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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이 홍사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 없는 이~ 발길~~
흘러간 가요가 아니라 군가였다. 일명 보병의 노래, 죽어도 걷는다는 보병. 군에서 총을 거꾸로 메고 행군을 하며 선임하사의 지시에 의해 자주 불렀던 노래인데 갑자기 그 가락이 입을 비집고 나온다. 정처~ 없는~ 이 발길~
정말이지 정처가 없다. 어디가 종점이려나? 어디선가 또 새소리가 들린다. 배배초, 배배초.
식욕이 없다. 입맛도 없고,
백수가 되고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군에서부터 공장 사내 식당에서까지 아무거나 빨리, 맛있게, 잘 먹기로 소문난 내가 입맛이 없다니, 좀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식욕이 없더라도 때가 되면 일단 먹어야 한다.
혼자 먹으려니 더욱 입맛이 싸늘했지만 일찌감치 식은 밥 한 덩이를 찬물에 말아서 고추장을 유일한 반찬으로 젓가락에 찍어서 빨며 점심을 때우고 그릇을 개수통에 처넣었다. 그리고 거실의 소파에 모로 누웠다. 요즘 들어 이런 시간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이명인가 싶어 귀를 후벼보지만 새소리는 잊을 만 하면 들린다. 배배추, 배배추.
오늘도 어제와 같았다. 내일도 없다.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도~ 걷는~다~ 만은~
일기를 쓴다.
백수의 일기를 쓴다.
하지만 일기라고 쓸 게 없다.
일기를 쓴다면 들리는 새소리 외에는 전날과 같다. 어제는 비비추라고 들리다가 오늘은 배배추라고 들리는 것이다. 오늘 일기를 적고 그 다음날은 날짜만 적고 상동으로 적어야 할 것이다. 내일 일기를 오늘 당겨서 적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에는 삼포세대라고 세 가지를 포기하던 세대였다.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했다는데 지금은 N포 세대, 말을 하고나니 저어기 궁금하다. N이 무엇의 이니셜인가? Nothing? 아니다. N분의 1이라고 할 적에 N은 지정되지 않은 숫자를 얘기하는 것이니 숫자를 지칭하는 Number의 이니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세대라는 말이라는 건 분명하다. 일본에서도 그런 말이 유행했었다. 일본에서는 삼포세대를 사토리세대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단다.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자 자연스럽게 없어진 말이란다. 허나, 우리의 눈부신 금수강산에선 삼포에서 오포로 발전을 하고 그 다음엔 장족의 진화를 거듭해서 칠포가 유행어로 자리매김을 하다가 급기야 N포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N포 세대.
결코 가볍게 듣거나 하고 넘길 말이 아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양쪽에 칼날을 지닌 부메랑 같은 용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욕망과 생명까지도? 의미를 짚어보면 가슴 깊숙이 박히는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이다. 요즘 생활고를 비관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젠 덤덤해져서 그런 건 뉴스거리가 되지도 못하는 세상이니 참으로 씁쓸한 일인데 문제는 그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이 얼마나 더 험악해지려나?
삼포의 터널을 나는 통과했다. 시대가 그때는 조금 괜찮아서 연애를 딱 부러지게 했고 화끈하게 결혼을 해서 아들과 딸을 차례대로 순산했다. 그러나 가로 늦게 N포가 던진 그물망에 딱 걸렸다. 그물에 걸려 팔딱거리는 주둥이가 붉은 잉어의 참혹한 심정을 이제야 헤아리겠다. 시대가 던진 초망에 나는 걸리고 만 것이다. 그물은 너무나 견고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래, 나는 초망에 걸려 말은 옳게 못하고 아가리만 벙긋거리는 잉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뒤통수가 가려워지고, 긁다가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내 나이 마흔넷,
잘 익은 노동의 나이인데 어느 날 라인이 축소, 통합되면서 멀건 대낮에 우리 라인의 일곱 명이 무리지어 회사 문을 나서야 했다. 그날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돌이키고 싶지도 않다. 노조에서도 제 식구들 감싸기에 급급 하느라 우리 라인이 사라져도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거나 챙기지도 않았다. 원래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매정한 무리들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고 우리 일곱 명은 상무이사와 면담을 하고 공장 문을 나서며, 넓은 세상으로 향하자고 오히려 의기양양했다. 그게 피해자의 만용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회사에 경력을 살려 금세 취직이 될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만만치가 않다. 다른 회사들도 사정이 나빠져 사람들을 뱉어내고 있단다.
