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 입소체험기
-굿바이 논산-
<제10회---눈구멍은 가죽이 적어 파놓은 게 아니다>
내무반의 침상 발치에는 서랍이 없는 단층 서랍장 같은
구조물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관물다이’라고 불렀다.
개인에게 지급된 관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여기서 ‘다이’란 ‘대(臺)’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사회에 있을 때도 ‘탁구대’를 ‘탁구다이’라고 불렀었다.
그 당시 군대에는 ‘다이’라는 말이 많았다.
‘세면대’도 ‘세면다이’라고 했다. 전역자들에게는 향수 어린
말이 될 지 모르지만 마땅히 없애야 할 일제의 잔재인 만큼
여기서는 ‘다이’를 ‘대’로 통일할 터이니 이해하기 바란다.
우리는 내무반장의 인솔로, 28연대 제 6중대 1소대
내무반으로 들어갔다. 밀폐된 창문에서 밝지 않게 들어오는
빛으로 해서 어둑하고 음침한 내무반이다. 먼저 관물대 위의
철제 장구류가 눈에 들어온다. 철모, 파이버, 수통, 곡괭이,
야전삽, 그리고 너덜너덜한 끄나풀을 달고 높다랗게 쌓아올린
배낭, 침상 한쪽으로 가마니를 쌓아올리듯 속을 박아가며
쌓아올린 매트리스, 관물대 안엔 모포가 정돈되어 있고,
출입구 쪽의 양쪽 침상에 마련된 총기대엔 엠원(M1) 소총이
질서 정연히 꽂혀 있다.
밝지 않은 엠원 소총의 목재 부분이 번득이는 총열 부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아무래도 빛은 잘 들어오지 않았고,
침상 표면에 허옇게 깔린 먼지는 탁한 공기를 불러일으키고
곰팡이 냄새를 자아낸다. 몇 달을 그대로 버려 둔 창고 같다.
침상의 먼지에 발자국이라도 몇 개 찍혀 있다면 악당들이
음모를 꾸미다가 식사라도 하러나간 아지트 같다.
이 속에는 갖은 규범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고, 또 갖은 제재가
분출구를 찾고 있고 있을 것이다. ‘동락’보다는 ‘동고’를
더 많이 겪으리라 믿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음산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위축되어 오는 것이 내부반의
첫인상이다.
“침상 3열에 정렬!”
침상에 깔린 세 번째 널빤지의 가장자리 선이 소위 말하는
‘침상 3선’이다. 약삭빠른 녀석들은 그런 정렬 상태가 분대
편성이라는 것을 넘겨짚고 마음에 드는 녀석들이나
친구 곁으로 재빨리 줄을 잡아 선다. 차례로 번호가 9번까지
불리어지고 나니 5개 분대가 편성된다.
“대졸 일보 앞으로!”
두어 명이 일보 앞으로 움직일 뿐이다.
“고졸 일보 앞으로!”
열 다섯 명 가량이 됨직하다. 이들 고학력자들에게 향도니
분대장이니 공급계니 서무계니 하는 직책이 부여되자,
더플백을 쏟아놓은 상태에서 관물 파악이 실시된다.
내무반장은 소대원에게 지급된 모든 관물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래서 한 가지라도 수용연대에서 타오지 않았나 하고
실과 바늘이 들어있는 보수대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그것이 끝나자 사제라는 사제는 죄다 침상 아래로 떨어뜨려
놓으란다. 검열을 해서 나오면 안 좋으니 내놓으라는 그 흔한
수법으로, 나의 호주머니 속에 은닉된 다우다 팬티와 양말을
꺼내놓게 만든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6.25때 노무자로 복무하는 동안,
군대의 열악한 보급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의
훈련기간 동안에 애로 없이 지낼 것을 염원하여, 빨기 쉽고
말리기 쉽다는 다우다 팬티를 사다 주셨던 것인데….
이제 보안검열을 실시한다며 호주머니에 든 물건을 죄다
발 앞에 쏟아놓으란다. 볼펜, 수첩, 지갑, 신문 쪽지, 손수건,
돈 따위가 침상 끝선으로 가득히 널린다. 내무반장은 그것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불필요한 것은 통로로 버린다.
