 건축하였다.
1917년
*전주군 소용리교회에서 정영선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전주군 두현리교회에서 김인화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김제군 후독교회에서 서공선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3. 전북노회 시대 (1917년 10월 10일 ~ 1923년)
1917년 10월 10일 전북노회가 설립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전라남북도와 제주도에 신속하게 전파되어 사무가 복잡해지고 교통이 불편하여 회합이 곤란해짐에 따라 3개 지방의 형편을 감안하여 노회의 남북분립을 총회에 청구하여 승인을 받아서 전주서문외 예배당에 모여서 전북노회를 조직하였다. 당시회원은 목사 15인, 총대장로 20인, 합 35이이었다. 노회장은 이원필, 부노회장은 강운림(William M. Clark), 서기 홍종필, 부서기 강평국, 회계에 김인전, 부회계 김필수가 피선되었고 각 부를 조직하여 위원을 선정하고 회무를 처리하였다.
4. 전북노회시대에 전북지역에 조직된 교회들과 개척된 교회들 (1917년 10월 10일 ~ 1923년)
1918년
*무주군 석항리교회에서 이경문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익산군 고현리교회에서 김자윤, 오덕근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진안군 진상동교회에서 홍순북이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김제군 만항교회에서 곽영욱을 장로로 장립하고 그 후에 곽전근이 장로로 시무하다가 목사로 피임되었다.
*김제군 송삼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보지인 정병수가 먼저 믿고 열심 전도하여 교우를 얻어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임실군 옥정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본처인 송인일, 임화신, 임복수, 박수여 등이 믿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신자가 많아져서 예배당을 세우고 송인일이 교회를 인도하였다.
*부안군 읍내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본처인 신영초가 믿고 선교사 부위렴(W.F.Bull)과 협력 전도하였고 노회의 진흥대(부흥단)가 1주일간 대 전도를 한 결과 신자를 많이 얻어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김제군 옥산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본처인 김여삼이 지방전도인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 은 후 전도하여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무주군 읍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서울 사람 이춘경이 본리에 이주하여 교회가 없는 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자진해서 전도하며 장백리교회에 예배하더니 선교사 강운림(William M. Clark), 하위렴(W. B. Harrison), 목사 김성원, 이자익, 전도인 김택주, 권서 송희중 등이 와서 1주간 대전도 후 가옥을 구입하여 송희중을 이주하게 하여 전도인 김택주와 함께 전도하게 하였다. 선교사 강운림(William M. Clark), 보이열(Elmer Timothy Boyer), 전도인 김용학, 조사 김일봉, 박승섭, 최종옥 등이 계속해서 시무하였다.
1919년
*고창군 신촌교회에서 송복렴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고 목사 박창욱이 선교사 최의진 (Martha “Mattie” Samuel Tate)과 함께 협동 목회를 하였다.
*전주군 제내리교회에서 김성식은 목사로, 김재식은 장로로 시무하였다.
*익산군 웅포리교회에서 황재삼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고 그 후에 황재삼은 목사로 김성록은 장로로 시무하였다.
*익산군 황화정교회에서 김원중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진안군 세동교회에서 김화실을 장로로 임직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옥구군 보덕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본리에 거주하는 이완제, 김재심, 양광도 등이 믿고 구암리에 내왕하며 예배를 드리며 열심 전도하여 신자를 얻어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완제가 영수로서 교회를 인도하였다.
1920년
*김제군 대송리교회에서 정기남을 장로로 장립하여 장회를 조직하고 목사 김응규가 시무하였다.
*익산군 동연교회에서 황재삼을 청빙하여 선교사 하위렴(W. B. Harrison)과 동사목사로 시무하게 하였다.
*전주군 신리교회에서 이춘O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김제 난산교회에서 박윤성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목사에 이일문, 장로로 이병남이 시무하였다.
*무주군 삼가리교회에서 한윤성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김제군 송삼교회에서 정연수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고 그 후 목사에 이일문, 김성원, 장로에 김덕수, 최경진 등이 시무하였다.
