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祭文)
장중순(張仲順) 제원(悌元)에 대한 제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 슬프오. 자네가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이오. 나이가 고희(古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년이니 장수하지 못했다고 이를 수 없으나, 나의 친하고 사랑하는 정에 어찌 만족하다고 여길 수 있겠소. 자네와 내가 친하고 사랑하는 정은 군이 잘 아는 바이오. 만일 그 같은 것을 말한다면 내외의 집안이 모두 같은 관향인데 한 근원에서 분파됨이 모두 멀지 않으며, 나이가 나보다 두 살 아래이니 또한 동년과 가깝소.
고을이 같고 마을이 같으며 어릴 때에 배운 책이 같은 책이었고 장성하여 노닌 것도 방소를 함께 하지 않은 적이 드물었소. 평소 따라다닐 적에 만약 질병과 원행(遠行)이 아니면 하루도 서로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이와 같다면 정분의 깊음이 어떻다 하겠소.
한 번 난리를 겪은 뒤로부터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떠돌아다니기를 여러 해 하였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 나는 옛터를 지키고 그대는 멀리 떨어진 마을에 거주하니 서로 만나는 날이 자연 드물지 않을 수 없었소. 우리는 항상 이 때문에 서로 한탄하였는데 어찌 오늘 영구(靈柩) 앞에서 영결할 줄을 생각하였겠소. 일찍이 보면 군은 비록 노년에 들었으나 머리가 세지 않고 얼굴이 그대로 붉으므로 나는 반드시 오랜 수명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무슨 이유로 갑자기 별세하였단 말이오.
아, 수구(樹邱)와 죽마(竹馬)의 일을 누구와 함께 말하며 잔을 잡고 시를 논하던 이야기를 다시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늙은이의 슬픈 회포를 어찌 감당하겠소.
한 잔 술을 받들어 올리고 몇 줄의 제문을 가지고 또 어떻게 이 정을 다할 수 있겠소. 아, 슬프오.
祭張仲順 悌元 文
嗚呼哀哉。君其乃至於斯耶。年未及稀者四歲。則不可謂不壽也。而在我親愛之情。烏得以爲足乎。君我親愛之素。君所知矣。若言其所同。內外之姓。皆同貫也。而同源之分。皆未遠也。齡後我二歲。則亦幾於同也。鄕同也里同也。幼時所學同書也。長而所遊不同其方者亦鮮也。平昔相從。若非疾病遠出。蓋無日不相同也。夫如是則情分之深。爲如何矣乎。一自亂離以來。各奔東西者屢年。而歸鄕之後。我守舊基。君住隔村。則相遇之日。自不得不罕矣。常以此爲相歎。豈意於今就柩前而永訣哉。嘗見君雖入老境。髮不白而顔猶渥。謂必享遐齡焉。何緣促盡之遽爾乎。嗚呼。樹邱竹馬之事。誰與相說。把杯論詩之話。不復更聽矣。思至於此。曷任老懷之慽。一酌之奉。數行之詞。又何可以盡此情乎。嗚呼哀哉。
여형(呂兄) 윤(倫)에 대한 제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형이 세상에 살아계실 때에는 훌륭한 덕과 행실이 있었으니 비록 한 세상에 학자로 이름난 자라도 형에게 견줄 이가 드물었습니다. 우리 형의 훌륭한 덕과 행실로 천도(天道)의 복과 도움을 받는 것이 진실로 당연한 이치인데 집안에 참혹한 화를 당한 것이 끝내 형보다 더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알 수가 없습니다.
짐작건대, 국가의 큰 운수가 비색하여 온 나라의 사람과 물건이 모두 사라지고 없어지니 하늘 또한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않으므로 형이 이러한 운수를 만나 함께 화를 당한 것입니까. 혹 하늘이 안정되지 않은 지금에는 비록 어쩔 수 없으나 하늘이 안정되고 난 후일에는 기대할 바가 있을 것이니, 형이 남겨두고 간 이 한 아이가 장차 형이 선행을 한 보답을 받을 것이기에 그 희망이 아직 끊기지 않았는지요.
형의 이 아이가 저에게 와서 의탁하여 겨우 실낱 같은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리의 굶주림과 추위에 손상되어 형기(形氣)가 위축되고 다하여 제대로 장성하지 못하며, 지각이 어둡고 미련하여 열려 통달하지 못하오니, 이 아우는 항상 이것을 염려합니다. 형께서는 묵묵히 돕고 붙들어 주어 행여 이 아이로 하여금 끝내 성립하고 열어 통달시켜 주시겠습니까.
형의 가문과 집안들이 난리에 보전된 자가 없어 여씨의 제사가 장차 끊기게 되었으니, 형의 평소 효성으로 어찌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서 애통해 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이 아이를 보우함이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을 것입니다.
