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묻고 싶은 분? 질문 있으면 질문 하셔도 되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잘하더라고요. 내게도 있는 건데 자기 말로 하기는 그렇고 남이 한 말을 갖고 어떤 사람이 그렇게 얘기 하더라 하면서 얘기해도 되요. 그런데 참 이전에 질문을 던지는 분이 많으셨는데 점점 없어지는것 같아요. 하나님이 조금 구원을 이루어 주신 만큼, 조금씩이지만 갈수록 할 말이 없어집니다. 몰라서 문제가 아니고, 알고 모르고 있는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그 일을 알아가는 만큼 말이 없어져요. 그래서 상담을 하다 보면 재미있습니다.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어렵게 왔으면서도 뭐라고 하면, 다 듣고 목사님이 그렇게 얘기 하실 줄 알았어요. 그게 맞죠. 그러니까 우리는 선악 속에서 선악을 풀어주는 뭔가 시원한 것을 원하지, 선악의 세계 속에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이 과정, 쉽지 않게 은혜를 받아간다는것을 알아도 이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 여러분의 상태입니다.
제 소망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도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하신 만큼은 여러분들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 어느새 죄와 구원이 이렇게 떨어져 있던 것이 많이 붙었어. 그러면 죄를 알아도 선악 속에서 몰라도 죄는 실제기 때문에 선악 속에서 고통당합니다. 몰라도 은혜 주시면 은혜 주신 만큼 풀려지거든요. 풀려진 것 때문에 기뻐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로 깨달아 가면서 이제 있는 나의 죄성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육신 속에 한계와 고통을 통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그럼 점점 그런 은혜를 받아가는 교회들이 있어도 선악의 문제가 문제되지 않아요. 누구도 다 있는 문제인데, 진짜 이 비밀 없으면 감추는 것이 제일 지혜로운 겁니다. 그런데 감춰도 어찌할 수 없이 드러나요. 우리도 다 그런 과정을 왔는데, 우리에게 있는 이 문제를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들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졌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빨리 이 과정을 가게 하려고, 그래서 제가 여러분의 선악의 세계를 흔들기도 하고 때론 그것을 무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바도 해서 건들 기도 하고, 조금씩이지만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은혜가 귀중한 만큼 그런 만큼 은혜 받는 분이 귀중하고, 귀중한 만큼 은혜를 잘 받게 해주려고, 짱돌 이 만큼 던졌다가 바위돌 맞았어. 야 이거 진짜 하나님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세계 구나. 마치 마귀가 이게 까불어? 왜 나를 건드려! 내가 속이면 완벽히 속히는 비밀인데, 네가 이걸 흔들어? 그래서 제가 죽을 뻔 했어요. 그래서 주님 이것도 내 수준이군요.
그래서 제가 잘 안 흔들 어요. 이제는 여러분들 안 무너트릴 테니까 잘 살아.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 분이 하시는 일이 완전하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이른 비와 늦은 비로, 그러다가 완전 쏘낙 비로 많은 고통은 있었지만, 아직도 있는 내 수준, 목적은 좋은것 맞는데, 귀한 만큼 아직도 내 수준, 그렇게 해서라도, 엄청난 고통과 대가를 지불하고, 이 만큼 깨달아 가는 겁니다. 아 2년 동안 너무나 스트레스 받아 가지고, 나 암병 안걸린게 다행이여. 지금 전립선암이 간당간당해. 지역 병원에서 수치를 보니까 놀란 거야. 그래서 서울대 분당에 가보라 해서, 거기 가서 정밀 조직 검사 까지 했어요. 열두 조직이나 때어냈어. 그런데 암 세포가 없데. 그런데도 이 의사가 뭐라고 하냐. 그럼 없다고 하면 되잖아요. 수치를 보고 전립선의 크기를 보면 전립선암이 맞는데 암 세포가 없네. 열두 개 조직을 때어내서 봤으면서도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이제 막 암세포가 시작된 단계일수 있다. 아니면 열두 군대를 때었지만 비켜서 때어내서 발견이 안됐을 수 있다. 그러면서 6개월 마다 한 번씩 추적 검사를 해야 한다. 한번 하고 두 번하고 일 년 지난 거예요. 얼마 전에 갔습니다. 더 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고, 나도 신경질 나더라고, 하나님이 좀 봐주시려면 완전히 없게 하시던지, 일 년 동안 추적 검사를 했는데도 또 육개월 후에 오래. 하나님이 경계점에 두시고 나를 시험하세요. 그 일 년 과정을 보면서 갈때 마다 좋아졌을까? 더 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고 지쳤어. 포기했어. 하나님 알아서 하세요. 결론은 그거라고, 너? 내 손에 있어 까불지마, 또 항상 경계점, 더 좋아지지도 않고 항상 거기에 머물도록. 참, 이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사,
우리 아파트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어요. 우리 아파트 앞에 교회가 있는데, 가끔 가다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려고 가고 오는 것을 봤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한 번도 목사라고 말을 안했는데 나만 몰랐지 저들은 다 알고 있더라고, 그때부터 조심해 지더라고, 모를 때는 편했는데, 아는 순간부터 신경 써지잖아요. 그런 만큼 앞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를 잘 대해 주세요. 어느 날부터 안 보이시더라고요. 또 할머니만 가끔 보이기도 하고, 그러더니만 어느 날 할아버지가 몸이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돌아 가셨데. 참 남일 갖지 않더라고, 그러더니 그저껜가 그 집에 짐들을 다 빼더라고, 자녀들이 와서 짐을 다 빼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지금 요양 병원에 보내신것 같더라고요. 자녀들이 그 집을 살기 위해서 들어와야 하는데 부모님 짐들을 다 버리는 겁니다. 그걸 우리 사모하고 같이 보면서, 야 남일 같지 않다. 우리도 그렇게 가는 거지. 잠깐 이더라고요. 금방 금방, 여기 젊은 분들 아직 젊다고 하잖아요. 지금 인생이 날라 갑니다. 저를 돌아보니까 그래요. 그런데 신기한게 언제나 마음은 늘 소년이야. 이것 때문에 미치겠어. 왜 마음은 안 늙는지 모르겠어. 착각을 잘해 자기가 소년인줄 알아.
