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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모방
토마스ㆍ아 켐피스
죽음에 대한 묵상
1. 너의 이(地上)생활은 미구(未久)에 끝이 온다. 그러므로 너는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오늘 있던 사람이 내일은 없어진다. 그리하여 눈에 다시 보이지 않고 맘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아아, 일전의 일만을 생각하고 장래에 대하여는 다시 아무 고려가 없는 사람의 심정은 얼마나 우둔하고 얼마나 완고한 것인가! 너는 모든 사상과 행동으로써 네 몸을 이렇게 준비하여 두라. 즉 마치 오늘 이 세상을 떠나려는 사람 같이. 청명한 양심을 가지라. 그러면 「죽음」는 그리 두려울 것이 아니다. 죽음에서 도망하려하기보다는 죄를 피하는 것이 나은 일이다. 네가 만일, 오늘에 준비가 없으면 어떻게 내일에 준비가 있을 수 있을까? 내일이 불확실한 것이거든 어떻게 네게 내일이 올 것을 기약할까?
장수함으로 인하여 조금도 좋은 것이 없다면 그 장수가 무슨 소용이 있나? 아서라, 사는 날이 길면 우리 생활이 아름다워지기보다는 도리어 죄가 커지는 때가 많다. 아 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루하루를 잘 살 수 있었으면! 허다한 사람들이 개심(改心) 이후의 연수(年數)는 계산하나 그러나 개전(改悛)의 생활의 참 열매는 실로 드문 일이다. 죽음을 두려운 일이라 하면 장수는 아마 보다 더 위태한 일이다.
내 목숨이 끊어지는 시각을 항상 눈앞에 보며 날마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여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너는 언제나 사람의 죽음을 보거든 너도 꼭 같은 길을 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을 깊이 생각하여 두라. 아침이면 밤이 오기 전에 혹 죽을 수 있음을 생각하고 저녁이 오거든 감히 네게 내일이 오리라 기약치 말라. 너는 항상 준비하여 가지고 있으라. 그리하여 죽음이 너를 불의에 잡아가지 않도록 생활하라. 사람은 갑자기 저희가 구하지 않을 때에 죽게 된다. 인자(人子)는 우리가 그 강림하시기를 헤아리지 못할 때에 올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2:40) 그 최후의 순간이 올 때는 너는 네 과거 전생애에 대하여 전연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될 것이요 지금껏 그렇게 무사려(無思慮)하게 태만하게 지냈음을 한없이 슬퍼하리라.
2. 오ㅡ 그는 얼마나 명철하고 행복스런 사람인가 최후의 시각에 가서 그렇게 했더라면 하고 간원할 그대로를 지금 생전에 그렇게 살려고 힘쓰는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고 덕업(德業)의 진취를 열망하고 훈련을 사랑하고 쓰라리게 회개하고 즐겨 순종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여하한 곤란이라도 견디고 참는 일 이것이 우리에게 기쁨으로 죽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건강한 때에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으나 병이 들면 아무것도 불능하다. 병으로 인하여 더 잘 자라고 갱신되는 사람이 없는 것같이 밖으로 많이 방랑하여서 성결하여지는 자가 없다.
붕우(朋友)도 친척도 의뢰치 말라. 후세상(後世上)에까지 네 영혼의 안부에 대한 주의를 잃지 말라. 사람들은 네가 알새도 없이 미구(未久)에 너를 잊어버릴 것임으로써다. 다른 사람에 의뢰하는 이보다도 기회 있을 때에 용심(用心)하고 미리 준비하여 둠이 나은 일이다. (예레미야, 17:5) 네가 만일 지금 네 자신을 위하여 주의치 않으면 누가 저 세상에서 너를 위하여 생각하여줄까?
현재 가지고 있는 시간이 귀하다. 지금이 구원의 시기요 지금이 받을 수 있는 때다. (고린도후, 6:2) 그러나 아서라, 장차 후세상의 영원한 생명을 확실히 준비할 수 있는 이 세상의 시간을 너는 이렇듯 낭비하고 있음은 무엇인가! 때가 장차 올 것이니 그때에 가서는 네가 고치기 위하여 한낱 혹은 한 시(時)를 구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네가 허락되리라고도 말할 수 없다. 오오 사랑하는 자여 너는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고 잊지마라 그리하면 얼마나 큰 위험에서 몸을 구하고 얼마나 큰 공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인가!
임종에 가서 두려워함이 없이 기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지금 살도록 힘써라. 그리스도로 더불어 살기 위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죽는 일을 배워라. 아무 장해 없이 그리스도에게 가기 위하여 모든 지상 일을 버리기를 배워라. 통회로써 네 몸을 징계하여서 확신을 가지게 하라.