아, 형은 평소에 이 아우를 보기를 동기간과 다름없이 하였는데 아우는 너무도 불초하여 형이 별세한 뒤에 일찍이 그 정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유명간에 서로 저버림이 누가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처음 형이 별세했을 때에 하인들의 손에 임시로 묻혀졌는데 이장(移葬)을 하지 못하였고, 누님의 뼈가 관에 들어가지 못하였는데 계책을 세우지 못하였으며, 세 아이의 뼈를 형 곁에 옮겨 묻지 못하고, 한 딸을 장송(葬送)함에 또 영구히 보전할 땅을 가리지 못하였으니, 이는 비록 난리에 서로 막혀서이나 또한 어찌 이 아우의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 형께서 세상에 살아계시면서 이러한 사변을 만났다면 반드시 이를 위하여 잘 조처하셨을 것입니다. 어찌 오늘날 제가 어쩔 수 없다고 버려두어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아, 증산(甑山)에서 한 번 작별한 것이 계사년 정월 초육일이었으니 어찌 이 날 작별이 영원한 작별이 될 줄을 알았겠습니까.
아, 우리 형은 참으로 선인(善人)이온데 이 세상에서 다시 뵙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 술잔은 바로 이 아우의 무궁한 정이옵니다. 아, 슬프옵니다.
祭呂兄 倫 文
兄之在世。有德有行。雖一世以儒名者。鮮能比焉。以吾兄之德與行。受天道之福佑。固其理也。而家禍之慘。竟莫如兄焉。此不可知也。意者。國家之大運凶否。擧一邦人物。俱歸於消盡。天亦無分於善惡。兄丁此運而同於禍耶。其或未定之天。雖無何於此時。而已定之天。其有待於他日。則兄尙有此一兒。將爲善之報。猶未絶其望耶。兄兒來託於弟。僅連絲毫之命矣。然積傷於亂離飢寒。形氣萎乏。不能長成。知覺癡昏。不能開達。弟常以此念之。兄其冥佑陰扶。庶幾使此兒終能成立而開達耶。兄之門族。亂離中未有能保者。呂氏之祀。殆將絶焉。
以吾兄平日之孝誠。其不隱痛於冥冥中耶。宜其保佑此兒者。無所不至也。嗚呼。兄在平日。視弟無異同氣。弟則無狀。兄亡之後。曾未有致其誠者。幽明相負。孰此甚焉。始兄之喪也。權藏於僕隷之手。而不能改葬。姊骨未入於木。而莫爲之計。三兒之骨。不能移託於兄側。一女之送。又不能擇可保之地。此雖莫非時難之致阻。亦豈非弟誠之自薄也。若使吾兄在世。而遭此等事變。必能爲之處置矣。豈若弟之今日置之無可奈何之地。而莫爲之力也。嗚呼。甑山一別。乃癸巳元月之初六日也。此日安知此別爲永別也哉。嗚呼。吾兄眞善人也。其不復見於今世矣。此酌。乃弟無窮之情也。嗚呼哀哉。
송중유(宋仲裕) 후창(後昌)에 대한 제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 그대는 세상을 뜨기 하루 전 아침에 이미 편지를 보내왔고 저녁에 또 다시 답서가 오니, 두 편지는 모두 나를 한 번 만나보고 이별하고자 하는 정이었소. 말한 뜻이 간곡하고 간절하여 정신이 조금도 혼미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것만 믿고는 혹 한 철이나 한 달을 연명하리라 생각하였는데 마침내 그 다음날 부음이 이르니 죽음에 이르도록 정신이 혼미하지 않은 자가 아니겠소. 삼가 이 두 편지를 보관하였다가 그대 아들이 인간의 일을 좀 알기를 기다려 그에게 주어서 부친의 수적(手跡)을 보고 감동하게 하려 하오.
아, 사람은 진실로 복을 완전히 받기가 어렵소. 살아감이 험하고 곤궁한 자들은 으레 수명을 많이 누리는데 이제 그대는 험하고 곤궁함이 이미 막심하였는데도 또 수명을 길게 누리지 못함은 어째서이오.
아, 말을 가리지 않고 몸을 검속하지 아니하여 비록 스스로 법도에서 벗어났으나 성품이 어긋나지 않고 마음이 간사하지 않으니 또한 취할 만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소. 일찍 장자(長者)의 문에 종유(從遊)하여 때로 좋은 문견이 있었으며, 말년에는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옛날 역사를 기억하였으므로, 나는 맑은 저녁과 달밤에 그대를 만날 때마다 그 들은 바를 이야기해 달라고 청하여 들으면 또한 나의 한 유익함이 될 수 있었는데, 이제 모두 끝났으니 어찌하면 다시 들을 수 있겠소.