*정읍군 신태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김제 구봉교회 신자 보봉구가 당지에 와서 인근에 열심 전도한 결과 신자를 많이 얻고 본동네 사람 김경술은 4,5년 전에 옥구 구암리교회 병원에 입원하여 전도를 듣고 믿기로 작정하고 전도하여 신자가 많아지므로 교회가 성립되어 합심연보하여 8간 예배당을 건축하고 조봉구가 교회를 인도하였다.
1921년
*서천군 구동교회에서 한백희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남원군 읍교회에서 최극재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김제군 옥산리교회에서 윤식명을 목사로 청빙하여 시무하게 하였다.
*익산군 이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본 마을 사람 오천집, 민한경, 최학수, 강자영, 천윤진, 김흥춘, 김춘서, 이동연, 김정숙, 김경자, 송화성 등이 믿고 고현리교회에 왕래하면서 구이리에 기도회를 설립하고 열심 전도한 결과로 신자가 증가 되어 합심연보하여 금 2,300우너을 모금하여 예배당을 건축하고 교회를 분립하였다. 이창규 목사가 1년간 시무하였다.
*김제군 명량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마을에 거중하는 교우가 대장리교회에 내왕하며 예배를 드리더니 신자가 점차 증가하자 이재언. 이백인이 예배당 건축비 400여 우너을 자담하였으며 이순권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1922년
*임실군 삼길교회에서 신성언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전주군 구재리교회에서 심은택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김제군 선인동교회에서 박순경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1923년
부여군 청포리교횡서 김진옥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고 최상섭이 목사로 시무하였다.
*서천군 금당교회에서 조남명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다.
*익산군 이리교회에서 김중수를 청빙하여 목사로 시무하게 하였다.
*익산군 상당면 두동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시에 선교사 하위렴(W. B. Harrison)과 조사 김정복이 전도하므로 부인들이 믿고 부곡리교회에 내왕하더니 안신수의 열심전도로 신자가 늘어나매 박재신이 자기 가옥 중 부속(附屬)을 사용하도록 빌려주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5. 3.1만세 시위와 전라북도의 교회들
아래는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 504쪽 기록된 내용이다. 그 당시 교회가 주도한 모든 만세 운동이 다 수집되고 채록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주 3.13 만세 시위가 기독교 미션 스쿨인 신흥학교와 기전학교에서 주도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당시 기독교가 일본 식민지 무단통치 하에 있는 조선인들의 고난과 시련 속에 들어가서 함께 아파하며 해방을 위해 기도하며 독립에의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는 뜻임에 분명하다.
1919년 3.1운동이 시작된 후 교회 중 직우너과 교인과 학생의 참가자가 다(多)한데
익산군 남전리교회에는 문정관, 박영문, 장경춘 등 3인은 피해(被害)되고, 목사 최대진은 출외사직(出外辭職)하고,
서천군 종지동교회에는 장로 유성렬이 수감되고 경관은 예배를 금지하였으며
옥구 구암교회에서는 장로 박연세와 교사 이두열, 김수영, 김인묵과 학생 십여 인과
군산부 개복동교회에서는 교인 김성은, 정지선, 유희슨, 홍종억, 전종식 등이 피해되었고,
금위서문외교회에서는 목사 김인전이 상해에 갔다가 그 곳에서 별세하였다.
전주에 서문외교회가 세워진지 125년 되는 해에 코로나팬데밐으로 드러난 한국 교회의 극단적인 대립과 교권투쟁, 정권과 야합의 문제는 교회가 중병에 들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대대적인 수술과 개혁을 외면하고 그대로 썩어 문드러져 사회의 비난과 조롱거리가 되어 역사에서 퇴출을 당하든지 아니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환골탈태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북의 교회들이 십자가의 교회, 주기도문의 교회, 팔복의 교회로 거듭나게 되길 간절히 빈다. 거듭나면 살 것이요, 새로운 부흥이 일어날 것이며 민족을 품고 평화의 새날, 미래를 열어가는 하나님의 도구로 크게 쓰임을 받을 것이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코로나팬데믹 이후 혁명적 변화를 이룬 우리 시대의 교회에 대하여 마루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이은 "최고 최대의 치열한 종교개혁"이었다고 평가하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2021.4.6.화
우담초라하니
참고도서
양전백, 함태영, 김영훈 저,⎾조선예수교장로회사시 하⏌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