육 개월 간 주던 실업급여가 끊긴 지 넉 달이 넘었다.
실업급여도 그냥 주는 게 아니다. 재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어느 업체든 찾아가서 취업을 위해 왔다가 갔다는 확인을 받아서 제출해야 한다. 가는 업체마다 확인서에 도장을 찍어주며 직원을 추려내야 하지 받을 입장이 못 된다는 일괄적인 대답을 들어야 했다. 이젠 실업급여가 끊겼으니 그런 업체에 의무적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정말이지 죽으라고 가기 싫었던 곳이다.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사람을 모집하느냐고 묻고는 확인서에 도장을 받아서 나온다? 낯짝에 철판을 깔지 않고는 그게 사람이 할 일이야? 실업급여가 끊기는 날, 이젠 낯짝에 철판을 깔지 않아도 되겠구나, 오히려 홀가분했다.
받은 알량한 퇴직금은 전세자금을 대출받은 보험회사에 계약을 파기하고 중도상환을 했다. 월급을 받을 적에는 몰랐는데 매달 내야하는 이자가 부담스러울 거라 생각하고 갚은 것인데 지금 생각해도 그건 잘한 일이다. 어디선가 또 새소리가 들린다. 배배추, 배배추.
큰놈이 초등학교 오학년이고 그 밑에 딸이 삼학년이니 내가 건너야할 강은 양양하고 그 물결이 도도하다. 거기다가 어머니는 시립요양병원에 계신다. 비교적 싸고 시설이 좋다는 시립이지만 병원비가 밀렸다. 어제는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산소에서 웃자란 풀을 뽑다가 전화를 받았다. 지난달 병원비를 내지 못했으니 전화가 올 때도 되긴 된 것이다. 앳된 아가씨의 목소리였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한번 들리시라는 좋은 말로 위장된 병원비 독촉이었다.
요즘은 거의가 두문불출이었는데 어제는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요즘 일상에서 어제가 달랐다면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는 점이다. 소주 한 병과 오징어포를 사서 차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산소에 다녀왔다. 불현듯 안 가면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둘러보고 참배를 하고 왔는데 엉겅퀴와 쑥부쟁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까이 사는 숙경이와 고서방에게 그렇게 부탁을 했거늘, 자주 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장인산소를 제 아버지 산소만큼이야 신경을 쓰겠는가? 그럴 줄 알았으면 낫이라도 한 가락 챙겨갈 것인데 맨손으로 웃자란 엉겅퀴와 쑥부쟁이를 다 뽑고 나니 땀이 등골을 타고 내렸다. 땀을 식히며 산소 앞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는데 어떻게 알고 새소리는 거기까지 따라왔다. 배배초, 배배초.
학교에 간 딸 수미가 올 때가 되었지 싶은데 소식이 없다.
방과 후에 다니던 미술학원을 지난달에 끊었다. 아내가 수미에게 학원비가 걱정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이제는 학과공부에 신경을 써야할 나이라면서 그만 다니게 했지만 나는 옆에서 듣고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어디를 나가보나?
중학교동기 종호가 하고 있는 중고타이어 가게가 만만하지만 이제 가기가 눈치가 보인다. 새 타이어를 교환해주는 가게가 아니라 중고타이어다. 경기가 안 좋으면 오히려 장사가 잘되는 업종이란다. 허구한 날,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이 매일 오며 가며 들러서 죽치다가 점심을 얻어먹곤 했는데 그것도 이젠 눈치가 보이고 무엇보다 그 친구는 정치적으로 편향을 보여 맞장구를 쳐주어야 하는데 그게 심리적으로 보통 힘이 든 게 아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이제는 술 취한 여고생이 담배를 물고 거리를 활보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일전에 말이 많았던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데 녀석은 극구 반대한단다. 어느 작자는 사리판단이 흐린 노인들은 선거를 하지 말아야한다고 했다가 논란이 인 적이 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논란이 일자 변명이라고 노인들은 수고스럽고 번거로우니 집에서 쉬시라는 취지였다고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했다. 차라리 보수파는 선거를 하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뱉지.
