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수능이 막 끝난 후, 이맘때면 떠 오르는 사람이 있다. 제자 M이다.
"밀림 속 호랑이 털 "(가명)이라는 곳에서 시급 10만 원을 준다는 광고를 보고 상냥하고 성실한 그가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
수능 끝나자마자 똑똑한 놈이라면 공부를 할 것이고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일을 할 것이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려 깊고 멋진 제자이다.
전화로 시급 사실 확인을 하고 외판이나 다단계 아닌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먼저 꼼꼼하게 물어보았다. "그냥 와 보시면 알게 돼요. 학원입니다. "상냥하고 지적인 아나운서 같은 여자의 음성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철저하게 자기소개 준비도 하고 면접까지 준비를 마쳤다. 정성 들여 양치질을 하고 가글도 덤으로 했다. 거울보고 상냥하게 웃는 연습도 여러 번 했다. 옷도 새양복으로 빼입고 생애 첫 알바를 시작하러 갔다. 첫 월급 타면 부모님께 속옷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어머니 아버지 빤스 사이즈까지 알아두었다. 효심 깊은 아들이다.
수능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첫 돈을 번다는 생각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야심 찬 하루의 시작이었다. 날씨는 11월 날씨답지 않게 포근하고 따뜻했다. 모든 게 완벽했다. FANTASTIC! 하늘이 그를 향해 구름길을 만들어 포근하게 해 주는 듯,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말이 앞장서서 환영해 주는 듯했다.
번화가 고층에 펜트하우스처럼 사무실이 차려져 있었고 핑크빛과 보라색 벽지의 완벽한 콜래보래이션이 돋보이는 신비하고도 고급진 이미지였다. 입구에 놓인 화분 속 화초들도 형형색색 리본을 달고 환영 인사를 했다.
M은 설레는 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항공사 승무원처럼 예쁜 아가씨의 안내를 받고 원장실로 들어갔다. 한물갔지만 뭔가 야릇하게 생긴 세련된 원장님께서 흰 가운 하나를 주셨다. "구석구석 깨끗이 씻으신 후, 아무것도 입지 마시고 가운만 걸치고 나오세요."
위생관념이 아주 철저한 학원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봉쥬르! 유명 프랑스산 세정제로 야무지게 몸을 닦고 아무런 의심 없이 가운만 걸치고 나왔다. 제자 M은 사회 체육과 지망생이라 평소에도 잘 다져진 몸매를 자랑하고 싶어 했다.
하늘이 내린 기회인 것이다. 드디어 프로필 사진이라도 찍나, 아님 속옷 모델이라도 시키려나 싶어서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샤워 후 가운만 걸치고 의기양양하게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나왔다.
젊고 유능해 보이는 검은 정장의 ㅇㅇ실장이란 이름표를 단 여인의 안내로 커다란 룸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있었다. " 위에 누우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화려한 조명발이 눈부시어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온갖 상상들이 머물다 갔다. 잠시 후, 다들 들어오세요 라는 소리와 함께 분주한 움직임과 발걸음이 느껴졌다.
"자! 가운 벗고 사타구니 벌려주세요. 하나도 안 아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왁싱 시작합니다."라는 소리에 눈을 떴는데 세상에나 수첩과 펜을 든 10명 넘는 실습생들과 원장님께서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브라질 왁싱 실습장이었다.
가운의 매듭을 당기려는 원장님을 향해 "왜 이러세요 , 아니 되옵니다!"라고 외치며 M은 가운을 손으로 꽉 잡고 테이블서 뛰어내려 락커룸으로 향했다. 마치 끓는 솥에서 달아나려는 새끼 돼지처럼, 시험실 개구리처럼 펄떡 뛰어내려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양말과 신발은 손에 든 체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혹시나 실습생들이 따라올까 하는 마음에 계단으로 미친 듯이 달려 나왔다. 제자 M의 첫 알바는 그렇게 상처만 남았다. 그날 이후 시급이 터무니없이 높은 곳은 절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이제 막 스물이 되는 아름 다운 청춘들을 응원한다.
애제자 M 네가 돈으로 자유롭기를! 항상 너를 응원한다. 첫 알바 얘기 듣고 참 많이 웃었는데 세월이 이렇게 흘러 넌 이제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네. 항상 성실하고 아름다운 널 기억하고!!