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 최종호
저녁을 먹고 동네 체육 공원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운동하고 있었다. 남은 강아지 한 마리와 반대 방향으로 산책을 나갔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나, 이상해. 움직일 수가 없어. 넘어졌는데 얼굴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아.”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멘트 포장길이어서 평탄하기에 다칠 만한 장소가 없는데 의외였다. 어디에서 그랬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한참을 가다 보니 길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왼쪽 광대뼈 근처 상처는 그리 심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코 아래는 달랐다. 길쭉하게 패인 흔적이 역력했고, 계속 피가 나고 있었다.
집에 와서도 멈추지 않았다. 금방 나을 상처가 아니었다. 아내는 “큰아들 결혼식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라며 근심이 가득했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늦은 시각이어서 약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다행히 근처에 24시간 문을 여는 곳이 있었다. 소독약과 연고로 응급 처치를 했다. 지혈해서 피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넘어진 것이 내 탓이라고 했다. 검은 푸들 깜순이에게 짜증을 내는 바람에 신경이 쓰여 그렇게 된 것이란다. 내가 어디쯤 오나 쳐다보다가 발을 헛디뎌 다리가 꼬였단다.
강아지를 키운 지 꽤 되었다. 그런데 하얀 푸들 미미가 몇 년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행여 밖으로 산책 나가지 않는지 두 녀석이 번갈아 가며 내 눈치를 살핀다. 날씨가 좋으면 간간이 데리고 나간다. 이날은 내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만해도 아내는 운동할 생각이 없었다. 쇼파 밑으로 들어간 미미를 기다렸다가 뇌수막염 약을 먹이려고 했다. 그 시간이 되면 어찌 알고 슬그머니 숨어 버리기에 나오면 붙잡으려고 노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밖에 데리고 나가려는 낌새를 보이면 행동이 부산하고 어린애처럼 조른다. 이런 특성을 활용하면 금방 속았는데 이제 그 효험이 다했는지 아무리 유인해도 기미가 없자 깜순이를 데리고 나와 버렸다.
평소 같으면 쉽게 배변하던 녀석이 그날따라 달랐다. 한참을 가다가 하필이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실례했다. 더구나 똥이 털에 묻었는지 엉덩이를 땅바닥에 대고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닦아 주어도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녀석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향하는데 아내가 미미를 데리고 나타났다. 짜증을 냈더니 강아지를 바꾸잔다. 괜히 데리고 나왔다며 실망하던 터라 잘 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아내는 통증이 심해 밤새 잠을 설쳤다. 진통제를 사 오라고 할 것인데 그 말을 안 했다며 후회했다. 깜순이는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방문을 긁었다.(거실에서 자던 녀석들이 새벽 네다섯 시만 되면 안방 문을 긁으며 열어 달라고 보챈다.) 평소 같았으면 들어 주었겠지만, 그날은 내키지 않았다. 아내가 다친 것이 깜순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녀석은 내가 화가 난 줄도 모르고 계속 들어가려고 했다. 식탁 의자에 걸려 있던 수건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겁을 주었다. 꼬리를 내리고 이리저리 몇 번 피해 다녔다. 녀석을 끝내 들여보내지 않았다. 새벽녁에 겨우 잠든 아내를 깨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녀석은 밥도 먹지 않고 움직이는 것도 신통치 않았다. 퇴근하면 꼬리가 떨어질 듯이 흔들어 대며 안아 주라고 하던 녀석이 쇼파에 웅크리고만 있었다. 아내는 “내가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옆에서 끙끙거리며 핥아 주었어.”라며 충격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원망할까 봐 아침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지 않았다. 녀석은 노란 위액만 여기저기에 토해 냈다. 병원에 알아 보니 많이 놀라면 그럴 수도 있단다. 그러다 죽는 개도 있다고 의사가 말했단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흘째 되는 날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두고 보기가 안쓰러웠다. 말 못 하는 짐승한테 해코지했나 싶어 편치 않았다. 퇴근하고 나서 쇼파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의 머리에 얼굴을 대고 “너를 때릴 생각은 없었어. 너 때문에 엄마가 다친 것도 아닌데 미안하다. 용서해 주라.” 진심으로 사과했다.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배변판 주변에 설사가 심했다. 피까지 섞여 있었다. 그날도 아내가 집에 없는 틈을 이용해 사과했다. 저녁에 운동하고 들어오니 손에 밥을 들고 입에다 넣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삼키지 않고 계속 뱉었다. 물에 불려서 먹여 주는 방법을 쓰자 조금 받아들였다. 안 먹어도 되는 다른 녀석은 그 밥이 맛있는지 계속 달라며 속없이 따라다녔다. “내일 병원에 데리고 가 봐.” 의료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병원비 감당을 못 한다며 하루 더 지켜보잔다. 이튿날 아침에는 설사 흔적은 있었으나 전날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조금 희망이 보였다.
체구도 작은 데다 먹지 못해서 며칠 만에 등뼈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다음 날도 기운을 차려야 한다며 먹여 주었다. 심지어 영양죽까지 쑤어서 주는 것 같았다. 받아먹는 것도 조금씩 나아졌다. 아내가 다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아침이었다. 배변판 주변에 설사는 온데간데없고 굵은 똥만 여기저기 보였다. 순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여보, 이제 깜순이 나았나 봐!” 아침잠이 많은 아내도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그날 녀석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는데 꼬리가 떨어지도록 흔들어 대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반겨 주었다. 며칠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고마웠다. 녀석을 번쩍 들어 “깜순아 고맙다. 다음에는 그런 일 없을 거야.”라며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