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은 이렇게 시작된다 / 정희연
대전에서 여섯 시에 출발해 광주에 도착하면 여덟 시가 된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1층 상가 일식 집으로 간다. 생선회 중, 지라시스시 그리고 참이슬과 카스 한 병씩 주세요. 주말부부이면서 맛벌이다. 일주일 열심히 일하고 금요일 저녁은 맛있는 음식과 술로 회포를 푼다.
내가 근무하는 현장은 대전시 외곽에 있어 내온사인 찬연히 반짝이는 빌딩 숲속과는 거리가 멀다. 풀벌레 우는 황량한 벌판에 사무실과 숙소가 자리하고 있다. 대도시에 주소를 두고 있으면서 도시의 맛을 느끼지 못하여, 집에 오면 또 다른 기분이 난다. 현안 사항과 애로 사항을 이야기 하며 부부로, 때론 직장 동료처럼 시시콜콜한 얘기로 두 시간을 채우다 보면 어느새 부족했던 소통이 해결된 느낌이다. 어려서부터 바다가 가까운 곳에 살아서 생선을 자주 먹었다. 그 맛은 어디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신선하고 달달해 자주 찾는다. 생선회는 돔, 광어, 우럭 등 재철에 나는 것과 참치와 연어를 골고루 맛볼 수 있고, 지라시스시(물기가 조금 적게 지은 밥에 식초 설탕 소금 등을 넣고 그 위에 김, 생선, 유부 등을 올려 만든 일본 요리)는 생선회로 부족한 한 끼 식사를 메꿀 수 있는 좋은 조합이다. 그리고 소주와 맥주는 일주일의 피로를 풀어주는 매개체 역할로 충분하다. 소소할 수 있지만 아내와 나를 위한 작은 보상이라 생각하며 지속해 오고 있다.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 무엇을 먹을까, 만들까로 하는 고민과 수고를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라떼 한 잔 주세요! 따뜻한 것으로요. 엊그제 까지만 해도 시원한 것을 찾았는데 날씨가 가을에 와 있다. 옷깃을 스치는 아침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차가워 긴 소매 옷을 찾게 된다. 차 한 잔을 들고 2층 한적한 곳에 자리에 앉는다. 카페는 왕복 8차로 사거리에 있다. 도로변 쪽으로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전망이 좋다.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는 지하 통로가 바로 앞에 있고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5시 10분 이른 세벽이라 그런지 사람의 왕래가 없다. 아내가 잠들어 있어 혼자 왔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고 아내는 저녁형이다. 휴일이면 이곳에서 아침 시간을 보낸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평생 교육원 글벗이 쓴 글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한다. 차분하고 여유있게 휴일을 시작할 수 있어 좋다. 시계는 여덟시를 알린다. 모닝콜을 할 때다. “잘 잤는가? 가볍게 국밥 한 그릇 어떤가? 아홉 시로 할까?”
어제는 늦게 들어와 아무것도 못했다. 먼저 쓰레기를 정리한다. 바빠서 그런지 분리수거가 완벽하지 않다. 처음에는 잔소리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 유리병 재활용, 그리고 플라스틱과 재활용 종이로 다시 나누고, 재활용이 어렵고 부피가 커서 일반 쓰레기로 삼기에 어중간한 것은 따로 담아 농막 아궁이로 보낸다. 아내가 주중을 어떻게 보냈는지 가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맛있는 배달 음식 포장지가 보이면 왕따를 시켰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는데, 흔적이 많을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가 생각나 혼자 웃는다.
채소를 다듬거나 고기 손질은 내가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70~80%까지 요리를 해서 아내에게 넘긴다. 아내는 꼼꼼할뿐더러 맵고 깔끔한 것을 좋아해 마지막 양념과 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호감도가 다르므로 아내의 손을 거쳐야 모두가 좋아하는 완벽한 요리가 나온다. 아침을 먹는다. 집 앞 24시간 국밥집이다. 해장으로 좋은데 딸은 잠을 더 잔다고 오지 않았다.
두 어머니를 만났다. 시골에서 대가족을 이루며 농업을 생계로 하는 가정으로 시집을 왔다. 가부장주의인 남편을 만났고 가족의 일원으로 삼시 세끼 음식을 준비하고 농사일을 거들며 살았다. 그리고 도시에서 가족과 사회에 소속해 그 속에서 중심을 찾고, 자신의 삶을 알차게 일구어 나가는 두 번째 어머니를 만났다. 나 보다는 남편 그리고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며 걱정으로 보내기 일수인 어머니와 다른 엄마는 자신을 위해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남은 여유로 주변을 챙겼다. 어머니와 장모의 이야기다. 자신의 선택 보다는 주어진 여건에서 찾은 최선의 선택 이었을 것이고. 두 사람 모두 나무랄 데 없이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나에게 아내가 어떤 삶이길 바라는지 묻는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집은 휴식의 공간이다. 아침 늦게 까지 잠을 자고 하루 종일 뒹굴고 놀아도, 조금은 어질러져 있어도, 가족 모두가 편안한 안식처가 되길 원한다. 때론 부부유별이 없고, 장유유서가 허물어져도 서로 받아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아내가 장모를 닮았으면 좋겠다. 휴일이 시작되었다.
첫댓글 주말부부에다가, 만나는 날 저녁은 바깥에서 술과 함께 하고, 다음 날 아침도 국밥 데이트를 하시네요. 연애하듯 아주 좋습니다.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이 느껴지네요.
그런가요? 하하하!
주말부부로서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요리도 잘 하시는 정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잘 하지는 못하고 그냥 흉내만 냅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남편이네요. 떨어져 있다 만나면 늘 신혼 같겠어요.
예 맞아요. 좋은점을 찾으려합니다. 고맙습니다
부부유별이 없고, 장유유서가 허물어져도 서로 받아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선생님 멋지십니다.
아직 한참 멀었는데 부끄럽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왔던 생활 방식은 쉽게 변하지 않더라구요. 어머니가 일에 묻혀 살았어도 나름 보람을 많이 느꼈을 겁니다.
예, 다음엔 어머니에 대해 써 봐야 겠습니다.
와, 주말부부인데 이처럼 배려해 주시다뇨?
김장까지 직접 담그시는 보고 짐작했지만요.
대단한 정희연 선생님을 칭찬합니다.(사모님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짝짝짝!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시면 안 될 듯 합니다. 하하하!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선생님 마음이 잘 드러난 글이네요. 부러워하면서 읽었어요.
먼 길을 돌아 돌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직도 멀었지만요.
저는 주말부부가 아니라서인지 그리고 한번도 그런적이 없어 신기한듯 읽었습니다. 두분 서로 배려하면서 지내시는 것 같아 멋져 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내로부터 20여 년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애인 같은 부부' 이군요. 모든 주말부부가 부러워할만 합니다.
말만 듣고는 모르는 법이지요. 냉전의 시간도 많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