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년11월09일(일요일) 부여군 [송국리 선사취락지&부여 왕릉원&부소산성&성흥산 가림성 솔바람길] 탐방일정
국민은행 010-9024-3919(예금주: 이진미) 계좌로 10월16일 회비 25,810원 송금 완료
2열4번 좌석 예약
탐방지 : 부여군 [송국리 선사취락지&부여 왕릉원&부소산성&성흥산 가림성 솔바람길]
탐방일 : 2025년11월09일(일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5시간43분 소요)
07:00~09:10 “신사산악회” 버스로 지하철 3호선 신사역 5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여 충남 부여군 초촌면 선사로 197 번지에 있는 송국리 선사취락지자료관으로 이동 [2시간10분, 156.4km]
09:10~09:40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인 송국리 선사취락지를 관람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 (扶餘 松菊里 先史 聚落址)
목차
정의
발굴 경위 및 결과
의의 및 향후 과제
이칭 : 부여송국리유적(扶餘松菊里遺蹟)
건립 시기 : 청동기시대
면적 : 535,107㎡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 부여 송국리 유적(扶餘 松菊里 遺蹟)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지/주거지
지정기관 : 국가유산청
요약 :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이다.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돌널무덤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총 25차에 걸친 학술 발굴이 진행되면서 대지 조성 흔적, 대지 구획 시설, 목주 열, 대형 굴립주 건물지와 같은 특징적인 유구 및 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 찾은 집터와 무덤, 토기와 석기 등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를 대표하는 이른바 송국리 유형으로 설정되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
발굴 경위 및 결과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扶餘 松菊里 先史 聚落址)는 1974년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주1과 청동끌, 간돌검, 돌화살촉, 대롱옥주2, 곱은옥주3 등이 부장(副葬)주4된 1호 돌널무덤의 수습 조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정식 학술 조사는 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시작되어 1987년(제7차)까지 실시되었다.
1975년 첫 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집터를 비롯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유적들의 광범위한 분포가 확인됨에 따라 학술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송국리 일원 535,107㎡가 사적 제249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부터는 국립공주박물관(제8차~제10차)과 국립부여박물관(제11차)이 연차 발굴을 진행하였다. 이후 2008년 제12차 조사부터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가 전담하고 있는데, 2020년까지 제25차 조사가 이루어졌다.
송국리 일대는 해발 50m 내외의 완만하게 언덕진 산지에 자리한다. 북쪽으로는 언덕이 계속 이어져 산지와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넓고 평평한 지대가 발달해 있다. 유적 주변은 여러 작은 하천이 흐르며, 곳곳에 낮은 언덕땅과 충적 대지가 형성되어 있어 인간이 거주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적 내 각 지구 명칭은 1975년 농지확대개발사업지구 지정 당시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남북 방향의 주 능선에 해당하는 5457지구에는 방형계 집터와 나무 기둥, 대형 건물지가 자리한다. 동남쪽의 가지 능선인 50지구와 서쪽의 가지 능선인 53지구와 55지구에서는 원형 집터가 분포한다. 무덤은 대부분 52지구와 53지구의 중앙 능선에 자리한다. 한편 5357지구 능선 정상부와 54지구의 설상 대지에서는 대지 조성 흔적이 확인된다. 언덕 비탈면의 흙을 깎아 바닥을 다졌으며 풍화 암반층을 깎거나 흙을 쌓아 평탄화된 지표면을 조성하였다.
2020년까지의 발굴 결과 집터 117기, 구덩이 107기, 소성(燒成)주5 유구 8기, 굴립주(掘立株) 건물지 11기, 나무 기둥 16기, 통나무 담장 20기, 주공렬 10기, 주공군 5기, 도랑 모양으로 만든 터 2기 등의 생활 유구와 돌널무덤 4기, 구덩무덤 7기, 독널무덤주6 7기 등의 분묘 유구가 확인되었다.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 원형, 타원형으로 세분된다. 방형계 집터는 장축 3m 미만의 소형에서 장축 14m 이상의 대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가 확인된다. 원형계 집터와 달리 바닥면에 화덕자리주7를 시설한 것들이 다수 확인된다. 원형계 집터는 직경 3~5m 정도의 크기이며 바닥 면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구멍이 시설되어 있다.