침상에 널린 것만큼 통로에 널리는데, 그것은 사제 피복류와
함께 넉마장 같은 인상을 주게 만든다. 각자의 지갑 속에서
언 듯 언 듯 내비치는 돈의 액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아마 이들은 팬티의 구멍이나, 아니면 어느 은밀한 곳에다
돈을 숨겨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군대 팬티에는 고무줄 대신에 헝겊으로 만든 끈이 달려있지만
그 팬티에도 구멍은 있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게 보관하기 바란다.
나중에 분실하고 나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녀석이 있으면
아구통을 부셔놓을 테니까.”
그러나 누구 하나 몸을 움직이지 않았고, 그 후에도
내무반장에게 돈을 보관하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
사회에서 들어온 훈련소 내무반장은 한결같이 인정사정도 없고,
피와 눈물도 없고, 그래서 악의 극치인 훼르난도 산초 같은
인상이다. 호랑이에게 강아지를 맡기는 꼴이 될까봐
그들은 꼼짝도 않는 것이다.
보안검열이 끝나자 자리가 배정된다.
그것이 끝나자 각 분대에 임무가 주어진다.
이번 일주일 동안 1분대는 사역분대, 2분대는 식사 당번,
3분대는 내무반 청소 당번, 5분대는 막사 주위 청소 당번,
이런 식이다.
이렇게 분대별로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이고도
합리적인 통솔 방법이다. 훈련기간인 6주 동안 5개 분대는
매주 임무를 돌아가며 바꾸게 된다.
장구류까지 지급됐다.
철모는 어디에 놓고, 반합은 어디에 놓고….
내무반장은 열심이다.
“공급계, 이리와! 소대에 세면기가 다섯 개 지급돼 있다.
만일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모두 네 책임이다. 넌 지금부터
소대 지급품을 챙겨야 한다. 다 정돈됐으면 세면장에 가서
세면을 실시하도록! 각자 행동 개시!”
비로소 우리는 놓여난다. 그 해방감! 내무반장이 일러주는
세면장으로 다투어 플라스틱 세면기를 들고뛴다.
세면장은 막사보다 약간 작은 규모인데, 건물 복판으로
세면대가 길게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다.
양쪽으로 20여 개의 수도꼭지가 달려있고. 그 밑에는
플라스틱 세면기 크기만 한 홈이 있다. 그 홈에는 구멍이
뚫어져 있기 때문에 그 구멍을 막으면 또 다른 세면기
구실을 한다.
세면기를 홈에 넣고 물을 받아 그 자리에서 사용해도 좋고,
세면기 없이 홈에 물을 받아 사용해도 좋다. 아침이나 저녁
땐 이곳이 무척 붐비는데, 그 땐 세면기를 차지한 녀석들이
세면대에서 물러나 맨 바닥에 세면기를 놓고 사용하면
더 많은 인원이 짧은 시간에 용무를 마칠 수 있다.
180명 정도의 중대 전원이 사용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혼란스러울 때가 많고, 그러다 보니 소대와 소대간에
세면기 도난 사고가 일어나기 일쑤다.
얼굴에 한참 비누칠을 하고 있노라면 벌써 세면기는
온 데 간 데가 없다. 비누칠을 할 땐 눈을 뜨고 하라.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서 쓰리고 아프겠지만 그까짓 것쯤
참아야만 한다. 만일 세면기를 잃어버렸다면 넌 그 이상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소대원들로부터는 미련하고 빌빌거리는 녀석이라고 눈총을
받을 것이다. 아니,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 같은
원성을 살 것이다. 내무반장으로부터는 ‘똥간에 빠져
뒈질 새끼’라는 욕설을 들을 것이며, 십중팔구 엉덩이에
핏자국이 생길 것이다.
만일 세면기를 탈취 당하고 소대에 들어올 경우엔,
“어어, 세면을 했더니 시원하다” 라고 시치미를 뚝 떼야 한다.
그것이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처세술이다.
하지만 그 탈취 현장에 소대원이 목격하고 있었다면
그 처세술은 역효과를 가져올 지도 모르니 상황에 따라서
시치미를 떼는 처세술을 응용해 볼일이다.
거의 닷새 동안은 같은 소대원이라도 서로 얼굴이 익지 않기
때문에 세면기를 빌려쓰려면 소대와 성명을 대야만 하고,
그래도 상대편이 의심하는 눈치면 “넌 2소대 3분대지?
