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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님의 글
(1) 여호와께서 실제로 존재하시고
(2) 성경이 그분의 영감받은 말씀이고
(3) 그분이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조직을 사용하신다.
먼저 (1)의 저의 견해는 '불가지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가진 지식으로는 알수없다. 잘 모르겠다. 입니다.
(2)의 저의 견해는 성경은 그저 이스라엘 민족이 작성한 일부 사실인 역사서이자 전설, 동화가 들어간 사람이 작성한 책으로 하느님의 영감 같은것은 사실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대의 윤리적이유로 인해 탈관 전부터 이딴게 뭐가 사랑의 하느님이야 라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의 저였습니다만. 그런 윤리적 이유를 떼고 보더라도 제가 탈관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것은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이 2가지가 허구의 동화이야기일 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겨우 6500년이 아닙니다. 터키의 괴백클리태배 유적은 1만년전 유적이고, 개의 가축화(늑대에서 개로 가축화 한 시기) 1만년, 밀, 쌀 등의 주식으로 먹는 식량의 탄화 화석 등을 봐도 8000년전~1만년 전으로 추산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총,균,쇠 ,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제가 탈관하는데 큰 영향을 준 책입니다)를 보면 쉽고 간단하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피엔스 책에 앞부분에 보면 6만년전 동굴 벽화, 손자국 등이 있습니다.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20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몇만년 전 인류족에는 약 6종의 인류속이 있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 멸종하고 사피엔스만 남았습니다. 그중 호모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긴밀한 혈연관계가 있었고 현생인류의 약 4~6%(지역, 인종에 따라서 최대 9%)에 그들의 유전자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2015년 6월에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 인류학 연구소, 미국 하버드 대학, 중국의 베이징 척추 동물 진화 및 인류 기원 연구소 등의 국제 공동 연구진은 사이언스 데일리에 2002년에 루마니아에서 발견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일부 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는 주장을 했던 현생 인류의 턱뼈의 DNA 분석 결과를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일반적인 현생 인류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비율 1~4%보다 훨씬 높은 6~9%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표했다. # 6%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아도, 증조부가 같은 6촌 관계 친척의 유전자 공유 비율이 그 정도인 것과 비교해 보면 현생 인류 중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비율은 매우 높은 것이다. )
앞서얘기한 유적, 화석자료, 개 등 가축화된 동물의 연대, 주식으로 사람들이 기르기시작한 식물의 연대, 사람종의 화석과 여러증거들 등 이러한 연유로 현대 과학을 믿는다면
에덴동산 이야기는 그저 동화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가 내린 믿음입니다.(민감한 양심을 가진 현역을 위해 표현을 수정했습니다.)
노아의 방주, 홍수 이야기에 관해서도 이야기들이 많았을 것이고 저도 따로 글을 적어보고 싶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1. 지금 남아 있는 너무나 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세계적인 홍수가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생물의 종류 :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생물까지 약 1,000만종 이상의 생물이 지구상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핵생물 : 400 ~ 1000만종
- 식물의 종류 : 30만종
- 동물의 종류 : 150~ 200만종
- 미생물의 종류
- 진균 및 조류 150만 종
곤충 : 100만종
노아의 방주에 얘네들 다 실었나요? 안 실었으면 방주에 탄 동물들만으로 이만큼의 종류로 늘어났다는 것이니 엄청난 진화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중에는 그 지역에서만 살수있는, 번식할 수 있는 동물, 발아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식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2. 성경에는 물고기, 식물의 언급은 없는데 물고기는 민물고기, 바다 고기가 염분 농도가 달라지면 다 죽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언급이없다가 홍수이후에 비둘기를 보냈더니 잎을 물어왔다고 하는데, 식물은 물에 잠기면 죽고, 그 씨앗도 다 썩고 발아하지 못하게됩니다.
3. 극지방의 아이스코어를 봐도 지난 수만년간에 전세계적인 홍수가 지구에서 없었던 점을 알려줍니다.
이 점들을 통해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가 허구이고 동화라고 저는 결론 내렸습니다.(과학을 믿는 저의 믿음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증인이 주장하는 성경무오설(오류가 없음)과 성경이 하느님의 영감받은 말씀이란 점에 동의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3) 그분이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조직을 사용하신다.
이점에는 크게 장기이식에 관한 교리 변경(수혈), 거듭된 종말시기 변경 건입니다.