아, 나는 늙고 또 병들어 그대가 아플 적에 자주 문병하지 못하였고 그대가 생을 마칠 때에 와서 영결하지 못하였으니 평소 저버리기 어려운 의리가 어디에 있겠소.
그대의 어린 사내아이가 만약 지각이 있다면 내 감히 지도하는 방법에 마음을 다하지 않겠소. 술한잔을 올리니 이 마음 밝게 알아주기 바라오.
祭宋仲裕 後昌 文
嗚呼。吾君屬纊前一日。朝旣致書。至暮又復書來。兩書皆願見一訣之情也。辭意懇篤切至。精神少不見其耗減。謂可恃此。或延時月。乃其明日而計至。豈非抵死能不迷者哉。謹藏其兩書。將待君胤之稍解人事而與之。使之爲手跡之感也。嗚呼。人固全其福難矣。其爲生也險厄窮困者。例或饒於壽命矣。今君則其險厄其窮困。旣莫甚矣。而又不能饒其壽命。何哉。嗚呼。言不擇而身不檢。縱自逃於繩墨。性不戾而心不回。其亦可取者非一矣。早遊長者之門。時或有好聞見。晚涉經史之中。能記得古實。故每逢君於淸宵月夕。請言其所聞而聽之。則亦可謂吾一益也。今其已矣。那得更聽。嗚呼。顯光老且病矣。君疾不能頻問。君終不能來訣。生平難負之義安在哉。君之穉男。若稍有知覺。敢不盡心於指敎之方耶。酌以一奠。冀昭此心。
이경발(李景發) 천배(天培)에 대한 제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공의 후중한 자질과 내면을 향하는 학문과 효도하고 우애하는 행실과 돈독하고 화목한 기풍은 마을 사람들이 일찍이 함께 기뻐하였으니, 별세한 오늘에 그 누가 애석해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사사로운 애통함이 남보다 더욱 깊으니 우리 외가의 가문이 심히 쇠하였습니다.
근세 이래로는 비단 문호(門戶)가 빈한할 뿐만 아니라 사람도 많지 않으니 쇠하고 미약한 가문을 붙들어 떨치는 책임이 오직 공의 곤발(昆發)ㆍ계발(季發)ㆍ중발(仲發) 형제에게 깊이 기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중발(仲發) 형이 이미 병으로 폐인이 되었고 공이 우리 친척들을 버림이 또 이와 같이 갑작스러우니, 쇠한 가문의 애통함이 어찌 다만 친족들의 초상에 으레 슬퍼하고 친구들이 함께 아까워하는 정도이겠습니까.
더구나 우활하고 용렬한 나는 반평생을 어긋나게 살아왔는데 특히 공께서 마음으로 허여해 주심을 입어 삭막한 회포를 혹 서로 만날 때에 풀곤 하였사온데, 이제 또 다시 공을 잃었으니 외롭고 외로운 슬픔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아, 난리를 치른 빈한한 이 종적은 먼 지방에 의탁해 와 있어서 공이 별세할 때에 이미 염습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공이 묻힐 때에 또 구덩이에 임하여 곡하지 못하였으니, 평생의 한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습니까.
아, 며칠 전부터 저는 일 때문에 이 곳에 머물면서 날마다 이 곳의 여러 친척들과 함께 마주하여 혹 담소를 나누니 비록 감히 말할 때마다 번번이 언급하지는 않으나 공을 그리워하는 깊은 애통함이 마음 한 구석에 감추어져 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공은 저의 이러한 회포를 아십니까.
오늘 돌아가야 하므로 슬픈 정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습니다. 이에 계발(季發)에게 청하여 술과 음식을 마련하게 하고 이것을 올려 슬픈 마음을 고하오니 부디 한번 흠향하소서.
祭李景發 天培 文
公之厚重之質。向裏之學。孝友之行。敦睦之風。鄕閭之所曾同悅。云亡此日。孰無其惜。夫我則自有私慟之深於人者。吾外門其衰甚矣。邇世以來。不但門戶寒薄。人亦無多。惟其扶衰振微之責。獨賴有公之昆季仲發兄弟。而深有所致望矣。今也仲發兄旣以病廢自分。而公之棄捐我親黨。又如此其遽焉。則衰門之慟。豈但親族之例哀。知舊之共惜而已哉。況我疏庸。半世齟齬。偏荷公以心相許。而索漠之懷。或有開於相遇之時矣。于今又失公焉。踽踽之悲。其可堪耶。嗚呼。亂離寒蹤。流託遠境。公之歿也。旣違與斂。公之葬也。又闕臨穴。生平之恨。孰此長焉。嗚呼。玆數日來。顯光以事留于此日。共在此諸親。對或談笑。雖不敢每發於言語。而思公深痛。未嘗不藏於一邊。公其知此懷也否。今日當返。情不能自抑。玆請季發。令措酌羞。奠以吿衷。庶幾一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