이번에는 18세면 사리판단이 분명하다고 선거연령을 낮춘다고 했단다. 그 말이 지금은 잠잠해졌는데 선거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현 정부가 보는 관점에서는 18세면 사리판단이 분명하단다. 그게 아니고 젊고 어린 아이들일수록 진보성향이 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지. 아이들로 보이는 게 아니라 표로 보이는 거겠지. 에라이 씨~ 녀석은 정치판을 얘기하면 욕부터 나온다고 하며 진보성향이 아니라 진부성향이라고 바꾸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리판단이 분명한 아이들은 사리판단을 하여 진보성향에 환멸을 느끼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제 앞날을 예측할 줄 아는 영악한 아이들이란다. 만약, 선거연령을 낮추어 투표권을 부여하면 성인취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성인이라면 술과 담배도 허용해야 한다. 그게 형평성원칙에 준하는 거라고 녀석은 핏대를 세웠다. 그렇다면 술 취한 여고생이 담배를 물고 거리를 활보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결론의 얘기다.
그건 그 녀석의 생각이고 나는 예측컨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아이들의 성향이 돌아섰으니 선거연령을 낮춘다는 걸 없던 일로 하겠지. 말을 바꾸는 게 우리 정치하는 무리들의 특징이니까.
그곳에 가면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게 아니고 종호 의견을 들어주어야 하는데 그게 사실이지 좀 피곤하다.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하자 내가 회사에서 잘린 것도, 다시 경력을 살려 재취업이 어려운 것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다. 피해를 보고 있으면서도 둔감하니 그게 문제라면서 나를 지적했다.
그럼 어쩌란 말이야?
자유시장을 채택한 민주시민, 지성인이라면 좌우논리와 진보, 보수, 분명하게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 그 정책을 보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우리 국민이 잘못된 점은 명확하게 선을 그어 자신을 가두어 놓고 근시안적으로 제 편에 서서 열광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스마트 시대의 시민지성이 존재한다. 말은 안했지만 종호에게 부족한 점도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문제다. 너무 편향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어서 들어주는 사람이 피곤할 정도이니.
녀석의 가게에 가 있으면 시간은 잘 간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종호가 바쁘면 좀 도와주기도 한다. 도와주는 게 고작 바퀴의 볼트를 조여 주고 녀석이 탈부착기에서 빼낸 폐타이어를 굴려서 뒤란의 공터에 가져다 쌓는 것이지만 차가 밀려있고 손이 바쁠 적에는 그것도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폐타이어를 쌓는 것도 기술이다. 폐타이어는 크고 작고, 두껍고 얇고, 여러 종류가 나온다. 손이 여러 번 가더라도 큰 것은 빼내서 아래에 쌓고 작은 것은 위에 쌓아야 한다. 종호가 던지는 차례대로 들쭉날쭉 쌓으면 그게 결국은 무너져 공터아래 아래 개울로 굴러간다. 그렇게 되면 그런 낭패가 없다.
이제 수미가 오는 모양이다.
현관문을 좀 살살 닫으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또 저 모양이다. 아래층의 할머니가 또 올라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층간소음에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아래층 할머니는 좀 예민한 편이라 신경이 쓰인다.
-문 좀 살살 닫아라. 아래층 할머니 또 올라오시겠다.
-아빠? 오늘도 집에 있었어?
-그래.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야.
점심을 챙겨먹으라고 했더니 학교에서 먹고 왔단다. 수미의 눈치가 보여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교육상 아버지란 작자가 집에서 빈둥거려서는 안 된다. 벗어서 탁자에 던져둔 윗도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어디서 점심이나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내가 회사를 나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자 아내는 보험설계사로 나섰다. 고향도 여기가 아니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보험설계사라니 당치 않다고 했지만 열심히 뛰면 된다며 사흘간 교육을 받고 나가고 있다. 자동차보험부터 생명보험까지 다 취급하는 모양인데 한 건 올렸다는 말은 여태 듣지 못했고 수당이라고 가져온 적도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나가는 걸 보면 기름 값과 경비는 충당을 하는 모양이다. 아내가 그렇게 나가는 것도 나는 맥 빠지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다. 보험설계사란 집안일을 다하면서 하는 것이니 잔소리할 거리를 만들지 않아 그만두라고 할 핑계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와 집안청소를 다 마치고 나가서 저녁을 지을 시간에 들어오니 다니든지 말든지 잔소리할 게 아니다. 집에만 같이 있어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 그것 또한 답답할 것인데 차라리 잘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나와 얼마 되지 않아 아내에게 차라리 식당을 차리자고 했다가 욕만 먹었다. 당신! 제정신이야? 하는 말로 시작한 아내의 말에 의하면 지금 장사가 안 되어 모든 가게에서 권리금마저 사리지는 형국인데 식당을 차리면 백이면 백, 망하고 빚만 지는 거라고 했다. 이 시절에 식당을 했다가는 평생 일어서지 못하는 꼽추가 되기 십상이라고 했다. 그런 시장물정은 아무래도 아내가 나보다 밝다. 그 말은 들은 다음부터는 식당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 식당에 가면 손님이 얼마나 있나. 대충 몇 명 정도면 하루 매출이 얼마나 오르겠다. 그러면 얼마나 남겠는가. 속으로 짚어보는 버릇이 생겼고 점포세가 얼마인지 알아보곤 했지만 자신이 없다. 그리 썩 많이 남을 것처럼 보이는 식당은 좀체 없었다.