전체 117기 중 방형계가 68기로 원형계에 비해 우위를 점한다. 방형계 집터는 취락지 주 능선 평평한 지면에 있는 데 반해, 원형계 집터는 언덕 비탈진 곳에서 발견된다. 양자를 집단이나 기능의 차이로 보는 견해와 함께 선후 관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 뚜렷한 근거를 찾지 못하였다.
대형 건물지는 모두 3기가 조사되었는데 54지구 설상 대지에서 2기, 52지구와 53지구 사이에서 1기가 확인되었다. 과거 54지구의 유구는 취락의 방어 시설인 목책(木柵)주8으로 보았으나 이후 추가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11×1칸 구조의 굴립주 지상 건물로 판명되었다. 규모는 각각 19.8m×3.4m, 23.4m×3.4m 크기이다. 3호는 주 능선 서쪽 경사진 지면의 평평한 곳에 자리한다. 규모는 5.3m×3.2m 크기로 1호와 2호에 비해 다소 작은 편이다.
나무 기둥은 5457지구 일대에서 확인되었는데 주로 2열의 주공이 쌍을 이루며 진행된다. 특히 언덕 꼭대기 평탄화된 지표면에서는 서쪽 4조, 동쪽 9조 등 13조의 나무 기둥이 200m 이상 이어진다. 나무 기둥 또한 과거에는 5457지구의 주 능선을 방어하는 목책 시설로 추정되었지만, 54지구의 목책열이 대형 굴립주 건물지로 밝혀졌고, 나무 기둥이 57지구까지 연장되는 양상이 확인됨에 따라 더 이상 목책 시설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나무 기둥의 성격을 확정하기에는 아직 더 많은 자료가 확보되어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대형 굴립주 건물이나 건조물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폭이 좁은 도랑 내부에 나무 기둥을 세워 만든 울타리 구조인 통나무 담장은 대지 구획 시설로 추정되는데, 1 · 2호 대형 건물지와 3호 대형 건물지 주변, 언덕 윗부분 평평한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무덤이 자리한 52지구와 53지구 중앙 능선은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의 중심 묘역으로 설정되고 있다.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독널무덤 17기가 확인되었다. 부장품으로는 무기류와 공구, 토기류, 장식품 등이 있는데, 이를 통해 무덤에 매장되어 있는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나 위계를 가늠할 수 있다.
집터와 구덩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청동기와 토기, 석기가 있다. 청동기는 동검과 동끌이 있는데 모두 1호 돌널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로 구분된다. 송국리식의 독과 항아리, 바리, 단지, 뚜껑 등의 민무늬토기가 절대 다수를 점하지만,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와 골아가리무늬토기도 소량 발견되었다. 붉은간토기로는 플라스크형, 바리 모양, 사발 모양 등이 있으며, 두귀달린 붉은간토기도 일부 발견된다. 한편 덧띠토기 단계에 속하는 굽다리접시 모양의 토기와 검은간토기도 수습되었다.
또한, 간돌검, 간돌창, 간돌화살촉, 바퀴날도끼, 돌도끼, 홈자귀, 돌낫, 간돌칼, 대팻날, 돌끌, 숫돌, 갈판, 공이, 가락바퀴, 거푸집 등 많은 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대롱옥과 굽은옥, 토제구슬과 같은 장신구도 확인된 바 있다.
의의 및 향후 과제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학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이와 동일한 문화상을 갖는 유적 및 유물 복합체는 이른바 송국리 유형으로 설정되어 편년을 비롯한 다양한 고고학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부 중앙 바닥면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구멍이 설치된 송국리식 집터, 외반된 구연부와 긴달걀꼴의 동체부 그리고 축약된 저부 기형의 송국리식 토기, 대야바닥의 플라스크형 붉은간토기, 삼각형돌칼과 홈자귀, 돌널무덤 · 돌뚜껑움무덤 · 독널무덤의 송국리형 묘제, 부채 모양 청동도끼의 거푸집 등은 송국리 유형을 구성하는 유구 · 유물이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는 많은 양의 쌀과 조, 밀, 기장, 콩, 팥 등의 작물과 잡초류 종자가 확인되었다. 곡물 자료와 수확 도구, 저장시설, 수많은 집터와 건물지 같은 구조물을 통해 볼 때 벼농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 중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농경 취락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편년, 생계 경제, 취락, 사회구조 연구에서 새로운 획기를 마련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건축, 농경, 수공업, 분묘, 의례 등 과거 생활문화사를 복원하는 데 있어 수많은 고고학적 자료를 제공하였다.