난 5분대야” 하고 아는 척이라도 해야만 하고, 상대편이
어느 분대인지 모른다면 그에 관해 아는 단편적인
이야기라도 해야 의심 없이 세면기를 인계 받을 수 있다.
이것을 악이용하면 다른 소대의 세면기를 수입 잡을 수 있는
비법이 생긴다. 내가 적을 알고 적이 나를 모른다면
백전백승이다. 어수룩하게 생긴 녀석에게 “너 3소대지?
나 2분대야. 다 썼으면 이리 줘” 라고 해 보라. 그러면 녀석은
한참 쳐다보다가 “쓰고 가져와!” 하면서 세면기를
건네 줄 것이다.
이는 간악한 자와 백치 사이에서 입소한 지 닷새 이내에
이루어지는 설화이고, 그 닷새가 벗어났을 때에
그런 방법으로 세면기 하나를 수입 잡으려 하다간 몰매를
맞아 황천행이니 주의해야 할 일이다.
차츰 그 고달픈 교육에 임하다보면 소대원들은 구면처럼
친숙해지고, 다른 소대원들도 그들이 우리 중대의 일원이라는
것쯤은 금방 알게 되는 것이다.
입소한 다음날 아침에 한 의식이 있었다.
중대본부 옆에 있는 공터를 ‘중대사전’이라고 한다.
중대원이 집합하여 중대장의 훈시를 듣고, 또 교육장에
출발할 때 집합하는 중대 연병장 구실을 하는 곳이다.
일명 ‘점호장’이라고 하는 곳이 그 곳이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공팔시(아침 여덟 시)’에 중대
전원이 그 중대사전에 집합했고, 각 소대 앞에 내무반장이
정위치한다. 1소대에서부터 훈련병 각자에게 병기가
하나씩 수여된다. 조교가 엠원 소총을 하나씩 중대장에게
건네면 중대장은 그 소총을 받아, 총기 번호를 큰 소리로
불러주면서 훈련병에게 건네준다.
이게 소위 말하는 ‘총기 수여식’이다.
병기에는 병기 공장에서 만들어낸 순서에 따라 일렬번호가
매겨진다. 그 당시 엠원 소총의 번호는 백만 단위였다.
내가 받은 총기의 번호는
3350482.
군인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에게 지급된 총기 번호를 외고
있어야만 한다. 중대원 전원에게 이렇게 일일이 엠원 소총이
수여되자, 이제는 ‘선서식’이 진행된다.
훈련병 대표자가 선서문을 들고 중대 앞 중앙에 위치하자
중대장이 지휘대 위에 선다. 대표자가 왼손을 치켜세우고
“선서!” 하고 말하면 우리도 역시 왼손을 치켜세우고
“선서!” 하고 복창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급된 병기가 우리의 제2의 생명임을
명심하여 우리 몸 같이 사랑하고 아낄 것이며….”
말로만 듣던, 그리고 영화에서나 보던 총을 나도 이제
갖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총은 훈련용이다. 그래도 총은
총인 것이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는 총을
내가 갖게 된 것이다. 군인이 다된 느낌이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첫 교육이 실시된다.
그것은 엠원 소총의 각 부품 명칭을 외고 분해와 결합을
배우는 교육이다. 우리는 분해된 엠원 소총을 앞에 놓고
침상에 앉았고, 내무반장은 통로에 앉아 부속품을
하나하나 집어 올리며 그 명칭을 외게 한다.
“큰밀대!”
“큰밀대!”
“밀대못!”
“밀대못!”
“야, 이 새기야! 넌 뭐야! 아직도 못 찾아? 이런 우라질 새끼!
눈구멍은 가죽이 적어 파놓은 줄 알어?”
입소 이틀째가 되는 날부터 난 어떤 두려움으로 가슴을
죄여야만 했다. 20여 가지가 넘는 저 엠원 소총 부속품
이름을 무슨 재간으로 욀 것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분해하고 결합할 것인가.
아무래도 전우들의 대열에서 낙오될 것 같았고,
그 낙오라는 것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처럼 다독거림을 받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저주받고 냉대 받고 끝내는 소외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그저 암담하기만 하다.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하다 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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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11회
<세수비누가 찹쌀떡으로 보인다>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