3. 아 아 어리석은 자여 한날을 기약할 수 없는 네가 어찌하여 오래살기를 미리 계산하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임을 당하고 불의에 잡혀가는 바가 되었나? 이런 소식을 얼마나 많이 듣고 있나 누가 칼에 죽었다 누가 빠져죽었다 또 누구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었다 운운하는 이 사람은 먹다가 죽고 저 사람은 놀다가 죽고 하나는 불에 하나는 검에 하나는 역병에 또 하나는 도적의 칼에 죽었다 운운하는. 그렇듯 모든 사람의 마지막은 죽음이요 사람의 생명은 그림자같이 문득 가버린다. (시편, 144:4) 네가 죽은 후에 누가 있어 너를 기억하고 누가 너를 위하여 기도할까?
하라 하라. 내 사랑하는 자야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하라. 네가 죽으면 네 죽은 후에 내게 어떤 일이 임할 것은 너는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지금 때가 있는 동안에 영원한 부로써 네 몸에 쌓으라. (누가복음, 12:21, 23) 네 구원만을 생각하라. 하나님 일밖에 아무것도 염려치 말라. 이제 하나님의 성도들을 존경하여서 네 몸에 친고(親故)를 지어두라 그리고 그들의 행한 것을 모방하여 네가 이 생애에서 실패할 때에 저들이 너를 영원한 곳에 영접하게 하라. (누가복음, 16:9)
이 땅위에서 과객이요 순례자요 세상일에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같이 네 몸을 가지라 네 심정을 자유롭게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라, 너는, 여기 거할 곳을 가지지 않았다. (히브리, 13:14) 저곳에다 네 기도와 탄식을 눈물과 같이 하여 날마다 보내라 그리하여 죽은 후에 네 영혼이 즐거움으로써 죽음을 지나 주에게로 가게 하라. 아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애인은 적다
1. 예수는 지금 그의 천국을 사랑하는 자를 많이 두었으나 그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두지 못하였다. 그는 위안을 원하는 자를 많이 가지었으나 고난을 원하는 자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의 식탁의 동무는 많으나 금욕의 동무는 없다. 모든 사람이 그와 한가지로 즐기기는 원하나 그를 위하여 무슨 고통을 견디려는 자는 없다. 떡을 떼는 대는 예수를 따르는 자가 많으나 그의 수난의 잔을 마시는 대 참여하는 자는 없다. (마가복음, 10:38, 14:36) 그 이적을 찬탄(讃嘆)하는 자는 많으나 그의 십자가의 수욕(羞辱)을 쫓는 자는 없다. 허다한 사람이 핍박이 오지 않는 한까지 예수를 사랑한다. 허다한 사람이 그에게서 무슨 위안을 받는 때까지 그를 찬송하고 축복한다. 그러나 만일 예수가 자신을 숨기어 일시라도 저희를 떠나면 저희는 불평을 말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너무 과한 낙망에 떨어져 버린다. (요한복음, 12: 36)
그러나 자신의 어떤 위안을 위하여서가 아니고 예수를 위하여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든 고난과 번민 속에서도 역시 평안할 때와 일반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리하여 그가 비록 저희에게 위로를 주지 않을지라도 저희는 역시 그를 찬송하고 그에게 감사하려한다. 아아 자기 애(愛)나 자기 이(利)를 섞지 않은 순전한 그리스도애(愛)는 얼마나 힘 있는 것인가!
항상 안락만을 구하는 자는 고용인(雇庸人)이라 부름이 마땅치 않은가? 항상 자기의 이익과 소득만을 생각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애인이라기보다도 자기의 애인이라 부름이 지당하다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2.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그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어디서야 볼 것인가? 모든 지상의 것에 대한 애욕을 다 내버리는 그러한 영적 인물은 보기가 어렵다. 참으로 영에 주리고 쾌락을 주는 모든 것에 대한 애욕을 다 버린 사람이 어디 있나? 그의 값은 루비ㅡ 보다도 더 귀하다(잠언, 31:10)
어떤 사람이 있어 그 전 재산을 주어도 그것도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다. (아가, 8:7) 또 크게 참회를 행하여도 그것도 오히려 적은 일이다. 또 모든 지식을 통달하여도 그것도 오히려 멀다. 또 위대한 덕행이 있고 붙는 듯한 열심이 있어도 그래도 오히려 많이 부족함이 있다. 곧 한 가지 그에게 제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스스로 자신을 버리고 완전히 자기를 떠나 자기애(愛)로부터 오는 것을 아무것도 머물러둠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하여야 할 것이라고 아는 바는 이를 다 하고 난후에도 그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많이 존경을 받을 만한 것에 대하여서도 그는 너무 과히 계량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도리어 진리에 순종하여 「진리」가 말하기를 『네게 명한 바를 다하거든 너는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한다』 하였던 것같이 그는 자기가 무익한 종임을 깨달아야 한다. (누가복음, 17:10)
그러면 그는 비록 참으로 영에 주리고 벗고 선지자와 같이 부르짖어 나는 외롭고 곤고하옵나이다. 할지라도(시편, 25:16) 자기를 가장 낮은 곳에 둘 줄 아는 그보다 더 부한 사람이 다시없고 더 힘있는 사람이 다시없고 더 자유로운 사람이 다시없다.
성서조선 1930. 10월, 21호
저작집30; 없음
전집20;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