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너의 모든 것'을 보면 여성스토커이자 연쇄살인마인 '조 골드버그'에게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끼고 그의 범죄행각이 발각되지 않길 바라게 된다. 분명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아 버린 나쁜 놈이지만 어떻게든 정당성을 부여하며 그의 범죄행각을 응원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지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그러하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 눈앞에 있더라도 웃는 얼굴로 인사치레를 하여야 하며 자신을 속이고 배신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 는 사람이 있어도 그저 속으로 울분을 삼키는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여주인공 릴리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어린 시절 자신보다 더 큰 종에게 쫓기는 불쌍한 고양이를 위해 살생을 한 게 영향이 있었을까.. 자신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추행하려 하는 화가 '쳇' 을 어린 나이답지 않은 비상함과 침착함으로 우물에 빠트려 죽여 버리고 대학시절 남자친구 에릭이 자신 몰래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 계획살인을 실행한다. 일전에 예능프로그램에서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빗대어 말하자면..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가 신념을 가지게 되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썩은 사과 몇개를 조금 일찍 도려 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라는 그녀의 그릇된 가치관이 스스로의 살인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젊은 사업가 '테드'는 아내 '미란다'와 신혼으로서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어느 날 테드는 미란다가 주택 시공업자 '브래드'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정부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냥 마음만 그러할 뿐 속으로 분을 삭히는 수 밖에 없다. 런던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릴리.. 테드는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고 어느새 아내의 외도와 죽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다 얘기해 버리고 만다. 다른 이유는 없다. 어차피 비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사뭇 다르다. 그녀는 자신이 나서서 아내의 살해를 적극 돕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소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시점전환이다. 주인공 릴리를 중심으로 크게 테드, 미란다, 킴볼 이렇게 네 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든 시점이 각각의 1인칭으로 서술되어 그들만의 시각에서 별개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지금껏 1인칭 시점을 교차해서 서술한 일부의 소설을 경험한 적은 있었으나 4명의 1인칭 시점 전환방식은 처음이었다. 상당히 복잡할 것 같다고 생각되겠지만 의외로 머릿속에 쉽게 각인이 되며 소설에 잘 녹아든다. 게다가 난관에 부딪히는 인물들이 저마다의 '나'이다 보니 또 다른 '나'와 부딪히는 장면에서 한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던 상황이 또 다른 이의 시각에서는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를 경험하면서 몰입감의 정도를 배가시킨다. 아무래도 사건의 소재자체가 불륜의 대상을 향한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보니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인물간 감정 교차의 순간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듯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소설의 매력은 또 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주인공 릴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자라면 죽여야 한다는 사이코패스기질을 가진 여자다. 그런데.. 그의 앞에 역시나 비슷한 기질을 가진 여자가 또 있다. 바로 테드의 아내 미란다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중반이후의 줄거리는 사이코패스기질을 가진 인물들이 마치 '누가누가 먼저 죽일까' 게임을 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들 서로간에는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상황에 쳐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사실들을 독자들에게는 고스란히 다 알려 주기 때문에 과연 이 정신 나간 이들의 전쟁은 어느 종착지에 다다르게 될런지 가슴 졸이게 되는 스릴러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다한다.
현실세계에서 자신은 꿈도 꿀 수 없는 추악한 일들을 손수 실행하는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나쁜 이들을 대신 벌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정작 주인공의 범죄행각에 대해선 생각이 무뎌지는... 바야흐로 그런 생각이 대중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적어도 내가 어린 시절 도덕책이나 국어책에서 배운 주인공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현재의 그들이다. 감정적으론 죽어 마땅하다고 여겨지지만 이성적으론 그들의 죽음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때아닌 죽음과 배치되는 위치에 자리한 릴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마지막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백번 양보해 '죽어 마땅한 사람'은 있을 지라도 '죽여 마땅한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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