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러시아 출신의 화가로 추상 회화의 창시자이다. 모스크바에서 출생, 파리 교외 뇌이 쉬르 센에서 사망했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률과 국민 경제학을 연구한 후 교수의 초청을 거부하고 1896년 뮌헨으로 이주한 후 슈투크에게 그림을 배웠다. 초기 작품에 유겐트슈틸, 인상주의와 러시아 민예의 영향이 현저하게 나타나 있다. 1902년 뮌헨의 예술가 집단 〈파랑크스〉에 부설 형식으로 회화 교실을 열었다. 1903년~08년 튀니지,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여행하고 1908년 뮌헨에 정착, 이따금 무르나우에 체재했다. 점차 그림에 표현주의적 경향이 짙어졌으며, 1909년에는 아우렌스키 등과 〈신예술과 협회〉를 설립했다. 1910년 수채에 의한 최초의 추상화(니나 칸딘스키 소장)가 성립, 이후 화면에서 점차 대상적 요소의 모습이 사라졌다. 같은 무렵 『Uber das Geistige in der Kunst』(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을 집필했다. 마르크, 마케, 클레와 함께 협력하여 1912년 『블라우어 라이터(청기사)』 지(誌)를 간행했다. 1914년 러시아로 귀국해 혁명후 모스크바 미술학교 교수를 지냈다. 1921년 독일에 돌아와 1922~1933년 바우하우스에서 교편을 잡았고, 1933년 파리로 망명했다.
그의 추상회화는 형태와 색채 모두 격렬한 동세(動勢)를 보이는 ‘드라마틱한 시대’ (1920~1924), 건축적 구성의 ‘컴포지션 시대’ (1920~1924), ‘원의 시대’ (1925~1928), 만년의 ‘구체 예술의 시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대표작은 1910~1939년에 제작된 『컴포지션1』부터 『컴포지션 10』이다. 중요한 컬렉션으로는 가브리엘 뮌터가 기증한 초기 작품들이 뮌헨의 렌바하 화랑에, 두번째 부인 니나가 소장했던 일부가 국립 근대미술관과 상당수의 작품이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있다. 판화집으로 『우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