이 종교는 수혈거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장기이식이 가능한지 모르고 있는 증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수혈을 거부 하는데 피가 남아있는 장기를 받아 들일수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실제로 한국어로는 검색되지 않아 영어로 찾아야 하는 예전의 파수대나 출판물 자료를 보면 워치타워에서는 장기이식을 식인종취급하며 금지 해왔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겠습니까?
수혈의 경우는 많은 경우 무수혈 수술이라는 대체 치료방법이 있습니다. 분획을 받아들이거나 혈액 회수법등의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 이식이 필요한 사람은 모든 치료법을 다 시행해 본 후 그것을 받지 못하면 죽게되는 경우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있었고, 그제서야 인식의 변화로 장기이식을 허용해준것으로 생각됩니다.
장기이식에서 남의 장기를 받아들일때 다른사람의 피를 제거하고 받아 들일 수 있습니까?
장기에 들어가는 피를 받아 들일 수 있는데, 수혈을 못받아 들이는 건 왜입니까?
증인은 크게는 약 4번의 종말론 주장을 해왔습니다. 1914 1945 1975, 1990년대(1914를 본 이세대가 다 죽기전에 끝이 온다)
매번 빗나갈때 마다 사과는 안하고 뻔뻔하게 교리를 수정해가면서 유지해 왔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라는 개념도 1. 러셀 혼자 2. 기름부음받은 14만4천명 3. 통치채(중장) 으로 여러번의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1919년 이래로 임명받은 충슬종이란 분들이 100년 동안 누가 충슬종인지도 몰랐는데 자기가 충슬종이라고 주장하며 자기네 주장을 성경과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2가지 이유로 전 (3) 그분이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조직을 사용하신다. 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릴때 내 의견을 표현하지 못한채, 억지로 받은 침례였는데 이번주 파수대 내용을 연구하며 참여하며
다시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본 헌신하는 이유 3가지의 반문이었습니다.
※ 개인적인 생각
(1) 여호와께서 실제로 존재하시고 파수대에서 '존재' 의미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이나 사물과 같은 형태를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참 생각해본 결과 하느님은 영이시므로 결코 사물들이나 사람과 같은 존재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이란 신체를 갖지 않습니다. 즉 크기, 색, 냄새, 감촉, 맛 등으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사물은 이러한 오감으로 형성되며, 우리에게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만일 하느님도 이런 오감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것은 피조물이지 신일 수 없습니다. 존재(Being)는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핏 생각에 '없음'의 상태에서 '있음'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편견입니다. 없음이란 우리의 의식 세계에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므로 우리의 생각 자체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있음입니다. 따라서 '없음'이란 인간의 상상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물의 시초이며 기초이며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존재는 우리의 사고 영역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물은 하느님의 작은 한조각일 뿐입니다. 따라서 존재는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상상하는 '없음'은 무엇일까요? 칸트는 없음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① 대상이 없는 공허한 개념으로서의 無 이것은 오로지 이성에만 입각한 것으로 예를 들면 암흑 에너지나 암흑 물질 같은 것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발견하거나 관측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존재해야 하는 에너지와 물질이란 뜻에서 dark energy, dark matter 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여기서 dark란 모른다는 뜻의 암흑입니다. ② 개념이 있지만, 공허한 대상으로서의 無 이것은 상상으로는 실재하지만 대상이 공허한 것이며, 예를 들면 심청이가 임당수에 몸을 던져 용궁에 갔다온 이야기에는 분명히 어느 정도의 개념을 싣고 더욱이 '효'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실재하지 않습니다. ③ 개념이 없는 공허한 직관으로서의 無 이는 개념도 없고 대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환각, 환청과 같은 증세입니다. 이러한 증세로 본 것이나 들은 것이 실재할 수 없습니다. 병적인 증세라 할 수 있습니다. ④ 개념이 없는 공허한 대상으로서의 無 이는 꿈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인데 전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꿈을 꾸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을 실재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無를 네 가지로 분류해 보았는데 흔히 사람들은 무를 사라진 것과 동일하게 이해합니다. 즉 물건이 앞에 있었는데 잠깐 후에 보니 사라졌다 또는 아버지가 죽음으로 인하여 사라졌다 와 같은 것을 無로 취급하지만 이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시야에서 사라졌거나 다른 것으로 변화되었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어 신체가 다른 원소로 변한 것이고 물건은 부서지거나 기타 이유로 물건의 성질이 바뀐 것 뿐입니다. 따라서 있음은 무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존재 그 자체이며 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무라는 개념이 먼저 존재한 것이 아니라, 有의 개념 때문에 無라는 개념이 추론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神의 변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만물에 神性이 곁들여 있다고 바울이 설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전체 집합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집합의 모든 원소들은 하느님의 속성이 변용된 것들입니다. 