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금수강산 중 (남한) 가장 깊고 한적한 곳이 오대산과 설악산 사이이다. 그중 몇 군데가 있지만 3둔 5가리 일 것이다. 3둔(살둔, 월둔, 달둔)과 5가리(아침가리, 연가리, 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는 옛부터 세상의 혼란스러움을 피해서 심신의 평화를 찾아 또는 전쟁, 돌림병, 가뭄이라는 3재를 피해서 살았던 곳이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포장이 안 되고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고로 찾는 이 없는 자연 그대로 였으나 지금은 갈 수 있는 곳 어느 곳이라도 포장이 되었고 시간 여행객들이 많아서 옛상태를 보기 어렵게 됐다. 세월따라 자연이 세속화 됐다.
이 지역은 맑은 물과 약수가 많다. 방아다리 약수, 불바라기 약수, 삼봉약수, 개인약수, 방동약수, 필레약수, 오색약수 등등이 산재해있다. 그러나 지금 이 지역은 아득한 옛 자연의 모습이 구름 위 봉우리 마냥 떠 있고, 사람이 있는 계곡은 세속에 물들어 고요가 떠나가 버렸다. 세상 인심따라 심산유곡의 정취도 욕심스러워졌느니라. 우리가 간 이번 구간은 3둔 5가리를 울타리 친 능선지역을 갔다.
어느 때처럼 11시가 넘어서 서울을 떠났다. 44번 국도를 따라서 양평, 홍천을 거쳐서 구룡령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3시가 못됐다. 하절기 산행은 한낮 더위를 피하려고 일찍 출발하는 것이 상례다. 3시가 넘어서 구룡령 표시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파른 산길을 전등불빛과 함께 올라섰다. 오르는 능선길 왼쪽은 홍천군 내면 명개리이고, 오른쪽은 양양군 서면 갈천리이다.
명개리나 갈천리는 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산하가 담담한 오지 중 오지로 화전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가 뚫리고 관광지가 개발되어 부산스럽기 짝이 없다.
1100봉을 지나고 출발 2시간 가량 걷자 葛田谷峰이 나타났다. 이날 따라 대간팀들이 많았다. 후두둑 후다닥 앞지르는 사람들을 보내느라 평소보다 다리쉼이 많았다. 우리 한걸음 산타기는, 한걸음 한걸음 마음과 자연의 리듬따라 걷노라니 처음부터 악을 쓰며 걷지는 않는다. 출발 한두시간 가량은 제 멋대로 호흡조절을 하느라 천천히 걷는 것이 한걸음 걷기다.
갈전곡봉(1204m)은 양양군, 홍천군, 인제군 3개군이 접한 곳이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가칠봉(1240m)이 이어지면서 九龍德峰(1388m)이 있으니 이 지역은 인제군이다. 이곳의 전경은 一品이나, 구름 낀 여명의 날씨가 희뿌연 하기만 하다. 가칠봉, 구룡덕봉, 개인산(1341m), 방태산(1443m) 등이 우람하고 울울창창하게 자리하고 있으련만 아쉽기만 했다. 이곳 산들은 봉이높고 골이깊어 자연산물도 많고 맑은 물이 마르지 않으니 심신의 수련을 닦는데 적격한 터이다. 이중 개인산과 방태산 자락의 대개인동은 개인약수가 있고, 풍광이 적요해 유유자적한 세월 보내기로는 좋은 곳이다. 그러나 요즘 도로포장이 한참이니 사람이 흔해지렸다. 이곳에서 계곡따라 1시간 이상 내려가면 소개인동에 개인 산방이 있으니 신영복 선생이 나타나 강의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갈전곡봉에서 왕승골까지는 큰 기복 없이 원시림 길을 걸었다. 날이 밝아오자 앞산 뒷산이 우뚝우뚝 솟아 있으나, 멀리까지 경계가 펼쳐지지 않으니 아쉬운 날씨 탓이로다. 구름과 안개가 교차하는 視界이다 보니 확트인 동해바다 물결도 초록의 아득한 산그림도 볼 수 없었다.
왕승골은 갈천리로 하산하는 길과 조경동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조경동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사시사철 고요와 적막이 파고드는 곳, 요즘은 오토캠프족들과 산꾼들이 찾곤 하지만 세속의 물결과는 아직도 멀리 있는 곳이다.
하루 이틀 만취 할 수 있는 곳, 무심하게 세상을 생각할 수 있는 장소이니 누구든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왕승골에서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선두 대사들이 아침상을 폈다. 벌목을 한 앞이 확트인 곳에서 눈앞의 경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김사장이 차려온 찰밥을 맛있게 먹었다. 상을 물리고 한숨을 잤다. 찻속에서 참을 먹다보니 잠을 설쳤다. 아침을 먹고 걷다보면 졸면서 걷는 때가 종종 있으니 순간 단잠으로 보충을 해야했다.
연가리 골로 내려가는 거점을 지나면서 땀이 비오듯 떨어졌다. 오르고 내려가는 길이 연속 반복이다. 활엽수가 빽빽하게 들어선 단풍지대는 해는 가리우지만 바람이 없다. 땀흘리며 헉헉거릴 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영혼을 달래는 순간이다.
말과 글이 필요없는 돈오의 찰라이며 傳心法의 경지이다. 산타는 사람만이 느끼는 쾌감이며 바람의 극치다.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내려가고 계속 반복하는 것이 대간걷기다. 이 모퉁이를 돌고 이 봉우리를 내려가면 다왔으려니 짐작한다. 그러나 기진맥진 걷지만 끝이 없다. 대간걷기는 오직 시간과의 싸움이다. 걷고 걸어서 시간이 채워질 때 비로소 대간의 끝이 있다.
대간을 가면서 깨달은 오묘함이 用時이다. 시간을 기다리고 시간을 쫓아가고 시간과 싸우다 보노라면 隋時의 妙用이 있다.
쇠나드리 갈림길에서 몇몇 대사들이 하산을 했다. 장박사는 쇠드나리 지형을 관찰하고 싶다고 내려갔다. 쇠드나리는 황소도 날아가 버린다는 바람부리터다. 수년 전 이곳을 찾아 왔을 때 묵은 곳이 이상우씨댁. 그는 50년대 미군과 함께 설악산을 탐사하다 이곳에 들렀는데 억새 물결이 감탄스럽게 펼처져 이곳에 주저 앉았다고 했다. 지금은 집들이 들어섰고 도로가 포장돼 억새 물결대신 인파가 일고 있다.
선두는 내려갔고 뒤쳐진 마지막 몇 사람이 조침령 도로에 도착했다. 양양의 서금리와 인제의 진동리를 잇는 조침령 도로길이다. 도로가 불통이다. 버스가 올라갈 수 없으니 조침령 표시석까지 가지 않고 도로 하산지점에서 끝냈다. 다음번 구간 산행은 여기서 시작이다.
진통리를 거쳐 방동리, 현리까지 이어지는 산과 계곡은 수려했다. 옛사람들은 하늘과 산만 보이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삶의 보람을 느꼈을까, 생각하면서 조상들의 빛나는 끈기와 낙천의 마음이 떠올랐다.
최창조의 풍수 풀이가 생각났다.
땅을 사랑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땅에 정을 주는 것이다.
노자는 성인은 몸을 최선의 땅에 두고 마음을 최선의 못에 두고 최선의 인을 베풀고 최선의 실천적 말을 하고 최선의 다스림으로 바로잡고 최선의 효능으로 일하며 언제나 최선의 때를 따라 움직인다. 했고요
첫댓글 그때 그곳을 포클레인을 앞세운 토건국가와 건설자본이 다 잡아먹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