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는 날 : 2024. 8. 30(금)
2. 가는 곳 : 수정봉 - 구룡폭포(전라북도 남원시)
3. 산행코스
Ⓐ 여원재 - 주지사갈림길 - 갓바래봉 - 입망치 - 수정봉 - 덕운봉 - 노치마을 - 회덕마을(덕치리초가)
- 정자나무쉼터 - 구룡사 갈림길 - 제2주차장 - 구룡폭포 - 구룡폭포 제1주차장(9.6km, 4시간 30분)
Ⓑ 지리산둘레길 1코스 - (내송마을입구 - 개미정지 터 - 솔정지 - 구룡치 - 사랑소나무 - 정자나무쉼터)
- 구룡사 갈림길 - 제2주차장 - 구룡폭포 - 구룡폭포 제1주차장(6km, 3시간 30분)
Ⓒ 주차장 - 구룡정 - 구룡사 - 구룡폭포 - 주차장
4. 회비 : 30,000원 (아침, 하산주 겸 저녁식사 제공)
☆입금계좌 : 농협 302-5680-7900-61, 김효숙
5. 버스 이동 경로
[월드컵경기장] 버스승강장(07:20) - 화정역(07:30) - 광주역(07:50) - 문예회관 후문(08:00)
- [동광주진입로](현대물류) 버스승강장(08:15)
6. 준비물 : 물, 점심, 간식, 스틱, 무릎보호대, 보온자켓, 갈아 입을 옷, 기타 개인 등산장비
7. 산행신청 : 전화 또는 카페 좌석표에 댓글
총무 010 5680 7900
8. 산행안내 : 몽산 010 9911 3694
9. 다음산행지 : 2024. 9. 6(금)은 현성산 - 성령산 - 수승대출렁다리 물놀이 산행입니다.
9. 20(금) 구례 화엄사 치유탐방로(화엄사 7암자 순례)
☆여원재(女院峙)477m
여원재(女院峙)는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을 연결하는 고개로서 좌우로 수정봉과 고남산이 위치해 있으며 백두대간의 능선이 이어진 곳이다
여원재 옛길 곳곳에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안내판이 있으며 여원재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남원 동쪽의 응령역(應領驛)과 운봉고원의 인월역(引月驛) 사이에 성벽처럼 우뚝 선 백두대간을 넘어서 전라도 남원에서 경상도 함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여원재(女院峙)이름의 유래를 보면 구려말 이곳에 침입한 왜구가 주막집 주모를 희롱하여 죽게 한후 이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도착한 이성계 장군의 꿈에 주모가 나타나 전략을 알려주어 대승하였다
이 전투가 바로 황산대첩(荒山大捷)으로 이성계는 이 여인 즉 주모에 대한 고마움을 기려 사당을 지었고 그 사당을 여원(女院)이라 함으로서 여원재(女院峙)로 불리기 되었다고 한다
황산대첩(荒山大捷) 은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9월, 지리산 북서쪽인 전북 남원의 운봉 황산에서
지방 출신의 신흥 무장 이성계가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크게 물리친다.
14세기 중반부터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왜구의 도발은 황산대첩을 계기로 주춤하게 된다.
황산전투는 같은 해 8월 진포대첩, 1376년 홍산대첩과 함께 고려 말 왜구를 격퇴시킨 3대 대첩으로 불린다.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 804.7m
수정봉(水晶峰 804.7m)은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 경계에 있는 수려한 산으로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리 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 산성 남쪽에 위치한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리를 경계로 두 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성이 평면 형태는 표주박 형태를 이룬다. 또한 성터도 있는데 확인된 성의 길이는 150m 정도 되며 성의 부대시설은 망대와 우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었으며 망대는 성의 중앙부와 서쪽에 원형의 석축 형태로 남았고 동쪽 산봉우리의 남쪽 경사면이 위치한 우물지는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재를 이용하여 우물 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수정봉은 학(鶴)이 날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봉우리에 대한 유래는
옛날 노치마을에 짚신을 만들어 파는 민(閔)씨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어느 추운 겨울에 민씨가 죽어 마을사람들이 매장을 하였는데 그곳이 주인이 없는 용(龍)의 자리인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明堂)이었다고 한다. 이후 민씨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여 그 묘에 화려한 석룡을 세웠는데, 그 뒤로 자주 재난이 일어나 다시 석룡을 없애자 다시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돌이 무거워서 학(鶴)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