주차장에 있는 차에 올라앉으니 답답했다.
어디를 갈지 정처를 정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를 가야하나? 오늘은 어느 식당을 한 번 둘러보나? 식당을 한다는 생각을 접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을 훑어보며 속셈을 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게 시간이 잘 가고 재미가 있다. 하여, 때가 아님에도 식당에 들르거나 식당가를 지나치며 안의 손님들을 살핀다.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지 않은 채 핸들을 잡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오라는 곳 없어도 갈 곳이 많다고 했던 적이 있다. 허나, 백수라는 멍석을 깔고 나니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생길 거라고는 예전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또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배배추, 배배추.
종호 타이어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며 죽치면 시간은 잘 가지만 오늘은 내키지 않는다. 정치판을 험담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가 않아서다. 솔직히 이제는 지겨운 소리다. 차라리 바람을 쐬는 겸 김천의 직지사나 한 바퀴 둘러보고 올까? 안 가본 지가 꽤나 오래 되었다. 직지사 앞에 조각공원을 잘 꾸며 놓았다는 말만 들었는데 한 바퀴 둘러보고 오는 것도 괜찮겠다. 가는데 삼십 분이면 족할 것이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래 그곳으로 가자.
차를 출발시키려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발신인을 보니 종호였다.
-백수가 뭐가 그리 바쁘냐? 요즘 왜 이렇게 뜸해?
-이 자식아!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이 많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대꾸를 했다.
-야! 백수 과로사過勞死한다는 말이 있다. 어지간히 쏘다니고 이리로 좀 와.
-무슨 일이 있냐?
-와 보면 알아. 빨리 와. 기다릴게.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는 끊겼다. 녀석은 늘 이런 식이다. 백수가 되고나서 내 시간은 어떤지 아예 묻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항목이다.
직지사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어떡하지? 그래. 녀석의 가게에 잠시 들렀다가 가면 되고 오늘이 아니면 내일 가면 되지. 남는 게 시간인데 뭐.
그렇게 중얼거리며 녀석의 가게로 핸들을 꺾었다. 가서보니 종호는 소형화물차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었다. 뒤에 밀린 차는 없었다.
-바쁜 사람을 왜 불렀냐?
-바쁘기는 백수가....... 일단 들어가서 커피나 한잔 해.
가게에 붙은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육십 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앉아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 타이어를 수리하고 있는 소형화물차의 주인인가 보다. 정수기 앞에 서서 믹스커피를 타면서 물었다.
-혹시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혼자 마시기 머쓱해서 물었는데 힐끔 쳐다보고는 방금 마셨노라고 하고는 신문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상당히 무뚝뚝한 인상이었고 말투였다. 녀석의 가게에 들락거리고부터는 믹스커피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오면 인사차 한잔 마시고 점심을 먹고 마시고, 심심해서 마시고, 중독이 되었다. 몸에 좋을 것이 없는 믹스커피인데 혼자 집에 있어도 커피가 당겨서 일삼아서 타서 마실 정도로 중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커피를 후딱 마시고는 밖으로 나와 녀석이 빼서 던져둔 폐타이어를 공터로 굴려가 쌓았다. 둘러보니 내가 도울 일은 그것뿐이었다. 녀석이 빼서 가게 앞으로 던져둔 폐타이어가 많이 늘린 걸 보니 오늘 좀 바빴던 모양이다. 폐타이어를 쌓으면서 보니 공터에 폐타이어가 꽉 찼다. 이젠 재활용센터의 대형 집게차가 와서 실어가야 할 것이다. 이곳을 들락거리며 파악한 결과 대략 일주일에 한 트럭씩 폐타이어가 나오는데 공터에 많이 쌓이면 녀석이 전화한다. 그러면 집게가 달린 대형트럭이 와서 실어가는 시스템이다.