그런데 지금 그런 나를 가만히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남일 같지 않은 그 만큼 인정되는 거잖아요. 그 만큼 참 감사가 돼요. 왜? 구원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인생으로 발견되어짐이, 내가 은혜를 받아서가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기 때문에가 아니고, 지금도 쓰임 받고 있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건 필요하시다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실 일이고, 그러면서 하나님이 항상 내 인생에 하셨던 일인데, 이건 알고 모르고 상관없더라고, 그런데 몰라도 구원을 이루어 주신 만큼 믿음의 실상이 살아지는 인생이 어떻게 발견되냐? 해도 되고 안 해도 돼. 이거 봐 이해 안 되잖아. 같이 그렇게 은혜 받아 가면 아멘이 돼야지. 있고 없어도 돼. 물론 육신 속에 살아가는 만큼 어떻게 이것을 피하겠습니까만은, 있는데 구원을 이루어주신 만큼 믿음으로 살아지는 인생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만큼 있는데 상관없는 만큼, 살아갈수록 종노릇에서 해방이잖아요. 그게 진정한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깨닫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바로 깨닫고 누려 가는 거잖아. 그러면서 보니까 이제는 좋은 것도 정욕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그런 만큼 그런 것이 때로는 없을 때도 있겠지, 그런 것들이 육신 속에 부족함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 있지만,, 뭐가 능력입니까? 자유케 하는 그게 능력 아니겠습니까? 몰라도 구원의 실상이, 살아가는 인생 속에 조금씩이지만,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느니라, 이런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점점 발견되어지니까, 그냥 감사가 되어져요. 우리 이렇게 늙어 갑시다. 젊은 사람들은 젊음 가지고 살아가. 나도 그랬어. 그때는 노인들 우습게봤어. 머리는 하얗고 갈수록 빠지고 얼굴을 쭈굴 쭈굴 해지고, 허리는 꾸부정 해가지고, 또 걷는 것은 뚜벅 뚜벅 걷고, 빨리 죽지 뭘 살아.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선악 속에 아직도 나로 살아가는 이 문제를 모르면 그렇게 노인네를 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만큼 있다고 하는 젊음 속에 기껏 해봤자 선악의 것 갖고, 답이 없으면서도 그것 갖고 말은 그렇게 안하지만 젊은 청춘이야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젊음 속에 누릴 것 탐닉하면서 정욕으로 인생을 몰아 갈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 너의 창조주를 기억해라.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인생은 젊음을 거쳐 살아봐야 한다. 살고서도 모를 수 있는데 평생 바람 쫓다 끝날 수도 있는데, 저와 여러분들은 얼마나 감사합니까? 몰라도 구원 때문에 살아가는 인생이었는데, 모르면 평생 속힘 속에 항상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이었는데, 하나님이 또한 항상 내 인생 속에 하셨던 일인데, 얼마나 우리에 대해 오래 참아 주셨습니까? 그러면서 조금씩 이건 다르네? 내가 다른게 아니야. 하나님이 하신 일만 구원이기 때문에 조금씩 은혜를 지속하다 보니까 이제는 실상이 보이는 것이 아닌데, 실상이 살아지는 믿음으로, 조금씩은 발견되는 거야.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이런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감사가 되는 거야. 어느 정도냐 늙어가는것도 서럽지 않다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는 거야. [고후4:16]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이게 믿는 자들 속에 실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실상인 믿음을 얻어가고 누려 가는 만큼 바울과 같은 나의 고백이 되어지는 거야.
신년집회 6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