극히 일부만이 발굴되어 현재로서는 취락의 전체적인 모습을 복원하기 불가능하며 여전히 수많은 연구 과제가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적의 전체적인 범위와 유구 분포를 파악하기 위한 시굴 조사가 먼저 해결되어야 하며, 학술 발굴도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09:40~09:55 “신사산악회” 버스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388-1 번지에 있는 부여 왕릉원으로 이동 [15분, 10.7km]
09:55~10:30 부여 왕릉원 탐방
[부여 왕릉원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문의처 : 매표소 041-830-2890
지정현황 : 사적 제14호(1963.01.21 지정)
세계적 걸작인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부여 왕릉원(扶餘王陵園)
관광지 소개
사비시대(538~660)의 백제왕릉묘역이다.
동쪽 나성(羅城)의 바로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7기(基)의 고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도 각기 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크게 3개의 무덤군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가운데 중앙구역에 위치한 무덤들이 그 크기나 위치로 보아 사비시대 역대 왕들의 왕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 고분군의 입지는 전통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지세(地勢)와 잘 일치되고 있어 백제 당시에 이미 풍수지리사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다.
7기 고분중 동하총(東下塚)인 1호분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교류를 증명해 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이래 여러 차례 조사되었으나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옻칠과 금박(金箔)으로 장식된 관(棺)의 파편만 남아있었다.
최근 나성과 능산리 왕릉묘역 사이의 계곡에서 이곳에 안장된 역대 왕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절터가 조사되었는데, 그곳에서 백제 금속공예의 진수(眞髓)를 말해주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제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제288호)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여왕릉원 아트뮤지엄
운영일 : 금요일 ~ 화요일
휴무일 : 수요일, 목요일
운영시간 : 10:00 ~ 15:00(점심시간 12:00 ~ 13:00)
이용안내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휴무일
연중무휴]
10:30~10:40 “신사산악회” 버스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1-1 번지에 있는 구드래나루터 주차장으로 이동 [10분, 4.3km]
10:40~11:50 [구드래나루터 주차장~(1.0km)~부소산성~(618m)~고란사~(158m)~낙화암~(526m)~부소산성~(1.0km)~구드래나루터 주차장]의 코스(약 3.3km)로 부소산성을 탐방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웅진(현재의 공주)에서 사비(현재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곽의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동.서.남문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수구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고란사
고란사(皐蘭寺)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의 북쪽 백마강변에 있는 절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었다. 마곡사에서 갈라져 나온 절이며, 법당 건물은 숭각사를 옮겨 중건하였다.
개요
고란사 바로 위쪽으로 낙화암이 있다. 절 뒤의 바위틈에는 고란정이 있고, 그 위쪽 바위틈에는 고란초가 자라고 있다.
절 연혁은 백제 말기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 내불전이었다고도 전한다. 혹은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사라져간 궁녀들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법당 건물은 1797년(조선 정조 21년)에 은산의 숭각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 정조 21년(1797년)에 중건했다고 한다. 연화문을 새긴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에는 조각 장식이 화려한 익공식 공포를 짜올렸다. 초석에 새긴 연화문양은 고려시대 기법으로 추정한다.
사찰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낙화암에 얽힌 전설과 더불어 험준하며 기이한 바위, 고란초 등으로 유명하다.
연혁
부소산 북쪽 백마강 왼쪽 암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고란사는 그 절 이름의 유래가 사찰 후면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고란초로부터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고란초는 양치류에 속하는 은화식물(隱花植物)로서 포자로 번식되는 이끼 종류의 일종이라 하며 제주도에서는 불로초로 불리고 있다 한다.현재의 사원은 은산 숭각사(崇角寺)에서 옮겨 온 것으로 중수 3창하였으며, 1959년 고쳐 지을 때 대들보 밑에서 고란사 상량문이 나왔는데, 이에 의하면 정조 21년 정사(1797)에도 고쳐지은 적이 한번 있었던 건물이다.