-야 종호야! 집게차를 불러야겠는데?
-오후에 오기로 했다.
녀석은 화물차 뒤에 쪼그려 앉아 바퀴의 볼트를 조이며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볼트를 다 조이고 리프트를 내리고는 차를 빼서 가게 앞 공터에 세웠다. 나는 담배를 물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커피 한잔 했냐? 들어가서 잠시 이야기 좀 하자.
-무슨 얘기? 안에 손님 있어.
녀석의 말투가 어딘가 모르게 비장했으므로 허구한 날 대동소이한 백수일기에 쓸 거리가 생기겠다는 예감이 불쑥 들었다. 제발이지 그랬으면....... 백수가 되고부터 걱정이 하나 늘었다. 내일은 무얼 할까? 그게 쉬운 일 같지만 놀아보니 보통 걱정이 아니다. 내일 무얼 하지? 항상 그 생각이 사유의 밑바닥에 깔려있다.
-이 친굽니다.
꽁초를 버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녀석은 앉아서 신문을 뒤적이는 육십 대에게 나를 소개한 것이다.
-아, 그래요. 이만중입니다.
엉거주춤 일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좀 전에 커피를 권했을 때와는 달리 매우 사근사근한 말투였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사람이 금세 저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녀석은 나를 보고 앉으라고 했다. 좁아터진 사무실에 이만중이라 이름을 밝힌 육십 대와 마주 앉자 녀석이 하는 얘기가 이 분을 좀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얼 도와주어? 어리둥절했다.
녀석의 설명에 의하면 마주앉은 이만중이라는 육십 대 중늙은이는 지산 앞뜰에서 소를 먹이는 양반인데 올해가 환갑이라 환갑 기념으로 내일 베트남 여행을 친구들과 사박오일로 다녀오기로 했는데 그 기간 동안 소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여행을 하고 오는 동안 소여물과 사료를 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난 그런 거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그런 거 배워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간단합니다.
어려울 게 없다고 했다. 원래 다른 후배가 돌보아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장모가 죽었다나, 상을 당하는 바람에 펑크가 났다고 하면서 지금 같이 가서 소여물과 사료 주는 방법을 잠시 배우면 된다고 했다.
입장이 난감하니 종호가 시간이 되면 좀 도와줄 것을 종용했다. 시간이야 된다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썩 내키지 않았다.
-소는 몇 마리나 됩니까?
대략 백이십 마리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형 농장이다.
-제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간단하다니까 그러시네.
우사 소똥치우고 청소하고 방역하고 모든 준비는 다 해놓았으니 그냥 때가 되면 여물만 주면 된다는 것이고 여기서 멀지 않다고 했다. 언제 가시느냐고 물으니 내일 새벽에 출발해서 인천공항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가서 배워야하는 것이다.
-거기서 소를 지키며 자야 되나요?
그럴 필요는 없단다. 개가 있고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필요한 시간에 가서 여물만 주면 된단다. 자고 싶으면 거기 관리사가 있으니 거기서 자도 상관이 없단다.
-가봅시다.
지산 앞뜰이라면 시내와 멀지 않은 곳이다. 이만중씨가 운전하는 화물차가 앞장을 서고 내가 뒤를 따랐다. 녀석의 가게에서 나와 보건소 앞에서 바로 우회전을 해서 들길을 달렸다. 우사는 강변 제방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만중씨가 차를 세우고 우사의 문을 열면서 잠시 내려 보라고 했다. 우사 대문의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쇠사슬로 자물쇠를 채운 비밀번호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양쪽에 묶어둔 커다란 개가 컹컹 짖었다.
나는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개라면 딱 질색이다. 이만중씨는 개에게 사료부터 주면 짖지 않는다고 하면서 금세 개와 친해질 거라고 하면서 짚동 밑에 있는 포대에서 개 사료를 한바가지 퍼서 양쪽 개에게 갈라주라고 했다. 이만중씨가 시키는 대로 사료를 주니 금세 꼬리를 내리고 살랑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가까이 가도 개가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개는 그렇게 달래면 되고.
