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 설계자들’의 저자 스가노 다모쓰씨는
아베 내각을 구성하고 떠 받치는 세력으로 3개를 지목합니다.
첫째는 ‘일본회의’와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를 관리하는
‘일본청년협의회’
둘째는 아베의 정책브레인 역할을 하는 ‘일본정책연구센터’.
셋째는 대중적 지원을 획책하는 교단으로서 ‘나니구치마사하루를
배우를 모임’ 입니다.
그런데, 이 세 조직을 이끄는 핵심인자 모두가
사교 집단인 ‘생장의 집’ 신자였음을 집요한 추적을 통해
밝혀 냅니다.
생장의 집은 일정한 수련 기간을 거치면, 병이 생기지 않거나,
치유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일왕이 신도의 최고의 신이며,
거기에 일체의 진리가 있어, 그 진리를 믿는 것이 중심 귀일이라
믿습니다.
이를 주창한 자가 ‘다니구치마사하루’이기에 현재도 이자를 배우는
모임이 있고, 이 모임이 아베를 돕는 외곽 조직이 되었습니다.
‘일본청년협의회’ 회장은 가바시바유조로 1945년 생이며,
이자는 동시에 일본회의 간사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일본회의와 일본청년협의회는 같은 건물에 있습니다.)
‘일본정책연구센터’를 이끄는 이토데쓰오는 1947년 생입니다.
‘일본청년협의회’ 구성이자, 아베의 보좌관 에토세이이치는
1947년 생입니다.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70대를 상회하고 있는데,
생장의집이라는 사교와 연결됨과 동시에,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까지의 일본 우익학생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고, 그 시작은 ‘나가사키대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는 일본 전역에 사회주의 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었던
때이고, 대부분 대학 학생회가 좌파 학생들로 장악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때 ‘생장의집’ 출신들이 좌파학생들을 몰아낸 것이
바로 나가사키대학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일약 일본에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우익세력의 청년을
대표하는 자들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인 이다데츠이찌가 존경하던 교수가 이때 좌파 그룹에서
대정부 투쟁을 했던 사람이었는데, 친구도 자신의
스승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1981~2년에 친구 집이 경찰에 의해 4번이나 가택수색을
받게 되어, 부친이 일본을 떠나라고 해서, 캐나다와 한국을
저울질하다 한국으로 피신(?)해 온 것이었습니다.
2019년 현재, 50대 후반인 친구는 젊었을 때의 패기는
많이 사라지고,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탈정치, 몰역사관을
가진 많은 일본인 들 중의 한명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지난 50년 동안 어떻게 위의 세 조직이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에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고자 했고, 했던 일들의 성격입니다.
21세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근대적 사고에 기반한
일들이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례로 이들은 일본 연호를 부활시킵니다.
연호라 함은 자신들의 일왕의 호를 따라
연도를 그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마치 북한에 주체력이 있듯이 일본에도 일왕의
호에 따른 달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인데,
2차대전 이후 폐지되었던 이 연호가 이들에 의해
70년대 부활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유족회를 중심으로 1952부터
야스쿠니신사의 위령행사를 국비로 지급하라는 요구를
극우 세력과 함께 합니다. 이는 다른 종교의 반대와
국교로서의 지위를 보장 받지 못하는 행사를 거부한
야스쿠니신사 자체의 반대로 흐지부지 되었지만,
1976년, ‘영령에 보담하는 모임’을 만들어, 운동 방향을
‘총리와 각료에 의한 공식 참배실시’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베 무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금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침략적 요소를 배제한 ‘역사교과서 채택운동’을
성공시켰고, 성평등사회, 즉, 여성 인권 신장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부부별성에 반대하는 가족의 유대를 지키는 국민위원회’를
2010년에 결성합니다.
일본회의는 1979년 결성되는데, 1974년 만들어진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1981년 만들어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결합된 것입니다.
이전의 두 모임의 성격은 당연히 전근대적 사고 방식에 기반한
것이며, 실제로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바로 1978년 만들어진
‘원호법제화실현국민회의’가 전신입니다.
일본국민들의 눈에 들어오는 일본회의(다른 조직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슴)의 특징은 종교색이 매우 강하다는 것입니다.
일본회의 임원 총 62명중 24명, 즉 1/3 이상이 종교인 또는 종교색이
강한 특징을 가진 인사들입니다.
일본회의는 1977년 가바시마 유조가 원호법 제정 운동에서
제시한 전략이 성공을 거두자 지금까지도 그 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전략이란,
- 국회와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
- 각지에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일 그룹을 만들고
- 현의회와 정,촌의외등에 법제화를 요구하는 의결을 받아
- 이 힘으로 정부 국회에 법제화 실현을 촉구한다.
이들은 과거 학생운동을 통해, 일반학생의 경우, 적극적 참여도
없고, 언제든 사고가 바뀔 수 있다는 사고에 기반해서,
‘일본인이라는 자각을 가진 강력한 하나의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바로 그 조직이 일본회의라는 것입니다.
이들 사고에는 일반의 국민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사고될 뿐입니다.
저자는 이들이 매우 소수이지만, 일을 진행하는 과정은
뿔뿌리 민주주의를 닮음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이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먼저 지방의회부터
치고 들어갑니다.