또한 그 이상 올라가는 연대의 상량문도 있었다 하나 종이가 삭아서 판독할 수 없었다 한다. 현재는 이 대웅전 좌측에는 요사채가 있고 우측으로는 범종각이 위치하고 있다.
대웅전
높은 암벽 앞에 위치하고 있는 이 대웅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비교적 규모가 큰 불전건물인데, 좌측 2칸을 요사로 사용하고 나머지 우측 5칸 모두에 우물마루를 깔고 후면 중앙부분에 긴 불단을 조성하였다.
구조는 6벌대로 쌓은 높은 화강석 기단위에 방형과 원형, 그리고 복련판이 조각되어 있는 부재들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이 부재들의 일부는 백제시대의 초석을 전용(轉用)한 것들로 보여지고 있다. 공포는 무출목 이익공계통이나 앙설형(仰舌形)으로 뻗은 초익공의 상단에는 연꽃이, 수설형(垂舌形)으로 뻗은 이익공이 아래에는 연봉우리 등의 조각이 되어 있어서 장식적 경향이 매우 심하다
지붕틀 가구는 대들보 아래에 걸쳐서 우물천정이 가설되어 있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부여 부소산 낙화암 아래에 있는 고란사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약수에는 갓난아기가된 할아버지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아득한 옛적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슬 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늙도록 자식이 없어 할머니는 늘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다시 한 번 회춘하여 자식 갖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일산(日山:금성산)의 도사로부터 부소산의 강가 고란사 바위에는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나오는 약수에 놀라운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 날 새벽 남편을 보내 그 약수를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다음 날 일찍 약수터로 찾아가 보니 할아버지가 없고 웬 간난아이가 남편의 옷을 입고 누워 있어 깜짝 놀랐다.
할머닌 "아차!" 했다. 도사가 한잔 마시면 삼년이 젊어진다는 말을 남편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는데 후에 이 할아버지는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백제시대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낙화암
낙화암은 부여군 부소산 북쪽 백마강(금강) 변에 서 있는 바위 절벽이다. 백제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 낙화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절벽에는 조선 후기 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쓴 낙화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부소산성을 통해 직접 올라가 정자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올려다보는 것도 좋다. 낙화암 아래에는 고란사와 고란사 선착장이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부소산성, 고란사 외에 부여 관북리유적,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 구아리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향교,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등이 있다.]
11:50~11:53 걸어서 구드래나루터 주차장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4-6 번지에 있는 덕고개로 이동 [3분, 175m]
11:53~14:53 성흥산 가림성 솔바람길 탐방
탐방코스 : 덕고개~구교리길 합류점~가림성길 합류점~사랑나무~유금필장군사당~성흥산 정상~사랑나무~대조사 갈림길(석조미륵보살상 앞 안내판,역사문화대장정 인증)~대조사 갈림길~임천면 행정복지센터 (6km/3h)
[부여 성흥산 솔바람길 - 드라마촬영지
부여 성흥산 솔바람길은 덕고개에서부터 시작하여 가림성 사랑나무를 지나 한고개까지 걷는 길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가림성’은 ‘성흥산성’의 본래 이름으로 백제 시대 도성을 지키기 위한 요충지였다. 성흥산성을 끼고 조성된 솔바람길은 단풍을 비롯한 가을 풍경을 느끼며 걷기 좋다. 코스를 걷다 보면 마주할 수 있는 성흥산의 상징과도 같은 사랑나무는 약 5km에 이르는 부여 가림성 솔바람길('성흥산 솔바람길'로 불리기도 한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백미로,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
대한민국의 사적 (구)제4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 51,398m2
시대 백제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 (군사리)
좌표 북위 36° 11′ 44″ 동경 126° 53′ 54″
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와 장암면에 걸쳐 세워진 산성으로 백제 동성왕 23년인 501년에 세워진 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호 부여성흥산성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데, 이 지역의 이름이 가림군이었기 때문이다. 부소산성과 부여군(백제때 지명은 "사비")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10 km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백제 도성들(부여 및 공주)를 따라 흐르는 금강 하류 요충지로서, 금강 하류 일대를 관측할 수 있다. 백제 시대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와 당시의 지명을 알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부여 일대의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도성을 보호하는 거점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위직인 위사좌평이 이 성을 담당했다고 하는데, 이는 이 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기록에 따르면, 이 성을 쌓은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성을 쌓은 후 동성왕이 이곳을 지키게 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동성왕을 죽였다고 하며, 무령왕이 이 반란을 진압했다.
