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잇달아 두 번 읽기
여러분의 책장에 책은 어떻게 꽂혀 있으신가요? 책이 몇 권 없어 꽂히고 말고 할 것이 없으시다 구요? 애들 동화책이나 전집류 책만 있고 정작 본인 책은 없으시다 구요? 예, 그런 분들도 있으실 수 있고 그런 시절도 있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분들은 자신만의 책을 따로 꽂아둔 공간이 있으실 것입니다. 거창하게 서재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집 한 편에 자신의 책을 꽂아둔 공간 말입니다.
저는 집을 인테리어 하면서 서재를 어떻게 꾸밀까? 서재 책장의 책은 어떻게 꽂을까? 이리저리 궁리를 많이 하였습니다. 책장의 책만은 기존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꽂고 싶었습니다. 책장의 책을 정리하는 것은 제 머리 속을 정리하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종전에는 자기계발, 경제, 경영, 역사, 동양철학, 성경 등등 주제별로 책을 분류하여 꽂았습니다. 흔히들 하는 방식입니다. 책을 찾기 쉽고 제가 어떤 종류의 책을 많이 가지고 있고 제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꽂이 방식은 너무 틀에 박혀 저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주제별로 책을 꽂다보니 제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이 꽂힌 데만 눈길이 갈 뿐 다른 분야의 책은 일 년이 지나도 눈길 한번 건네지 않습니다.
누군가 ‘천재가 되는 법’을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에 수많은 주제별 폴더를 지니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어떤 단어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면 머리는 분주하게 그 단어가 들어 있는 폴더를 찾아 그 속에 있는 유사한 개념의 단어를 머리에 떠 올립니다. 그러나 천재는 그 단어가 들어있지 않은 다른 단어의 폴더를 찾아가 엉뚱한 개념과 그 단어를 연결시킵니다. 이것이 소위 통섭입니다. ‘얼음이 녹으면 [ ] 된다.’라는 문제가 나왔을 때 보통사람은 얼음, 물, 수증기 등이 들어있는 폴더를 찾아 ‘물’을 연상합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들어있는 폴더로 날아가 ‘봄’이라는 개념을 찾아옵니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고 말입니다. 천재는 콜라, 사이다, 주스가 들어 있는 폴더로 날아가 ‘콜라’라는 개념을 연결 짓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콜라 맛이 밍밍하게 된다.’ 이 차이는 폴더를 넘나드는 힘에서 나옵니다.”
오래전 이 이야기를 월요편지에 썼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늘 어떻게 하면 폴더를 넘나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삽니다. 폴더를 넘나들기 위해 저는 과감히 주제별 책 꽂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 대신 도전한 방법이 색깔별 책 꽂기였습니다. 생각보다 책들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색깔별로 꽂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의외로 검정색 책이 많더군요. 왼쪽 책장부터 검정색,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하얀색 순으로 책을 꽂았습니다. 이렇게 꽂고 나니 책 찾기가 무척 어려워 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얻은 것이 있습니다. 주제별로 책이 꽂혀 있을 때는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던 책도 제가 찾고 싶은 책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책장을 뒤지다 보니 눈에 들어와 읽게 되더군요. 이렇게 하면 제가 생각하는 개념에 대해 상식적인 폴더가 아닌 다른 폴더의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경영’에 대한 책을 찾다가 ‘진화론’에 대한 책에 눈길이 가게 되면 그 순간 ‘경영을 함에 있어 급격한 혁신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 아니라 진화를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꽂아 놓고 매일매일 책장을 뒤지다 보니 어떤 책은 분명히 읽은 책인데 처음 보는 책 마냥 정말 생소한 책들도 있습니다. 책을 펼쳐들면 줄도 그어져 있고 메모도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리 낯설까요? 인간의 망각 때문일 것입니다. 망각에 관해서는 유명한 에빙하우스 박사의 망각곡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의미학습에 관한 연구인데 학습 후 10분부터 망각이 시작되며 1시간 뒤에는 50%, 하루 뒤에는 70%, 한 달 후에는 80%를 망각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파생하여 반복학습법이 많이 나왔습니다. 제 경험에 의해도 책을 읽고 책에 메모한 것을 다른 곳에 정리해 두기만 해도 일정부분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기억력이 둔화되어 읽고 돌아서기만 해도 다 잊어버리는 현실을 저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은 전화번호 7개 숫자를 한꺼번에 못 외워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메모한 종이를 다시 보는 실정이니 읽은 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옛날에는 나도 한때 기억력깨나 좋았지 하면서 옛날타령이나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책을 잇달아 두 번씩 읽는 것’입니다. 아이비리그 학생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확인한 것은 아니니 그냥 재미로 이해하십시오. ‘모든 책은 두 번씩 읽어라. 첫 번째는 빠르게 두 번째는 깊이 있게’ 어린 학생들의 생각이지만 핵심을 찌른 그 무엇이 있습니다. ‘화차’라는 영화를 만든 변영주 감독은 ‘인생의 지혜는 책을 두 번 읽는데서 시작된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저의 책 두 번 읽기 계획에 힘을 실어줍니다. 결정적인 서포터즈는 쇼펜하우어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좋은 책을 두 번 이상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우리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책은 두 번 이상 읽는 것이 좋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사람이란 한 가지 일을 두 번 경험하면 그 경험을 다른 것과 연관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첫 번째에서 놓친 부분을 되살릴 수 있으며 결론에 대한 확신이 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첫 번째와는 아주 다른 생각과 기분을 얻게 되면서 그 자체의 인상이 달라진다. 그것은 똑같은 물체에 다른 조명을 비추어 보는 것과 같아 인간의 두뇌는 원하는 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짐 콜린스의 최신작 “위대한 기업의 선택(Great by Choice)”을 잇달아 두 번째 읽고 있습니다. 이 실험이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첫 번째 책이 성공하면 두 번째 세 번째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책에서 성공하면 영화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영화 잇달아 두 번 보기’ 결과가 어떨지 지금부터 궁금해집니다. 저처럼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똑같은 책 똑같은 영화를 잇달아 두 번 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에 두 번 읽으신 책이 몇 권이나 되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11.12.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