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설교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 27장 45-51절)
오늘은 종려 주일이고 이번 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는 수 많은 군중들 사이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당당하게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마지막 사역을 감당하시고 십자가 고난과 희생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종려 주일과 고난 주간은 예수님의 마지막 가신 길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붙잡고 한 주간 고난 당하신 우리 주님을 깊이 묵상하시고 구원의 은혜 앞에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는 한 주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종려 주일 이후에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의 행적에 대해 한 번 종려 주일 이후 일 주일 간의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월요일에는, 성전 청결과 무화과 나무를 저주(행함은 없고 형식만 가득)하셨고, 화요일에는, 유대지도자들과 논쟁(5대논쟁-권세,납세,부활,계명,다윗)하셨고, 수요일에는,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향유 부은 사건이 있었고, 목요일에는, 최후의 만찬, 제자 세족식,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었고, 금요일에는, 새벽에 잡히시고, 심문과 매질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고, 토요일에는, 무덤에서 안식하셨고, 부활 주일 새벽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종려 주일에서 부활절 아침 까지 7일 동안, 군중들의 열렬한 환호와 영광을 받으시고,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기는 배신 가운데서도 나머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여 주시고, 땀 방울이 핏 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시고, 처절하게 죽임 당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극적인 장면이 연속 됩니다. 엄청난 반전의 이 극적인 드라마는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고귀한 최대의, 최고의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고 통곡이 넘쳐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장면입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피 한 방울 까지 다 쏟아 내신 주님의 고귀하신 희생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언덕의 이름은 해골이라는 뜻을 지닌 ‘골고다’라는 언덕이었는데, 이 이름은 ‘굴굴타’라는 아람어를 헬라어(그리스어)로 음역한 단어입니다. 골고다가 히브리어로는 ‘굴골레트’이며, 라틴어로는 ‘칼바리아’이고, 영어로는 ‘갈보리’로 불립니다. 골고다는 신약성경 원어인 그리스어 이고, 갈보리는 영어라는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양쪽 옆에는 강도 둘이 함께 매달렸습니다. 44절에 보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요한과 여인들을 제외 하고는 모든 지켜 보던 사람들, 그리고 함께 매달린 죄수들 조차 욕하고, 조롱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서서히 고통가운데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은 제 3시로, 지금 시간으로는 오전 9시 였습니다. 본문 45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세 시간이 지난 제 육시(정오)부터 제 구시(오후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어둠이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마치 애굽에서 흑암 재앙이 3일 동안 나타났던 것처럼 이 어둠은 초자연적인 현상, 즉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현장에 임하고 계셨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구경꾼들이 조롱하고 비웃는 가운데 십자가 아래의 사람들을 향하여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른바 가상 칠언입니다. 제 1언의 말씀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것은 용서의 기도입니다. 제 2언의 말씀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이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제 3언의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7). 이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제 4언의 말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이것은 비탄의 절규입니다. 제 5언의 말씀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이것은 고통의 호소입니다. 제 6언의 말씀 : “다 이루었다”(요19:30). 이것은 승리의 선언입니다. 제 7언의 말씀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것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제 3시(오전 9시)부터 제 6시(정오)까지 3시간 동안에 1언~3언까지를 말씀 하셨고, 그리고 신음소리만 들릴 뿐 긴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그후 제 6시(정오)부터 제 9시까지 어둠이 밀려 왔습니다. 제 9시(오후 3시)가 되자 드디어 예수님이 반응을 하십니다. 46절을 읽어 드립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아멘. 예수님은 정오부터 오후 3시 까지 3시간 동안 단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시다가 이 말씀을 포함하여 가상칠언 중 제 4언~7언 까지의 네 마디를 연속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크게 소리질러 이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비탄의 절규를 쏟아 내셨습니다. ‘엘리’는 하나님을 뜻하는 ‘엘’ 이라는 단어에, 1인칭 소유격인 ‘나의“라는 접미어가 결합되어,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은 엘리라고 하지 않고 아람어인 ‘엘로이, 엘로이’ 라고 하셨을 겁니다. 지금 십자가에서 절규하는 예수님은 죄인이 아닙니다. 어떠한 죄도 없으신 분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와 동일하신 전능자 이십니다. 그런데 왜 전능자인 그 분이 이토록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비탄에 젖은 피 맺힌 절규를 쏟아내고 있습니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납득되지도 않는 상황입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왜 인간이 되셨으며,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가 깨달아지고, 믿겨지며, 감사가 되고, 은혜가 되고, 소망이 되는 단 하나의 구절을 꼽으라면 저는 이 구절을 말하겠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토록 처절한 외침이, 나의 죄 때문에, 나의 멸망당할 형벌 때문에 부르짖는 처절함 이었다는 사실이 진정으로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처절한 고통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은, 매일이 고난이요, 낙심이요, 절망이 넘쳐나는 처절환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뭇 인간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위로와 용기가 됩니다. 부활절을 앞둔 고난 주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을 붙들고 찬양하시고, 깊은 묵상과, 부르짖으며 비탄의 심정으로 절규하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우리 주님이 나의 하나님 이시오, 나의 주인이시오, 나의 왕이시오, 나의 구원자라는 믿음과 은혜가 성령의 감동으로 강력하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그로 인하여 내가 지닌 고난과 눈물과 상처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새 삶의 능력이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성령 충만의 감동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이하셨습니다. 이 죽음 앞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가슴을 찢고 비통한 심정으로 울던 여인들처럼 그 자리를 떠나지 말고 지켜 서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에게 부탁하신 최후의 말씀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예수님에게 온전히 의탁하는 진실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 기도만이 구원의 은혜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참회와 감사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서 마지막 외침을 언제나 잊지 마시고, 이 말씀과 함께 고난 주간에 진실한 회개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혼이 소성케 되는 은혜 가운데 지내시는 우리 샘물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