성벽과 산성의 특징
성의 형태는 테뫼식 산성으로 산봉우리를 둘러싸 원형으로 성벽을 구축했다. 성벽 일부는 화강암을 쌓았지만, 동쪽 성벽 등 일부는 흙으로 쌓았다. 2008년 1월 현재까지 확인된 성의 둘레는1,500m이고, 성벽 높이는 3~4m에 달하는데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을 파내면서 석축 안쪽에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안쪽에는 호가 만들어졌다.[4]
남문지는 성루나 성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초석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약 4m 넓이다.
성내에는 우물 3개와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초석 등이 남아 있으며, 성 중앙에는 고려 개국공신 중 한 명인 유금필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 세워져 있다. 성흥산성 동남쪽에는 대조사가 있는데, 이곳에는 고려 초기 천연암석을 이용하여 만든 높이 10 m의 대조사 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이 세워져 있다. 대조사는 백제가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는 천도에 관한 설화가 얽힌 곳이다. 가림성은 백제시대 부여천도에 대한 설화뿐만 아니라 부여지방을 수호하는 수도경비의 역할을 담당했던 주요 산성이었다.
발굴조사
산성에 대해 1996년 동‧남문지에 대한 조사를 펼친 바 있으며, 본격적인 조사는 2011년, 2015년, 2016년, 2017년에 이루어졌는데 이 때 산성의 동성벽, 북성벽, 내부 일부 평탄지 등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동‧남문지 축조 형태, 백제 시대 성벽의 축성법,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개축한 성벽 흔적 등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가림성은 동·북성벽, 문지 등에 대한 조사를 주로 시행하였는데, 2018년에는 사비도성의 왕궁지인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이 조망되는 곳으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인 가림성 내부의 산 정상부를 조사하여 건물지를 확인했다.
이후 2019년 9월부터 북성벽 내측부를 조사하여 집수정과 배수시설을 확인하였다.[5] 발굴을 통해 백제 시기의 성벽 축성 기법과 함께 통일신라·조선 시대의 개축 흔적, 집수정 및 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가림성 주변지역
가림성은 현재 성흥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가림성이 위치하고 있는 산의 이름인 성흥산이기 때문이다. 가림은 백제시대 이 지방의 명칭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시기에 김유신과 천관녀사이에 태어난 김시득 장군이 이곳에서 활동하며 당나라와의 기벌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이 지방 이름은 임천으로 백제때 백가의 반란에 의해, 지방의 이름이 강등되는 의미로 바뀐 것으로 전한다. 임천은 고려 조선시대에 임천군으로 유지되다가 부여군과 통합되어 현재는 부여군 임천면으로 있다. 가림이라는 지명은 초등학교 등의 이름에도 일부 사용되었다.
대중 문화
-성흥산성은 SBS에서 2005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서동요의 촬영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주인공인 서동과 선화공주가 평민으로서 살기 위해 움막을 친 곳이 이곳이며, 산성 남문 입구의 큰 나무는 두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성흥산은 높이가 260미터에 불과한 높지 않은 산으로 오르기도 어렵지 않다. 낮은 높이지만 부여로부터 휘돌아 나가는 금강을 끼고 있는 평야지대와 인근의 야산들로 인해 탁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매년 1월 1일에는 정기적으로 새해 해맞이 행사와 고려시대 유금필장군의 사당에서는 충혼제라고 하는 연래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성흥산성의 느티나무는 드라마 촬영으로 많이 유명해졌다. '대왕세종(KBS)'에서도 자주 촬영지로 이용되었으며 마지막 편이 여기에서 촬영되었다. 신윤복과 김홍도를 중심인물로 그린 '바람의 화원(SBS)', 고려 전기를 배경으로 하는 '천추태후(KBS2)', 환타지 사극인 '환혼(tvN)'에서도 촬영장소로 활용되었다.