즉 인간도 하느님의 조각인 것입니다. (2) 성경이 그분의 영감받은 말씀이고 성경은 우리의 조상들 특히 유대인들이 주축이 되어 그들의 역사 가운데서 그들이 진실하게 믿었던 내용이 축적된 것입니다. 축적된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이건 아니다' 라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오랜 기간 동안에 공유되고 검증된 신앙의 기록만이 모여서 이루어진 책입니다. 따라서 자체적으로 영감을 받았다는 표현은 거기에 하느님의 뜻이 실려 있다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감의 의미를 오늘날 파수대에서 사용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나 파수대에서는 영감의 의미를 결코 오류가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정의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의라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구약성경의 영감을 주장한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음식 문제를 왜 논합니까? 영감받은 말씀에 먹지마라면 안 먹어야 하는 것이지 믿음이 강한 사람은 먹을 수 있고, 믿음이 약한 사람은 안 먹는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영감을 받았는데, 1세기에 와서는 영감이 대감이 된겁니까? 디모데 후서 3장에서 바울이 영감을 논한 것은 구약 성경의 말씀이 인간을 교육시키는 면에서 유익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진실하게 하느님을 숭배하고 믿어온 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1세기가 지나서 많은 교파들이 난립하게 되자, 소위 정통 교회라는 곳에서 하나의 규준을 가져야만 신자들이 이단에 발붙이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로소 정경이라는 것이 채택된 것입니다. 물론 정경의 채택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되었지만 그 정경을 선택한 것은 역시 사람들이지 신이 정해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오늘날 개신교파에서 성경의 영감성을 논하는 것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루터가 sola scripture! (오직 성경!) 을 외친 이후인데, 루터가 '오직 성경'을 논한 것은 모든 교리와 조직의 방침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당시의 카톨릭 교회가 많이 부패했기 때문에 1세기 사도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오직 성경을 외친 것이지 밥먹는 습관이나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얼마나 써야 하느냐는 등의 문제를 성경의 근거로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없다 하다도 진실한 신앙인들이 자체의 권위로 거룩하고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1세기 가르침에서 벗어나 상충되면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데서 '오직 성경'을 외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말한 영감의 의미와 오늘날 파수대나 개신교파에서 말하는 '영감'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감 받았다는 것은, 영이 호흡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느님의 호흡이 실려 있다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즉 거룩하고 인간에게 매우 필요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서를 절대적 교과서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숭배하고 믿는 데에 필요한 중요한 말씀이 담긴 참고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세기만 보더라도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주위에 울타리를 친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올무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기록을 절대시 하며 추측으로 해석을 내려 그것을 신자들에게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바리새파의 율법지키는 것보다 더욱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 얹어 주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이 중요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정신이 중요한 것이지 기록된 글자 하나 숫자 하나에 영감성의 의미를 왜곡하여 억지 추측해석을 신자들에게 강요한 워치타워 수뇌부는 그에 합당한 하느님의 심판이 내릴 것입니다. (3) 그분이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조직을 사용하신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느님이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조직을 사용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개인 선지자를 사용했습니다. 워치타워 통치체는 1세기에도 통치체가 있었다는 둥의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조직을 만들지 마란 법도 또한 없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조직적으로 신앙을 한다고 해서 하느님이 정죄할리는 없지만, 문제는 그 조직의 권위가 합의된 권위가 아니라, 신적 권위를 가졌다는 허구적 주장에 있습니다. 성령, 보혜사 동방의 의인,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등의 직함은 그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조작된 권위이며 따라서 그것은 스스로 컬트임을 드러내는 짓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조직이라면 그와 같은 신적 권위가 아니라, 합의된 권위만으로도 충분해야 합니다. 만인 제사장의 원칙으로 볼 때 누구나 그러한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따라서 합의로 권위를 도출하고, 가능하다면 윤번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적 권위를 가진다는 것은 종교 조직을 계급화시키는 것이며 율법주의의 한 형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