끊임없이 지방의회에 건의해서, 지방의회에서 중앙정부로
마치 그것이 지방민 전부의 의견인양 제안을 하게
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방식이 지난 50년을 이어왔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대로 가면 ‘민주적인 시민운동’이
일본의 민주주의를 죽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현재 아베는 제정일치사회를 꿈꾸며, 신국을 구상했던
일부 생장의집 출신 인사들에 의해 발탁된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들은 저들이 말하는 일왕제를 중심으로 한 헌법 복원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총리대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왜 아베나 그 무리들이
그토록 신사참배를 하고자 하고, 방사능 수치가 여전히 높아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후쿠시마로 자신들의 국민들을
돌려보낼려 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에 경제적 위협을
가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일왕과 일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신민으로서
일왕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개인들은 목숨까지도
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본회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일왕실을 중심으로 동질적인 사회를 창조하고,
쇼와헌법의 부산물인 가족관이나 권리의 주장을 억제하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등으로 국가의 명예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수행하고, 국가의 명예를 책임질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국방력을 강화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베와 그 무리들의 행동은
이해되고도 남는 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전근대적인 사고가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와 주변 국가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교족 주술에 가까운 믿음. 즉, 일왕이 다스리는 나라에는
결점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자국의 국민 뿐만 아니라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후쿠시마에 보내고자 합니다.
정상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방사능의 반감기를 알고
있기에, 후쿠시마 반경 최소 30km 지역은 인간 비거주지역으로
삼아 모든 방사능 폐기물을 그 안에서 보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를 태평양으로
흘려보내고, 심지어 고준위 방사능 오염물 백만톤을
방류할려다 그린피스에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오직 대결적 관점의 사고관이기에, 남한이 또는 남북한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것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커진 경제권에서 일본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같이 커질 수 있는데도, 이런 관점은 눈에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일본의 아시아, 아프리카 원조규모를 본다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위안부 할머니나 강제징용자
문제를 경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절대로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이 전범국가가 아닌 피해국가라는
의식을 내재화 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신념에 위배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인정을 하지를 못합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일본은 협력할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아베와 그 무리들이 정권을 쥐고 있는 동안은
일본은 그 자체로 위험한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야 일본의 지식인들이 아베 무리들에 대해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일본 학생들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아베무리들로
인해, 한일관계가 극단적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일본의 문제는 일본인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습니다.
지금의 불매운동.
주요 부품과 소재에 대한 자체 개발 또는 공급선 다변화.
그리고 일본 지식인들과의 소통.
아베 무리가 더 이상 날뛰지 못하도록
양국의 양식있는 시민단체들의 협력이
어느때보다 절실해 보입니다.
첫댓글 요즘 후쿠시마 방사능 관련 동영상들을 많이 보고 있는데 참.. 무섭더라구요; 원래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회 등 생선을 한 동안 먹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본도 내부적으로 경기고 뭐고 상태가 안 좋으니 저러려니 생각합니다. 이 참에 확 역전의 역사를..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91년에 모스크바대학에 갔을 때, 교수가 처음 한 말이 소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체르노빌 주변이 대표적인 목축 지역이고, 특히 소를 공급하던 것이라고... 그때가 사고후 5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일본 친구가 홋카이도에 간 것도 동경보다 안전하다는 점이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가 살으라고 하는 아베와 그 무리...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소수의 불순한 무리들에게 휘둘리게 됨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민주주의는 화초와 같아 보입니다.
참 희한한 것이 역사인 것 같습니다.
힌 때 그들을 강국으로 만들어 주었던 신념들에 의해
이제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될 그들을 보게 되리라 생각 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계속 잘 지켜내야 할 것이고요.^^
삶과 유리된 구호를 신념으로 내재화 된 자들을 보면, 마치 휴거를 기다린다고 전재산 팔고,
하얀 옷을 입고 밤새 외쳐되었던 종교집단이 생각납니다.
한국에 우호적이고 평화 지향적인 퇴임한 일왕과 그 아들로 새로 취임할 일왕을 어떻게든 잘 꼬셔서, 비상식과 비이성적 사교에 빠져있는 일본회의를 우리 한국에 충성하는 노예집단으로 양성하는 말도 않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지금 일본 사회가 조기에 변화하기 힘든 이유가 크게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50~60%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무관심.
둘째는 극소수의 광신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전국망.
이 전국망을 통해 기반부터 무너트려 왔기에, 단기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힘들어 보입니다.
일본의 긍정적인 변화는, 일본 언론 자유도가 과거 만큼은 아닐지라도
반만큼이라도 올라왔을 때가 시작점이라 생각합니다.
깨인자들의 수가(세력이) 상대적으로 일본이 적은 것같습니다..
다만, 역사의 의외성이 과거 늘 있어왔던 터라 진실이 역사를 정복하기까지 또다시 왜곡의 역사가 잠시나마 지배하지 않을 지에 대한 우려는 있습니다.
제 친구만을 두고 보면, 나서는데 주저하는 마음, 지나친 자민당 일당 독주. 녹녹하지 않은 경제적 삶...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해 버린 지식인의 모습입니다. 늘 걱정했던 것이 이런 상태에서 어떤 극우 세력이 깃발을 들면, 그 깃발 따라 고개 숙이고 뒤 쫓는 일본인들의 모습인데, 지금 그런 모습을 좀 보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