임천 충혼제
임천 충혼제는 매년 4월말 2일간 임천면 군사리 성흥산성에서 임천면 번영회 주최로 봉화제, 산신제, 충혼제, 연등행렬 등이 개최되고 있다. 700년 사직의 백제가 멸망할 당시 임천 성흥산성에서 나당연합군에 대항하여 목숨을 바친 백제 무명장졸들의 충혼을 기리는 향토 제례행사이다. 1979년에 시작되어 매년 4월말에 2일간 열리는데 첫날에는 성흥산성까지 연등행렬이 진행되고 산성 봉화대에서 봉화제가 올려진다. 이어 이튿날 오전에는 역사문화행렬, 개막식, 충혼제가 열리고, 오후에는 부대행사로 국악공연, 줄다리기, 게이트볼 대회, 노래자랑 등이 펼쳐진다.
2024년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10월 5일 임천충혼제가 성흥산성 성흥사 사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초헌관은 군수(또는 군의회의장)가 진혼 제례를 올린다. 가림성에서는 멀리 기벌포(장항 금강입구), 동으로 논산 황산벌(계백장군 오천결사대 신라와 전사지) 계룡산과 백마강으로 둘러싸인 부여(사비성 부소산)가 조망된다. 성흥산성(성충흥수 산성 산정에는 성흥루 누각이 있으며, 그 아래 현재도 산정 우물이 남아 있다. 고려 개국공신인 유금필 사당이 있는것은 유금필이 견훤을 정복하러 전라도 지역에 출정하다가 임천의 역병등 큰 질병을 구휼한 덕을 기려, 조선시대 임천군 주민들이 사당을 세워 기리고 있다. 유금필장군은 왕건의 배향공신으로 향해도 평산(조선 태종이전 평주)출신으로 평산 유씨의 시조다.)
[백제의 역사를 품은 부여 가림성 '사랑나무'
드라마 명소이자 MZ세대 포토스팟으로 각광…역사와 낭만이 공존하는 부여
오영태 기자 | gptjd00@hanmail.net | 2025.05.09. 14:49:57
[프라임경제] 충남 부여군 임천면, 그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있다.
가림성의 정상부에 자리한 사랑나무는 그 자체로 사랑의 상징이자, 백제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유산으로 연인과 가족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는 감성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이 나무는 400년 이상을 살아온 느티나무로, 그 가지의 형태가 반쪽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그 하트 모양을 사진 속에 담으면 사랑의 메시지가 사진 속에 담기게 되는 마법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이 나무 아래에서 인생샷을 찍으며,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이곳은 이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장소로 MZ세대 사이에서는 '인생샷 필수 포토존'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사랑나무는 가림성 정상부에 자리해 있어, 금강을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경과 함께 일출과 일몰의 풍경이 아름다워 출사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드라마 서동요, 호텔 델루나, 원경 등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 사랑나무가 있는 가림성은 단순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치지 않는다. 백제 동성왕 23년, 전략적 요충지로서 쌓아 올려진 이 성은 그 이름 그대로 백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중요한 유적지다.
과거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운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백제 멸망 이후에도 부흥운동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며 백제 왕도의 흔적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사랑나무 아래에서 바라보는 금강의 넓은 전경은 일출과 일몰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사진가들뿐 아니라 그저 평화로운 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출사지가 됐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의 이야기가 이곳에 묻혀 있다.
현재, 가림성은 성벽 정비와 유적 발굴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으로, 방문객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생생한 발굴 현장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가림성은 그저 한 나무와 한 성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에서 함께하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추억을 만들어간다.
부여군 관계자는 "사랑이 깊어지는 곳, 가림성 사랑나무에서 소중한 사람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14:53~15:00 휴식
15:00~17:10 “신사산악회” 버스로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 97번길 23 번지에 있는 임천면 행정복지센터를 출발하여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으로 귀경 [2시간10분, 173.4km]
[부소산&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 위치도
부여 왕릉원 지도
부소산성 지도
[성흥산 가림성 솔바람길] 개념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