한 가지를 배운 셈이다. 아니 자물쇠 비밀번호까지 두 가지를 배운 셈이다. 소는 우사에 쇠파이프로 칸막이를 설치해서 네 종류가 있었다. 이만중씨의 설명으로 알 수가 있었다. 곧 출하할 소와 황소, 암소 그리고 송아지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우사가 양쪽으로 있고 중간에 통로가 있는데 그 길이가 거의 백 미터는 되어 보였다. 한 칸에 열 마리 정도의 소가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그런 게 양쪽으로 거의 스무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 대단하네요.
통로를 따라 들어가며 감탄했다. 소가 이렇게 예쁘게 보이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이었다. 양쪽 끝은 빈 곳이었다. 무엇 때문에 비워 놓았냐고 묻자 소똥을 치울 적에 소를 이쪽으로 몰아넣고 한 칸씩 기계로 소똥을 처리한다고 했다. 소똥은 오래 두면 소의 발이 습진 생기듯이 상하기 때문에 빨리 치워주는 게 좋다고 했으며 바로 어제 소똥을 다 치웠으니 앞으로 일주일정도는 걱정이 없다고 했다. 소여물도 많이 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옛날 소는 짚만 먹기에 많이 주었는데 요즘은 짚보다 사료를 많이 주어서 소의 입맛이 변해서 짚보다 사료를 많이 먹는다고 하면서 짚보다 사료를 많이 먹으니 소똥냄새가 독해졌다는 이만중씨의 설명이었다.
-소는 이제 초식동물이 아니라 잡식동물로 진화하고 있군요.
-그런가?
짚에서 큼큼하게 암모니아냄새가 나는 것은 짚을 발효시켜서 나는 냄새이기 때문에 몸에 나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짚이 좀 누렇고 눅눅한 게 냄새가 좀 나는 듯했다. 짚은 수레에 실어 가면서 한 줄로 반 아름씩 놓아주니 소가 쇠파이프 사이로 대가리를 내밀어 먹는 것이었다. 그게 네 수레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걸 다주고 그 다음은 사료를 네 포대 따서 수레에 싣고 가면서 한 바가지씩 퍼서 일렬로 부어주는 것이었다. 짚을 먹던 소가 사료를 주니 짚은 마다하고 바로 사료를 혀로 핥아 먹는 것이었다.
옛날과 달리 소에게 필요한 영양분은 사료로 다 채우고 짚은 그저 소의 배를 불려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작용을 한다는 이만중씨의 말이었다. 무뚝뚝한 첫인상과는 달리 이만중씨는 설명을 할 때는 사근사근했다. 사료를 그렇게 주니 네 포대가 딱 맞아 떨어졌다. 그 다음은 좌측 관리사가 있는 입구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구유로 들어간다고 했다. 둘러보니 호스로 연결이 되어 물이 차면 그 다음 칸의 구유로 넘어가는 시스템이다. 물은 그렇게 한 바퀴 돌아서 우측우사 입구의 구유를 보고 있다가 차면 수도꼭지를 잠그면 일일이 돌아볼 필요도 없이 구유에 물이 다 차는 것이다. 그게 소여물 주는 일의 끝이라고 했다.
-간단하네요.
-글쎄 간단하다니까. 배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소여물은 하루에 세 번 준다고 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아침, 점심, 저녁 다 먹는 셈이라고 했다. 비육우이기 때문에 한 끼라도 그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소를 이 정도로 먹이려면 투자금액이 상당히 들겠네요.
지나가는 말로 물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는 송아지 다섯 마리로 시작했단다. 그때는 들판에 우사를 짓기 전이라 집 외양간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 우사를 크게 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시작한다는 것이란다.
-이걸 키워가는 재미로 살지. 재산으로 보면 안 돼요.
송아지가 커서 새끼를 낳고 큰 소는 팔아서 송아지를 두세 마리 들여놓고 짚을 확보해가며 늘린다고 했다. 우사도 용접기와 파이프를 사다가 혼자서 다 지었다고 했다. 더 많이 먹이고 싶어도 짚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소 한 마리가 일 년에 한 마지기의 논에서 나오는 짚을 먹으니 내 농사든 남의 농사든 일 년에 논농사 백 마지기는 지어야 한다고 했다. 사료는 어쩔 수없이 사서 먹이지만 짚까지 사서 먹이면 타산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논농사도 직접 지으세요?
그렇다고 했다. 논농사는 요즘 기계가 좋아서 백 마지기는 놀아가면서 짓는다고 했다. 이만중씨가 관리사에 가서 커피를 한잔 하자고 했다.
