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구지봉(金海 龜旨峰. 사적. 경남 김해시 구산동 산81-2번지 일원)
『삼국유사(三國遺事)』「가락국기」편 기록에 의하면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하늘에서 탄강(誕降)하였고, 아도간, 유천간 등 9간과 백성들의 추대에 의해 가락국의 왕이 되었다는 가야의 건국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또한, 구지봉에서 구간과 백성들이 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춤을 추며 불렀다는 구지가(龜旨歌)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로 고대 국문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B.C 4세기경 남방식 지석묘가 있어 그 역사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석묘 상석에는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구지봉은 이처럼 가야 건국설화와 관련되는 유적으로 우리나라 고대국가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곳이다.(출처:국가유산청)
구지봉은 가락국 건국에 따른 가야문화의 발생지인 김해 구산동에 있는 작은 산봉우리로 원래는 거북이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구수봉이라 불리었다.
구지봉은 신라 유리왕 19년에 하늘에서 황금알이 내려와 김수로왕이 탄생했다는 전설이 전하여지는 곳으로, 현 수로왕비릉이 있는 평탄한 지역이 거북의 몸체이고 서편으로 쭉 내인 것이 거북의 머리모양이다. 1908년 참봉 허선이 세운 ‘대가락국 태조왕 탄강지지’란 석비(石碑)가 있으며, 고인돌무덤의 덮개돌 위에 ‘구지봉석’이라 새긴 글자가 전하여지고 있다.(출처 : 김해시청)
구지봉은 봉우리라 불리기에는 작은 동산에 불과한 규모이지만 가야국 건국 설화인 ‘구지가(龜旨歌)’가 생겨난 곳으로, 국문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구지봉 유적의 거북이 목에 해당하는 부분에 일제가 고의로 도로개설을 하여 원형을 훼손시켰다고 전해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구지봉은 서기 42년 수로왕이 탄강한 성스러운 장소이다. 구릉의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다고 하여 구수봉, 구봉 등으로 불리운다.
삼국유사 가락국에 실린 수로왕의 탄강설화에 의하면 서기42년 당시 이 지역을 다스렸던 구간과 백성들이 구지봉에 모여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보라색줄에 매달린 황금상자가 내려왔으며. 상자에서 나온 6황금알을 깨고 태어난 분들이 6가야를 세운 왕들이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는 구지봉이 가야500년 역사의 출발지인 동시에 고대 국문학상 중요 서사시인 "구지가"가 탄생한 곳임을 알려준다.(출처 : 김해시청)
龜旨歌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강신할 때 토착민이던 구간에게 부르게 했다는 노래. 김해시의 구지봉에서 노래를 부르자 6개의 알이 내려왔고 이후 6명이 6가야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4구의 한시 형식으로 전해진다.
龜何龜何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약불현야. 내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구지봉에서 구간과 백성들이 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춤을 추며 불렀다는 구지가(龜旨歌)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로 고대 국문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B.C 4세기경 남방식 지석묘가 있어 그 역사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석묘 상석에는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구지봉은 이처럼 가야 건국설화와 관련되는 유적으로 우리나라 고대국가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