-완전히 별장이네요.
들어서면서 한 말이었다. 관리사는 정성을 들여 지은 모양이다. 관리사는 큰 원룸과 다를 바가 없었고 CCTV모니터가 있어서 소의 동향을 한눈에 볼 수가 있었고 냉장고부터 텔레비전에 부엌까지 갖추어야할 모든 게 갖추어져 있었다. 집에 가기 싫거나 새벽에 일찍 나오기 귀찮으면 여기서 잔다고 했다.
-소여물은 하루에 세 번, 몇 시에 주면 됩니까?
점심은 열두시에 주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아침은 일찍 주면 좋고 저녁은 늦게 주는 것이 좋다고 하며 커피포트의 물을 끓이고 믹스커피를 탔다.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한 사나흘 여물 주는 거야 간단하지만 다 들추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논농사도 농사지만 일 년 내내 단 하루도 못 비우니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녜요.
봄부터 못자리를 시작하면 그 때부터 일이 끝이 없단다. 듣고 보니 그렇다. 세상에 자기 일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비육우를 사육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다. 남들이 보면 매일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게 이만중씨의 말이었다.
-여기 냉장고에 송아지 고기가 가득 있어요.
이만중씨는 냉장고를 열어 냉동실에 가득 얼린 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냉장고에 김치와 소주가 가득 있으니 두루치기를 해서 먹든지 아니면 집에 가져가서 식구들과 먹으라고 했다.
송아지는 병들어 죽은 것이 아니라 큰 소에 밭쳐서 다리가 부러진 암송아지를 잡았다고 하면서 고기가 굉장히 연하다면서 먹고 취하면 여기서 자도 좋다고 했다.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급한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를 하라고 했다. 로밍을 해서 갈 것이니 아무 때나 전화를 해도 좋다고 했다. 그럼 목욕탕을 들렀다가 짐을 꾸리러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갈 채비를 하는 눈치였다.
-아침 여물은 보통 몇 시쯤 주면 됩니까?
-나는 보통 아침 여섯 시에 주는데 꼭 시간을 맞출 필요는 없어요. 저녁은 오후 일곱 시에 주고. 한 사나흘 하면 소들과도 소통이 될 겁니다.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
관리사 키를 넘겨주며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이만중씨가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화물차를 끌고 갔다. 나는 CCTV에 비치는 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비치는 소들이 참 예쁘다.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 소나 먹여볼까? 시골에는 어머니가 농사를 짓던 밭이 있다. 젊은이들이 다 빠져 나가고 피폐해진 고향이지만 들어가서 그 땅을 살려보면 어떨까? 농사를 지을 일손이 없어 밭은 지금 잡초만 무성한 묵밭이 되었고 논은 서 마지기가 있는데 재종조부가 농사를 짓고 있다. 그 농토를 활용하면 되겠지만 소가 수입을 낼 때까지 최소한 오 년은 기다려야 할 터인데 그 동안 무얼 먹고 살지? 그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이만중씨가 되돌아왔다.
-아, 내가 한 가지를 잊었네.
저녁이면 관리사 CCTV위 벽에 달린 큼직한 스위치를 올려서 불을 밤새 밝혀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CCTV도 찍히고 소가 장난을 치거나 싸움을 해도 다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스위치를 올리자 관리사에 불이 훤하게 들어왔다. 아침에 나오면 관리사 불부터 끄고 소여물을 주라고 일렀다.
-저녁에 안 나와 봐도 되겠지요?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시라고 이만중씨를 배웅하고 나서 우사를 찬찬히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소들이 참 예쁘다. 소가 예쁘게 보이기는 처음이다.
이런 농장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평생은 걱정이 없겠다. 누구 눈치를 볼 일도 아니고.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이 정도를 먹이면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보지 않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쓴 입맛을 다셨다. 냉장고의 송아지고기는 엊그제 잡은 것이라고 했다. 싱싱해서 육회로 먹어도 좋을 거라고 했다. 송아지고기 포를 떠서 소주나 한잔 할까?
오늘은 백수일기에 쓸거리가 생겼고 최소한 사나흘은 갈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경력을 부활시키기란 어렵다. 그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무슨 경력이든 자꾸 쌓으면서 배워야 한다. 무릇 배움은 도처에 늘려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디선가 또 새소리가 들린다. 배배초, 배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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